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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PAULE Jul 15. 2024

초복을 앞두고

구토할 게 없는데 구역질이 났다. 저녁으로 먹은 돼지국밥이 얹힌 것 같은 기분이었지만 이미 한참 전이었다.


야 언제 먹은건데, 돼지국밥이 나올 리가 없다고!


돼지국밥을 토할 리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이걸 토하면 나는 다시는 돼지국밥을 못 먹을지도 모른다는 미련한 생각에 한참을 참다 몰려오는 구역감에 억지로 구토를 하러 갔다. 나오는 건 아침에 마신 물이 희석한 위액.


봐, 토할 게 없잖아. 확인했으니 됐지? 나올 게 없어. 넌 이미 다 소화했어.


대충 헹구고 침대에 누웠는데 토하고 싶은 기분나쁜 울렁거림이 지속됐다. 숙취가 아니다. 난 어제 마신 술을 다 깨고 잤다. 취하지도 않았다. 새벽 두 시에 걸어서 집에 왔고 샤워를 하고 빨래를 널고 책을 읽고 잤다.


이거 숙취 아니야. 토할 게 있는 것도 아니야. 넌 다 소화시키고 넘겼어. 괜찮아. 다 괜찮아..


스스로 다독이고 토닥였다. 이마에 식은땀이 나 선풍기를 켜둔 채 몸을 이불 속으로 숨겼다. 불안해하는 몸을 다독이다 정신을 차려보고자 오늘 날짜를 세어본다. 7월 14일. 내일은 월요일, 내일, 초복. 아아 이미 4년 전인데. 결혼한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나 결혼을 준비하던 때의 사진을 올리며 어떤 행복은 소화하기까지 오래 걸린다고 했던 친구의 말을 떠올렸다. 그래 행복도 소화하는데 시간이 걸린다는데 하물며 이 일은.


J야... Y 엄마가 만나자는데?


매미가 울고 사람들이 초복을 말하면 어김없이 엄마랑 아침 식탁에 앉아있다 갑자기 홀로 낭떠러지에서 한없이 떨어지던 그 순간으로 돌아간다. 전날 밤에 만나고 온 너는 잘 얘기해보겠다고 했는데. 나는 우리집 식탁 앞에 앉아 있는 동시에 절벽에서 밀려 하늘을 보고 누운 채 추락하고 추락하다 끝도 한도 없는 어딘가로 가라앉고 있었다. 기가 막혀서 눈물도 나지 않았다. 의자에서 일어나지도 않은 채 끔찍한 배신감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너를 증오하고 저주하던 말을 써 보냈다.


병신새끼. 원망도 못하게 차라리 죽어버려.


오랜 친구에서 연인이 된 만큼 서로를 존중하고자 사귀는 내 단 한 번 야라고 부른 적도 없었는데 망설임없이 튀어나왔던 병신새끼. 나랑 너랑 결혼하는 건데 결국 제 엄마 뒤에 숨어 제 엄마가 우리 엄마한테 연락을 하게 했으니 너는 병신새끼가 맞다. 우리 엄마는 그 때 그 식탁에서 ‘엄마는 네가 원하는 대로 해줄게. 결혼하고 싶으면 엄마가 뭐든 도와줄게.’ 라는 말을 하고 있었으니까. 사실은 나야말로 병신새끼였다. 걔는 나를 놓으면서 효도라도 했지. 그런 대우를 받고도 네 곁에서 너를 평생 사랑하겠다는 불효까지 저지르려고 했다. 아 나는 너를 평생 사랑하려 했는데. 죽는 날까지 너를 사랑할 수 있었는데. 아빠를 잃은 것이 내 인생 최대의 상실이었던 나는 네가 차라리 죽은 사람이길 진심으로 빌었다. 어떻게 이 땅에 살아있으면서 나를 등져. 세상에 없는 사람처럼 죽은 듯이 살아. 어떻게든 아프게 하고 싶어서 했던 모진 말. 제발 얼굴이라도 보고 헤어지자고 조른 덕에 겨우 만날 수 있었던 그 애는 저 말이 참 아팠다고 했다. 사랑하는 사람한테 죽어버리라는 말을 듣는다니. 그 말은 그 애만 해친 게 아니었다. 나는 내가 했던 저 못된 말을 떠올릴 때마다 울었다. 가장 사랑했고 가장 사랑하고 앞으로도 가장 사랑하려 했던 이에게 해선 안되는 말이었으니.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완전히 무너졌었다.


우리는 잘 헤어졌고 너는 다행으로 내게는 죽은 듯, 하지만 어딘가에 누군가의 남편이자 아버지로 잘 살아가고 있다. 나는 너를 거쳐 만든 세상에서 충분히 행복해하고 있고 그래서 이제는 진심으로 너의 행복을 바라고 있고 아마 너도 내 행복을 바라고 있겠지. 아팠던 시간들도 돌아보니 결국 좋은 타이밍이었고 만남에서부터 헤어짐까지 이어진 모든 우연과 운명에 감사하다. 이 곳에도 네가 없는 세상에서 너를 평생 사랑할 수 있음을 아름답게 써두지 않았던가. 그러니까 시간도 시간이고, 분명 다 소화가 되었다.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했고 가슴으로 인정했다. 그러나... 여름이란.


눈을 감지 않아도 순식간에 되돌아가는 그 식탁 네 흔적도 없는 그 마지막 통보의 순간 그 여름. 같이 살려고 했던 집에서 내 짐만 바삐 챙겨 나온 후, 퇴근 시간이라 길이 막히니 시간 좀 보내다 가자는 엄마에게 ‘안 돼 제발 지금 당장 집으로 가줘’ 어른이 된 이래 처음으로 거의 흐느끼며 애원했던 그 차 안 그 반포대교 위 그 여름. 나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전부 잃어버렸던 그 여름.


나올 것 하나 없는데 토악질을 해대고 싶어지는 지독한 여름 앓이는 자연스러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삼계탕을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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