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3년 르망 24시는 술이 지배한 자동차 경주가 아닐까?
매년 6월이면 르망 24시간 내구레이스가 찾아옵니다. 24시간 동안 인간과 자동차의 한계를 시험하는 처절하면서 처연한 지구에서 가장 오래된 자동차 경주죠. 올해는 6월 15일에 펼쳐지는데요. 특히나 올해는 관전포인트가 많습니다.
올해 2025년 르망 24시간 레이스는 ‘하이퍼카 전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꼭 봐야 할 모델은 페라리 499P가 사상 첫 3연패에 도전합니다. 토요타 GR010 하이브리드도 5번 우승한 레전드로 올해 복수의 칼을 갈고 있죠. 포르쉐 963은 르망 최다 우승(19회)을 차지했습니다. 지난해 실패한 20번째 전설을 쓸 수 있을지 궁금하죠. 르망으로 돌아온 애스턴마틴 발키리는 V12 괴물입니다. 하이브리드 없는 12기통 엔진 사운드가 벌써부터 궁금합니다. 유럽 하이퍼카에 맞서는 미국의 캐딜락 V-Series.R도 미국 파워를 앞세워 사상 첫 우승을 노립니다.
이외에도 믹 슈마허(알핀), 젠슨 버튼(캐딜락), 세바스티안 부에미, 카무이 고바야시(토요타), 로버트 쿠비차(페라리) 등 다수의 F1 출신 드라이버들의 활약도 큰 볼거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때문에 올해 르망 24시 내구레이스는 꽤 기대됩니다. 그런데요. 올해 르망 24시간이 아무리 재미있어도 1953년 르망보다는 이야깃거리가 될 수 없을 거예요. 그해 르망에서 우승한 두 드라이버는 술에 취한 상태로 운전했거든요. 그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그런데요. 올해 르망 24시간이 아무리 재미있어도 1953년 르망보다는 이야깃거리가 될 수 없을 거예요. 그해 르망에서 우승한 두 드라이버는 술에 취한 상태로 운전했거든요. 그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때는 1953년 르망이었습니다. 재규어는 르망에서 우승하기 위해 경주에 모든 역량을 투입했죠. 전설적인 C-타입 경주차의 에어로다이내믹과 냉각 시스템을 보강하고 엔진 출력도 높였습니다.
1번 경주차는 1951년 우승자 피터 워커와 레이싱계의 다크호스로 떠오른 스털링 모스, 2번 차는 역시 1951년 우승자 피터 화이트헤드와 이언 스튜어트, 그리고 오늘의 주인공 3번 차는 토니 롤트와 던컨 해밀턴이 탔습니다.
1, 2번 경주차는 당대 최고의 스타 드라이버였지만, 3번 롤트와 해밀턴은 듣보잡이었는데요. 특이한 점이라면 두 드라이버 모두 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군인 출신이었죠. 여기엔 재규어의 메르세데스에 대한 깊은 적대감이 내포돼 있습니다. 당시 르망을 주름잡고 있는 독일의 메르세데스에게 폐전의 고통을 다시금 심어주겠다는 굳은 의지였죠.
목요일 연습주행에서 재규어 경주차는 엄청난 퍼포먼스를 보였습니다. 랩타입이 전년보다 월등히 빨라진 거죠. 금요일 예선에서도 폴포지션은 놓쳤지만 결선에서 좋은 위치에서 출발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런데 아주 큰 문제가 발생합니다. 토니 롤트와 던컨 해밀턴이 실격 처리되면서 다음날 결선에 나갈 수 없게 된 겁니다. 팀의 실수로 재규어 2, 3번 경주차가 같은 번호를 달고 예선에 임한 거죠. 자동차 경주는 기록의 경주입니다. 번호가 같으면 기록 자체가 불가하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팀의 바보 같은 짓에 롤트와 해밀턴은 무지 화가 났죠. 그렇다고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서킷을 떠납니다. 착잡한 마음을 술로 달래기 위해서였죠. 경주가 열리는 르망 시내는 축재였습니다. 밤새 술집에 손님들이 끊이지 않죠. 두 드라이버도 적당한 술집에 터를 잡고 술을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팀을 욕하고 서로를 위로하며 밤새 퍼마셨죠.
