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의 이면, <옷을 위한 지구는 없다>

큐레이션과 취향, 환경과 상생할 수 있는가

by Kat Lee



매일 시사 뉴스레터와 마케팅 뉴스레터가 메일함을 두둑히 채운다. 시사 뉴스레터에는 기분탓인지 기후 관련 기사가 대부분이다. 한편 마케팅 뉴스레터에는 취향과 소구가 주를 이룬다. 언뜻 봐서는 아무 연결점도 없어 보인다. KBS 환경스페셜 <옷을 위한 지구를 없다>를 통해 이 연결점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패션의 이면, 환경 오염

흔히 MZ세대의 특징 혹은 요즘 트렌드는 '취향 발굴'이라고들 한다. MZ세대에 간신히 낀 필자를 생각해봐도 마찬가지이다. 오늘 골라 입는 옷은 내 기분과 기호를 표현한다. 불쾌한 날에는 내가 아끼는 옷을 입으며 스스로를 위로하고 싶다. 이처럼 취향이 일상과 착 달라붙어 있다고 선언하는 것은 가히 무리가 아니다. 그러나 내가 선별한 옷은 사실 내 자의로 고른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우연히 방문한 인터넷 쇼핑몰에서 마음에 꼭 드는 옷을 발견했다고 하자. 그 후에 어쩐지 소셜 미디어나 사이트 이곳 저곳에서 봤던 옷과 비슷한 옷을 추천해준다. 특히 인스타그램의 알고리즘이 대표격이라고 할 수 있다. 계속해서 똑같이 생긴 옷을 보여주고, 쇼핑몰에 방문하라고 부추긴다. 현대미술가 히토 슈타이얼은 이러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짚어냈다. 그는 패션 브랜드가 빅데이터와 소셜 미디어를 통해 정보와 이미지 생산에 관여하고 트렌드를 만든다고 천명한다. 이렇게 기술의 발전은 우리가 자신의 취향을 따른다고 믿게 만들며, 옷을 과잉 소비함으로써 기호를 생성해나간다는 실체 없는 신뢰를 내면화시킨다. 문제는 과잉 소비에서 끝나지 않는다. 손바닥이 마주 봐야 박수를 칠 수 있다. 과잉 소비에는 과잉 생산이 필연적으로 따른다. 의류 산업은 소비자의 요구에 따라 옷 무덤을 양산한다. 무덤인 까닭은, 결국 주인을 만나지 못한 옷은 폐기되지도 못한 채 그대로 개발도상국에 수출되기 때문이다.


의류 폐기물의 기나긴 여정

한 국가가 미처 다 소화하지 못할 양의 옷이 폐기된다고 한다. 다큐멘터리에 따르면, 최근에 의류 폐기물이 종전에 비해 훨씬 늘어 의류 폐기함을 가득 채운다고 한다. 다큐멘터리에서 의류 폐기함을 열어보았더니 포장도 뜯지 않은 새 옷과 아직까지 제 기능을 다 할 수 있는 새하얀 운동화가 발견되었다. 비닐에 싸인 옷과 흰 운동화는 필자를 얼얼하게 했다. 그렇게 버려진 옷과 신발이 한 둘이 아닐 것은 필지의 사실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버려진 의류는 인도네시아, 파키스탄, 가나를 위시한 개발도상국에 수출된다. 수출국에서 판매되면 다행이지만, 대다수의 의류는 온전하지 않아서 다시 버려진다. 이렇게 재폐기된 의류는 바닷가로 흘러들어간다. 실제로 다큐멘터리는 가나 아크라 어민들이 해안가에서 거대 의류 뭉치를 끌어내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의류 뭉텅이들은 어업을 방해하거나, 미세 플라스틱으로 부수어지며 해안가에 녹아든다. 혹은 소가 합성 섬유를 먹기도 한다.

NBCONTENTSMYLOVEKBS_70000000396014_20210630_20210630092500___EDITOR_05.jpeg 소가 폐기 의류를 먹고 있다. (<환경 스페셜> ‘옷을 위한 지구는 없다’ “ 내가 버린 옷의 민낯 ”)



우리의 노력은 과연 옷과 환경의 상생을 불러올 것인가

쉽게 버려지는 의류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면서 지속가능한 패션이 진작에 화두로 떠올랐다. 게다가 기후위기와 인류세 담론이 가세하며 어느때보다도 의류 소비와 생산 방식 주목을 받고 있다. 이에 대하여 의류 기업들은 폐 페트병을 활용하여 옷으로 제작하기도 한다. 옷의 원사가 플라스틱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가능하다. 폐 페트병이 옷으로 재활용되는 과정을 쉽게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페트병에 붙어있는 라벨과 불순물을 제거한다. 다음으로 페트병을 균일한 입자로 조각낸다. 그리고 이를 원료로 삼아 옷을 제작한다. 이 모든 과정과 재활용 옷이라는 결과물을 보자면 지속 가능하다고 판단된다. 그러나 여기에는 문제가 숨어있다. 기업이 생산량에 대해 고민하지 않고, 단지 생산 원료만 교체한 것이다. 즉, 문제를 해결할만한 일차적인 해결점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다고 할 수 있다. 당연히 생산 과정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 그리고 친환경적인 소재를 이용하여 상품을 선보여야 한다. 허나 기업은 본질적으로 과잉 생산에 대해 궁구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소비자들이 먼저 과잉 소비에 대해 한번쯤 의문을 보내야 한다. '내가 사려는 옷이 정말로 필요한 것인가?', '이 옷을 오래 입을 수 있을까?' 라는 고민을 해야한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류의 문제처럼 읽히기도 한다. 그렇지만 여느때보다도 소비자의 힘이 크다는 걸 체감하는 요즘이다. 기업은 소비자의 반응에 따라 흥망성쇠를 맛보기에 소비자의 기민한 대처가 필요하다. 우리는 더 이상 과거와 현재와 같은 소비를 이어나갈 수 없다. 모든 소비에는 그만한 서사가 따라야 한다. 단지 예뻐 보여서, 보기 좋아서. 이런 반응이 아니다. 의류를 구매하는 과정에 필요에 따른 구매 이유가 존재하는지. 내가 지금 구매하는 한 벌의 옷이 우리가 거주하는 푸른 별에 어떤 영향을 불러왔는지. 그렇게 의류 구매에 개인과 환경을 가로지르는 내러티브가 담겨야 한다.



<출처>

1. <옷을 위한 지구는 없다>, KBS 환경스페셜, 2021.07.21 방영

2. 윤민주, "[Opinion] 히토 슈타이얼- 데이터의 바다 [미술/전시]", 아트 인사이트, 2022.06.02,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60094


대책을 명징하게 제시한다는 게 가능할까, 하는 의문을 늘 품고 있다. 결론은 늘 미약하여 용두사미 꼴이 되지만 언젠가는 쓸만한 해결점 혹은 시사점을 던져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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