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올림픽의 왕관은 어떻게 내려놓아야 될까?
9전 전승. 베이징 올림픽에서 거둔 아홉 번의 승리는 단순한 승리가 아닌 프로야구의 화양연화를 여는 성대한 아홉 번의 종소리와 같았다. 08년 전후로 06, 09 wbc에서도 4강과 준우승이라는 결과 또한 영광이 우연이 아님을 뒷받침해주었고 거기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프로야구 관중은 500만, 600만, 700만까지 돌파하는 과정 속에 매년 최대 관중 수를 갱신했다. 사람들의 많은 관심을 자양분 삼아 두 개의 신생구단이 생겼으며 fa 최초로 100억 대 거액 계약이 탄생했다. 전성기를 이끌었던 선수들 중 몇몇이 메이저리그에 진출함으로써 단기전의 한계를 벗어나 지상 최고의 리그에서도 꾸준히 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물론 시간이 지날수록 과거의 영광은 희미해지기 마련이다. 앞만 보고 달리기만 했던 동력이 조금씩 시들기 시작했다. 판이 커지고 많은 관심을 받으면서 생겨난 해이로 잠시 주춤하기도 했다. 그즈음 베이징 키즈라고 불리던 선수들이 프로야구에 도달했다. 출중한 기량을 선보였고 찬란한 영광을 바라보며 커왔던 그들의 힘을 빌어 다시 한번 달려 나가고자 했다. 모두가 영광만을 논하던 시기에 왕관의 무게를 시험하는 일이 생겨버렸다. 바로 도쿄올림픽의 개최였다.
08년 이후 야구는 올림픽 정식 종목에서 제외됐었다. 많은 나라가 참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올림픽 정신에 부합하지 않다는 판단이었다. 런던, 리우 두 번이나 건너뛰었다. 8년이란 시간이다. 그동안 프로야구는 마지막 챔프로였기에 왕관의 무게를 견디기보다는 왕관이 벗겨지지 않는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았다. 그래서 그 영광을 조금 더 누렸다. 각 종목이 매회 올림픽의 금메달 주인공은 바뀌었고 2연패를 하고자 하는 선수들은 부단히 노력하는 사이에 말이다. 하지만 야구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마지막이기에 왕관을 넘겨줄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원래대로라면 12년 런던 올림픽 때 왕관의 무게에 다시 도전해야 했지만 그대로 넘어갔다. 제때 준비해야 될 때를 놓쳐서였을까. 그 이후 국제대회 성적은 생각보다 좋지 못했다. 당장 13년 wbc부터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야구와는 거리가 멀 것으로 보이는 네덜란드에게 5-0으로 영봉패를 당한 것은 충격이었다.(네덜란드에 메이저리거들이 몇 명 포함되어 있기는 했다). 물론 14, 18년도 아시안 게임이나 15년도 프리미어 12에서 우승하기는 했지만 아시안게임 같은 경우 대만과 일본 모두 최상의 전력을 꾸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우승해야 본전이라는 소리를 듣는 대회였고 병역과 관련되었기 때문에 항상 전후로 잡음이 컸다. 제1회 프리미어 12(15년)에서 우승하며 약하지 않다는 것을 보였지만 17년도 wbc에서 네덜란드에게 다시 한번 5-0으로 졌고 이스라엘이라는 낯선 적에게 1점 차로 석패하는 일까지 발생하면서 2패로 또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그렇게 한 해, 한 해 흐르고 새로운 엔트리를 구성할 때마다 역대 최약체라는 꼬리표가 자연스레 따라붙기 시작했다. 그리고 도쿄올림픽의 전초전이라고 볼 수 있는 19년 프리미어 12에서 일본에게 2연패를 당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도쿄올림픽이 개최되었고 일본은 개최국의 의지로 야구를 정식종목으로 부활시켰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왕관의 무게를 다시 한번 증명할 시간이 돌아왔다. 고심한 끝에 엔트리를 구성했지만 잡음이 컸다. 꾸준히 지적되어오던 경기의 질적인 하락 문제가 눈에 띄게 체감되었다. 잡음의 이유는 공정성도 문제였겠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뽑을만한 선수가 없다는 것이다. 선발투수가 그랬다. 물론 시대는 계속 발전하기 때문에 과거와 현재를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어느 시대든 그 시대에 맞는 에이스가 있는 법이다. 특히 이번에 엔트리 구성 과정에서 더 시끄럽게 여겨졌던 이유는 에이스가 없다는 점이 컸다고 생각한다. 그 비교대상이 근래의 국가대표가 아닌 무려 13년을 거슬러 올라간 베이징 올림픽 때다 보니 에이스의 부재는 더 도드라져 보였을 것이다. 첫 경기인 이스라엘전부터 힘겹게 이기며 불안한 출발을 보였지만 이후에 콜드게임까지 선보이며 감을 잡는 모습도 잠시 준결승 2경기와 동메달 결정전까지 3연패를 당하며 13년 동안 써왔던 왕관을 내려놓고 무관의 신세가 되었다. 선수 기용과 선수들의 플레이는 비난과 조롱의 대상이 되었고 선수들의 사과가 줄줄이 이어졌다.
