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타이틀에 대한 의심이 필요할 때
우리는 모든 종류의 전문지식을 가질 수 없다. 그렇다 보니 삶의 일부분에 대해선 누구나 아웃소싱하고 있다.
그것이 공동체 생활의 기본 개념이며 인간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이다.
아웃소싱을 할 때 누구에게 맡길지 판단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 되었는데, 이때 권위와 명성, 약간의 친밀도는 중요한 선택의 근거가 되었다.
권위가 있는 사람이 이야기하면 그 정보가 논리적으로 맞는지, 근거가 존재하는지를 따지는 수고로움을 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권위는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야 한다. '미디어에 자주 비치는 사람 = 전문가' 는 아니라는 것, 권위 있는 사람의 의견이 절대적 진리가 아니라는 것.
증권가에 가보면 주식시장의 상승과 하락에 대한 의견이 극명하게 나뉜다. 그들 모두가 전문가라고 자부하지 않겠는가. 같은 커리큘럼으로 같은 학위를 받은 사람의 생각들이 모두 다르다.
그 말은 증권가에서 뿐만 아니라 권위 있는 사람이 해준 삶의 여러 조언에서도 정반대의 전문가 조언이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각각의 상황에 100퍼센트 맞는 조언을 해주는 사람은 없다. 각자가 처해있는 상황은 모두 다르고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들은 너무나도 많다. 어제는 진리였던 말들이 오늘은 아닐 수 있다.
진시황이 불로장생을 위해 먹었던 수은은 그 당시에는 영생을 위한 영약이라고 먹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먹으면 안 된다는 것을 누구나 안다.
시대마다 권위가 존재하는 사람들은 비대칭 전력이 존재했다. 그것이 지식이 될 수도, 재산이 될 수도, 출중한 무예가 될 수도 있었다.
현재에도 비슷하게 적용된다. 박사학위는 남들보다 많은 지식을 갖고 있다는 권위의 명패가 되었고 황금만능주의 시대에 재산이 많은 사람들은 신격화되고 있다.
결국 권위의 기반의 대부분은 지식일 텐데, 진시황의 사례처럼 지금 논문으로 밝혀진 사실들이 영원한 진실이 아닐 수 있다는 가정은 권위에 대한 믿음을 흔들 수밖에 없다.
특히나 끊임없이 새로운 연구결과가 나오는 현실에서 학위 취득 후 최신 연구결과의 리딩을 게을리한 학자가 있다면 옛날의 지식을 화살로, 자신의 학위를 활로 삼아 대중들에게 조언할 것이다.
또한 이 사람은 운 00%, 실력 00% 로 많은 재산을 갖게 되었음 하고 증명할 방법이 없다. 단지 부유하다는 것으로 돈을 버는 방법에 대한 강의를 한다면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혼란스럽다.
모든 종류의 지식을 의심하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권위가 있다고 해서 '내 경우의' 정답인 조언을 해주진 않으며 그들의 권위 또한 허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조언의 수용을 잠시 보류하고 멀찍이 떨어져 근거가 무엇인지, 나의 맥락과 맞는지, 말하는 의도는 무엇인지 질문을 해보는 태도가 필요한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