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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PAULE Oct 11. 2018

'어떻게'와 '무엇을 위해'

그래서 나는 어떻게 살건데? <하>

그래서 나는 어떻게 살건데? <하>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까?" 이 물음은 대학 졸업을 얼마 안 앞두고 방황하던 나날부터 쭉 나와 함께 하고있다. 짧은 인생이지만 그간의 굵직굵직한 신변의 변화를 지시하기도 했고, 그럴 때마다 찾아오는 고난을 견딜 수 있게도 해줬다. 내 안의 저 질문 때문에 취업도 꾸역꾸역 어렵게 했었고, 돌고 돌아 들어간만큼 오래 다닐수 있었던 회사를 나왔고, 일반대학원에 들어가 2년 반 걸려 석사학위를 땄다. 그렇게 특별하지 않은 학위. 애초에 큰 포부를 갖고 들어간건 아니었기 때문에 대학원 생활에는 후하게 5점 만점에 3.5점 정도를 주겠다만 학문적인 뚜렷한 성과를 기록하지도 못했고 내가 그렇게 공부를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다는 것도 알았다. 아빠와 이별하고 백수뿐인 가족 사이에서 몇 달이지만 돈이라도 좀 벌어야겠다 생각한 장녀로서의 귀찮은 책임감도 있었다(나는 당연히 부담을 갖기 싫고, 하늘로 간 우리 아빠도 그런거 신경안쓰겠지만, 여기 땅에 발붙이고 사는 울 엄마는 내가 장녀인게 중요하다). 그래서 석사로서의 일자리가 매우 불안정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박사 과정으로 바로 진학하는 대신 학교 바깥으로 나가서 일을 해보기로 했다. 내가 눈여겨보던 국책 연구원들은 지방 이전 정책으로 죄다 허리 아래로 내려가 있었다. 잠깐 일할거면서 갑자기 세종시로 가기는 난감해서 서울에 남아있는 몇 안되는 연구원 중 내 관심분야와 조금이라도 부합하는 과제를 수행하는 연구원에 지원해 일자리를 얻게 됐다.


그렇게 일주일 정도 출근하는 내내 나를 지배하던 질문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까"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할까?"였다. 모니터만 덩그러니 놓여져 있는 책상에 앉아 있으려니 무서워졌다. 서른이라는 나이는 이 업계에서 아직은 그렇게 심각한 편은 아니지만, 여성이자 특별하게 인정을 받기 어려운 사회과학계 석사라는 신분이 더해지니 몇 달 후면 계약이 종료되는 비정규직인 내 상황에 아찔해 질 수밖에. 도대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매일 내적 한숨을 내쉬며 고민했다. 오후 2시에 연구실에 출석해서 밤 11시까지 살던 일상에서 벗어나 오랜만에 남이 정해준 나인투식스라는 루틴에 맞춰야 함에도 불구하고 새벽 세 시까지 이런 저런 내 앞날에 대한 검색을 해봤다. '석사, 사회과학, 앞날, 미래...' 따위의 단어를 조합해서 나보다 먼저 이 고민을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뒤져봤고 나는 더 우울해졌다. 사회과학계 국내 석사는 멀리 내다보기 어려웠다. '나는 이렇게 비정규직을 전전하다 나중엔 나이가 많아서 채용도 안 될것이며 혹시라도 운이 좋으면(운이 좋아서일까?) 남들처럼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아이를 키우다 경력단절여성이 되겠구나. 이러려고 이전 회사를 나왔던 것은 아닌데... 거긴 육아휴직도 되고 복귀도 다 잘하고, 십 오년은 더 다닐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내가 미쳤었구나!'


상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최악의 상황으로 연결되었고, 최근의 선택에 대한 작은 후회는 오래 전의 아무 죄 없는 나까지 비난하고 있었다. 나도 나름 대책을 모색해봤다. 더 나이가 들기 전에 박사 과정을 밟는 것, 정규직으로의 취업이 열려있는 다른 업계로 아예 방향을 틀어보는 것, 예전 회사 팀장에게 연락을 해보는 것(미쳤다) 등등... 준비한 몇 가지 시나리오를 들고 대학원 선배들을 만났다. 그들은 내 대책이 불러올 더 끔찍한 미래들을 얘기해주면서 냉정하게 조언을 건넸다. 내가 알면서도 별로 원하지 않았던, 애써 외면했던 시나리오였던 이 생활을 더 해보면서 필드 경력을 쌓아보라는 것이었다. 이 이야기를 들었을때만 해도 석사 나부랭이로 근근히 이어갈 비정규직 생활이 얼마나 경력으로 인정받을지는 모르겠다는 회의감이 더 컸었다. 그래서 대화를 나눈 후에도 '그래서 어떻게 살아야 하지...'라는 질문에서 헤어나올 수 없었다.


그런데 어제 세상 제일 화려하게 불꽃이 터지는 와중에도 무기력한 남자친구를 보고 나니 내가 잠깐 "어떻게"에만 홀려있었다는 것을 달았다. 남자친구는 그저 돈 때문에 회사를 다니다 보니 재미도 없고, 보람도 못 느끼는데다 3년차 증후군을 겪으며 주말조차 즐겁게 보내지 못하고 있었다. 남자친구는 돈을 많이 모으는 것 외에는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리고 나는 그런 그를 동정할 수 있었다. 나는 내가 목표하는 바를 여러가지 방향으로 진행시켜보는 중이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목적지가 조금 멀리 있고, 금전적인 보상이 확실하지 않아서 불안한 것일 뿐이었다. 복지는 커녕 남자친구보다 월급도 훨씬 적고, 조금 있으면 다시 백수가 되고, 십 년 후도 정해져있지 않다만 목표한 미래를 만드는 것은 전적으로 내 손에 달려있기 때문에 그와 다르게 적어도 주말은 온전히 즐길 수 있었다.


남의 불행으로 나의 행복을 확인하는 것 만큼 못된 일도 없지만, 나는 내가 사랑하는 불쌍한 내 남자 덕에 "어떻게"는 치워둘 수 있게 되었다. 돌아보니 "어떻게"는 너무 뻔했다. 남자친구가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게 도와주면서, 내게 주어지는 일 열심히 하고, 계속 틈틈이 공부를 해 나가면 되는 거였다. 어느 업계나 그러하겠지만 특히나 이 좁디 좁은 사회과학계(라고 통칭하지만 내 전공은 더욱...)에서 소수의 천재와 독창적인 아이디어와 에너지를 가진 자를 제외하고 이 길은 누구에게나 불안하다. 나는 그걸 잘 알고도 이 세계에 들어왔으며, 때로는 보편적인 사회와 다르기 때문에 감내해야하는 괴로운 시간들을 만나기도 했지만 돌아보면 의미가 없는 일은 하나도 없었다(솔직히 의미 없는 작업을 하기도 하지만 매우 일부분이긴 하다). 


내 삶을 살아 나가는 데 중요한 게 무엇인지 나 자신에게 끊임없이 질문하고, 대답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잘 살아나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따라서 "어떻게 살것인가?"보다는 "무엇을 위해 살것인가?"를 나의 중심 질문으로 끌어올리며, 다음 글에서는 이 못난 글을 절박하게 찾아 읽을지도 모르는 나와 비슷한 누군가를 위해 구불구불하게 이어진 나의 족적을 기록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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