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나의 집

추억의 장소

by 팥쥐아재


내가 어릴 적 우리 집은 아주 작은 단칸방에 살았다. 미닫이문을 열면 부엌 겸 세면실로 사용하는 공간이 있었고 두 걸음 더 걸어가면 마당이 나왔다. 마당이라고 해서 우리 집 전용 마당은 아니었다(그랬으면 참 좋았겠지만). 우리 집 외에 네 가구가 옹기종기 붙어있었는데 중앙에 위치한 수도를 기준으로 빙 둘러 위치해 있었다. 가정마다 부엌에 수도 배관이 있었지만 수압이 매우 약했고 그 덕분에 아침마다 마당 중앙에 있는 수도를 사용하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드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마당 입구 초입에는 오래된 수세식 화장실이 두 개 있었다. 신기하게도 화장실 바로 옆에는 무화과나무가 있었는데, 해마다 탐스러운 열매를 맺어 간식이 부족했던 내 어린 시절을 배부르게 도와주곤 했다. 그러나 어찌 된 영문인지 나이가 들어서는 무화과 열매를 찾지 않고 있다. 단순히 입맛이 변한 건가 싶어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니 화장실 때문인 듯싶다. 어릴 때는 몰랐지만 나이가 들고 나서 생각하니 수세식 화장실 옆에 있는 나무가 맺은 열매는 왠지 깨끗하지 않다는 편견이 생겨버렸다. 추후에 무화과 열매를 발견하면 편견을 버리기 위해서라도 맛있게 먹어야겠다.


아주 좁고 초라한 집이었지만 내가 기억하고 있는 추억 중 가장 오래된 것이 그곳이다. 무화과나무뿐만 아니라 ‘헐크’라고 불렸던 커다란 개는 외로움을 달래주는 가장 좋은 친구였고, 집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보였던 바닷가와 그곳을 오가는 여객선들은 따뜻한 봄 바다의 진풍경을 보여주었다. 아버지 월급날이면 근처 시장에서 사 오는 통닭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추억이다. 매번 닭다리는 아버지와 형에게 양보해야 했지만 그래도 기름기 가득한 고기를 원 없이 먹었던 날은 그때뿐이었기에 시장 통닭 맛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부모님께서 열심히 일하시고 저축한 덕분에 우리는 그 집을 벗어날 수 있었다. 그곳보다 훨씬 더 좋은, 집안에 화장실이 딸려있는 아파트로 이사했다. 가끔 예전 집 주변을 지나치는 일은 있었으나 굳이 찾지는 않았다.


그 집을 다시 찾은 것은 20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후였다. 강산이 변해도 두 번이나 족히 변했을 시간이었다. 오만하게도 나는 그 집이 그대로 존재할 거라 믿었다. 예전 모습 그대로, 내 추억을 간직한 채 나를 기다리고 있을 거 같았다. 그러나 그 집은 이미 오래전에 사라지고 없었다. 차들이 쌩쌩 달리는 해안도로의 일부가 되어 있었다. 멈추지 않고 달려가는 자동차처럼 내 추억도 멀리 달아나 버렸다.


아쉬운 마음에 바닷가로 나갔다. 부산을 오가던 여객선이 머물던 선착장도 이미 폐쇄한 지 오래였다. “오징어 두 마리 천 원입니다.”를 외치던 오징어 아저씨도 더는 보이지 않았다. 가만히 선착장 끄트머리에 앉았다. 눈을 감고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 보았다. 매우 희미한 추억이지만 다행히 기억 속에 남아 있었다. 아니 오히려 그 장소에 머물고 있으니 예전보다 뚜렷하게 떠오르는 것 같았다. 불어오는 바닷바람이 시원했다. 파도소리에 실려 오징어 아저씨의 리듬감 넘치는 목소리가 함께 들리는 듯했다.


내가 추억하던 장소는 이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러나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회상할 수 있다. 오히려 추억에 대한 아련하고 애틋한 감정 때문인지 더욱 아름답게 기억하게 된다. 예전에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좋은 시설을 갖춘 곳에 살고 있을지라도 그 장소만큼 아름다운 장소는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