곱디 고은 손
아이들이 실컷 물놀이를 하다 나와서 내 앞에 손을 내밀었다.
"아빠, 이것 봐! 할머니 손 됐다."
쪼글쪼글해진 손가락이 재미있는지 한참을 시시덕거린다. 그런 아이에게 맞장구치며 아이 손을 한참 동안 바라보고 있자니 그 위로 할머니 손이 겹쳐 보였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할머니께서 만들어주는 손만두를 참 좋아했다. 꼭 명절 때가 아니더라도 할머니 댁에 들릴 때면 할머니는 선홍색 대야에 만두소를 한가득 담은 채 만두를 빚고 계셨다. "할머니~"하고 문을 열고 들어가면 치맛자락에 밀가루를 탁탁 털고는 한걸음에 달려와 나를 안아주었다. 산발인 내 머리를 다정스레 쓰다듬어 주실 때 할머니 손은 새하얀 밀가루보다 부드러웠다.
가끔 만두를 너무 많이 먹어 배가 아플 때는 할머니께서 배를 쓸어주셨다. '손주 배는 똥배고, 할미 손은 약손이다.' 노랫소리와 함께 할머니 손이 몇 번 왔다 가면 신기하기도 배가 금방 나았다.
"할머니 만두 더 먹어도 돼요?"
"그러다 또 배탈 나면 어쩌누?"
"괜찮아요. 할머니 약손이 있잖아요."
할머니는 못 이기는 척 부엌으로 가 예쁘게 빗어 놓은 만두 몇 놈을 골라 넣고 만둣국을 끓여주셨다. 또 체하지 말라며 정신없이 만둣국을 먹고 있는 내 등을 정성스레 쓸어주셨다.
신기하게도 할머니 댁에는 청소도구가 딱히 없었다. 만두를 다 빚은 후 바닥에 떨어진 밀가루나 방바닥에 나뒹구는 내 머리카락들은 할머니 손질 몇 번이면 깨끗해졌다. 비싸고 성능 좋은 다이슨 무선 청소기도 필요 없었다. 그저 할머니의 거친 손 하나면 충분했다. 할머니의 작은 집이 언제나 새집처럼 깨끗했던 이유는 나를 쓰다듬던 마음 그대로 하루에 몇 번씩이나 방 안 곳곳 손 빗질하셨기 때문이다.
이제 와서 돌이켜 보면 할머니 손은 마냥 쭈굴쭈굴하고 못난 손이 아니었다. 예쁘게 빗어놓은 만두보다 더 곱고, 이름난 명의보다 더 능력 좋고, 값비싼 청소기보다 더 효율적인 만능 손이었다. 그건 내가 조그마한 아이였을 때나 아이들의 아빠가 된 지금도 변함없이 한결같은 사실이다.
할머니께서 치매로 요양원에 입원하셨다. 따뜻하게 할머니 손조차 잡아드릴 수 없는 현실이 조금, 아주 조금 슬퍼지는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