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비극으로 다음에는 희극으로

슬라보예 지젝

by 정뎅


“기획의 시간, 미래는 과거에 있었던 우리의 행위에 의해 인과적으로 생산되며 우리의 행위 방식은 미래에 대한 우리의 예견과 그 예견에 대한 우리의 반응에 의해 결정된다.” - 295p


나는 개발자다. 맞지도 않았던 전공을 선택하고 처음으로 재미를 느끼건 C언어 수업 중 잘 하는 어떤 선배를 보고였다. 나도 저 언어들을 잘 사용하고 싶었다. 그렇게 cmd창도 켤 줄 몰랐던 대학교 3학년, 나는 겨울방학에 종일 학원을 다녔다. 그게 아마도 개발자가 되기 위했던 내 첫 행위 였던 것 같다. 서울 중심지 회사다운 멋진 건물에서 사원증을 매달고 일하고 싶었다. 그렇게 지금 나는 여의도 한가운데에서 사원증을 매고 일하고 있다. 언젠가 한강에서 운동도 하고 치맥하며 바람도 쐬는 일상을 꿈꿨었다. 지금 나는 한강길을 따라 퇴근하고 마음먹으면 바람도 쐬러 갈 수 있다. 이 밖에도 지난 과거를 돌이켜 문득문득 떠올려보면 미래엔 이뤄졌으면 하고 바라던 장면들이 내게 가까이 왔거나 이뤄진 것 들이 많다.


친하지 않은 경제는 물론이고 어렵고 어려웠던 이 책의 제목을 저 문장이 담긴 파트를 읽으며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안타깝게도 인생은 순탄하지만은 않다. 파국과 재난이 찾아온다. 하루에도 몇 번이고 고난들을 맞이하고 선택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순탄치 않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지젝은 그 재난들을 불가피하게 받아들이라고 한다. 재난을 통해 또 다른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 낼 수 있도록 회피하지 않고 숙명으로 받아들이라고 하는 것 같았다. 매번 처음부터 시작을 반복하며 이러한 재난을 몇 번이고 받아들여 성공에 도달하게 끔 하는 행위 를 하라고 한다.


아마도 여기서 말하는 행위는 우리가 미래에 어떻게 되고자 하는 어떻게 살고자 하는 결과를 위한 신념에서 나오는 행위를 말하는 것 같다.


재난이 찾아왔을 때 보이는 반응은 미래에 대한 어떠한 신념이나 목적을 위한 방향으로 보일 가 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운명에 의해 결정되지만 운명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고 이야기 하는 것 같다. 또한 파국과 재난을 위한 지식만. 통찰만 있어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고 이야기한다. 그보다 행하는 참된 행위가 오히려 더 그 의미 있다고 이야기한다. 인생은 실전 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셈이다.


"나는 더도 덜도 아닌 딱 내가 흘린 땀의 합계다" 라는 문장을 마주했을 때 나는 적지 않은 상처를 받았다. 만족하지 못했던 내 삶이 결국 내가 만들어낸 삶이었다니. 그런데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마치 결국 개발자가 된 것처럼, 꿈꾸던 더 좋은 회사에 다니게 된 것처럼, 작년보다 더 나은 내가 된 것처럼 당시엔 많은 고난이 있었지만 결국엔 무심결에 갖고있던 미래에 대한 예견을 현재 이뤄낸 것 처럼. 당시엔 몰랐지만 나는 생각보다 더 많은 땀을 흘리고 있었다.


앞으로 내가 그려내고 싶은 미래는 얼마나 옳고 멋있는 미래인지 밑바탕을 더 자세히 잘 그려 놓고 싶다. 그렇다면 내가 무수히 갈등하는 선택들 앞에서 좀 더 좋은 방향으로 강한 의지를 갖고 선택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