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독자들이 불편할 수 있는 자극적인 장면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번 소설에는 강렬한 묘사와 자극적인 장면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읽기 전 참고해 주세요.
제목
Don't, Worry.
뭐든 닥치는 대로 먹어 치울 수 있을 것 같다.
그녀는 자신이 피를 갈구하며 영원한 목마름에 고통받는 좀비의 모습 같다고 느꼈다.
휘몰아치는 허기짐에 냉장고 문을 열어젖혔지만 텅 비어있다. 다른 쪽 문도 열어보지만 아무것도 없다.
짜증스럽게 냉장고 문을 쾅 닫는다. 아랫입술을 잘근거리며 눈동자를 굴려본다.
주방의 선반과 서랍들까지 모조리 확인했지만 그녀의 마음처럼, 아니 그녀의 뱃속처럼 공허했다.
때마침 눈에 들어온 건 그녀의 하얗고 고운 손이었다.
탐스러운 먹잇감을 발견한 굶주린 야수처럼 두 눈이 번뜩거렸다.
드디어 배를 채울 수 있다는 기쁨에 한쪽 입꼬리가 씰룩거렸고 그사이로 맑고 묽은 침이 가늘게 흘러내렸다.
사료 앞에서 침을 줄줄 흘리던 어릴 때 키우던 개가 떠올랐다. 더는 기다릴 수 없었다.
오른손과 왼손을 번갈아 보더니 지체 없이 축축한 혀를 길게 빼고는 오른 손바닥을 핥았다.
맨살의 냄새를 맡으며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눈동자는 방향을 잃었고 눈꺼풀이 스르르 감겼다.
네 번째 손가락을 힘껏 베어 물었다. 뼈의 마디는 송곳니로 어렵지 않게 끊어졌다.
어금니로 씹을 때 뼈 으스러지는 소리가 짜릿하게 귀를 자극했다.
게걸스럽게 오른쪽 다섯 손가락을 먹어치울 때쯤 아직 왼손이 남아있다는 사실에 기뻤다.
언제나 그녀의 몸에서 가장 소중히 여기던 손이 지금 굶주림에 죽어가는 자신을 살리고 있다.
월희는 텅 빈 부엌에 한참을 서서 자신의 손을 남김없이 먹어치우고 있었다.
월희는 헝가리 부다페스트 호텔, 자신의 침대에 앉아 어젯밤 꿈을 곱씹어 보고 있다.
요즘 들어 기괴한 꿈을 자주 꾼다.
이곳에 오기 전 오스트리아 빈에서는 가족, 친구들과 저녁식사를 하던 중 메인 디시로 자신의 손가락이 하나씩 서빙되어 나오는 꿈을 꾸었다. 모두들 그 훌륭한 맛을 칭찬하며 식사를 즐겼으나, 월희만은 그 모습을 지켜볼 뿐 함께 맛볼 수는 없었다. 어떤 맛일까 궁금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자신의 손가락으로 만찬을 나눈다는 사실 보다, 접시 위에 탐스러운 그것을 혼자만 먹을 수 없다는 괴로움에 몸부림치다 잠에서 깨어났다.
그녀가 바이올리니스트 신동으로 유명세를 치르기 시작한 건 3살 때부터다.
매니저 역할을 한 엄마는 어려서부터 살인적인 연습과 혹독한 멘탈 관리로, 월희가 세계 3대 콩쿠르에서 모두 트로피를 거머쥐는데 큰 기여를 했다고 스스로를 평가했다.
17살에 가장 권위 있는 국제 콩쿠르에서 최연소 우승을 한 이후 5년간 세계 유명 오케스트라와 협연 스케줄이 잡혔고 메이저 레이블과 음반 계약도 하게 되었다.
