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폭력은 관성적인데, 취재 거리가 되겠는가”
다음엔 무엇을 보고 어떤 글을 쓸지 골몰하던 중, <사이버 지옥>의 리뷰를 읽었다. 사실 그전까지는 이 다큐멘터리의 내용이 너무 얼얼해서 보고 싶지 않았다. 이미 사회는 여성 대상 범죄로 들끓고, 이걸 마주하는 것도 힘든데 다큐멘터리까지 가세하기엔 내가 견디기 어려울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넷플릭스를 뒤지다가 결국 이 다큐멘터리에 이르렀다.
핍진성 그리고 리얼리티, 장르의 문제
흔히들 문학에는 ‘핍진성’이 중요하다고 한다. 핍진성이란, 사정이나 표현이 진실하여 거짓이 없다 (국립국어원 표준대사전)는 의미를 나타낸다. 즉, 핍진성에는 현실에 대한 재현이 전제되어있다. 현실을 진실되게 재현하는 작품을 ‘핍진하다’ 라고 정의할 수 있겠다. 이런 의미에서 다큐멘터리 장르는 핍진하다. 현실의 장면을 포착하여 재구성하고, 화면에 담아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큐멘터리 <사이비 지옥>은 핍진성으로는 설명될 수 없다. 실제로 취재에 임했고, n번방 사건 가해자를 명시하기에 핍진하다기보다는 리얼하다. 또한, 피해자들이 겪었던 성 착취를 가감없이 드러내기에 리얼하다. 특히 어린 여성들이 나체에 칼로 갓갓의 이름을 새겨 사진을 찍은 것은 너무나도 리얼해서 머리가 얼얼하다. 그리고 참담하다. 살면서 분노와 참담함이 교차하는 감정이 이렇게 피부에 와닿은 건 처음이었다. 모든 사항을 종합해볼 때, <사이버 지옥>은 다큐멘터리이기보다는, 사건을 생생하게 알려주는 르포라고 할 수 있겠다.
여성, 착취의 대상인가
필자는 시각 예술을 공부하는 여성이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페미니즘 미술에 관심이 지대하다. 시각 예술에서도 역사적으로 여성은 객체화되고, 성적인 이미지로 환원되었다. 조선시대 역관 이상적 (李尙迪, 1804~1885)은 『건곤 일회첩』 (乾坤一會帖)』에 “빼어난 여색은 반찬이 된다는 말은 천년을 두고 내려오는 아름다운 말이다” 라는 발문을 삽입했다. 여성의 성을 대놓고 욕망하는 것을 터부시하던 조선시대에도, 여성은 응시의 대상이자 착취의 대상이 되었다. 조선에만 해당되지 않고, 서양에도 비슷한 예시가 있다. 프랑스의 초현실주의 사진가인 브라사이(Brassai, 1899-1984)의 작품 <여성 노예 (odalisque)>(1934-1935)에서는 여성의 성적 매력을 상징하는 특정 신체 부위와 신체 굴곡만 강조되었다. 여성의 신체는 남성의 성적 욕망이 투사된 대상이면서 동시에 남성의 성적 판타지를 채우는 타자로 묘사되었다. 시각 예술은 현실을 투영하고, 여실히 드러낸다. 당대 살았던 사람들의 사상, 욕망, 욕구를 작품에 표현하기에 의미를 지닌다. 이러한 역사적 예시는 단지 작품으로만 기능하기보다는, 당시 남성들의 욕망과 욕구를 오롯이 드러내는 거울과 같은 역할을 한다. 21세기에 벌어진 n번방 사건은 작품에서 드러난 남성의 성적 욕구를 극대화 하는 것으로도 모자라서 아예 밑바닥을 드러낸다. 여성을 응시하는 데에서 멈추지 않는다. 여성을 주변화하고, 더 나아가 ‘성 노예’로 전락시킨다. 가해자들은 무수한 포르노적 사진과 영상을 서로 주고받고, 방을 폭파했다가 새로 개설했다가 하면서, 피해 여성들이 ‘욕구 충족을 위한 사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떠벌린다.
