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에서 칠레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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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칠레 간 이미그레이션은 국경이 나뉘는 철탑을 기준으로 각각 5km, 17km씩, 총 22km 떨어져 있다. 아침 일찍 아르헨티나에서 출발하여 칠레 출입국 사무소에 오후 5시경 도착했다. 우린 여기서 출입국 심사 후 인근 캠핑장에서 하루 묵고, 내일 오후 5시 배를 타고, 이곳 Mansilla에서 Villa O`higgins로 넘어가면 된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건물에 칠레 국기는 보이는데 아르헨티나 국기는 보이지 않고, 도장을 찍어주는 이가 한 명뿐이다. 설마, 아닐 거야. 일단 여권을 내밀었다.
"아르헨티나 팀브레(도장) 어디에 있어?"
"...... 우리 도장 안 받았는데, 여기에 아르헨티나 이미그레이션이랑 같이 있는 거 아니야?"
"아니야, 너흰 아르헨티나로 돌아가서 아르헨티나 아웃 도장을 받아와야 해......"
너무 황당하면서도 어떻게 해야 하나 싶었다. 기억을 더듬어 오늘 아침 아르헨티나에서......
"칠레로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하죠?"
"이 길 따라가면 돼, 허허"
대수롭지 않게 길을 알려 준 그 아저씨, 알고 보니 아르헨티나 출입국 사무소를 담당하는 군인이었다.
침착하자...... 문제는 요 며칠 동안 캠핑을 하면서 왔기 때문에 식량이 다 떨어졌고, 돈이 있어도 뭘 살 수 있는 가게가 없다. 내일 배 시간을 맞추기 위해서 오후 다섯 시까지 44km를 다녀와야 한다. 이 배를 놓치면 이틀 뒤에나 있고, 식량도 없으니 큰일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내가 현주 여권까지 들고 가서 도장을 찍어와도 된다고 한다. 혹시 본인이 직접 와야 된다고 하면 어떡하냐 물으니, 아르헨티나는 상관없단다.
현주는 속이 상했는지 눈물을 보였다. 나흘 간 잘 먹지도 못하고 계속 걸어왔으니 몸이 많이 지쳤을 테다. 나도 너무 힘들어 눈물이 나려 했는데 한 명이 우니, 같이 울기가 뭣하다. 여행자들이 우리 이야기를 어디서 들었는지 멕시코 친구는 음식이 남았다며 쌀과 수프를 건넸다. 호주에서 온 단체 여행객은 여기 와서 밥을 먹으라고 자리를 마련해 주시고, 울고 있는 현주를 달래기 위해 따뜻한 차를 준비해 주셨다. 다음 날 아침 멕시코 친구가 준 쌀과 수프로 죽을 만들어 먹고, 비스킷 몇 조각 들고 다시 아르헨티나로 향했다.
이 아름다운 길을 언제 또 와 보겠냐며, 스스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달렸다. 아르헨티나와 칠레의 국경을 알리는 철탑에 도착하니 배가 아팠다. 여기 철탑 아래에다 거하게 똥을 싸질러버리고 싶었으나 이성을 되찾고 저 멀리 숲 속에서 해결했다. 아르헨티나 출입국 사무소에 도착해서 나의 사정을 설명하니 도장을 바로 찍어준다. 하...... 한숨은 돌렸다만, 도장 찍는 "쿵!" 소리가 허무하다. 뒷문으로 늙은 군인이 낚싯대를 들고 들어왔다. 자기네들끼리 스페인어로 말하더니 깔깔 거리며 웃는다. 늙은 군인은 어제 칠레 가는 길을 알려주었던 그 사람이다. 화가 난다. 다시 돌아온 Lago del Desierto, 잔디 밭에 드러누워 멍하니 호수와 그위로 우뚝 솟은 피츠로이 봉우리를 쳐다보았다. 시간은 10시 생각보다 빨리 왔다. 긴장이 풀렸는지 이내 구역질을 했다. 돌아가려니 힘이 빠진다. 그래도 여기선 물을 아무데서나 마셔도 되니 목이 마를 일은 없어 다행이다.
다시 국경을 알리는 철탑을 지나, 뛰다 걷다를 반복했다. 그러다 어느 자전거 여행자를 만났다.
"팀브레? 팀브레?"(도장은 찍었어?)
"시!~, 팀브레"(네, 도장 찍었어요)
"축하해요~, 축하해~"
가방에서 초코바와 사과를 꺼내더니 자기는 이제 필요 없다며 먹으란다.
"그라시아스, 그라시아스"(감사합니다.)
힘을 내어 다시 뛰었다. 아니 신이 났다. 아무것도 없는 이곳에서 자기가 가진 음식을 건네어 준다는 건 의미가 크다. 너무나 고마웠다.
다른 자전거 여행자를 만났다.
"팀브레? 팀브레?"
"시~,시~, 팀브레"
"축하해요~"
이 사람도 가방에서 비스킷을 꺼내어 나에게 주었다. 그리고 종이쪽지도 하나 주었다. 현주였다.
"오빠, 오늘 배 시간이 5시에서 오전 11시로 바뀌었어 천천히 와도 될 것 같아......"
아...... 힘이 빠졌다. 열심히 뛰었건만 이렇게 갑작스럽게 배 시간이 바뀔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설렁설렁 걸으며 홀로 이런저런 넋두리도 해보고, 목청껏 노래도 부르며 걸었다. 저 멀리 자전거 여행자 한 팀이 길가에 서 있었다.
"자전거가 어디 고장 났나 봐요?"
"짐이 무거운지 거치대가 주저앉았어"
"제가 좀 도와드릴까요?"
"응 고마워, 그런데, 너 혹시, 팀브레?"
가방에서 뭔가 주섬주섬 꺼내기 시작한다. 이미 내 손이며 호주머니는 다른 여행자들의 후원 물품으로 가득 찬 상태인데, 이걸 어떻게 하나? 난감해하던 찰나, 나에게 종이쪽지를 건넸다. 또 현주였다.
"오빠, 여기 배 타는 사람들이 우리 사연을 선장한테 얘기해서 기다려 주기로 했어 빨리와!"
우사인 볼트도 놀랄 정도로 달렸다. 또 한번 신이 났다. 마지막 5km를 남기고 칠레 군인이 4륜 구동차를 끌고 와 나를 태웠다. 4륜 구동이 이렇게 신나고 재밌는 것이구나! 선착장에 도착하여 내리니 사람들이 나에게 박수를 쳐주었다. 여권에 도장을 찍지 않은, 하나의 바보 같은 실수로 기억될 뻔했는데, 많은 여행자들의 관심 덕분에 재밌고 감동적인 이야기 거리가 되었다. 선장 아저씨는 우리에게 배를 운전해 보라며 '키'를 넘겨주는 호의(?)를 베푸셨고, 우리와 함께 사진을 찍으시곤 자기 배안에 걸어 놓을 거라고 하셨다.
내가 절망하고 낙담해 있을 때, 여행자 한 명 한 명이 도와주었고 관심을 가져주었다. 그러고 보니 여행하는 동안 내가 남이 었던 적이 있었던가? 여행을 끝마치고 나의 삶으로 돌아가더라도 오늘의 고마움을 잊지 않고 살아가야겠다.
' AUSTRAL 길'은 생긴 것도 예쁜데 하는 짓도 예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