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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홍 Feb 26. 2024

손병희 선생, 건달에서 종교인으로..

어릴 적에 읽은 계몽사 어린이그림위인전기 《손병희》,계몽사가  생각남.


어릴 적에 읽은 위인전인 계몽사 어린이그림위인전기 《손병희》,계몽사에 따르면, 손병희 3대 천도교 교주가 젊었을 때는 놀던 건달이었다고 한다. 어머니가 해를 안으시는 태몽을 꾸셔서 낳은 아들이지만, 자신이 서자라는 사실에 절망한 그는 정말 청년시절이 분노하면 주먹을 휘두르는 건달이었다. 아전이 백성을 핍박하여 격분한 손병희가 “내가 누군지 알아! 손응구(본래 이름)야!”라고 말하자 아전이 건달인 손병희에 대해, 들은 터라 도망갔다고 한다. 그러다가 1900년 순도한 사촌동생인 손천민이 손병희에게 한울님 앞에서는 곧 하느님 앞에서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고 전도를 하고, 서양종교인 천주교가 활발한 전도활동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조선 민중들의 정신까지 “서양의 지배를 받겠구나.”라고 걱정을 하던 터라, 천도교를 믿기로 마음을 바로 잡고 최시형 2대 교주님을 섬기는 착실한 천도교 신자로서 살았다. 

그는 건달 시절 리더십으로써 천도교를 지도하여, 1895년 동학농민혁명에 접주로서 참여했으며, 동학농민혁명이 조선과 일본제국의 폭력으로써 억압당하자 1907년 종교의 자유를 인정할 때까지 일본으로 망명을 해야 했다. 이 시기에 손병희는 똑똑한 조선 청년 23명을 일본으로 유학을 보내어 학문을 배우도록 하고, 셋째 사위이기도 한 소파 방정환 선생을 천도교의 문화사업인 소년부 활동가 곧 아동문학가로 키우는 등 중요한 업적을 남긴다. 일본제국주의에 동조하는 친일분자들인 일진회를 출교하였으며, 이들이 시천교를 조직하여 내분이 일어나자, 권병덕 등이 시천교를 버리고 회개하면 교인으로 받아들이는 등 너그러움을 보이기도 한다. 젊었을 때 놀던 사람들이 성숙하면 위대한 인물로 자라는 모양이다.  2024년 2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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