팀도 난리가 났습니다. 자기들 잘못인데, 운영위에 제발 출전하게 해 달라며 달려가 읍소를 했죠. 당시 재규어 회장 윌리엄 라이온도 조직위를 찾아갑니다. 조직위도 난감했습니다. 영국에서 작위까지 받을 것이 확실한 윌리엄 라이온까지 와서 읍소를 했으니까요. 결과적으로 재규어는 아주 큰 벌금을 내고 3번 경주차의 출전을 허락합니다.
팀에 다시 한번 난리가 납니다. 두 드라이버를 찾아야 하니까요. 팀 크루들이 르망 시내를 밤새 뒤졌습니다. 핸드폰이 없던 시절이니 찾기 힘들었겠죠. 두 드라이버를 찾아낸 건 아침 9시경이었습니다. 팀은 두 드라이버를 연행하듯 서킷으로 끌고 왔습니다.
인사불성이 된 두 드라이버를 어떻게든 경주차 시트에 앉혀야 했습니다. 그래서 계속 블랙커피를 마시게 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경주가 시작되는 오후 4시까지 팀은 두 드라이버가 제정신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습니다.
지금으로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죠. 지금은 경주 전후로 음주 및 약물 검사를 철저히 하니까요. 당시는 그런 게 없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레이서들이 맥주를 마시며 경주에 임하기도 했어요. 이차저차해서 두 드라이버는 경주에 나가기로 합니다. 먼저 토니 롤트가 출발하기로 합니다. 그나마 덜 취했거든요. 그런데 믿기지 않는 상황이 연출됩니다. 재규어 3번 차가 엄청난 퍼포먼스를 보여준 거죠. 다음날 아침까지 시속 169km라는 엄청난 속도로 1위를 달리고 있었습니다. 밤새 술을 퍼마신 사람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빨랐죠.
술은 인간을 용감하게 만듭니다. 더 나아가 무모하게 만들기도 하죠. 두 드라이버는 생사의 갈림길일 수 있는 자동차 경주에서 너무나 무모할 정도로 속도감을 상실했던 겁니다. 다행인 건 재규어 c-타입 경주차가 두 드라이버의 무모함을 커버할 정도로 튼튼했다는 거죠.
아찔한 순간도 있었습니다. 던컨 해밀턴이 시속 210km로 달릴 때 새와 충돌하면서 윈드실드가 날아가고 던컨 해밀턴의 코 뼈가 부러졌습니다. 그래도 해밀턴은 아무렇지 않게 달렸습니다. 술에 취하면 아픈 줄 모르니까요. 그렇게 24시간 후에 기적이 일어나죠. 밤새 술을 퍼마신 두 드라이버가 1953년 르망 24시간 우승컵을 가져갑니다. 평균 시속 170km로 르망 역사상 가장 빠른 기록이었죠.
1953년 르망에서 재규어는 1, 2, 4위를 기록합니다. 페라리와 알파로메오, 포르쉐를 완전히 짓밟아 버리면서 재규어 레이싱 역사에서 가장 큰 업적을 세우죠. 그리고 이날의 우승은 르망 100년 역사에도 가장 극적인 우승이 아닐까 싶습니다.
토니 롤트와 던컨 해밀턴은 술에 취한 상태에서의 르망 우승 이외에도 지독히도 운이 좋은 사내들이었습니다. 전쟁에서 살아남고, 포로로 잡혀 7번이나 탈출을 시도했죠. 르망 이후에 다른 경주에 참가해 전신주를 들이받고 생사의 갈림길까지 가기도 했습니다. 전기가 끊긴 병원에서 마취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수술을 받는 등 사선에서 드리프트를 하듯 삶과 죽음 사이를 오갔던 사내들이었죠.
이처럼 1953년 르망 24시간은 술이 경주를 지배한 경주였습니다. 아마도 술이 없었다면 1953년 르망은 우승자가 달라졌을 수도 있을 겁니다. 이처럼 술과 자동차가 만나 새로운 기록을 만들고 이전에 없던 문화를 창출한 여러 스토리를 엮은 책이 있습니다. 술과 자동차를 좋아하시는 분들에게는 꽤 흥미로운 책이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