엄마는 천재 예술가의 삶이 그러하듯 월희도 그런 운명을 타고났으니 기꺼이 바이올린으로 사람들에게 기쁨과 감동을 주는 삶을 살다 생을 마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럴 때마다 월희는 불행과 비운으로 점철된 삶을 살다가 요절해 버린 수많은 예술가들이 떠올랐다.
월희는 바이올린 잡을 때를 제외하고 늘 장갑을 끼고 생활해야 했다.
엄마는 해외 어디를 가든 월희에게 손 마사지사를 붙여 주었고, 연주자들 사이에서 가장 실력을 인정받는 정형외과 의사에게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게 했다.
물론 그녀는 엄마가 손이 아닌 내면을 어루만져 주고 정신을 들여다 봐주길 바랐다.
자신은 극한의 연습량으로 커버된 유려한 활 기술과 테크닉뿐,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어떤 풍부한 울림은 빠져있다고 생각했다. 감동은 손이 아닌 마음으로 주는 것이라 믿었지만 엄마는 그렇지 않았다.
월희에 대한 엄마의 광적인 집착이 심해질수록 그녀 또한 자신의 손에 대한 애증이 깊어졌다.
그래서 월희는 자신을 불행으로 밀어 넣은 이 재능을 차라리 모르고 살았다면 어땠을까 하고 생각했다.
월희가 7살 무렵, 한국에서는 최초로 손가락 보험을 들어 신문에 떠들썩하게 실린 적이 있었다.
그 후론 놀이터에서 친구들이 뛰어놀 때도 어린 월희는 멀찌감치 앉아 바라만 보았고, 짧았던 학창 시절 체육시간에도 당연히 참여하지 못했다.
어마어마한 가치를 가진 손가락이 행여 다치기라도 하면 큰일이니까.
그 덕에 월희는 살면서 심각한 부상은 물론 가벼운 찰과상 한 번 겪어보지 않았다. 하물며 종이에 베거나 뜨거운 그릇에 손을 덴 적도 없었다. 다만 바이올린 현을 누르며 생긴, 언제부터였는지도 기억나지 않을 만큼 오래된 굳은살들이 매끈한 손에 어울리지 않게 맺혀있었다. 샤워할 때면 두터워져 감각이 무뎌진 손끝을 내려다보았다.
가끔은 단단하게 변해버린 부위를 이로 살짝 물어뜯어 보고 싶다는 충동이 들기도 했다.
손톱깎이나 가위로 잘라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했다.
호기심이 많은 월희는 맨손으로 물건의 촉감을 느껴보고 싶었지만 나날이 심해지는 엄마의 감시로 어느 것도 할 수 없었다. 월희의 손은 더 이상 월희만의 것이 아니었다.
그러던 중 그 꿈이 찾아왔다.
손가락 먹는 꿈이 반복될수록 묘한 짜릿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언젠가부터는 꿈속에서 자신의 손을 맛있게 먹고 나면 새로 태어난 것처럼 기운이 샘솟았다.
이제 잠자리에 들기 전 간절히 기도라도 드리고 싶었다. 오늘도 ‘그’ 꿈을 꿀 수 있게 해달라고.
점점 손가락 꿈에 매달리는 동시에 자신의 손가락을 해하고 싶은 충동을 추슬러야만 했다.
유럽 투어의 마지막 공연을 앞두고 월희는 불면증을 핑계로 엄마에게 수면제를 부탁했다.
더 깊은 꿈속에서 더 오래 손가락을 먹을 수 있으리라 기대하며.
그러나 엄마는 아침 연습에 차질이 생길까 우선은 지켜보자고 했다.
풀이 죽은 월희는 곧 객실 미니바에 있던 위스키 한 병을 떠올렸고, 실망은 순식간에 기쁨과 설렘으로 바뀌었다.
성인이 되고 가장 좋은 건 혼자서 객실을 사용하는 것이다.
엄마가 옆방에 있었지만 같은 방에서 함께 지낼 때에 비하면 천국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첫 잔을 한 모금에 비워 버렸다.
