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불완전함에 대하여

by Epakouon 에파쿠온

예로부터 인간을 정의하는 것에는 많은 힘듦이 있었다.

인간은 완벽하게 정의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겠지만, 인간이 가지고 있는 속성은 몇 가지 나열할 수 있을 것이다.


그중에서 인간의 '불완전성'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완벽한 인간은 없다. 그렇기에 아름답다.

어느 분야에서 정점에 있어 모두의 존경을 받는 사람이 전혀 다른 분야에서는 잘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인간미'있다고 이야기한다. 인간의 불완전함이 인간미로 탄생하는 것이다.


헤르만 헤세가 쓴 [싯다르타]에서도 인간의 불완전함을 이야기한다. 작품에선 석가모니(고타마 싯다르타)를 고타마와 싯다르타 두 인물로 표현한다. 고타마는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깨달은 자'로 표현되지만 싯다르타는 여러 고난과 역경을 겪으며 끊임없이 힘들어하고 고뇌한다. 여느 인간과 별 다르지 않은 모습인 것이다. 부처도 불완전한 존재라는 사실, 어쩌면 우리 안에도 모두 부처가 있다는 사실은 읽으며 많은 위로와 희망을 받았다. 꼭 일독을 권한다.


이처럼 인간은 완벽하지 않지만 역설적이게도 완벽함을 추구한다. 이른바 '완벽주의'로 인해 사회가 병들어가고 있다. 완벽한 건물, 완벽한 발표, 완벽한 글, 완벽한 사람. 하지만 우리는 완벽하지 않았기에 공동체를 이룰 수 있었고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었다. 각자도생의 길을 택했다면 지금의 인류는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일본에는 와비사비라는 전통 미학이자 철학이 있다. 와비사비는 불완전하고, 덧없으며, 소박한 것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인위적인 완벽함보다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변해가는 상태를 추구한다. 화려하지만 복잡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이 사찰을 찾는 이유와 일맥상통한 듯하다.


와비사비의 교훈뿐만 아니라 여러 종교들, 현인들이 끊임없이 이야기하던 주제가 있다. 바로 중용이다. 노자는 비어 있음과 불완전함이 오히려 큰 쓰임이 된다고 보았다. [도덕경]에서는 이와 관련해서 적절한 비유가 나온다. '방은 비어있기 때문에 쓸모가 있는 것이고 그릇 또한 그러하다.'라는 것이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채워져 있었다면 그릇으로, 방으로의 쓸모는 없을 것이다. 적절히 채울 줄도 비울줄도 알아야 한다.


또한 불교에서의 수행을 떠올리면 완벽한 자기 통제가 떠오르지만, 오히려 석가모니는 완벽하게 자신을 통제하려는 고행주의와 감각적 즐거움에만 빠지는 쾌락주의를 모두 경계하라고 말했다. 적절한 긴장과 이완, 모두 필요한 것이다.


인간의 본성에 역행하는, 완벽주의는 현대사회의 생산만능주의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듯하다. 자본주의는 아메리칸드림을 필두로 끊임없이 노력하면 누구나 '(자본주의에서 말하는) 성공'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생산하지 못하는 인간을 사회에서 의미 없는 사람으로 취급하며 인간의 본성을 좀 갉아먹었다. 인간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가치 있으며 생산성으로만 평가할 수 있는 그런 존재가 아니다. 그렇게 잘하지 못해도 괜찮다.


사람들이 완벽하지 않은 이 글을 통해서라도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위로를 받았으면 한다.




+기술의 발전으로 유전자를 조작할 수 있게 되고 모든 분야에서 특출한 재능을 발휘하는 A가 탄생했을 때, A는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철학적으로 고민해봐야 하는 질문이다. 어쩌면 생물학적으론 인간이지만 인문학적으론 인간이 아닌, 신인류의 탄생이 멀지 않은 미래에 있을 수도 있겠다.


+ AI의 발전으로 온라인상에 AI의 그림, 동영상, 글들이 점점 많아지고 완벽한 퀄리티로 나아가고 있다.

앞으론 '완벽하지 않는' 콘텐츠들이 사람이 만들었다는 인증마크가 될 것이고 그 인증마크가 점점 귀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