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같은 내 식구입니다.

부끄러운 오해

by 팥쥐아재

장기간 이어지는 불황으로 많은 기업이 힘들었다. 희망퇴직이라는 파도가 지나가나 싶었더니 신입사원 채용마저 하지 않겠다는 기사가 떴다. 부족한 인원은 계약직 채용으로 대체한다고 했다. 남아 있는 직원에게 업무가 가중된다며 반대하던 사람도, 핵심역량을 잃어버리고 말 거라며 반대하던 사람도 달리 방도가 없었기에 결국 회사 방침에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우리나라는 계약직 비중이 조금씩 높아지고 있다.

계약직이라고 하는 일이 크게 다르지 않다. 오히려 ‘고용조건’의 차이를 줄이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분이 더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의 규정상 계약직에게 돌아가는 혜택이 많지 않다. 아직까지 정상화되지 않는 회사 입장에서 그분들까지 챙길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암묵적으로 계약직을 더 챙겨주는 것이 관례가 되었다. 회사 규정에 의해서 받지 못하는 혜택을 조금이나마 다른 것으로 돌려주려는 사람들의 노력이었다. 나 역시 필요한 사무용품이 있으면 조금 더 좋은 걸로 사준다거나 식대를 계산할 때 내가 부담하는 식으로 챙겨주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노무를 담당하는 차장님은 언제나 회사의 규정을 들이밀며 ‘똑같이’ 적용해야 한다고 외쳤고, 계약직에게 돌아갈 수 있는 그 사소한 혜택마저 차단시켰다. 직원으로서 규정을 지켜야 하는 게 당연한 일이지만 칼같이 지키는 그분을 보면서 모두가 인정 없다며 수군거렸다.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흐르지 않는 사람이라 말은 꼭 차장님을 가리키는 것 같았다.

지난 11월, 2년간 추진되었던 프로젝트가 끝났다. 그동안 고생한 직원들의 노고를 기리며 회식을 하고 덕담을 나누며 마지막을 즐기고 있었다. 그런데 그 시간을 즐기지 못하는 분들이 있었다. 계약직이었다. 정직들은 프로젝트가 끝나도 어디론가 갈 곳이 정해지지만 그들은 다르다. 그들에게 프로젝트의 끝은 새로운 시작이 아닌 단절을 의미했다.

안타까운 마음은 들었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게 그들의 인생이기에 내가 관여할 수 없다고 여겼다. 아니, 오히려 프로젝트가 끝나기 전에 새로운 일자리를 찾지 않은 그들을 탓했다. 프로젝트를 무사히 완료하기 위해 끝까지 최선을 다하느라 새로운 곳에 눈 돌릴 수 없이 바빴던 그들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내 양심의 가책을 회피하기 위해 이기적인 생각을 가졌다.

그러나 프로젝트의 끝과 동시에 그들에게서 등을 돌렸던 나와는 대조적인 사람이 있었다. 노무 담당 차장님이었다. 그분은 프로젝트가 끝남과 동시에 계약직 분들이 일할 수 있는 곳을 찾기 시작했다. 아니, 아마도 프로젝트가 끝나기 전부터 찾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회사 내 모든 인맥을 동원해서 인원을 필요로 하는 곳이 있는지, 기간은 얼마나 되는지, 그 프로젝트의 특징은 무엇인지 조사해서 계약직들에게 공유해 주었다. 언제나 ‘똑같이’를 외치며 규정을 운운했던 그분은 계약직들과 ‘똑같은’ 심정으로 그들의 새로운 시작을 함께 찾고 있었다. 그동안 차장님의 태도로 미루어 보았을 때, 프로젝트가 끝남과 동시에 등을 돌려도 어색하지 않은 상황이었기에 그분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며칠 후, 아이처럼 해맑게 웃으며 통화하는 차장님을 보았다. 본의 아니게 통화내용을 엿들었다.

“...... 계약직들도 ‘똑같이’ 내 식구입니다. 당연히 제가 챙겨야죠. 그럼 형님만 믿고 OOO 씨 보내겠습니다.”

그 순간 깨달았다. 내가 얼마나 차장님을 오해하고 있었는지, 그리고 차장님이 얼마나 정이 많고 진심으로 사람들을 대하고 있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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