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바느질 마스터
사촌 여동생 남편, 그러니까 매부는 양말 사업을 했다. 언젠가 우리 집에 인사하러 왔을 때 양말 한 자루를 가지고 왔었다. 양말은 소모품이기 때문에 이 정도는 두고 쓰셔야 넉넉하게 쓴다고 선심을 써주어서 고맙게 잘 받아 쓰고 있다. 대략 7년 전 일이지만 아직도 새 양말이 남아있다. 내 기억으로 많은 양을 누군가에게 나눔을 했음에도 오랫동안 쓰고 있는 셈이다.
고마움과는 별개로 나는 양말을 소모품이라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사실 아직도 양말이나 옷이 구멍 나면 반짇고리를 꺼내 꿰매 쓰고 있다. 달리기를 하느라 양말 구멍이 잘 나는 편인데 그럴 때마다 비싼 양말을 살 수도 없는 노릇이고, 몇 분 손만 놀리면 새것처럼 둔갑하는 양말이 고맙기도 해서 바느질하는 걸 좋아한다. 그런 모습을 아이들이 보고 자란 탓인지 무언가 하자가 있는 자신의 옷이나 인형을 나에게 맡기기도 한다. 첫째는 양말을 참 좋아하는데, 한 여름에도, 집안에서도 양말 신고 있는 것을 즐긴다. 딱히 선호하는 상표나 종류가 있는 것은 아니고 순수하게 '양말' 그 자체를 좋아한다. 정말 특이한 성격이다. 어쨌든 첫째의 양말 사랑은 깊어서 발가락 쪽에 구멍 난 양말도 쉽사리 버리지 못한다. 뒤꿈치 부분이 해질 정도는 되어야 먼 곳으로 보낼 준비를 한다. 그런 아이니만큼 나에게 맡기는 양말이 많았다.
오늘 내 장갑을 꿰매는데 셋째가 자신의 인형도 꿰매 달라고 했다. 피카추 인형은 코 윗부분이 구멍 났고 멍멍이 인형은 귀가 떨어져 있었다. 인형에 맡는 노란색과 흰색 실을 꺼내 작은 바늘귀에 쏙 집어넣을 때부터 집중하기 시작했다. 아이 부탁이니 만큼 한 땀 한 땀 정성 들여 꿰맸다. 혹여나 뾰족한 바늘에 손가락을 찔릴까 아이 눈은 연신 내 손짓을 따라간다. 이윽고 바느질을 멈추자 아이는 환호했다. 겨우 바느질 하나에도 깊이 감탄하고 즐거워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내가 더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반짇고리를 정리하려고 하는데 첫째와 둘째가 자신들도 바느질을 해보고 싶다고 한다. 아이들을 잠시 놀리면서 집 정리를 할 겸 실을 바늘귀에 넣는 것부터 시켰다. 아이들은 작은 바늘귀 안으로 실을 넣으려 실눈을 떠가며 도전했다. 그 모습이 귀여워 머리 한 번 쓰다듬고는 집 정리 하는 것도 잊고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바늘귀가 좁아 몇 번을 실패하더니 나에게 도와 달라고 했다. 아이들을 도와주려다 이내 마음을 바꿔 넣을 때까지 직접 해보라고 일렀다. 힘들어하면서도 정신을 집중하더니 첫째가 곧 성공했다. 이에 질세라 둘째도 성공했다. 아주 사소한 일이지만 아이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작은 성공을 이뤘다. 그리고는 각자 가져온 인형에 바느질을 시작했다. 간격도 배열도 엉망이었지만 아이들은 바늘에 찔리지 않고 조심조심 바느질을 했다.
그 모습을 보곤 셋째까지 가세했다. 뾰족한 것에 대한 공포심을 가지고 있는 셋째가 바느질을 하고 싶다고 하니 놀라웠다. 형들의 존재가 이렇게까지 아이들 변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하지만 셋째는 실을 바늘귀에 한두 번 넣어보려고 시도하더니 곧바로 나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아주... 짜증이란 짜증을 다 내면서...... 하... 바늘로 콕 찌를까? 셋째도 형들처럼 직접 해보라고 권하고 싶었지만 떼쓰는 탓에 그냥 도와주었다. 그대로 두었다가는 바늘로 제 몸 어딘가 찌를 것처럼 불안해 보였기 때문이다. 괜히 바늘을 쥐어준 거 같다는 후회가 들었지만 심호흡을 하며 인내심을 가졌다. 어쨌든 뾰족한 바늘에 대한 공포심을 이겨낸 것만으로도 고맙게 느껴졌다. 아이들은 한참 동안이나 집중해서 바느질을 했다. 아내님이 저녁을 다 차릴 때까지 아이들은 바늘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오늘 아이들과 함께 바느질을 하면서 이것 역시 아이들에게는 놀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스스로 이런 말을 하기는 좀 그렇지만, 바느질도 참 좋은 가르침이 될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양말을 사소한 소모품처럼 여기며 쉽사리 버리는 요즘 세상에 조금은 물건에 대한 소중함을 느끼지 않았을까 하는, 약간 하자가 있더라도 작은 수고를 통해 물건에 새 생명을 불어넣어 줄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지 않았을까 하는 그런 마음. 단순히 내 기대일지도 모르지만, 아이들이 물건을 소중히 여기고 감사하는 마음을 오랫동안 유지했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