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진 명절의 얼굴

설날이라는 이름의 무게

by Epiphanes

어렸을 때 설날 같은 명절이면 우리 가족은 늘 아버지의 고향인 지방 소도시 근교로 내려갔다. 할머니 댁에서 친척들과 북적북적 며칠을 보내는 일이 우리 집에선 당연한 루틴이었다. 그곳까지 가는 길은 지금처럼 평탄하지 않았다. 사고라도 한 번 나면 고속도로에서 10시간 이상을 허비하기도 했다. 그리고 아버지가 자란 한적한 시골 마을의 낡은 집도 지금 생각해 보면 불편한 게 참 많았는데, 그땐 오랜만에 친척들을 만난다는 생각만으로 마냥 즐겁기만 했다.


다 같이 모여 차례 준비를 하고, 명절 아침에는 차례를 지냈다. 마을 외곽 선산에 올라 성묘를 하고, 내려와 밥을 먹고 나면 우리는 다시 외갓집으로 향했다. 그렇게 며칠을 채우던 북적임은, 그때는 정말로 언제까지나 계속될 것만 같았다.


그런데 내가 고등학생 때, 시골에 계시던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 그 뒤로 아버지의 고향을 찾는 일은 손에 꼽을 정도로 줄어들었다. 차례는 대도시의 큰아버지 댁에서 지내게 되었고, 그마저도 명절 당일에만 들러 친척들과 몇 시간을 보내는 게 전부가 됐다. 예전처럼 묵으며 북적이던 시간은, 어느 순간부터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지금은 그마저도 하지 않게 되었다. 어렸을 때 그렇게 가까이 지냈던 사촌들과도 거의 연락을 하지 않는다. 가끔은 그들과의 추억이 떠오르곤 하지만 이제는 차례는커녕 친척 집을 찾아가는 일도 없다. 우리 집에서 간단히 명절 음식을 만드는 게 전부다. 명절 당일에는 누나네가 들르고, 같이 저녁을 먹는다. 그게 우리 가족의 새로운 명절 루틴이 되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다. 우리 집만 이렇게 변한 걸까. 세월이 흐르면 집안 어르신들이 하나둘씩 떠나고, 명절의 중심이 되던 장소도 바뀌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내가 어렸을 때처럼 차례와 성묘를 챙기는 집안이 많을까. 궁금해진다.


그 의문 위로, 한때 명절과 차례를 바라보는 시선을 흔들어 놓은 댓글 하나가 겹쳐졌다. 조상의 덕을 본 집안은 명절마다 서로 지지고 볶지 않고 해외로 여행을 떠난다는 말. 웃기면서도 씁쓸했다. 그런데 그 댓글이 널리 퍼지는 속도를 보면서 더 씁쓸해졌다. 다들 그 말을 ‘사이다’처럼 삼켰기 때문이다. 명절이 원래부터 갈등의 날이었을 리는 없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이 그 한 문장에 고개를 끄덕였다는 건, 명절이 누군가에겐 이미 ‘버텨야 하는 행사’로 바뀌어 있었단 뜻일 것이다. 사람들이 그 농담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 건, 명절의 갈등이 그 성격 탓만은 아니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 갈등의 바닥에는 늘 누군가의 노동이 있다. 특히 명절과 제사는 오랫동안 여성의 노동력 위에서 굴러왔다.


돌이켜보면 명절 음식 준비는 언제나 할머니와 어머니, 큰어머니들의 몫이었다. 남자들은 한켠에서 TV를 보다가, 가끔 힘이 필요한 일만 거들었다. 가게에서 무언가를 사 와야 할 때도 어르신들은 누나나 사촌 누나에게 심부름을 시키곤 했다. 막내였던 내가 결국 다녀오긴 했지만.


용돈을 받을 때도 비슷했다. 대개 나이순으로 액수가 정해지는 분위기였다. 나이로 서열을 매기고, 그대로 대접이 달라지는 게 나는 싫었다. 그런데 그 규칙은 일관되게 적용되지도 않았다. 누나는 나보다 몇 살이나 더 많았지만 대개 나와 같은 액수를 받았고, 누나는 그것에 불만을 드러낼 때가 있었다. 나는 그 표정을 나중에서야 이해하게 됐다. 이런 일들이 오래 쌓였고, 시대가 변하면서, 명절의 모습도 결국 달라진 게 아닐까.


요즘은 명절, 특히 설날이 다가올 때마다 인터넷이 시끌해진다. 국제적으로는 ‘Happy Chinese New Year’ 같은 메시지를 둘러싼 말들이 오가고, 한국은 ‘Happy Lunar New Year’나 ‘Seollal’로 이름을 바로잡으려 한다. 국내로 시선을 돌리면, 사람들은 각자의 ‘명절 드라마’를 온라인에 쏟아낸다. 몇 년 동안 돈과 공을 들여 모은 컬렉션이 조카 손에 한순간에 망가졌는데도, “애가 그럴 수도 있지”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친척들. 여전히 남아 있는 성차별적 역할 분담과, 그것을 둘러싼 갈등. 명절은 가족이 모이는 날이면서 동시에, 그동안 덮어 두었던 감정이 한꺼번에 튀어나오는 날이 되곤 한다.


그래서 마음 한쪽이 불편해진다. 우리가 ‘Seollal’이라는 이름을 지키려 애쓰는 동안, 정작 설날의 모습은 점점 더 빠르게 바뀌고 있는 건 아닐까. 예전의 설날은 한 장소에 사람들이 모여 관계를 확인하는 날이었다. 집이 중심이 되고, 어른이 중심이 되고, 그 중심을 따라 사람들이 움직였다. 그런데 그 중심이 사라지면 명절은 저절로 굴러가지 않는다. 누군가가 더 준비하고, 누군가가 더 조율하고, 누군가가 더 감당해야만 같은 풍경이 반복될 수 있다.


그래서 질문은 점점 단순해진다. 우리는 설날을 지키고 싶은 걸까, 아니면 설날이 만들어 주던 ‘함께 있음’을 지키고 싶은 걸까. 차례가 사라져도 함께 모이는 시간이 남으면 설날일 수 있고, 반대로 ‘Seollal’이라는 말을 계속 쓰더라도 각자가 흩어져 자기 방식으로만 소비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예전의 설날이 아닐지도 모른다. 이름을 둘러싼 논쟁이 치열해질수록, 나는 오히려 그 이름이 가리키는 풍경이 얼마나 빠르게 옅어지고 있는지 떠올리게 된다.


설날에서 무엇을 남길지 묻는다면, 나는 ‘함께 있음’과 ‘공정한 분담’을 남기고 싶다. 차례를 지내든 말든, 성묘를 가든 가지 않든, 결국 명절이 명절인 이유는 서로의 얼굴을 확인하고 한 끼를 같이 먹는 시간이 있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그 시간이 누군가의 희생 위에서 굴러가서는 안 된다. 명절이 누군가에게 버티는 날이 되는 순간, 함께 있음은 한쪽의 의무가 되고, 한쪽의 의무는 언젠가 끊어진다. 그러니 남겨야 할 건 어떤 틀에 박힌 형식이 아니라, 부담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방식이다. 함께 준비하고, 함께 앉아 먹고, 함께 치우고, 함께 쉬는 것. 설날이 작아져도 이런 것들이 남는다면, 우리는 여전히 설날을 설날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