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식해서, 용감한
미국에서 안식년을 보낼 때 물놀이에 겁 없이 뛰어들었다가 죽다 살아나게 고생한 적이 있다. 원래 위험해 보이는 도전은 슬슬 피하는 유형의 인간이 나인데, 미국에서 2년 사는 동안 누가 뭘 제안하면 대강 듣고 일단 “그뤠잇!”을 외치다 보니 별별 생고생을 많이 했다. 한 번은 친하게 지내던 J가 주말에 일리노이 강으로 카누를 타러 가지 않겠냐고 물었다. 카누랑 카약이랑 구분도 못하던 나는 이 날도 무조건 “그뤠잇”을 외쳤고, 초등학생인 아들까지 동반하고 토요일 새벽에 집을 나섰다.
미국처럼 어마무시 큰 땅에서 태어나고 자란 애들은 거리 감각이 우리와 무지하게 다르다는 점을 항시 주의해야 했었다. 우리 같으면 적어도 2박 3일 작정하고 가야 할 거리를 스무 시간 운전해서 후딱 다녀오기도 하고, 한두 시간 떨어진 레스토랑에 가서 밥 먹는 것쯤은 예사로 알았다. J가 강에서 슬슬 카누를 타자고 했을 때 이점을 떠올려야 했지만, 그걸 깨달은 때는 이미 어마어마한 강폭과 길이를 자랑하는 일리노이 강의 낯선 선착장 앞에 도착한 뒤였다.
J는 카누 타는 법도 제대로 알려주지도 않고 나와 아들에게 장비를 빌려준 후에 저 혼자만 날쌔게 노를 저어 물살을 헤치고 나아갔다. 이러다 객지에서 익사체로 발견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공포에 떠는 것도 잠시, 우리의 카누는 강으로 하염없이 떠내려가고 있었다. J는 멀리서 노를 오른쪽으로 저어라 왼쪽으로 돌려라 소리를 치는데, 아무리 실전이 중요하다지만 그런 것은 배에 타기 전에 가르쳐줘야 하는 것 아닌가. 욕이 나왔지만 욕할 겨를도 없었다. 믿을 건 구명조끼뿐, 물살이 어찌나 빠른지 오금이 저렸고, 아무리 열심히 노를 저어도 앞으로 나아가기는커녕 점점 뒤로 옆으로 맴돌 뿐이었다. 아들도 나처럼 열심히 노를 젓기를 했니만 도움은 되지 않았다. 8월 한 낯의 태양은 우리의 등허리를 바비큐로 만들어 버리기로 작정이라도 한 듯 이글거렸다. 불쌍한 아들은 점점 익은 가재가 되어서는 어설픈 노젓기에 구슬땀을 흘렸고, 제대로 못한다는 엄마의 타박에 눈물방울까지 흘려야 했다.
그렇게 한두 시간 사투를 벌인 끝에 노 사용법을 조금 터득하게 되었다. 마음의 여유는 조금 생겼지만 이미 팔다리에 힘이 거의 빠져서 방법을 알아도 노를 제대로 젓기가 힘들었다.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노를 내려놓았다. 그제야 강 주변의 멋진 풍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크고 작은 절벽을 에둘러 강은 끝도 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갑자기 배가 고프고 목은 타들어 가는 듯했다. 한 참 앞에서 유유 자작하고 있는 J에게 얼마나 더 가야 하냐고 소리쳐 물었더니 금세 선착장이 나온다고 했지만 그 후에도 거의 3시간 동안 노를 저어야 했다. 새벽 5시에 집에서 출발했는데 마지막 선착장에 도착했을 때는 해가 기웃기웃할 무렵이었으니 얼마나 오래 카누를 탔는지 확인하는 것조차 무의미했다.
뒤늦게 선착장에 도착하는 우리를 보고 먼저 왔던 카누 여행객들이 박수와 환호성을 보냈다. 하프 마라톤 완주를 할 때도 이런 기분은 아니었는데.. 그게 뭐라고 울컥하는 것은 또 무엇인가. 죽을 고생을 하기는 했지만 아무튼 우리는 무사했고 타는 목마름도 잘 참아 냈다. 카누에서 일어서는데 엉덩이는 들리는데 허벅지 아래로는 카누에 딱 붙어서 움직이지 않았다. 겨우 허벅지를 들어 올려 육지를 밟을 때의 그 느낌! 광복된 조국의 땅을 처음 밟는 독립투사만큼은 아니어도 비슷한 감격을 맛보았다고 단언할 수 있다. 나는 그렇다고 해도 어린 아들은 엄마 잘못 만난 덕분에 무슨 죽을 고생이냔 말이다. 배 위에서 J에 대해 온갖 악담과 저주를 다 퍼부었기 때문에 정착 육지에 도착해서는 조금 미안했다. 그리고 J가 우리와 카누를 타기 위해 하루 전에 카누 종착지점에 자신의 차를 주차해 놓고 친구 차를 얻어 타고 왔다는 사실을 알고 심지어 조금 감격하기까지 했다.
오대산 상원사에 갔다가 큰 비로 불어난 계곡물을 보면서 일리노이강에서 타던 카누 생각이 났다. 무모한 J가 아니었다면 언제 그런 극 리얼 체험을 또 해볼 수 있었겠는가 싶다. 미국에서 보낸 안식년이 지난 지 거의 8년이 되어간다. 이제 다시 안식년이 필요한 시점이 되었고, 그래서인지 계속 그 시절에 만났던 모든 것들이 그립다. 사람도 풍경도, 그날의 카누까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