위스키는 오랜 가뭄 속 타들어가던 나무에 내리는 여름 소나기 같았다.
목구멍에서 식도를 지나 혈관을 타고 온몸 구석구석까지 가닿는 느낌에 그녀는 전율했다.
정신이 몽롱하고 감각이 둔해지자 술기운은 월희를 조금 더 과감하고 대범하도록 북돋아 주었다.
이내 갑갑한 장갑을 벗어던지고 얼음이 담긴 위스키잔의 감촉을 느껴보았다.
그리곤 손가락을 집어넣어 얼음 한 개를 꺼내 입안에 물었다.
볼록하게 부푼 한쪽 볼이 얼음의 냉기로 얼얼했지만 소소한 일탈에 희열을 느꼈다.
알딸딸한 채로 침대에 쓰러지듯 아무렇게나 누웠다.
눈을 감고 손끝에 맺힌 굳은살의 감촉을 가만히 느껴보았다.
오늘 밤 꿈속에선 어떻게 자신의 손을 학대할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설레었으나 이상하리만큼 잠이 오질 않았다.
초조해진 월희가 결심한 듯 일어나 냉장고에 있던 맥주와 남은 위스키를 서둘러 들이키고 침대로 돌아가 눈을 감았다. 그러자 천장이 뱅글뱅글 도는 건지 침대가 회전하는 건지 금방이라도 속이 뒤집어질 것 같은 불쾌함에 도저히 눈을 감고 누워있을 수가 없었다.
비틀거리지 않으려 애쓰며 욕실로 걸어가 물을 틀었다. 샤워기가 토해내는 물줄기 사이로 손바닥을 펼쳤다.
손바닥 위에서 부서지는 물방울들을 유심히 살펴보다 보니 굳은살이 눈에 들어왔다.
불현듯 오랫동안 그녀의 신경을 거슬리게 해온 굳은살을 없애고 싶다는 욕구가 솟구쳤다.
월희는 욕실 어메니티의 남성 일회용 면도기를 꺼냈다. 포장을 뜯자 날카로운 칼날이 아름답게 반짝였다.
월희가 정신을 차리려 눈에 힘을 주었다.
그리곤 면도날의 반대 방향으로 자신의 검지를 무심히 긁어 보았다.
피부 표면이 두껍게 벗겨지며 선홍색 피가 차오르더니 샤워기에서 쏟아져 나오는 물과 뒤섞여 부스 안으로 떨어졌다. 취해서인지 아니면 어느새 잠든 꿈속이라 고통이 느껴지지 않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근원을 알 수 없는 용기는 월희가 단단해진 살들은 모두 잘라내도록 내버려두었다.
잠시 후 부드럽게 갈린 손끝을 보니 이제껏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강렬한 만족감을 느꼈다.
그리곤 습기 찬 샤워부스 속에서 뿌옇게 김이 서린 거울을 슥슥 닦아냈다.
순식간에 피로 범벅이 된 거울 위로 가녀린 목과 턱밑에 검은 흉터가 드러났다.
평생 악기를 목에 받치고 연주하며 생긴 상처였다.
피가 나고 딱지가 앉길 반복하다 이제는 피부 자체가 두텁고 거무스름하게 변해 있었다.
바이올리니스트 사이에서는 목에 있는 검은 자국만 보아도 악기 연주자라는 걸 알아차릴 수 있었지만 월희는 그걸 감추고 싶었다. 겨울에는 목을 덮는 니트를 입거나 스카프를 둘렀고, 여름에도 머리카락을 길게 내려 가리고 다녔다.
내친김에 월희는 들고 있던 면도기로 턱밑에 거칠어진 피부마저 긁어내기로 마음먹었다.
자꾸만 잠이 쏟아져 깨끗이 없애는 데는 한참이 걸렸다.
왜인지 모르게 늘어지는 몸을 추슬러 간신히 침대로 돌아왔다.
월희는 이제야 비로소 푹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