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를 통한 깨달음
"컴퓨터로 바둑 두고 싶은데 왜 안 되냐?"
벌써 열 번은 넘게 설명해 드렸음에도 불구하고 혼자서 컴퓨터를 활용하지 못하는 아버지를 보며 고구마 백개는 먹은 듯 답답해했다. 이렇게 간단한 걸 왜 못하시는지 도통 이해가 되질 않았다. 내가 공부를 못했던 이유가 혹시 아버지 때문은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가르쳐 드려야지. 최대한 인내심을 발휘하여 같은 말을 반복하면서 설명해 드렸다. 하지만 그 후에도 아버지는 쉽게 적응하지 못하셨고, 멀리 떨어져 있는 나에게 전화까지 해서 물어보실 때도 있었다. 가끔 내가 짜증을 내서 그런지 전화하는 횟수가 차츰 줄어들었고, 한 번씩 내가 집에 갈 때면 넌지시 바둑 이야기를 흘리곤 하셨다. 나도 참 못돼먹은 게 죄송한 마음보다는 귀찮은 일이 하나 줄어서 오히려 홀가분하다고 느꼈다.
요즘 스팀잇을 이용하는 시간이 많이 줄었다. 그래서 이곳 생태계가 어떻게 변하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사실 블록체인이나 코인 자체에도 관심이 많이 줄었다. 그래서 스팀이 트론에 인수된다는 사실도 꽤나 늦게야 알게 되었다(그전에는 그냥 루머로만 알았다;;). 오랜만에 스팀잇에 접속해 보니 참 많이도 변해있었다. 뭐가 바뀌었고, 뭐가 추가되었고, 이렇게 저렇게 해야 된다는 인플러언서 분들의 이야기를 접하고는 있는데 도통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하겠다. 굉장히 낯설다. 2년 전, 처음 스팀잇을 시작할 때도 이처럼 생소하지는 않았던 거 같은데 말이다.
이제야 컴퓨터 앞에만 앉으면 막막해지는 아버지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접속할 때마다 업그레이드를 하라던지, 키보드 보안 프로그램을 깔아라 던 지, 이것저것 알지도 못하는 용어로 팝업이 뜨는 걸 쉽사리 허락하지 못하셨을 거다. 컴퓨터에 익숙한 사람이야 프로그램을 잘못 설치해도 삭제하면 그만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아버지는 계약서에 인감을 찍는 만큼의 중압감을 느끼셨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게 아니면, 왜 쓸 때 없이 이상한 프로그램을 깔았냐는 나의 잔소리가 더 위협적이었을지도......
비록 아버지는 바둑 사이트에 접속해서 신규가입을 하고, 게임을 설치하고, 대국 매칭을 하는 것이 힘들었지만, 바둑 자체는 잘 두시는 편이었다. 그래서 내가 바둑에 흥미를 가졌던 시절, 몇 번이나 배워보려고 아버지께 물어볼 때마다 싫은 내색 한 번 없이 오히려 즐거운 마음으로 가르쳐 주셨던 기억이 난다. 내가 바둑에 싫증 내지 않고 계속 배웠더라면 언제까지고 귀찮은 내색 한 번 없이 가르쳐 주셨을 테다. 그 점을 생각하면 참으로 죄송한 마음이 앞선다.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건 잘못된 게 아니다. 잘못된 건, 변화에 적응할 때까지 기다려 주지 못하는 조급함과 타인을 위한 배려의 부족이 아닐까? 가끔은, 옆에 있는 사람과 눈높이를 맞추고 천천히 함께 가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