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으로 뒤덮인 어둠의 적막을 구원했지만,
여기 당신은 없네요.
벌써 또 한 해가 지났죠?
당신이 떠나고, 4년이 지났어요.
4년이란 시간이 꼭 그렇게 길지는 않네요.
찰나의 여정이라 느껴져요.
신기해요.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시간이라는 감각이 날이 갈수록 다르게 체감돼요.
당신이 떠난 그날, 차디찬 눈이 내려
온 세상은 어둠의 적막으로 가득 찼었죠?
이번에는 사는 게 바빴는지
이리저리 핑계를 대면서 조금 뒤늦게 이곳에 왔어요.
아! 오는 길에 예쁜 꽃 한 송이를 샀어요.
조화와 생화
당신이 계신 납골당 앞에
더 오래 둘 수 있는 건 조화
살아있는 건 생화.
우리는 생화를 준비했어요.
살아있는 것의 무상함은 곧 사라지겠지만
덕분에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고 믿어요.
당신의 의견은 듣지 못했지만
좋아해 주실래요? 감사합니다.
어여쁜 후배님.
이 꽃이 당분간 당신을 기억해 줄 거예요.
아! 벌써 시간이 꽤 흘렀는데
제가 그 꽃을 떠올리네요.
이제 이런 건 아무 소용도 없는 세상인데..
그래서 무서워요. 세상이, 두려워요.
이 잃어버린 시간들이..
요새 전 새로운 글을 준비하고 있어요.
살면서 용서와 사랑에 관해,
한 편의 영화를 완성했으니.
이제 저는 구원과 해방에 관해
글을 적어보려고 해요.
제목은 해방의 바다입니다.
당신이 떠난 그날 이후부터
이 이야기는 시작될 것입니다.
우리는 당신에게서 전해져 온 기억들을
더듬으면서 당신을 떠올릴 겁니다.
상실과 애도, 죽음 그러나 찬란함이 가득한
삶이라는 신비로움의 진실을 제 식대로
온전히 매만지면서 하나하나
적어보려 합니다.
바다에 주인공들이 도착하면
그 모든 것들을 바다 앞에서
유리병 안에 고이 모아
떠나보내려 해요.
찬란한 햇살이 그들을 비추면
숨겨왔던 내면의 죄책감, 그리움, 분노, 증오,
상실감, 허무 등 우리 안에 아주 깊이 각인된
당신에 대한 애도와 트라우마를
바다의 한 영역으로 띄어 보냅니다.
그럼 제 마음도 한결 놓아지려나요?
며칠 전 추모관에 도착해 미소 지은 얼굴을 보니,
만약 당신이 일주일만 뒤늦게 여행을 떠났어도
이 계절의 이 시기쯤 어딘가에서
이 아름다운 햇살을 함께 바라보며 그 적막 속의
당신을 구원했을 텐데 하는 짧은 찰나의
어리석은 생각이 스쳐갔습니다.
그것은 참으로 제 이기적인 마음이었지만,
그토록 당신이 이 아름다운 햇살을
함께 마주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었습니다.
사진 안에 당신이 보였어요.
우리만 늙었고, 당신은 그대로였죠.
아마 육체뿐만 아니라
그 시간부터 나의 영혼 또한 더 타락했겠죠.
당신이 떠나기 이틀 전
우리가 만났으면 좋았겠다는
그 염원을 제게 전했을 때
저는 그 시간이 영원할 거라 여겼습니다.
매 순간 죽음을 인식하며 살자고
말로는 되뇌었지만 사실은 죽어가고 있었죠.
그러나 당신이 먼 길을 떠나며
제게 진실로 알려주었어요.
당신의 영혼이 흰 눈이 되어
세상의 잔혹한 진실을
속삭이고 떠났죠.
아름다운 이별이었어요.
한동안 나의 눈에는 눈물이,
상실의 고통이 메마를 날이 없었지만
나는 이렇게 눈 녹듯이
아무 일 없다는 듯 하루하루 가련하게 살아가네요.
저는 망각으로 점철된 세계에 갇혀있습니다.
이 조작된 세계에서
저의 영혼은 끝없이 타락합니다.
살아있는 한 나를 잃어버리고 싶지 않지만,
당신 또한 잊지 않고 기억하고 싶지만
저는 나약합니다. 유약합니다.
그러나 그 태생적 유약함이 당신을
영원히 떠올립니다.
저는 예술을 하는 사람이니, 더 늦기 전에
제가 할 수 있는 한 가장 아름다운 방식으로
당신을 추억하고 애도하겠습니다.
이 시간은 영원의 시간입니다.
당신은 이미 내 고통으로 자리 잡아
나의 피와 살이 존재하는 한
내 뇌의 가장 아래 무의식 안에 존재합니다.
첫눈이 내리는 날 당신이 길을 떠났을 때
저는 한동안 그 눈을 보며 당신을 떠올렸는데,
어떤 이는 사랑하는 사람을 보면 첫눈처럼
반하게 된다 하는 소릴 들었습니다.
인간은 자기 방식대로 대상을 바라보네요.
신기하네요. 그러나 첫눈은 분명
인간을 떠올리게 하네요.
인간이 아름답기 때문이겠죠?
나는 당신이 내가 느끼지 못하는
공간으로 분리되었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당신은 단지 형태만 변한 것입니다.
어딘가로 부유한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을 뿐입니다.
여전히 떠올리려 노력하면 당신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잔상이라 하여도, 추억이라 하여도
말로 설명할 수 없지만, 그 닿을 수 없는
당신에 대한 감각의 간극이 더 깊이
당신을 존재하게 합니다.
당신은 충분히 어딘가로 향했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어딘가로 향하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온전히 내 안에 있어요.
나는 거의 확신합니다.
눈이 내리고, 햇살이 비치면
나는 당신을 느껴요.
당신도 혹시 절 기억할까요?
여전히 감사하고 아쉬울 따름이죠.
”선배님께서는.. “
그 어여쁜 후배님의 목소리, 한번 듣고 싶네요.
허락하신다면 피부도 만져보고 싶어요.
숨소리도 듣고, 당신 얼굴에
숨겨진 그 미소도 보고 싶네요.
하지만 그럴 수 없겠죠.
그래서 더 느껴져요.
내가 온전히 떠올리면
더 깊이 당신이 만져져요.
해가 지날수록 강렬해집니다.
이 마음 온전히 담아
내년에도 당신을 만나러 갈게요.
그때까지 이만,
앗! 지금은 이렇게나 당신을 떠올리는데
한치의 주저함도 없는데,
그때는 왜 그리도 무심했을까요?
인간의 어리석음이 가진 한계겠죠?
고마워요. 더 늦지 않게 알려주셔서.
노력할게요.
나의 영혼이 더 깊은 곳에서
허우적거리지 않을 수 있게.
누군가를 사랑할게요.
그럼 안녕히.
어여쁜 후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