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의 기회비용에 대하여
중독에도 정도가 있을 것이다. 경미한 중독과 심각한 중독.
경미한 중독 증세는 현대인이라면 한 번쯤은 경험해 봤을 거라 생각한다.
경미한 중독은 '자신의 강한 기호'와 헷갈리기 쉽다. 어떠한 행동을 좋아하기 때문에 많이 하게 되는 것이고 이것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일어난다면 중독이라고 불린다. 그러나 경미한 중독 와의 경계가 참 희미하다.
'기호에 대한 강한 발현'과 '경미한 중독'의 차이를 나름대로 생각해 보자면, 죄책감의 유무와 관련이 있는 게 아닐까 싶다. 게임을 좋아해서 쉬는 날에 하루 종일 게임을 했다고 모두가 죄책감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중독의 위병소를 통과하는 사람은 자기 전에 죄책감을 느끼며 내일은 그러지 말자고 다짐한다.
또 하나의 차이는 '아름다움의 내재 유무'이다. 기호에 대한 강한 발현의 경우 그 속에서 삶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중독의 그늘 아래에서는 그 자신도 아름다움을 느낄 수 없을뿐더러 제삼자가 바라볼 때도 아름다움을 느낄 수 없다.
일상에서의 아름다움은 대게는 우연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카페에 앉아있는데 문득 온도, 습도, 햇빛, 노래가 모두 완벽하다는 생각이 든다던가. 아무 생각 없이 펼친 책 속에서 아름다운 문장을 발견한다던가.
그러나 경미한 중독에서는 이러한 우연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기 힘들다.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은 간혹 자신의 플레이에 아름다움을 느끼지만, 중독된 사람은 무언가에 강박이나 집착이 생긴 상태이기 때문에 그런 걸 누릴 틈이 없다.
술은 즐기는 사람은 술의 향과 맛을 음미하며 즐기지만 알코올 중독자는 자신의 혈중 알코올 농도를 올리기 바쁘다.
경미한 중독이 자신의 일상생활에 별로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다.
"내가 내 남는 시간에 할거 하겠다는 게 뭐가 문제야"
삶의 존재에 대한 이유는 많은 논의가 있지만 한 가지를 꼽으라면 '좋은(아름다운) 상태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일상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순간이 많은 사람이 그런 존재가 아닐까.
중독은 바로 삶의 아름다움을 느낄 기회비용을 발생시킨다.
시간이라는 자원은 누구에게나 소중하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지금까지는 시간은 곧 생산성의 척도였으며 돈으로 환산할 수 있는 가치였다. (시간 ---> 돈 은 가능하지만 돈 ---> 시간 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AI의 등장으로 생산성은 의미가 사라지고 있으며 시간의 가치는 변화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더 이상 인간의 시간은 생산성으로 설명할 수 없으며, 시간은 '인간이 아름다움을 생각할 수 있는 단위'로 바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름다움을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인간에게 필요한 것을 찾아낼 수 있고 그 사람은 AI시대에도 살아남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성공에 대한 집착이나 일 중독 등도 내가 말하는 중독의 일부이다. 잠시 내려두고, 삶의 아름다움에 민감해지는 연습을 해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