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대가 저물 때
며칠 뒤면 정말 친하게 지내는 외국인 친구들이 대거 한국을 떠난다. 이별은 늘 씁쓸하지만, 이번에는 유독 “한 시대가 저문다”는 느낌이 든다. 단순한 이별이 아니라, 나의 생활 패턴 하나가 막을 내리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인데, 돌이켜보면 그 중심에는 늘 펍이 있었다.
나는 원래 굉장히 내성적인 사람이다. 하지만 번역 일을 시작하고 나서 삶의 공백이 크게 느껴졌다. 또래 친구들이 하나둘 자리를 잡고 결혼을 하면서 주말은 자연스럽게 비어 갔다. 영어 실력도 잃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외국인 친구들을 사귀기로 했다. 그리고 그 시작은 특별한 거창한 것이 아닌 “근처에서 목요일마다 사람들이 모인다”는 정보 하나였다.
처음 외국인 친구들을 만난 곳은 펍이었다. 그곳의 문을 열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뭘 하러 왔는지 스스로 확신이 없었다. 그런데 맥주잔을 기울이며 대화가 오가고 나니 금방 알게 됐다. 내가 찾던 게 바로 이런 것이었다는 것을.
그곳에서는 이상하게 말이 더 쉽게 나왔다. 한국어로 말할 때는 친해지기 전까지 문장을 한 번 더 고르게 된다. 뉘앙스가 관계를 건드릴 수 있다는 걸 너무 잘 아니까. 그런데 영어로 대화할 때는 실수해도 된다는 합의가 먼저 깔려 있고, 완벽한 표현보다 의도를 먼저 받아들이는 순간이 많았다. 그 작은 여유가 내게는 큰 위안이 됐다. 숨통이 트이자, 나는 조금 더 자연스럽게 관계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렇게 가까워지는 과정에서, 나는 꽤 빨리 “유용한 친구”가 되었다. 외국인들이 한국에서 겪는 어려움은 거창하지 않지만, 발목을 잡는 종류의 것들이다. 언어와 문화의 장벽이 일상을 끊어 놓는다. 나는 그 끊김을 비교적 쉽게 이어 줄 수 있었다. 덕분에 사람들과 가까워지는 속도도 빨랐다. 다만 시간이 지나면서, 내 도움이 관계를 따뜻하게만 만들지는 않는다는 것도 배웠다.
그래서 나는 도와주는 방식에 선을 만들었다. 어디까지가 호의이고, 어디부터가 내 책임이 되는지 구분했다. 그 경계는 누군가를 밀어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내가 오래 건강한 관계를 지속하기 위해 필요한 도구였다. 그걸 깨닫고 나서부터는, 관계가 더 편해졌다. 오히려 더 오래 갔다.
그러던 중 코로나가 왔다. 모든 게 멈춘 시기에도, 우리는 펍으로 향했다. 큰 모임 대신 소소하게 모여 몇 잔씩 마시고, 통금 시간 전에 흩어졌다. 재미를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관계가 끊기지 않기 위해서. 그 시절 펍은 즐기는 장소가 아니라 버티는 장소였다. 관계는 거창한 이벤트가 아닌 “아직 끝난 게 아니다”라는 작은 확인으로 유지된다는 걸, 그때 몸으로 배웠다.
코로나가 지나가고 멈춰 있던 생활이 다시 돌아오기 시작하자 우리는 더 자주 만났다. 특히 지난 1년은 유달리 마음 맞는 친구들이 많아서 불꽃같이 지나갔다. 대화의 결이 맞고, 취향이 겹치고, 유머 감각이 비슷했다. 그래서 우리는 거의 주말마다 만났다. 술을 마시고, 영화를 보고, 해변에 가고, 하이킹을 하며 서로를 확인했다. 그 친밀함은 주말에서 끝나지 않았다. 누군가의 생일이 다가오면 우리는 주인공을 제외한 단톡방을 만들어 며칠 동안 선물을 고민했다. 누가 주문할지, 어떻게 건넬지, 어떤 말을 할지까지 정하다 보니 스마트폰 속에는 비슷한 방이 계속 늘어났다. 그래도 그게 좋았다. 나도 외국에서 지내 본 적이 있어서 타지에서 맞는 생일이 얼마나 쓸쓸할 수 있는지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날만큼은 “여기 네 편이 있다”는 걸 확실하게 해 주고 싶었다. 그런 시간을 보내고 나니, 아쉬움이 더 크게 느껴진다.
이번에 영국으로 돌아가는 한 친구가 있다. 그는 이곳에서 6년을 살았다. 코로나 3년과 그 이후 3년. 그 친구의 귀국과 함께 이 시대가 끝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이유는 아마 그 시간의 증인이 함께 떠나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이제 40대 초반이 되었고, 예전처럼 새 친구를 늘리는 데 힘을 쓰기보다 기존의 관계를 더 오래 유지하는 쪽에 마음이 더 기운다.
여기에 또 하나, 내가 요즘 자주 느끼는 변화가 있다. 요즘 막 한국에 오는 원어민 강사들은 이전 세대처럼 술을 마시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한국의 젊은 세대도 비슷하다. 덜 마시고, 더 일찍 집에 가고, 다음 날의 컨디션과 개인적인 시간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펍은 여전히 있지만, 펍이 사람을 붙잡는 방식은 달라졌다. 내가 느끼는 “시대의 끝”에는 친구와의 이별뿐 아니라, 그 분위기의 변화도 섞여 있다.
나는 지난 10년을 후회하지 않는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친구들을 많이 사귀었고, 내가 사람을 돕는 일을 정말 좋아한다는 것도 알게 됐다. 동시에 그 마음이 오래가려면 일정한 선이 필요하다는 것도 배웠다. 그 경계 덕분에 나는 사람을 좋아하면서도 나를 잃지 않는 법을 조금씩 알게 됐다.
이번 주 토요일에는 우리가 코로나를 버텼던 그 펍에서 모두가 모여 송별회를 하기로 했다. 시작이 그랬듯, 끝도 결국 펍에서 맞이하게 된 것이다. 언젠가 사람은 떠나고 문을 닫는 펍도 간혹 생긴다. 하지만 추억은 사라지지 않고 언젠가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