물론 나오는 대회마다 모두 우승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또 상대편이 최상의 전력을 꾸리지 않은 대회에서 우승은 따놓은 당상이라고 여기며 열심히 노력한 모습을 폄하하고 싶지는 않다. 단기전은 무슨 일이 발생할지 모르며 야구라는 종목 자체가 갖고 있는 속성은 매해 포스트 시즌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상대적으로 약한 팀이 업셋 하는 모습이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야구를 보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알고 있는 자명한 사실이다. 그렇기에 모든 국제대회를 좋은 성적으로 거두는 것은 한없는 기대일 수도 있다. 이 부분에 관해서 반론이 있다. 은퇴하거나 나이 많은 선수로 대표팀을 꾸린 나라도 있고 출전하지 않는 나라가 소수라는 점에서 프로리그를 가지고 항상 최상의 전력을 구축하는 한국은 반드시 컨텐더여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한국야구는 유독 모든 국제대회를 중요하게 여길까라는 의문이 생긴다.
국제대회도 여러 종류가 있다. 아시안게임, wbc, 프리미어 12, 올림픽 크게 네 가지다. 4년 주기로 한 번씩 열린다고 할지라도 거의 매년 열린다고 볼 수 있다.(올림픽은 이제 열릴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다) 이 대회들 중 한국은 한 번도 아마추어로 대표팀을 꾸린 적이 없다. 아시안게임 때 쿼터제처럼 대학 선수를 한 명을 포함시킨 적이 있으나 그마저도 자카르타 아시안게임 때부터 없던 일이 되어버렸다. 야구를 국기로 여기는 일본의 경우도 아시안게임 같은 경우 사회인 야구를 내보내며(일본의 사회인 야구는 프로에 진출하려는 준프로급의 실력을 가지고 있긴 하다) 스킵을 하는 제스처를 취한다. 야구 종주국이라고 하는 미국은 아시안 게임은 해당사항이 없지만 프리미어 12, 올림픽은 마이너리거만을 보내고 메이저리거들은 출전할 수 없는 조항이 있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주관하는 wbc조차도 불참을 선언하는 선수들이 많다. 컨디션을 일찍 끌어올리다가 부상을 당할 수 있다는 위험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근 20년 간 미국이 국제대회에서 얻어낸 유의미한 성적은 17년도 wbc 우승 정도밖에 없었다. 소위 광탈한 적도 있었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도미니카나 푸에르트리코, 베네수엘라, 멕시코 사정도 비슷하다. 국제대회의 인식은 생각보다 크지 않다. 물론 이기면 좋은 것이지만 져도 크게 신경을 쓰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한국도 건너뛰어도 되는 것 아니냐는 물음을 제기할 수 있지만 국제대회를 쉽게 건너뛸 수 없다. 왜냐하면 프로야구는 프로리그의 자생력으로 인기를 얻은 것이 아니라 국제대회의 선전을 발판 삼아 성장한 것이기에 항상 국제대회의 성적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프로리그의 태동이 국가사업의 일환으로 시작된 것과 연관이 있을 수 있다. 생각해보면 그동안 프로야구로써 얻어낸 성과나 발자취를 살펴보면 구단의 역사라든가 업적, 성과를 국가와 결부시켰다. 프로야구를 소개하면 한국야구로써 빛나는 업적을 소개했고 그것은 대부분 국제대회의 성적을 지표로 삼았다. 그렇기에 국제대회의 성적은 곧 한국야구의 수준을 평가할 수 있는 바로미터가 된다는 인식으로 치환되기에 이르렀다. 그렇기에 베이징 올림픽 전승 우승은 최고의 업적이었고 최대의 발자취로 여겼다. 세계 1위를 했다는 자부심으로 프로야구가 커왔다. 역사가 짧기 때문에 사람들의 관심을 이끌어내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겠으나 이는 곧 성적 여부에 따라 당해연도나 이듬해 프로리그에 영향이 크기 때문에 늘 국제대회에 목을 멜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였다. 그렇다 보니 선수의 입장에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국가대표에 뽑혀도 메이저리거처럼 개인의 사유로 거절하고 싶어도 국가대표의 의미, 태극기의 무게감이란 이름으로 참가해야 했고 혹여나 거부라는 말은 절대 꺼낼 수조차 없으며 이후에 나오지 않으면 갖은 이유로 욕을 먹어야 했다.(이 부분에 관해서는 병역과 연관이 깊다) 그런데 국제대회가 열리는 시기는 주로 시즌 전후기 때문에 컨디션 조절을 실패하거나 제대로 쉬지 못해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핑계라고 여길 수도 있고 영향이 없는 선수도 있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06 wbc 때 참가해 호성적을 기록한 한국 메이저리거들 전부가 전년도보다 성적이 떨어졌고(서재응 선수는 구단의 지침을 따르지 않아 트레이드되기도 했다) 그로 인해 메이저에서 커리어가 끝나 이듬해 대거 한국으로 귀국했다. 메이저리그로 직행한 선수의 경우 2년의 유예기간이 필요함에도 인원이 많으니 이들을 바로 뛸 수 있게 한 해외파특별법이 생기기도 했다. 당사자들에게 물어보면 영광이라고 하겠지만 객관적으로 그들의 커리어는 조기 마감해버렸다. 그런 부분은 개인의 몸 관리 영역으로 치부되었고 국가는 fa 단축 등 혜택을 주고는 있지만 전적인 책임을 질 수는 없다. 프로리그 또한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프로리그에서 주요 선수들을 뽑기 때문에 프로리그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의 난조는 곧 리그 전체에 질적 하락으로 보일 수 있다. 근 10년 동안 7~8번의 국제대회를 모두 치르는 강행군을 소화했고 뎁스가 얕은 한국야구 특성상 뽑히는 선수가 매번 뽑혔기 때문에 이들의 피로 누적은 보이지 않게 쌓였다.
