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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piphany Jul 09. 2023

이 세계는 매 순간순간 완성된 상태에 있는 것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를 읽고

그동안의 세계관이 송두리째 흔들리며 충격적인 전율을 느끼는 책을 만나는 것은 정말 귀한 일이다. 나에겐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가 그랬다. 다만, 이런 책을 읽고 나면 감상평을 쓰는 것이 정말 어려운 데, 느낀 점들을 활자화해 읽어 보면 내가 느꼈다고 주장하는 바들이 책이 담고 있는 내용에 비해 너무나 형편없고 유치하기 짝이 없다는 자괴감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책 속 내용을 옮기는 것뿐. 기억하고 싶은 부분에 줄을 거가며 책을 읽었다.


내가 단지 또다시 새롭게 시작할 수 있기 위하여 나는 얼마나 많은 어리석은 짓, 얼마나 많은 악덕, 얼마나 많은 오류, 얼마나 많은 구토증과 환멸과 비참함을 거치치 않으면 안 되었는가. 하지만 그것은 제대로 난 길이었어. 나의 마음은 그 점에 대하여 그렇다고 말하고 있으며, 체험하지 않으면 안 되었고, 모든 생각들 중에서 가장 어리석은 생각, 그러니까 자살할 생각까지 품을 정도로 나락의 구렁텅이에 떨어지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은, 자비를 체험할 수 있기 위해서였으며, 다시 [옴]을 듣기 위해서였으며, 다시 올바로 잠을 자고 올바로 깨어날 수 있기 위해서였어. 내가 바보가 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은 나의 내면에서 다시 아트만을 발견해 내기 위해서였어. 내가 죄를 저지르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은 다시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기 위해서였어. 앞으로 나의 길이 나를 어디로 끌고 갈까? 그 길은 괴상하게 나 있을 테지, 어쩌면 그 길은 꼬불꼬불한 길일지도 모르고, 어쩌면 그 길은 원형의 순환 도로일지도 모르지. 나고 싶은 대로 나 있으라지. 그 길이 어떻게 나 있든 상관없이 나는 그 길을 가야지.
놀랍게도 그는 가슴속에서 기쁨이 용솟음치고 있는 것을 느꼈다.


그에게는 이러한 어린애 같은 인간들이 자기의 형제들처럼 느껴졌다. 그들의 허영심, 탐욕이나 우스꽝스러운 일들을 이제 그는 웃음거리가 아니라 모두 이해할 수 있는 일, 사랑스러운 일, 심지어는 존경할 만한 일로 여기게 되었다.

맹목적이고 거친 열망, 이 모든 충동들, 이 모든 어린애 같은 유치한 짓들, 이 모든 단순하고 어리석은, 그렇지만 어마어마하게 강한, 억센 생명력을 지닌, 끝까지 강력하게 밀어붙여 확고한 자리를 굳히는 충동들과 탐욕들이 싯다르타에게는 이제 더 이상 결코 어린애 같은 짓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바로 그런 것들 때문에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았으며, 바로 그런 것들 때문에 사람들이 무한한 업적을 이루고, 여행을 하고, 전쟁을 일으키고, 무한한 고통을 겪고, 무한한 고통을 감수한다는 것을 알았다.

이것은, 이러한 반복은, 이처럼 숙명적인 순환의 테두리 속세에 다람쥐 쳇바퀴 돌듯 도는 것은 한 바탕의 희극, 기이하고 어리석은 일이 아닐까?

그렇다. 그런 것이다. 끝장을 볼 때까지 고통을 겪지 않아 해결이 안 된 일체의 것은 다시 되돌아오는 법이며, 똑같은 고통들을 언제나 되풀이하여 겪게 되어 있는 법이다.


처음엔 용어도 낯설고 등장인물 이름도 배경도 너무 익숙지 않아서 과연 내가 이 책을 끝낼 수는 있을 까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싯다르타가 진리를 깨우친 완성자 ‘고타마’ 미밑에서 수양하지 않고 속세로 떠나 카밀라와의 사랑을 시작할 때는 과연 초심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궁금했다. 그리고 그가 바주데바와 함께 뱃사공이 되었을 때 그리고 강물의 소리를 듣기 시작할 때 조금씩 알게 되었다. 사실 중요한 건 바로 옆에 있다는 것, 진리를 위해 배움을 위해 멀리 떠날 필요 없이 사실 우리 주변에 모든 것이 스승이 된다는 것이 작가의 메시지가 아닐까 하고. 마지막 그가 떠난 아들을 그리워하고 집착하는 과정에서 깨우친 것, 그리고 내가 싯다르타를 통해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은 아래와 같다.  


1. 진리와 지혜는 깨닫는 것이다. 말하거나 가르칠 수 없는 것이다.

2. 고통을 겪지 않아 해결이 안 된 일체의 것은 다시 되돌아오는 법이며 똑같은 고통들을 언제나 되풀이해서 겪어야 하는 법이다.

3. 이 세계는 불완전한 것도 아니며 완성을 향하여 서서히 나아가는 도중에 있는 것도 아니고 이 세계는 매 순간순간 완성된 상태에 있는 것이다.

4. 제 각기 목표를 향하여 간 강물은 수증기가 되어 하늘로 올라갔다가 비가 되어 하늘로부터 다시 아래로 떨어져서 샘이 되고, 시내가 되고, 강이 되었다. 그리고 또다시 새롭게 목적지를 향해 나아갔으며, 또다시 새롭게 흘러갔다.


책을 읽으면서 몇 번이나 울음이 났다. 특히 그가 모든 걸 다시 시작하기 위한 다짐을 할 때, 왜 이 지경까지 오게 되었는지에 대한 자책을 할 때, 그것이 지금의 나의 어떤 부분과 너무 닮아있어서. 그런데 그 모든 것은 다시 시작하기 위함이었다는 것, 그런 일들이 없고서야 새로운 시작을 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말이 위로가 되어서 눈물이 터져 나왔다. 나에게 모든 것이 돌아왔고 나는 그것을 받아들인다. 강물처럼 모든 곳을 돌아 또 새로운 목적지를 향하고 있을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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