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준비하는 마음
회사에 스터디도 해야 하고, 주말엔 대학원도 다녀야 하고, 모아둔 자본도 딱히 없고, 서울이라는 타지에서 살아남느라 마음의 여유도 없고, 밖에 나가기를 싫어하며 사귀는 친구, 모임 하나 없이 동생들과 놀기를 좋아하던 저는 작년 봄까지만 해도
‘ 아 나는 한 5년 뒤에, 37살쯤 결혼할지도 모르겠다.’ 하고 생각했습니다.
지금보다 결혼할 마움이라던지 재정이라던지 시간이라던지 여유가 좀 더 생기고 준비가 완벽해지면 그때,
나중에 좋은 사람 나와 잘 맞는 사람을 만나면 그때,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따뜻하고 즐거운 가정을 꾸리고 싶다는 생각은 했지만 생각만 할 뿐 누군가를 만나려는 노력이나 열린 마음조차 없던 저 였습니다.
닦달 한 번을 안 하시던 부모님께서도 조금씩 걱정되셨는지
좋은 사람 만나서 연애도 좀 하고~ 가정도 꾸리고~ 소개팅할래? 엄마 친구가~
라는 멘트를 날리기 시작하셨지 뭐예요.
운명이라는 것은 정말 완벽한 때에 오지 않고, 준비에 완벽은 없나 봅니다.
그 누가 알았겠어요? 뜬금없이 연애를 시작해 1년 만에 결혼을 허락해 달라고 집에 남자친구를 데리고 올지 말이에요.
프러포즈를 받고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대뜸
‘ 엄마 나 결혼해야 해’ 라고 했습니다.
엄마는 무슨 일이냐며 당황 해하셨고 프러포즈받은 이야기를 전해드렸더니 어머어머 하시며 흥미 돋아하셨던 반면 아빠는 옆에서 괜히 심드렁하셨어요
‘ 참나~ 프러포즈받는다고 다 결혼해?’
아빠 속도 모르고 언제는 좋은 사람 만나 어서 결혼하라 시더니 왜 저리 심드렁하신가 했었네요
이후에 짝꿍을 인사시켜드리고, 짝꿍 본가에도 가서 인사드리고 저희 집에 다시 허락을 받으러 가고 하는 약 2-3달의 여정 끝에 결혼 준비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신혼집에 들어가기 전 3-4개월 정도. 마지막으로 부모님과 함께 지내는 시간을 갖고자 저는 독립해 살던 집을 정리하고 본가에 들어갔습니다.
출퇴근 편도 두 시간에서 두 시간 반.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누군가는 이민 가는 것도 아닌데 뭐 하러 그렇게 까지 하냐. 오버한다. 대단하다. 했지만 제 생각은 달랐습니다.
결혼한다고 해서 이후 부모님 댁을 못 가게 되는 건 아니지만, 이렇게 맘 놓고 내내 같이 지낼 기회는 이번이 마지막이지 않을까 싶었어요. 투정도 맘껏 부리고, 엄마 밥 아빠 밥도 먹고, 엄마의 보살핌 아빠의 관심, 출퇴근 인사, 아침과 밤 문안 인사들을 충분히 누려 아쉬운 마음 없이 제 가정을 시작하고 싶었거든요.
효녀라고 말씀하시는 어른분들도 있으셨으나 사실, 부모님보다 제게 더 좋은 일이었습니다.
‘우리에게 거세 경험은 없지만 경험적으로 유사한 다른 상실들을 경험하고 있다고 말한다. 날마다 배설물의 분리와 젖을 떼는 경험을 한다.‘
아마도 결혼준비를 하며 겪는 상실은 독립을 앞둔 것, 또한 부모님을 이렇게 가까이 자주 마주할 수 있는 순간들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른세 살, 한참을 큰 성인이며 나름 제 삶을 다하며 살고 있느라 스스로를 어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나를 자꾸만 아직 애기라고 하시는 아빠. 어디 내놔도 내가 가장 아깝기만 하다는 엄마.
