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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달의직원 Oct 25. 2024

학벌과 스펙으로 모든 것이 결정되는 사회

2013년 03월 25일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탄생했다.


그 당시 보도국에서, 심지어 문체부 산하의 공공 방송국에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던 나는 취임사를 생중계하고 있었다. 애석하게 밀고 있던 후보가 당선되지 않아 슬픈 마음이었지만 새로운 대통령의 취임사는 솔직히 좋았다. 내가 지금까지도 기억하고 있는 문단은 단 하나다.



                                학벌과 스펙으로 모든 것이 결정되는 사회에서는

                           개인의 꿈과 끼가 클 수 없고, 희망도 자랄 수 없습니다.


                                  개개인의 꿈과 끼가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우리 사회를 학벌위주에서 능력 위주로 바꿔가겠습니다.




새로운 정부는 학력과 스펙보다는 실력 중심의 사회를 이끌겠다고 전국민을 대상으로 말했고, 약속했다. 

학생 개개인의 소질과 능력을 찾아내서 자신만의 소중한 꿈을 이루어가고, 그것으로 평가받는 교육시스템을 만들어서 사회에 나와서도 훌륭한 인재가 되도록 할 것이라며 공언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학교부터 바꾸겠다는 나라님의 말 한마디에 호주의 교육시스템인 TAFE를 벤치마킹해 NCS(National Competency Standards), 국가직무능력표준이라는 것을 내놓았다.


당시의 교육부 차관은 어느 날의 브리핑에서 "전문 인재양성을 위한 직업교육을 위해 국가직무능력표준을 만들고, 이를 기반으로 고교 직업교육을 일자리 중심으로 개편해 고졸 취업을 촉진한다." 했다. 즉, 누구나 학벌이 아닌 능력으로 인정받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것으로 그 근간이 되는 직업교육 시스템인 NCS를 특성화고등학교부터 도입해나간다는 것이었다.


이 당시에는 또 이직을 해 EBS 교육방송에서 다큐멘터리를 촬영하고 있던 시기였다. 주제는 고졸 취업, 포인트는 단연 NCS로 기대반 걱정반인 정책인 만큼 구미가 당기는 주제였기 때문이다.


아직도 개념 자체가 어려운데 간략히  소개하자면 일-교육·훈련-자격을 연계하기 위해 국가직무능력표준 제도를 도입했다는 것이 취지이며 첫 삽을 뜨기 위해서는 일관된 정책과 학교의 교육과정, 현장의 실제 업무 등이 한꺼번에 수정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그 당시 특성화고의 취업률은 대졸학력의 취준생보다 높다고 볼 수 있을 정도였다. 특히 마이스터 고라는 보다 기술 중심의 학교에서는 졸업생 취업률이 100%가 될 정도로 대단했다. 이중 절반 이상이 대기업과 공기업으로 취업했으며 학교를 지원한 학생들의 내신 평균은 약 22%로 소위 말하는 명문대를 진학할 수 있는 수준이다.


마이스터, 장인을 양성하는 고등학교인 만큼 실제 다큐멘터리 촬영을 진행하면서 총 13명의 학생이 한국수력원자력에 합격했다. 학생들은 일반 교과 대신 실무 중심의 수업을 들으며 기업에 지원하기 위해 직장예절, 취업영어 등의 수업을 병행한다. 특성화고 역시 대기업 공채를 노리고 집중적으로 준비하는 학생들이 있을 정도로 고졸 공채의 기회, 고졸 취업은 활성화되어 있었다.


다른 이야기를 해보자면 나 역시 취업을 목표로 실업계 고등학교를 진학했다. 당시에는 무조건 대학을 가야 취업을 할 수 있다는 학력, 학벌사회였지만 '나는 다른 사람과 다르고, 학교를 가지 않아도 좋은 기업에 취업할 수 있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고교 3년을 보냈다. 하지만 이 3년이라는 시간은 의외로 충격이었다. 우리 학년이 들어올 당시 인문계 지원이 가능한 학생들이 들어왔으며, 오히려 이 학교에 떨어지면 인문계를 가야 하는 정도로 순위가 뒤바뀌었다.


여기서 반전은 모든 학생이 취업을 목적으로 상업고등학교를 진학한 게 아닌, 조금 더 편하고 높은 점수로 대학에 지원하려는 속셈이었다는 것. 결국 입학하자마자 수업 외 아무런 교육이 없던 학교에 보충수업이 생기더니 심화수업, 수능 대비반, 야자까지 생겼다. 학교에서도 이런 기회를 놓치지 싫었는지, 욕심이 났는지, 대학을 목표로 공부하라는 잔소리가 도를 넘었었다. 결국 나 역시 학교와 부모님의 설득으로 대입을 할 수밖에 없었고 아무런 준비가 안되어 있던 나는 옆 지역에 있는 전문대로 수시 지원했다. 수능은 꿈도 못 꿀 일이었으니까 말이다.


