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읽는 즐거움에 관하여
평소에 무의식적으로는 느끼고 있지만 깊게 생각하지 못한 직, 간접 경험을
명료한 언어로 적확하게 표현하는 글
이라 정의 내리고 싶다.
여기서 비문학적 아름다움과 문학적 아름다움을 조금 더 세분화하자면,
비문학적으로 아름다운 글은 "흐트러짐 없는 논리로 주장과 근거 간의 인과관계가 명확하며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이 독자의 이성을 자극하여 공감을 이끌어내는 글"이며,
문학적으로 아름다운 글은 "사물이나 상황을 표현함에 있어 독자로 하여금 그 이상의 적절한 표현방식이 없다고 느끼게 만드는 글"이라고 생각한다.
한용운 시인의 '님의 침묵'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냈지만 떠나보내기 싫은 마음을 역설을 활용해
이보다 더 잘 표현한 시는 없다고 생각한다. 정말 아름다운 글이다.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에는 권위행사에 관한 주제가 나온다.
"그 차이의 요점은 권위를 소유하고 있느냐, 아니면 권위로 존재하느냐이다. ··· 존재양식의 권위는 사회적 기능을 수행하는 능력뿐 아니라 고도로 자기실현과 자기완성을 이룩한 인간의 인격을 바탕으로 세워진다. 그런 인물에게서는 저절로 권위가 배어 나온다.···"
권위를 소유하는 사람과 권위로 존재하는 사람의 차이를 적절한 예과 근거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특히 교육에 관해서 권위주의 교육과 자유방임주의 교육을 고민할 것이 아니라, 부모가 권위를 소유하고 있는지 권위로서 존재하고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하는 점이 인상 깊었다. 평소에 책을 읽지 않는 부모가 자녀에게 독서를 강요한다면 그것은 권위의 소유가 되는 것이고 솔선수범하여 자연스럽게 따르게 만드는 부모는 권위로서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평소에 막연하게만 생각하고 있던 내용을 훌륭한 논리와 언어로 표현한 아름다운 글이다. 1)
부가적인 내용으로, 나는 책을 고를 때 문학 작품이 아니라면 1차적으로 참고 문헌이 있는지 살펴본다. 주장과 주장을 뒷받침하는 탄탄한 근거가 한 몸이 될 때 훌륭한 글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참고문헌이 없다면 주장만 나열한 글이 될 것이다. 물론 그 주장들이 누군가에겐 도움이 될 수 있는 내용이겠지만 확률적으로 좋은 글이 되기는 어렵다.
아름다운 글의 조건은 사람마다 모두 다를 것이다. 나의 경우 내가 생각해보지 못한 표현을 읽었을 때,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지만 명료한 단어로 표현하지 못한 것을 누군가 해냈을 때 희열을 느끼는 것 같다. 앞으로 어떤 형태의 글이든지 읽을 일이 많을 텐데, 글의 아름다움을 모르고 살아가는 것은 삶의 큰 부분을 놓치는 것이라는 안타까움이 든다. 그런 의미에서 꼭 한 번쯤 고민해 봄직한 질문이다.
"당신이 정의하는 아름다운 글은 무엇인가요?"
1) 에리히 프롬. (2020). 소유냐 존재냐 (차경아, 옮김). 까치글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