같이 지내며 하루하루 부모님 눈가에 입가에 늘어나는 주름, 얇아지는 피부, 점점 빨라지는 새치염색 주기.
내가 커버린 만큼 나이 드신 부모님의 노화를 가까이 마주하고 있자니 자꾸만 마음이 시큰거려졌습니다.
적은 나이도 아닌데 괜스레 빨리 결혼하겠다고 한 것 같고, 결혼한다고 내가 너무 들뜨고 발랄하기만 했나. 엄마 품에서 벗어나 진작에 젖을 뗀 줄만 알았는데 새로운 가정을 맞이하기 위해 원가족에게서 독립하는 일이 이렇게 어렵고 힘든 건 줄도 몰랐던걸 보니 아니었나 봅니다.
언제 이렇게 시간이 흘러버린 건지, 기쁜 시작을 위한 상실에도 이러니. 평생 내 인생에 함께 계실 것만 같았던 부모님이 젊음을 다 보내시고 감히 상상도 못 할 마음 아픈 상실을 남기고 함께 하지 못하게 될 어느 날이 찾아올 거라는 사실이 조금씩 실감 나곤 했습니다.
그러니 부모님과 함께 할 수 있는 순간, 매일매일이 소중하고 아쉽게만 느껴져 아무렇게나 부리던 짜증도 별 걸 다 귀찮아했던 무심함도 조심하게 되었습니다. 자질구레한 감정, 순간적인 판단 하기에 앞서 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되짚어 보게 되는 순간들이 늘고, 보다 불필요한 에너지를 쓰느라 더 소중하고 귀한 순간을 놓치지 않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습니다. 나중에 후회하고 싶지 않아서요.
가을학기가 찾아오고 퇴근 후 운동에 스터디를 하느라 3달 동안 충만히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해 아쉬움이 았지만 참으로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퇴근 후 집에 오면 언제냐는 엄마 아빠의 전화를 받아본 것도,
아침마다 점심도시락을 챙겨 주신 것도,
저녁에 치맥 먹으며 시간을 보내는 것도,
이런저런 수다 떨며 엄마 옆에 누워있던 것도,
같이 드라마 보던 것,
나들이 갔던 것 전부 너무 아쉽기만 합니다.
하지만 이제 제가 짝꿍과 맞이할 가정을 그렇게 만들어 가야죠. 몰입하고 충실하면서요.
결혼준비에 가장 중요한 것은 웨딩홀이나 드레스 투어, 스드메 등등 이 아닌 그동안 부모님 아래 안전하고 의젓하게 크며 배워온 사랑과 지혜가 얼마나 크고 풍부한 것들인지.
그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느끼고, 부모님 서운하시지 않으시게 해 드리는 것, 그 배움을 바탕으로 앞으로 나의 가정을 건실히 만들어 잘 살겠다는 다짐을 하고, 짝꿍과 함께 할 미래를 꿈꾸고 계획하며, 신뢰와 배려 그리고 사랑을 나 스스로를 돌아보며 다시 한번 더 다짐하는 것.
나의 원가정을 떠나 새로운 가정을 맞이하기 위한 모든 것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인지 촬영도 두 시간의 세미촬영. 웨딩홀도 하나만 보고, 드레스 투어는 두군데. 결혼식을 올리는데 많은 에너지와 시간을 쓰지 않았습니다.
감사하게도 짝꿍과 생각이 비슷해 '결혼식'을 준비하는데 큰 스트레스없이 우여곡절 없이 보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벌써 두 달밖에 안 남았습니다. 아직 갈길이 먼 것만 같은데 시간을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래서 다들 정신 차려보면 식장 앞에 서있을 거라는 이야기들을 하나 봅니다.
불안감이나 두려움, 우울감이 전혀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크진 않습니다. 이제는 안정감을 찾았다는 것이 좀 더 가까운 것 같습니다.
남은 두 달도 잘 지내보아야겠죠.
결혼을 준비하면서 어떤 것이 진짜 중요한 것인지 떠올리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