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돼! 절대 안 된다고!!!
퇴근하고 숙소 방문을 열었는데 낯선 용품이 보였다. 반려동물 캐리어, 배변용 모래, 먹이, 장난감...... 뒤이어 불쾌한 냄새까지 났다. 방바닥 곳곳에 배설물이 보였다. 함께 방을 쓰던 막내가 내가 없는 주말 사이에 고양이를 데리고 왔다.
"내가 안된다고 몇 번이나 말했잖아. 당장 돌려주고 와!"
순간 화를 참지 못한 나는 막내에게 소리친 후 내 짐을 거실로 옮겨 놓았다. 고양이 배설물 냄새보다 내 말을 듣지 않는 막내와 한 방을 쓰는 것이 더 불편하게 느껴졌다.
"숙소에 강아지 키워도 돼요?"
몇 달 전 막내가 물었다. 놀란 토끼눈을 하고 막내를 바라보았다. 사회생활이 처음이라도 이제 곧 서른이 다 되어가는 사람이 할 질문으로 생각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진심으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나도 강아지를 키우는 입장에서 다른 반려동물들 다 좋아하는데, 여기는 여러 사람이 함께 사용하는 회사 숙소잖아. 다른 사람한테 피해를 줄 수도 있고, 우리가 없는 동안 반려동물은 외로움을 많이 탈 거야. 특히 주말에 아무도 없을 때는 더 문제고. 숙소에서 반려동물은 키우지 않는 것으로 하자."
최대한 알아듣게 이야기했고 그도 내 말에 수긍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한 달 전쯤 그는 다시 물었다.
"고양이 키워도 돼요? 고양이는 깨끗하잖아요."
조금 짜증이 났다. 이번에는 계약서를 들먹이며 대답했다.
"여기 임대차계약서에 보면, 임대인이 반려동물 금지라고 명시해 놨거든. 추후에 문제 소지가 있으니까 숙소에서 반려동물 키우는 것은 절대 안 돼."
이번에는 제대로 알아들었겠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내 생각은 틀렸다. 일주일 전쯤 카톡으로 고양이 사진과 함께 다시 물어봤다.
"대리님~ 고양이 키워도 될까요? ㅎㅎㅎㅎ"
"아니!"
"방에서만 키워도 안돼요?"
"ㅇㅇ. 안돼."
세 번을 넘게 이야기했으니 충분히 알아들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나만의 착각이었다. 내가 어떤 말을 몇 번이나 하든지 상관없이 그는 이미 숙소에서 반려동물을 키울 거라고 확정 짓고 있었다. 결국 내가 없는 주말을 틈타 고양이를 데려왔고 나는 분개했다. 냄새가 고약한 고양이 배설물 때문이 아니라 심보가 고약한 그 때문에 화가 났다.
3일이 지났다. 그 사이 고양이는 원래 주인에게 돌아갔다. 그러나 나는 방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불편했지만 거실에서 생활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인간관계마저 단절하고 싶지는 않았다. 막내와 맥주 한 잔 하면서 말문을 열었다.
"혹시 고양이 보내면서 생각 좀 해봤어?"
"아니오."
"그럼 나한테 이야기할 거 있어?"
"아니오, 없어요."
그의 단답형 대답에 속으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내가 먼저 이야기할게. 우선 내가 화낸 거는 미안하게 생각해. 나도 조금 더 부드럽게 말했어야 했는데 그때는 조금 화가 많이 나더라. 나는 몇 번씩이나 안 되는 이유를 설명하고 직간접적으로 안된다고 언급했는데도 불구하고 네가 고양이를 데려와서 솔직히 조금 놀랐어. 아무리 친하게 지내도 지켜야 할 예의가 있고 회사 규정이 있는데 이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거든."
"고양이는 깨끗해서 키워도 될 줄 알았어요."
내 말을 듣던 그는 한 마디를 던졌고, 침묵이 이어졌다. 나 역시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그의 요구에 따라 자리를 마무리하고 각자 방(나는 거실)으로 돌아갔다. 여태껏 그에게 베풀었던 호의가 부질없음을 느꼈다. 막내라고 항상 밥값을 내주던 것도, 계약직이라 조금 더 편의를 봐주던 것도, 룸메이트라고 저녁밥을 차려주던 것도, 화를 내고 혼자서 속앓이를 했던 것도, 이제는 그만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어느 심리학 책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타인의 감정을 소모시키는 사람이 있는 반면 긍정적으로 증폭시키는 사람이 있다고. 나는 전적으로 후자가 되고 싶지 전자가 되고 싶지 않다. 그가 감정을 소모시키는 '감정 뱀파이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언젠가 그런 관계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단절을 선언한 그에게 구태여 감정 소모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차라리 무의미하게 소모되는 감정을 추스르고 모아서 가까이에 있는 다른 사람에게 베푸는 것이 훨씬 낫다.
더 좋은 관계로 나아가지 못한 점이 아쉽기는 하지만 그와의 관계는 이쯤에서 내려놓아야겠다.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침이, 고양이 배설물 냄새만큼이나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