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
AI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만드는 시대가 됐다.
기술적인 위협보다 더 무서운 건 따로 있다. 내가 애써 만들어온 것들이 전부 모방 가능한 패턴으로 환원되는 것 같다는 느낌이다. 나는 과연 대체 가능한 존재인가.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는 이런 말을 남겼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이 문장은 처음 읽으면 쉽게 넘어가게 된다. 하지만 잠깐 멈추고 생각해 보면 조금 낯선 주장이다.
보통 우리는 반대로 생각한다. 망치는 못을 박기 위해 만들어진다. 기능이 먼저이고, 존재는 그다음이다. 즉, 본질이 실존에 앞선다. 그렇다면 인간도 그럴까.
누군가에게 쓸모 있어야 존재할 수 있는가. 생산하지 못하면 존재의 가치가 없는가.
사르트르는 아니라고 말한다. 인간은 망치가 아니다. 우리는 먼저 존재하고, 그 이후에 스스로 의미를 만들어가는 존재다. 본질은 태어날 때 주어지지 않는다. 살아가며 직접 써 내려가는 것이다.
AI는 다르다.
AI는 목적을 위해 설계된다. 기능이 먼저이고 존재는 그다음이다. 정확히 망치와 같은 구조다.
그렇기 때문에 AI는 아무리 정교해져도, 사르트르가 말한 의미의 인간이 될 수 없다.
AI는 존재하기 위해 의미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냥 실행될 뿐이다.
반면 우리는 의미 없이는 살아가기 어렵다. 그 '의미를 필요로 하는 불완전함'이 역설적으로 우리를 인간으로 만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솔직하게 말하자면, 이런 철학적 위안이 현실의 불안을 단번에 잠재우지는 않는다. 당장 취업 시장은 바뀌고 있고, 내가 배우고 있는 것들이 몇 년 뒤에도 쓸모 있을지 알 수 없다. 그 불안은 실재한다.
그러나 나는 최근 이 불안이 조금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불안은 내가 무언가를 잃을까 봐 두려울 때 생긴다. 그리고 잃을 것이 있다는 건, 아직 지키고 싶은 것이 있다는 뜻이다. AI에 대해 불안하다는 것은, 아직 내가 살고 싶은 삶의 모양이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AI가 내 직업을 위협할 수 있다. 내가 만든 결과물을 흉내 낼 수 있다. 내가 아는 것들을 더 빠르게 처리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이 상황 앞에서 어떤 태도를 선택할 것인가 이것만큼은 아직 나의 것이다.
우리는 어쩌면 너무 오랫동안 존재를 기능으로 증명해 왔는지도 모른다.
좋은 학교를 가야 하고, 좋은 직장을 얻어야 하고, 생산적인 사람이어야 했다. 그 기준에서 뒤처지면 스스로를 의심했다. 그 기능을 의심받는 사람들은 도태될 수밖에 없었다.
AI의 등장은 이 구조를 흔들어버렸다. 기능으로 나를 증명하기가 점점 어려워졌다.
그러나 이것은 위기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오래된 질문을 다시 꺼낼 기회이기도 하다.
나는 무엇을 하는 사람이기 이전에, 어떤 사람인가. 완벽하게 답할 필요는 없다.
애초에 완벽히 답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대신에 대략적인 방향은 생각해 볼 수 있다.
당신이 AI 앞에서 느끼는 불안은, 어쩌면 당신이 아직 살아있다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불안해하지 않는 존재가 있다면, 그쪽이 오히려 더 걱정해야 할 것이다.
지금 당신이 가장 두려운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 두려움 안에서, 당신이 지키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