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늑대

억압과 자유의 역설에 관하여

by Epakouon 에파쿠온

백수의 삶은 힘들다.

왜 그럴까.


아마 무한한 자유에는 막중한 책임감과 인내가 따르는 듯하다.

오히려 적당한 억압과 강제성은 인간으로 하여금 활기를 돋게 한다.


군대에선 휴대폰을 강제로 못쓴다. [억압]

그렇다 보니 책을 많이 읽게 되었다 [억압이 불러다 주는 자유]

책을 많이 읽는 삶을 추구하던 나에겐 어느 정도의 억압이 도움이 되었다.


전역 후 사회에선 휴대폰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자유]

하루 종일 유튜브, 숏츠, 넷플릭스 굴레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자유가 불러다 주는 억압]

무한한 자유 앞에 한없이 약해지는 나의 인내. 근데 도파인에 절여진 뇌를 곁들인


이전에 교도소 출소 후의 삶이 두려워 계속 남아있고 싶다고 한 죄수의 에피소드를 들은 적이 있다.

그들이 정말로 두려웠던 건 뭐였을까.

그들에겐 교도소의 안정된 삶이 [억압이 불러다 주는 자유]이었던 건 아닐까?


왜 인간들은 자유를 원하면서도 두려워하는 것일까.

참 역설적이지 않을 수 없다.


직장인들은 백수[자유]를 부러워하지만 백수가 되기[자유가 불러다 주는 억압]는 두려워한다.

금전적인 문제도 있겠지만, 인간은 끊임없이 어딘가에 소속되기를 원하는 것 같다.

학문적인 호기심이나 취업 때문에 대학[억압]을 가는 것도 있겠지만,

끊임없이 어딘가에 소속[억압이 불러다 주는 자유]되어온 아이들이 자신을 드넓은 들판에 내던지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억압이 불러다 주는 자유]를 적절히 활용한다면 인생에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는 억압이 없어지는 시기가 올 것이며, 이 시기가 [자유가 불러다 주는 억압]에 의해 잠식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자유를 자유로서 받아들이는 독립된 인격체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드넓은 들판에 한 번쯤은 홀로 있어봐야 한다.

소속감이 주는 달콤한 안도에 빠져있어선 안된다.

[억압이 불러다 주는 자유]에 내 의지를 빼앗겨서는 안 된다.


무한한 자유를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 때, 비로소 독립된 인격체로 거듭날 것이다.

이렇게 굳세어진 인격체는 세상의 풍파로부터 조금, 아주 조금 긁힐 뿐이다.

우리 모두 외로운 늑대가 되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