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기억하는 방법
친구가 보내 준 메리골드 차에 뜨거운 물을 부었다. 펫 매스니의 연주가 흐르는 동안 메리골드 꽃이 유리잔 안에서 활짝 피었다. 마치 작은 금붕어가 살살 헤엄치는 것 같다. 메리골드 꽃을 한 송이씩 거두어, 햇볕과 바람에 말렸을 친구의 손길이 나의 밤을 어루만지는 기분이 들었다.
카메라 수리 때문에 종로에 나온 아들을 만나 서촌에서 데이트를 했다. 내가 중학교 시절 사용하던 케케묵은 올림푸스 펜 필름 카메라를 써보려고 클리닝을 맡겼다고 했다. 레트로 열풍으로 이십 대에게 필름 카메라가 대단한 인기라고 한다.
중학교 봄소풍 때 펜 카메라로 반 친구들을 찍어주던 기억이 생생하다. 인화한 사진을 교실 게시판에 붙여 놓으면 추가 인화를 원하는 아이들이 그 밑에 자신의 이름을 썼다. 신청자 숫자에 맞춰 사진을 뽑았는데, 언제나 몇 장이 부족하거나 남았다. 기옥이, 남윤이, 현이, 정연이, 민우.. 그 시절 내 친구의 사진들은 오래된 상자에 담겨 친정집에 어딘가에 남아 있을 것이다. 소녀 시절의 나를 기억하는 카메라가 성인이 된 아들과 나를 연결 짓는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따뜻해졌다.
요즘 아들이 다시 예전의 모습을 되찾는 듯하여 안심이 된다. 중학교 때까지 명랑하고 밝은 성격이었는데 입시 지옥을 거치면서 말수가 적어지고, 스트레스 때문인지 여드름이 심해져 약한 우울과 불안 증세까지 보였다. 성장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기다리며 지켜보는 편이지만, 불안한 마음이 없지는 않았다. 저대로 우울의 세계로 영영 넘어가는 것은 아닐까, 조바심이 날 때도 많았다. 음악을 하겠다고 했을 때 그 세계의 경쟁이 얼마나 치열한지, 음악 해서 먹고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깊이 생각해 보지 못하고, 마냥 지지한 것이 무책임했던 것 같아 후회가 될 때도 많았다.
얼마 전부터 아이가 조금씩 다시 밝아지는 것이 느껴졌다. 겨울지나 검은 나무에서 연둣빛 새순이 돋듯이, 어느 날 방문을 열고 나와 수줍은 듯 아르바이트를 해보겠다고 말했다. 동네 문방구에서 사 온 이력서에 초등생 글씨체로 이름과 주소를 적었다. 경력란에 기재된 것은 대안 중고 졸업과 검정고시 합격, 예술대학 졸업이 전부였지만, 그 밑에 다소 거창한 포부가 쓰여 있었다. "아르바이트 경력은 없지만, 최선을 다해서, 일을 찾아가며 열심히 하겠습니다."
화로구이집에서 주말 아르바이트하고, PT 레슨과 친구가 다니는 교회 예배에서 반주를 시작했다. 힘들다고 투덜대기는 하지만 기분은 좋아 보였다. 예술하는 사람과 줌으로 만나는 모임에도 정기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고 눈에 띄게 대화가 풍부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서촌에서 아들을 만나 수성동 계곡 앞까지 산책을 했다. 월요일 오후라 문 닫은 가게들이 많았고 거리는 무척 한산했다. 닫힌 가게들의 쇼윈도에 눈을 바짝 붙이고 물건들을 구경했다. 서촌의 오래된 빌라들과 주택들, 좁은 골목의 개성 넘치는 카페와 식당들이 만들어 내는 운치를 아들도 좋아하는 것 같았다. 이 동네로 이사 오면 어떨까 상상하면서 대화를 이어갔다. 풍경은 좋겠지만 벌레가 많을 것 같아 무섭다고 말하는 아들이 귀여워서 웃었다.
작은 중국집에 들어가 짜장면과 탕수육을 시켜 먹으며 아들에게 오래전 외할머니가 운영하던 식당에서도 짜장면을 팔았다는 이야기를 해줬다. 수동식 제면기에 주먹 만한 반죽을 넣고, 철봉대처럼 생긴 손잡이를 아래로 당기면 국수가락이 뽑아져 나왔다. 면을 뽑으려면 엄마가 한참을 철봉 같은 손잡이에 매달려 있어야 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대단한 노동이 아닐 수 없다. 생각해 보니, 엄마가 만든 짜장면 맛에 관한 기억은 사라지고, 제면기 손잡이에 철봉 하듯 매달려 있던 엄마의 모습, 국수가 삶아지면서 퍼지던 밀가루 냄새와 뜨거운 김이 가득했던 주방이 생각난다.
메리골드 차로 제주도의 친구를 기억하고, 오래된 펜 카메라에서 소녀시절 친구들을 기억한다. 서촌의 옛날 짜장면 집의 풍경은 잊고 있던 엄마의 식당을 불렀다. 세월이 많이 흐른 후에, 아들도 내가 그러는 것처럼 어떤 물건이나 장소를 통해 엄마인 나를 기억하게 될 텐데, 그중의 한 장면이 오늘 같은 날의 어떤 내가 아닐까 생각했다.
펜 카라메 수리가 끝나면 가족사진을 찍어두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