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스럽지 않아도 돼

아이를 통한 깨달음

by 팥쥐아재

아내와 나는 연애 때부터 기념일을 챙기지 않았다. 서로를 향한 진심어린 감사과 사랑만 있으면 괜찮다고 생각했다. 오늘 어린이 날도 마찬가지다. 연휴기간 내내 아이들과 함께 했기에 특별히 챙기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일 때문에 출근했고, 아내 혼자 아이들과 시간을 보냈다. 일이 바빠 어린이날에 대한 감흥도 없이 보내다가 저녁 즈음 걸려온 아내 전화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어제는 아이들이 다니는 어린이집에서 어린이날 기념 파티가 열렸다. 그런데 어린이집에서 준비한 다과는 대부분이 난류가 포함되어 있어서 첫째 아들은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점심 때 나온 반찬도 대부분 난류가 섞여 있어서 밥과 김치만 먹었다. 계란 알러지가 있는 아이를 위해 특별히 신경을 쓰지 못하는 어린이집 사정이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너무 야속하게 느껴졌다. 조금만 신경을 써주었더라면, 차라리 아이가 먹을 수 있는 다과나 반찬을 준비해 달라고 우리에게 말이라도 해주었다면 좋았을텐데... 친구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서 아이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런데 더 가슴 아픈 건, 그런 환경에서도 군말 없이 하루를 보내고 오늘 오후가 되어서야 "어제 과자 못 먹었는데 계란 안들어간 빵 사주면 안되요?"라고 아내에게 말했다는 사실이다. 그제서야 어제 일을 파악한 아내는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 빵과 아이스크림을 사주었다고 한다. 그것만으로도 크게 만족하고 신이 난 아이를 보면서 아내는 괜찮다고 말했지만, 사실 난 전혀 괜찮지가 않았다.


내가 어렸을 때 넉넉치 못한 가정 형편 때문에 장난감 하나 없이 자랐다. 일 하느라 바쁜 부모님 때문에 어린이 날을 함께 보낸 날 역시 거의 없다. 딱히 불만이 있거나 상황을 탓하지는 않았고, 어른들은 그런 나를 보면서 어른스럽다며 대견해 했다. 그러나 내가 부모가 되었을 때는 적어도 아이가 원하는대로 해줘야겠다고 다짐했다.

지금 난 넉넉하게 살고 있지만, 아이들은 장난감이 거의 없다. 내가 아이들에게 제일 좋은 장난감이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언제나 아이들과 함께 있어줄 거라고 다짐했지만, 일 때문에 어린이 날을 함께 보내지 못했다. 나는 우리 부모님보다 더 나은 부모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어쩌면 나 역시도,
장난감을 사달라고 때 한 번 써본 적 없는 아이를,
먹고 싶은 음식 앞에서 참을 줄 아는 아이를,
아이답지 않게 어른스러운 아이를,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내 안에 웅크려 숨 죽이고 있는 어린 시절의 나를, 아이에게 투영한 것은 아닐까.


아이가 조금 더 투정 부리고, 어린이다웠으면 좋겠다. 아니, 그전에 내가 먼저 부모다워져야겠다. 내가 먼저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출 줄 아는 어른이 되어야겠다. 언제고 아이들이 아이답게 자랄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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