          부모님의 "그래도 대학은 가야 취업도 하고 시집도 갈 수 있지 않겠냐"는 말에 져버린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싫어하던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어도, 취임사를 연설했을 때만큼은 기대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의 학교 현장은 항상 직업교육정책으로 인해 변해왔기 때문.


1960년대 본격적으로 정책이 시행되어 70년엔 최초로 실업고등전문학교가 세워졌고, 고졸 취업에 활성화를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실업고보다 인문계 학교가 더욱 증설되면서 80년대 초, 고졸 취업의 바람은 식게 된다. 이어 대학 자율에 의해 입학 정원을 뽑게 된 2010년부터는 학생들의 대학 진학률은 80%를 넘어섰다. 이는 실업계 학교에서도 대학 진학을 위해 열을 올렸던 내 학창 시절을 떠올려보면 더욱 명확하다.


대학을 졸업하지 않으면 취업이 어려워진다는 썰도 나오게 됐다. 그러다 보니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누구나 남들보다 좋은 대학, 더 높은 학력을 추구하게 되는 학력과잉 현상이 증가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대졸자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도 대졸 취업률은 2012년, 68.1%를 마지막으로 2014년 67%, 2017년에는 66.2%로 지속적인 하락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리고 대졸자의 하향 취업률은 30%로 학력 무관 일만 준다면 지원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다시 돌아와, 지난 2013년 마이스터고등학교를 도입하고 직업교육을 시켜 전문가를 양성한다는 명목 하에 취업 지원 정책이 시행되었다. 직업교육의 새로운 전환점을 맞게 되었다는 말이다. 그리고 기업 역시 고졸 채용자를 늘리기 위해 노력했다. 만일 NCS 도입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면 학교 교육에서 실무를 담당하고, 산업체가 필요로 하는 인력을 키워냈을 것이다.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던 당시 만났던 은행권의 인사담당자는 NCS 도입에 대한 기대가 역력했다.

 

"그동안 특성화고등학교에서도 취업에 특화되어있는 교육이 실시가 안 되는 상황이었는데 (NCS가 도입되면) 앞으로 은행의 채용이 정규화될 수 있고, 고등학교 수업과정을 통해서도 바로 입사 후에 직무능력이 가능한 수준으로 인재가 키워지지 않을까 이렇게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느 중소 벤처기업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중소기업에서 필요한 것은 기본적으로 실무능력이 가장 중요하다, 소위 말해서 즉시전력이라고 얘기하잖습니까? 대졸자들이 즉시전력이 될 때까지는 상당한 기간이 필요합니다. 일의 종류도 다르고 쉽게 말해서 현장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아요. 오히려 실무를 배우고 온 고졸자보다 실무능력 면에서는 떨어진다고 볼 수 있죠. 사실 떨어지고요. 대신에 분석력이라든지, 기획력이라든지 이런 부분에서는 대졸자들이 앞서 나갈 수 있기 때문에 역할분담이 필요하다고 생각을 하죠."


 많은 기업체는 학교에서 산업 현장에 맞는 실무 중심 교육을 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현실적으로는 학교의 교육과정이 산업 현장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기업에서 다루는 기계들은 최소 수천, 억대의 값이 나가는데 학교에서는 고가의 장비를 놓기가 어렵다는 것. 뿐만 아니라 실습을 할 수 있는 기자재를 준비하기 쉽지 않다는 의견이다. 학교 현장 역시 NCS도입에 대한 기대가 걱정보다 컸다.


이론 중심의 교육과정을 실무중심으로 개편하고, 학생을 현장에 즉시 투입할 수 있도록 국가직무능력표준-NCS를 개발했다. 


NCS를 쉽게 설명하자면 스웨터 한 벌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모든 과정을 직무별로 체계화한 것이다. 업무에 필요한 지식과 기술, 장비 사용법 등 국가가 표준화하고, 이를 기반으로 교육과정을 편성한다면 학교에서는 현장중심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도입되었다.






실제로 정부가 벤치마킹한 호주의 TAFE제도는 어느 주에서 어떤 직업 교육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동일하게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경력 인정이 쉽고, 더 높은 코스의 직업 교육도 이어서 받을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그래서 인문계, 실업계가 따로 없는 호주에서도 각 학교별 직업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과정이 열려있다. 그리고 학생들은 일주일에 한 번 전문적인 직업교육을 수강하는게 가능하기 때문에 학생의 절반이 이 프로그램을 통해 취업하고 있다. 즉, 개개인의 적성과 재능에 초점을 맞추고 기술을 배운다는 것.


