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노 다케시,키즈리턴(1996)
[키즈리턴]은 청춘을 다른 뉘앙스로 이야기한다.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실패에서 어떤 교훈을 끌어내지 않으며, 그래서 멋지게 재기하지도 못한다. '어쨌거나 실패해도 괜찮다'는, 밑도 끝도 없는 위로를 전하지도 않는다. 그 이면에는 감독이 겪었던 실패가 웅크리고 있는 듯한데, 교통사고를 당해 안면이 함몰되는 중상을 입어 안면 근육 일부가 마비되는 후유증을 얻는가 하면 발표한 영화가 흥행과 비평 모두에 참패하는 성적을 내기도 했기 때문이다. 특히 다케시는 사고 후 병상에 누워 자신의 인생 70%는 끝난 거라 생각했다고 한다.
[키즈리턴]의 두 주인공, 신지와 마사루를 비롯한 청춘들의 실패는 모두 어른들을 경유한다. 이들은 어른들에게 속아 넘어가고, 이용당하거나 배신을 당하기도 한다. 그 뒤에는 참담한 실패가 있을 뿐이다. 꿈을 잃거나 기회를 잃어버리고, 심지어는 죽음에 이른다. 이들이 떠난 자리는 또 다른 청춘들로 대체된다. 이 젊은이들은 빨리 어른이 되어 무언가가 되려고 하지만, 어른들은 그들을 이용해먹기 바쁘다. 이 영화에서 단연 기억에 남는 시퀀스는 프로복서로의 데뷔를 앞둔 신지와 그의 팀메이트, 하야시와의 식사 장면이다. 경기가 가까워지면서 신지는 하야시가 주는 술과 음식을 거부하지만, 하야시는 실실 웃으며 이렇게 말한다. '상관없어, 일단 마시고 나중에 토하면 돼, 맛만 보면 돼'.
삶은 되새김질 가능한가? 우리는 종종 내일도 오늘 같을 것이기에 크게 다르지 않은 하루를 살 것이라 기대한다. 평범한 사건과 반복되는 업무가 이어지는 일상, 어쩌면 거기에서 특별함을 찾아낸다는 것이 난센스일지도 모르겠다. 어떤 이들은 하루하루가 너무 똑같은 나머지 특정한 하루하루를 구분해내지 못하기도 한다. 일상의 고리를 끊어내겠다 단언하면서도, 막상 그것을 끊을 수 있는 기회가 오면 다시 수동적인 오늘을 택할 뿐이다. 만약 일상에서 벗어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우리는 일상을 다른 방식으로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저 내일이 오기를 기다리며 지루한 오늘을 사는 대신, 하고 싶은 것, 되고 싶은 것을 꿈꾸며 오지 않은 미래를 향해 나를 던지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하야시의 조언은 신지에게도, 사실 그 누구에게도 먹히지 않는다. 이미 지나간 오늘을 게워낼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강한 놈은 살이 빠져도 강한 것'이 아니라, 오늘을 번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내일을 향해 자신을 던져 넣기 때문에 강한 것이니까. 결국 신지는 경기에서 패해 프로가 되길 포기하고, 마사루는 자신을 총애하던 보스가 죽임을 당하자 선배에게 숙청을 당했으며, 초과 업무를 강요당한 어떤 청춘은 죽음을 맞이한다. 그리고 슬프게도, 신지가 있던 '복싱 유망주' 자리에 그와 동급생이었던 누군가가 들어선다.
아쉽게도 꿈이나 희망 따위가 지금의 나를 책임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반대로 그것들 없이 살 수 있냐고 묻고 싶다. 현재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나의 현재', 그리고 지금 내가 갖고 있는 '타이틀'에 갇히지 말자는 것이다. 신지 이전의 유망주, '이글'에게 경기에서 상대의 발을 밟고, 어깨를 밀치거나 팔꿈치 가격을 가르치는 체육관 코치와 관장의 태도는 어쩌면 지극히 현실적인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현실은 언제고 대체될 준비를 하고 있다. 타이틀을 갖지 못한 자는 그것을 갖기 위해 온갖 술수를 동원한다. 어쨌거나 현실이 그러하다면, 복서, 만담꾼, 영업사원이나 보스 같이 언제든 대체될 수 있는 이름에 머무를 게 아니라 아직 오지 않은 나의 미래/가능성의 차원으로 끝없이 도약해야 하지 않을까. 과거로부터 쌓여온, 끝없이 반복되는 '오늘'이라는 사슬을 끊어내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미래에서 오고 있는 꿈이나 희망 같은 것들을 끊임없이 떠올려야 한다.
다케시가 스스로를 가리켜했던 말처럼, 어쩌면 신지와 마사루의 인생도 70%쯤은 끝난 걸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도 그들의 30%는 여전히 오지 않은 상태다. 그들은 오랜만에 만났지만 그럼에도 실패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렇게 지나간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대신, 어쨌거나 상관없다는 식으로 '백수니까 일을 구하러 간다'라고 말한다. '우리 이제 끝난 걸까요?'라고 묻는 신지에게 마사루가 답한다. '바보, 아직 시작도 안 했어!'. 어쨌거나 이들이 꾸는 꿈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들은 앞으로 다가올 것들에 자신을 내던지려는 포즈를 취하고 있다. [키즈리턴]의 엔딩 시퀀스는 마음을 간지럽히는 희망의 기운을 전한다. 그들은 이제 막 출발선에 섰고, 그렇게 향하는 목적지의 이름은 '미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