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통한 깨달음
아이들 하원 시간이 다 되어 마중을 나갔다. 어린이집 버스가 오는 방향 조경석에 앉아 기분 좋게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사람 구경을 했다. 마음껏 여유를 부리며 사람 구경을 한 것이 얼마만인지...... 장을 보고 귀가하는 아줌마, 유모차에 의지하여 걸으시는 할머니, 하교 길에 왁자지껄 떠들며 지나가는 학생들. 저마다 기쁨과 즐거운 에너지를 뿜어내고 있어서 덩달아 나까지 기분이 좋아졌다.
얼마간 사람 구경을 하다가 내 눈길이 머문 곳은 맞은편에 앉아 있던 아이였다. 나이는 8~9살쯤 되어 보였고, 축구공을 들고 있는 것으로 보아 싸카인으로 갓 입문한 것처럼 보였다. 순간 내 몸속 싸카인의 피가 반가움에 요동쳤다.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점은 축구를 하고 한창 뛰어놀아야 할 아이가 왜 벤치에 홀로 앉아 있느냐는 것이다.
친구들이 함께 어울려 놀아주지 않는 것일까? 아니다. 지금 시간이면 이미 한바탕 뛰고 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일 것이다. 그리고 저 나이에 축구공을 들고 다닐 정도라면 아마 친구들이 절로 모여드는 인기남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왜 집으로 돌어가지 않고 벤치에 앉아서 시간을 때우고 있는 것일까? 혹시 부모님이 맞벌이라 집으로 돌아가도 반겨주는 사람이 없어서 그런 것은 아닐까?
혼자서 상상의 나래를 펼쳐나가기 시작할 무렵 내 옆으로 유치원 버스 한 대가 멈춰 섰다. 이윽고 아이는 벤치에서 일어나 엉덩이를 탁탁 털더니 버스 옆으로 나란히 섰다. 잠시 후 6살 남짓한 남자아이가 내리자 얼른 손을 잡더니 선생님께 인사했다. 그리고는 동생의 가방을 자신이 둘러멨다. 동생은 자기 가방은 자기가 들고 갈 수 있다며 돌려달라고 했지만 아이는 끝내 가방을 넘겨주지 않았다. "앞이나 똑바로 보고 걸어." 라며 상당히 무뚝뚝하게 얘기하는 것으로 짐작컨데 츤데레가 분명해 보였다. 어쨌건 그 아이들의 모습이 어찌나 예뻐 보이던지 한참이나 뒷모습을 보고 서있었다.
우리 첫째도 싸카인 아이처럼 동생을 잘 돌봐주는 아이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생각에 첫째는 엄마와 아빠를 동생에게 뺏겼다는 오해가 있어서 그런지 동생에 대한 질투가 심한 편이다. 그래서인지 동생에게 양보하고 배려해 줬으면 좋겠다는 내 바람과는 정반대로 행동하며 동생을 울리기 일쑤다. 하지만 언젠가는 저 싸카인 아이처럼 동생을 챙겨 주는 멋진 형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잠시 후 아이들을 픽업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첫째가 "율아 먼저 타. 조심. 조심." 이라며 동생을 배려하는 게 아닌가! 그러면서 동생이 엘리베이터에 안전하게 탈 수 있도록 버튼을 눌리고 있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대견하고 예뻐 보이던지.
아이들이 사랑을 바라지 않아도 이미 내가 사랑하고 있는 것처럼.
"동생 좋아?"
"응. 너무너무 귀여워."
"동생 하나 더 있었으면 좋겠어?"
"아니. 귀여운 우리 율이 한 명만 있었으면 좋겠어."
"그래. 그럼 율이랑 사이좋게 지내야 돼."
"응. 알겠어. 아빠."
얼마 후면 약속도 잊고 울고불고 싸울 거라는 걸 안다. 하지만 그 이면에 서로를 생각하는 형제애가 있다는 것도 이제는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