가능한 이유라고 한다면 직업기술전문학교에서는 세분화되고 전문적인 기술을 배우고 있어, 학문 위주의 대학과는 다르게 과정이 구성되어 있다. TAFE에는 학생들만 올 수 있는건 아니다. 현직에 있는 기술자도 재교육을 받도록 하는데, 새로운 기술이 나올 때마다 활용하는 현직자가 많다. 말인즉슨, 누가 와도 동일한 기술을 배울 수 있고 이를 현장에 적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렇게 과정을 마친 사람은 호주 어디에서든 취업할 수 있다. 


이렇게 할 수 있기까지 호주는 모든 분야가 어떻게 영향을 끼치고 파급효과를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한 커뮤니케이션 계획을 세웠다. 학생들의 진로 상담부터 교육 등이 이루어졌고 학생과 학부모, 학교, 산업체, 정부까지 각기 다른 수준에서 직접적인 소통을 이루고 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NCS제도는 현재 어떤 상황일까?





2013년, 학교 교육에 적용하기 위한 표준 교재를 각 분야별 전문가가 모여 개발을 논했다. 1여 년 안에 완성시키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지만 가을을 향하는 시점에서도 절반을 채 개발하지 못한 상황이다. 


실질적으로 한국에 맞는 학습모듈을 만들기 위한 협의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다만 개발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NCS가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라고 주장했다. 학생들이 공부를 하고, 취업을 하고 일을 하는데 있어 드는 어려움 중 하나가 어디부터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로드맵이 없어서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즉,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정확한 로드맵을 세우고 각 스텝과 레벨로 구분해놓으면 학생들이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는 이야기다.


지금 생각해보면 초중고 12년의 주입식 교육을 취업에까지 적용시켜 인생 끝까지 박아 넣겠다는 생각이 아닌가 싶다. 실제로, 당시 특성화고 학생을 담당한 선생님은 NCS 적용 자체가 힘든 것이라는 우려를 표했다. 각기 다른 수준을 가진 학생들에게 일괄된 기준을 적용시키기 때문. 결국 수위조절이 안된 채로 개발해봤자 학교 현장에서는 활용할 수 없으며, 급변하는 산업기술을 어떻게 따라갈 인가도 문제였다.


당시 정부는 봄에 계획을 세우고 여름에 NCS를 개발, 겨울에 마무리를 해 내년부터 직무능력표준을 도입한 교육과정을 특성화고에 적용한다는 계획이었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너무 서둘렀다는 판단이다. 분명 필요한 제도임에는 틀림없다. 학교에서부터 실무교육을 강화하고 현장에 필요한 인력으로 만든다는 것은 누구나 공감하고 원하는 결과일 것이다. 그러나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이 제도가, 정책이 장기적인 계획을 갖고 실현 가능한 과정인지 살펴봐야 한다. 탁상공론이 아닌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그래서 지금은 어떤가?

이 다큐멘터리를 끝으로 단 한 번도 NCS에 대한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저 당시의 정책을 봤을 때, 매뉴얼로 제작되어 특성화 고등학교에서는 보다 실질적인 실무를 배우겠구나 하는 정도였다.


그러나 지금 나와있고, 진행되고 있는 모습을 보면 그냥 새로운 시험이 나왔다는 느낌이다. 직무를 극세부로 나눠 공부를 시키고, 시험을 보고 평가하겠다는 것이 애초 그들이 원하던 개개인의 꿈과 끼가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방법이었나.


취준생이 준비해야 하는 시험이 또 하나 늘어난 것뿐이다. NCS를 대비한 학원도 등장했다. 고졸 지원자에 대한 가산점이 있으나 대졸자에 대한 가산점도 있다. 결국 학력과 학벌중심의 사회에 단순한 직무평가시험이 생겼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물론 실제 학교나 산업현장에선 어떨지 모르겠다. 공기업은 열심히 적용해 활용하고 있으나 일반 기업들은 관심도 없다. 누구를 위한 제도인가 싶다.




오늘도 많은 학생이 대학에 가기 위하 공부를 하고, 학원을 가고, 과외를 받는다. 모두 같은 길을 향해 가고 있다. 그러나 진학 대신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학생도 있다. 실업고라고 불렸던 특성화고 학생들이다.


학벌이 아닌 능력에 따라 인정받는 사회.

누구는 공감할 것이며 누구는 반대할 것이다.


학력 과잉 현상인 지금, 학벌 역시 능력이라고 주장하기 때문.

틀린 말은 아니다. 다만 그 기준을 모든 사람에게 적용하는 것이 불편할 뿐이다.


나는 아직도 능력중심 사회가 올 수 있다고 판단한다.

조금 더 단순하게, 불필요한 스펙을 덜고 받아들인다면 

취준생이든, 산업체든 서로 윈윈할 수 있는 결과를 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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