근 10년 동안 일본과 매치를 할 때마다 상대편의 얼굴은 매번 바뀌었지만 한국은 비슷한 선수들로 꾸려졌다. 투수 쪽은 류현진, 김광현, 양현종 이후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그것은 선수 육성도 있겠지만 뎁스와 관련이 있다. 선수의 풀이 한정된 상황에서 무작정 선수를 키운다고 대형선수로 자라는 것은 아니다. 2000년대 중반 수준의 멤버를 모으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국제대회를 모두 참가하는 것보다 주요 대회를 정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다른 대회는 기회의 장으로 활용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오래전부터 아시안게임 같은 경우 대학 선수와 아마추어들로 엔트리를 구성해서 금메달을 따면 병역문제를 해결하게 하는 동기부여 방식으로 이들에게 메리트를 얻을 수 있는 방식이 낫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해서 프로에서 오랫동안 활약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지며 옥석이 되는 선수들을 발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지금은 그렇게 할 수 없다.) 또한 프리미어 12 같은 대회에 나갔던 지금 샌디에이고 파드레스의 주전으로 활약하는 제이크 크로넨워스처럼 옥석을 발견할 수 있다. 잠재력이나 눈에 띄는 선수를 찾을 수 있는 선수 수급 방식도 여러 가지로 방안으로 모색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흥망의 길은 다른 방향에 있지 않고 같은 지점에서 갈린다는 점이다. 올림픽이라는 큰 이벤트로 하여금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서 인기를 올릴 수 있었다. 실제로 베이징 올림픽 이후에 그 전략이 통했다. 그러나 같은 이유로 도쿄올림픽처럼 참패를 당한다면 하락세를 피하기는 힘들 것이다. 메달을 따지 못한 것뿐만 아니라 도덕적 해이로 인한 여러 사건들이 터진 전후의 사정까지 포함해야겠지만 올림픽의 참패는 하나의 기점이 되는 사건일 수 있다. 물론 지금의 야구가 이렇게까지 오게 된 과거를 부정할 생각은 없다. 다만 매번 국제대회로 활용해 흥행하는 방식에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올림픽은 7년 후 la올림픽으로 열릴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미국이 자국에서 개최하는 올림픽이라 우승하고 싶어서 이번처럼 대진에 손을 쓸 수도 있고 메이저리거는 아니더라도 최상급 유망주로 채워 넣을 수 있다. 그래서 28년 la올림픽에서도 실패한다면? 그 이후에 야구는 개최국이 한국, 미국, 일본이 아니면 올림픽 정식종목에서 열리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앞으로 베이징 올림픽 같이 호성적과 흥행이라는 동반 시너지를 일으키는 일은 더 이상 없을 수도 있다. 더불어 이번 도쿄올림픽이 환영받지 못한 이유는 메달을 따지 못한 것에 대한 화보다 내부적으로 이미 실망한 모습이 컸다. 특히 팬 문화와 관련된 것이 크다. 오죽하면 메달을 따지 않기를 바라는 여론이 있었을까. 이런 상태에서는 금메달을 땄어도 문제였다.
앞으로가 중요하다. 한국은 왕관을 내려놓고 무관이 되었다. 왕관의 무거움을 견디는 시간도 있지만 무관이 되었다는 가벼움 또한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을 알 것이다. 가벼움 또한 감내해야 되는 시간이다. 견디는 것과 감내하는 것은 비슷한 말이지만 왕관이라는 틀을 감당하는 시간과 틀을 벗어나 어려움을 겪는 것은 아예 다른 방향일 것이다. 이제까지 한국야구가 수집한 왕관이라는 타이틀에만 집착하지 말고 왕관을 쓰지 않고도 품격이 있을 수 있는 리그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더 나은 방향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