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하는 자리

by 정뎅





제 작년 겨울, 회사 선배가 “고민만 하지 말고 일단 원서부터 넣어봐”라며 건넨 말에 덜컥 몇 년째 고민만 하던 대학원 원서를 접수했고. 그렇게 합격과 입학. 어느새 2년이 흘러, 4학기의 중간고사를 넘기고 마지막 종강까지 한 달 반 정도만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세상에나 개강과 종강이 세 번쯤 반복되고 벌써 졸업학기라니. 정말 믿기지 않습니다.


막학기를 보내는 요즘, 모르는 게 너무 많아 “이대로 졸업해도 되나” 싶은 순간이 잦습니다. 아무리 특수대학원이라지만, 학기가 거듭될수록 부족하다는 생각만 깊어지는 것이. 이대로 석사 학위를 받아도 되는 것일까 싶습니다. 공부를 충분히 하지 못한 탓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졸업 후 시기상 3년 뒤쯤 석.박사 통합과정에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공학 박사 학위를 받을 때면 뭐라도 자신 있게 “안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해서요.


가족들과 짝꿍이 물었습니다.


“박사과정까지 하고 싶은 이유가 뭐야?”


그 질문이 한동안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명확한 목표는 없습니다. 그저 공부하는 자리에 있는 것이 행복하다고 느껴지는 것 같아요. 그저 내가 궁금해하고 욕심나는 분야 속에 머물러 있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그런 이유로 연구원이 되는 기대를 하기도 하구요. 대단한 연구를 하진 못하더라도 사회에 어떠한 작은 보탬이 되는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소망도 있습니다.


결국 ‘왜 학위를 따려하느냐’는 질문에는 쉽게 대답하지 못하겠습니다. 생각해 보면, 저는 항상 현재 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고 도태되는 기분이 들 때마다 배움의 자리로 도망쳤던 것 같습니다. 지식이 부족해서일까 해서요.


편입 공부를 시작했던 것도, 프로그래밍 수업 시간의 수치심을 견디지 못해 방학 내내 학원에 다녔던 것도, 취업이 막막해 부트캠프에 등록했던 것도, 기술스택을 늘리려 개인공부를 계속했던 점도. 그리고 안정된 직장생활이 무료해질 즈음 대학원 원서를 넣었던 것도 다 같은 이유였습니다.


이렇게 지식과 배움, 발전에 목말라했던 또 다른 이유는 학벌 콤플렉스였을지도 모릅니다.

기회가 주어졌을 때 감사함을 알고 몰입할 수 있다면 그건 얼마나 큰 축복일까요. 공부만 해도 괜찮았을 중고등학생 시절 충분히 몰입하지 않아 어린 시절 꿈꿔왔던 대학교, 대학생활을 하지 못했던 것을 20대 내내 후회했습니다.


사람은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죠? 편입학 후에도, 취업 후에도 마찬가지였어요.


머무는 자리에 만족을 잘하지 못했어요. 나쁘게 이야기한다면 제 처지에 감사히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 좋게 이야기하면 발전과 배움 없는 삶을 못 견디는 사람인 것이죠.


그런데 그 사실을 아시나요?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는 것은 실수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반복해 내면서 이번엔 성공으로 극복하고자 하는 무의식이 내 안에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 말에 위로가 좀 되었습니다 저는 후회하고 극복하려고 노력하기를 반복하니까요.


주변 친구들을 제게 '대단하다 어떻게 직장 다니면서 학교를 다녀?'라고 하지만

사실 이건 나 스스로를 살리려는 몸부림이었을지도 몰라요. 못나게 느껴져 못 견디겠는 스스로를 조금이나마 좋아하려는 노력 같은 거요.


후회를 어떻게든 무마하고 나 자신을 견디고 조금이라도 좋아지게 만들고자 찾은 합리적 이유를 만드는 방법. 스스로를 구원하는 방법. 그 방법이 아마도 저는 공부하는 자리를 찾아가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학기중 어느 가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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