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뭘 먹지?

먹고, 먹고 또 먹고

by 최오도

이태리, 프랑스, 태국 하면 저절로 떠오르는 국가대표 음식이 있는데 미국에도 그런 음식이 있을까? 미국에 사는 동안 미국 친구들에게 전통음식에 대해 물어보았지만 “이런 거야”라는 시원한 대답을 듣지 못했다. 빅맥과 코카콜라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샌드위치라고 하는 친구도 있었다. 개중 아메리칸 파이라는 대답이 그럴듯하다고 생각했다. 각 집마다 할머니 때부터 내려왔다는 파이 만드는 비법 하나쯤은 있는 것 같으니 대표 음식은 아니더라도, 중요한 디저트인 것은 분명했다. 미국 사람들에게 디저트란 우리의 김치 그 이상인 듯했다. 아무리 배불리 먹어도 달달한 디저트를 먹어야 식사가 ‘정상적’으로 마무리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단 것을 좋아하지 않던 나도 미국에 사는 동안 달달한 것에 점점 중독되어 갔다. ‘어바나 샴페인’에서 차로 2시간이나 걸리는 ‘피오리아’에 전통(?) 홈메이드 파이로 유명한 집이 있다고 해서 찾아가 보았다. (파이 하나 먹으로 왕복 4시간을 이동하는 것이야 말로 미국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다. 미국인의 거리 개념은 우리와 진짜 다르다.) 과일과 견과류를 이용해 만든 파이가 스무 가지가 넘었다. 블루베리 파이와 복숭아 파이는 내 입맛에 딱 맞았다. 한 개에 천 칼로리는 넘을 것 같은, 6불짜리, 피자 조각만 한 파이를 네 개나 뚝딱 해치웠던 기억이 난다. (죽기 전에 피오리아 파이집은 꼭 다시 가볼 생각이다)


미국 음식을 말하면서 추수감사절(Thanksgiving)을 빠뜨릴 수는 없다. 추수감사절에 뭐하냐고 물으면 백발백중 “먹고, 먹고, 또 먹을 거다”라는 대답을 들을 정도로 이날은 먹고, 먹고 또 먹는 일이다. 미국 사람들에게 추수감사절 디너(Thanksgiving Dinner)보다 격식을 따져 세심히 상을 차리는 일도 드물 것 같다. 추수감사절 디너의 유래에 대해 여러 이야기를 들었다. 유럽에서 온 초기 이주자들이(Pilgrims) 먹을 것이 없어 아사 직전에 놓였을 때 원주민(Native Americans)들이 다음 해 농사를 위해 저장한 씨앗까지 털어 만찬(디너)을 제공한 데서 추수감사절 디너가 기원했다는 친구 메리의 설명이 나는 가장 마음에 들었다. 메리가 준비한 추수감사절 디너 테이블에는 그녀의 할머니와 엄마에게 전해 받았다는 붉은색 씨앗과 열매가 작은 유리병에 담겨 올라와 있었다.


세월이 흘러 그 의미가 많이 퇴색되기는 했지만, 아무튼 이날 많은 교회와 지역 공동체 곳곳에서 추수감사절 음식을 풍성히 차려 놓고 손님을 기다린다. 나도 추수감사절 저녁이면 아이를 데리고 여러 교회를 돌아다니며 먹고 마시고, 마을 사람들을 만나며 감사의 마음을 나눴다. 추석의 송편처럼 미국 추수감사절 식탁에 차려지는 대표적인 음식은 메인인 칠면조 요리와 여기에 곁들인 으깬 감자, 크랜베리 소스 그리고 호박 파이, 직접 구운 빵이 있다. 추수 감사절 음식의 기원을 보여주듯 야생의 재료로 만드는 음식들이다. 외갓집에서 먹던 ‘시골 밥상’과 다를 것이 없다. 이날 하루 동안은 적어도 세 번 이상 추수감사절 디너에서 칠면조 요리를 먹게 된다. 추수감사절 며칠 전부터 칠면조를 손질해서 양념에 재었다가 당일 오븐에서 7~8시간 동안 은근히 익혀야 하는, 꽤나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다. 이날 큰 칼을 들고 칠면조를 쓱쓱 썰어 서빙을 하는 것은 주로 남편들의 몫이었다. 칭찬하기를 좋아하는 미국인들과 식사를 하면 “이것이야 말로 내 인생 최고의 칠면조 요리입니다! 그뤠잇! 원더풀!”이라고 스무 번쯤 함께 외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저절로 그날 먹는 요리가 세상에서 가장 맛있게 느껴졌다.


포트락(Potluck) 파티도 미국 사람들의 집 음식을 맛볼 좋은 기회다. 각자 알아서 준비해 오는데도 미리 짠 것처럼 음식들이 겹치지 않는 것이 늘 신기했다. 나는 잡채와 불고기, 김밥 같은 음식을 번갈아 가져 갔는데 기대 이상으로 반응이 좋았다. 한국 드라마 탓인지 한국 음식의 인기가 갈수록 높아지는 것이 느껴졌다.


미국에 있는 동안 여러 멋진 사람들을 만나는 행운을 누렸다. 그중 예술인 공동체가 있는 러브랜드(Love Land)라는 도시에서 트리나 폴리스와 그녀의 예술가 친구들과 함께 했던 한국음식 파티가 기억난다. 우리에게 ‘꽃들에게는 희망을’의 저자로 잘 알려 진 트리나 폴리스는 평생 생태운동가로, 여성운동가로 살아오신 분이다. 우리를 만나기 위해 뉴욕부터 스무 시간 넘게 운전을 하고 온 그녀는 여든이 되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소녀처럼 맑은 얼굴에 열정 가득한 분이었다. 한국음식 파티를 위해 집에서 몇 가지를 음식을 만들어 가져 갔다. 마을 주민들이 가져온 유기농 샐러드, 사과파이, 홈 쿠키 등이 잡채, 구절판 등과 함께 테이블 위에 오르자 세상 그 어디서도 보지 못할 진수성찬이 되었다. 친구가 잡채와 구절판에 들어 있는 다섯 가지 색감이 한국 문화에 어떻게 녹아 있는지 설명하는 동안 러브 랜드 사람들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한국 음식을 맛보았다. 음식을 나누며 이야기 나누는 잠깐 사이에 우리는 금세 친구가 되었다.


음식을 알면 문화가 보인다고 했던가. 진정 음식을 나눈다는 것은 낯선 문화의 경계를 허무는 마술 같은 일임을 미국 생활 내내 실감하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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