n번방, 현재는 어떻게 되었는가
위에서는 부족한 필력으로나마 <사이버 지옥>의 장르성과 여성 착취의 역사를 다뤄보고자 했다. 이제는 렌즈를 현실로 옮기고자 한다. 다큐멘터리의 바탕 사건인 n번방은 결국 어떻게 되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결론적으로, n번방 사건의 ‘일반 가담자’ (성 착취물 소지, 판매, 재유포자) 378명은 1심 재판에서 벌금 평균 653만원 또는 징역 13.2개월을 선고받았다. (한겨레 신문, 2020-05-24) 그러나 2022년 5월 25일 MBC 뉴스 기사에 따르면, 법원은 형 집행을 미루거나 전원을 벌금형으로 선처했다. 선처 이유는 두 가지인데, 반성하고 있고, 나이가 어리다는 것이었다.
이상하지 않은가? 반성한다고 해서 선처해주는 죄목은 기껏해야 형제 간 싸움 정도일 것이다. 필자가 어렸을 때 동생과 싸우고, 반성하는 기미를 보이면 부모님께서 “이제는 그러지 말아라”라고 하시는 정도이다. 이 정도로 경미한 사건일 때 선처가 가능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피해자들은 선처 의사를 내비친 적이 없다. 그런데 법원이 피해자 대신 선처해준다고 한다. 또한, 피해자는 주로 10대이다. 가해자들보다 어리면 어렸지, 나이가 더 많지는 않다. 그리고 이들은 몇십 년간 고통에서 헤어나오지 못할 것이다. 100세 시대라고들 한다. 그리고 트라우마는 아주 오랫동안 몸 속에서 기거하며 사람을 좀먹는다.
이에 반해, n번방 사건의 주도자인 ‘박사’는 징역 42년형을, ‘갓갓’은 징역 34년을 선고받았다. 이 결과는 항소심 결과이다. 그러나 ‘박사’ 조주빈은 ‘세상 앞에 내놓은 저의 마음이 다른 목적으로 비쳐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까 두려웠습니다. (중략) 반성문을 통해 사과드리며 사회 앞엔 침묵을 지켰습니다’ 라고 작성했다. 그는 사과의 말이라는 직접 수단보다는 글이라는 간접 수단을 통해 마음을 드러냈다. 과연 누가 그의 사과문에서 진심을 읽을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한편, ‘갓갓’ 문형빈은 피해자와 합의 중이니 선고 기일을 늦춰달라고 법원에 요청했고, 법원은 기일일을 한 달 늦췄다. 법원이 합의를 종용한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가해자, 법원의 그야말로 ‘환장의 콜라보’를 제대로 볼 수 있다. 현재는 참으로 어둡다. 캄캄하다.
나가며
여성으로 사는 것이 참으로 녹록치 않다. 여성 인권 신장을 외치면 ‘페미’라고 낙인찍힌다. (그렇다면 당신은 反페미이신가요? 라고 묻고싶다. 맞다면, 반평등주의자이시군요,라고 답하겠다. 외에도 유리천장, 여성 대상 범죄 등 여성을 위협하는 존재는 무수하다. 친구들에게 귀갓길에 “안전하게 들어가”라는 말을 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도래할 수 있을까? 또, 여성이 동일한 주체로 보일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해야하는 현실이 참으로 쓰라리다. 여성들은 ‘대상’이 아니라 사회의 ‘주체’가 되어 국가의 보호를 받고, 천인공노할 범죄의 대상이 되지 않을 수 있을까? 어려운 질문으로 끝을 맺고자 한다.
여성 대상 범죄는 다루기 어렵기에 쓰려고 하지 않았다. 하지만 우연이라는 게 이렇게 무섭다. 여담이지만, 미술사 사료는 내가 2020년에 관련 분야를 공부하며 써두었던 글을 차용했다. 그리고 판결에 관한 부분은 한겨레, 여성신문, MBC 뉴스 등 많은 기사를 참고했다. 다큐멘터리와 기사를 보며 불꽃, 다큐멘터리 제작진, 기자분들의 노고에 마음으로나마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