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가 필요할 때

가족 간에도 진심 어린 용서가 필요하다

by 팥쥐아재

형은 내 롤모델이었다. 잘생긴 외모, 훤칠한 키, 넘치는 유머감각에 주변 사람들 모두가 좋아했다. 성적도 꽤나 괜찮아서 본인이 원하는 학교에 갈 수 있었지만, 가족을 위해 취업이 잘되는 곳으로 방향을 틀었다. 대학시절 내내 장학금을 받았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자신이 쓸 돈을 스스로 마련했다. 내 기억으로 형은 20살이 된 이후 단 한 번도 부모님께 돈을 받은 적이 없었다.


나는 그런 형을 보며 자랐다. 언제나 내 편이 되어주고 바른 길로 인도해 주는 형 덕분에 큰 사고를 피해 갈 수 있었고, 형과 마찬가지로 20살 이후부터는 경제적 독립을 실현했다. 주변 사람들을 그런 나를 보며 바른생활 사나이라고 칭찬해주지만 모두 다 형에게서부터 시작된 일이다. 그래서 형에 대한 고마움과 유대관계가 더 깊어진다.


언젠가 과거로 돌아가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어린 시절 향수 때문인지 과거로 돌아가 새로운 인생을 찾는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롭다. 어릴 때 형과 함께 했던 즐거운 기억이 떠올라 슬쩍 물었다.


"형아는 어릴 때로 돌아가면 몇 살 때쯤으로 가고 싶노?"

"나는 지금이 제일 행복하다. 아내랑 딸내미 둘. 내가 만든 가정이 있는 지금...... 사실 난 어릴 때 단 한 번도 행복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래서 과거로 가고 싶은 생각은 전혀 안 든다."


내 기대와는 달리 형의 대답은 비관적이었다. 단 한 번도 행복했던 적이 없다니...... 잠시 서운하고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가 이내 그의 마음속에서 울고 있는 어린아이를 발견했다.


아버지는 폭력성이 강했다. 스스로의 기질뿐만 아니라 그 당시 사회와 가정이 그렇게 만든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쨌건 그런 아버지 밑에서 자라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폭력에 몸은 움츠러들었고 사소한 꼬투리조차 잡히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했다. 가능하면 아버지와 마주 치치 않으려고 하지도 않는 공부 핑계를 대며 방안에 숨죽여 있거나, 새벽 일찍 깨어도 아버지가 출근하실 때까지 자는 척을 하기도 했다. 아무리 평소에 잘 대해주셔도 그 모습 뒤에 감춰진 폭력적인 모습이 두려웠다. 성인이 되고 나서도 그 트라우마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그나마 형은 조금 낫다고 생각했다. 장남이라는 이유로 편애받고 있다고 느꼈다. 똑같은 잘못을 저질러도 내가 더 혼났고, 형이 잘못한 일에 대해서도 싸잡혀 혼나기도 했기 때문에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형의 꾐에 빠져 늦도록 오락실에 있다가 집에 돌아간 적이 있는데 그때 형은 책가방을 잃어버렸다. 아버지는 둘 다 학교에 가지 말라며 내 책가방에서 책을 다 꺼내 버리셨다. 며칠 후 형의 책가방은 발견되어 그의 품으로 온전히 돌아왔지만, 내 책은 쓰레기 매립장 어딘가로 버려진 후였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아버지는 내 생일날은 아무 일 없이 지나쳤는데 형 생일날에는 케이크와 선물을 사 오신 적이 있다. 아주 사소한 일이었지만 차별받고 있다는 사실과 그동안 두려움과 공포로 억눌려왔던 감정이 덩달아 터지면서 한없이 울었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그는 내 아버지였고 시간이 지나면서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사그라들었다. 어느 순간 힘이 빠진 아버지를 볼 때면 괜스레 미안하고 걱정되기까지 했다. 아버지를 조금 더 이해하기 위해 아버지 숙소에서 함께 지내면서 같은 업종에서 아르바이트를 해보았다. 고된 일과 고독한 시간을 함께 겪으면서 조금씩 그를 이해하게 되었다. 마음속으로 과거의 나에게는 위로를, 아버지에게는 용서를 건네기를 몇 차례, 마침내 아버지와의 벽을 허물 수 있었다.


하지만 형은 조금 달랐다. 아버지를 이해하고는 있으나 진심으로 용서하지는 못했다. 용서. 그 한 단어의 차이 때문에 여전히 아버지와 보이지 않는 벽을 공유하고 있었다. 더 이상 어린 형이 울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아버지는 이미 60 넘도록 저렇게 살아오신 분이니 바뀌기 힘들지만 형은 달랐다. 그래서 형에게 조금 더 용기를 내라고 했다. 비록 기억에 남는 어릴 적 기억은 부정적인 것이 많으나 분명 즐거운 일도 많았다. 하나씩 형과 추억을 떠올리며 응원해 주었다. 형 역시 힘들겠지만 그러겠노라 약속했다.


그 후로 몇 달이 지났다. 여전히 아버지와 형 사이에는 냉기류가 흐르지만 크게 걱정되지 않는다. 아무리 한파가 매서워도 따뜻한 봄이 찾아오는 것처럼 언젠가 우리 가족 간에도 진심 어린 용서와 따뜻한 사랑이 찾아오리라 믿기 때문이다.

매거진의 이전글존재 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