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아 산 중고차에 황금열쇠가!

불운과 신비

by 최오도

미국으로 유학 가기 전, 한국에서 온라인으로 중고차를 구입했다. 딱 2년만 타고 버릴 차를 찾던 중에, 한인 사이트에 올라온 17년 된 일제차를 발견했다. 판매자는 남편이 아마추어 엔지니어라서 매일 점검하고 수리해서 탔으니 고장 없이 유학기간 잘 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아마추어 엔지니어 같은 거짓말을 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아서, 단 1달러의 협상도 없이 판매자가 원하는 액수를 온라인으로 송금했다. 나는 자주 운과 우연, 상대방의 선의를 근거 없이 믿으며 귀찮은 일을 해치우는 편이다. 다만, 자동차라는 물건의 특성상 그때의 선택은 특별히 더 나쁜 결과를 가져왔을 뿐이다.


내가 미국에 도착했을 때 판매자는 이미 한국으로 귀국했고, 차는 내가 살 아파트 주차장에 주차되어 있었다. "사진으로 볼 때 분명 은색이었는데 왜 검은색이지?" 본래 색상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외장은 변색되어 있었고, 좌석 시트에는 먼지가 시루떡만큼 쌓여 있었다.(은유적 표현이 아님!) 삐걱거리는 차문을 열고 시동을 걸었는데 신기하게 시동이 걸렸다. 그러나 그 차는 내가 몰고 다닌 지 일주일 만에 길 가운데서 멈췄다. 그리고 그 후에도 여러 번 길에서 멈췄다. 라디에이터 교체를 시작으로, 머플러를 고쳤고, 타이어를 갈고, 그 밖에 이름조차 알 수도 없는 어떤 부품들이 순서대로 고장 났다.


유학 중에는 100달러도 벌벌 떨리는 금액인데, 차가 한번 고장 날 때마다 수백 달러가 그냥 사라졌다. 잠깐 마트에 가려고 해도 차가 없으면 안 되는 것이 미국이어서 수리하는 동안 차를 쓸 수 없어서 생기는 불편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미장원에서 머리 자르듯 판매자 말만 믿고 중고차를 산다는 것은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행선지도 보지 않고 관광버스에 올라타는 것과 비슷하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자동차 수리점의 메케닉은 일주일이 멀다고 찾아와 몇백 달러를 쓰고 가는 어리바리한 동양 여자가 안돼 보였 던 지 멕시코 이주자 한 명을 소개해줬다. 허가 없이 ‘불법 수리'를 하지만, 중고 부품을 교체하려면 굳이 정식 업체에서, 비싸게 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가 소개해 준 멕시칸에게 몇 차례 수리를 했지만 결국 2개월 만에, 중고차 구입가의 몇 배 되는 수리비를 쓰고 나서, 고철 값만 받고 한국 학생에게 차를 넘겼다. (내가 웬만한 부품을 새로 교체한 후라서 그랬는지 그 유학생은 1년 넘게 잘 타고 다녔다고 한다!) 그때 내가 얼마나 자책하고 좌절을 했던지.. 인생이 망한 것처럼, 몇 날 며칠 밤잠을 설치며, 과거의 여러 어리석은 결정들까지 다 불러내서 반성하면서 남은 인생 동안은 '철저한' 사람으로 살 것을 다짐하고 다짐했다.


그런데, 그 밤들의 다짐을 물거품처럼 사라지게 하는 사건이 곧 벌어졌다. 달콤한 말로 중고차를 비싸게 팔아 치운 유학생 부부의 지인인 K를 우연히 알게 된 것이다. K는 저녁을 함께 먹자며 자기 집으로 나를 초대했다. K는 자기 친구가 팔고 간 차 때문에 내가 고생한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하면서 자기 일처럼 미안해하고 민망해했다. 자기가 무슨 일이든 도울 일이 있으면 돕겠다고 했다. 나는 동네의 적당한 교회를 소개해 달라고 부탁했다. 교회는 초등학교 때 여름 성경학교를 다닌 것이 전부인 나였기에 신앙심에서 교회를 가려는 것은 아니었고, 미국 생활은 교회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해서 적당한 곳이 있으면 다녀볼 생각이었다. 마침 K는 신앙심 깊은 기독교인이어서 내 부탁을 기쁘게 생각했다. 그녀는 인내심을 가지고 일요일마다 여러 교회에 나를 데리고 다녔다. 그때 정말 별별 교회에 다 가보았던 것 같다.

마침 동네에 한국인 교회가 있어 가보았는데, 한국보다 더 한국적인 분위기에 숨이 막혔다. 미국으로 이민 올 당시에 한국에서 갖고 있던 패션 감각이나 사회의식을 미국에서 살면서도 고스란히 그대로 유지하며 사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았다. (일테면, 화장이나 옷차림이 80년대 스타일이면 그분들은 80년대에 미국으로 이민 온 것이다. ) 흑인 커뮤니티 교회도 가 보았는데, 찬송가를 부르며 박수를 치고 몸을 흔드는 모습이 오래전에 본 시스터 액트라는 영화 그대로였다. 재미있어 보였지만, 나 같은 이방인을 받아줄 것 같지 않았다. 그 동네에서 가장 큰 교회 중에 하나를 가봤는데, 목사님이 카우보이 복장을 한 채 전자기타를 치면서 설교를 했다. 대형 스크린으로 교인들의 간증하는 장면이 상영되고 있었다. 처음에는 내가 영어를 잘못 알아들었거나 영화의 한 장면을 보여주는 것으로 의심했다. 스크린 속 미국인들은 눈물을 흘리며 자신들이 죽었다 깨어났던 얘기, 죽어서 하나님을 만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다니고 싶은 교회를 만나지 못한 채 두 달이 흘렀다. 나는 교회를 반드시 다녀야 한다는 생각은 없었기 때문에 교회 순례 자체로 재미가 있었으나 K는 부담을 많이 느낀 모양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K는 논문을 핑계로 1년 이상 방문을 못 해서 자신이 나를 직접 데리고 갈 수는 없지만, 좋은 곳이니 혼자 가보라며 메노나이트 교회를 알려줬다. 메노나이트는 미국에서 가장 진보적인 교파 중에 하나인데, 그중 어바나 샴페인에 있는 메노나이트는 특별히 더 리버럴 한 곳이지만, 대개가 백인들이고, 한국인은 K의 가족뿐이었다고 알려주었다.


나는 어바나 샴페인 메노나이트의 하얀 문을 열고 첫 발을 내딛던 순간을 전부 기억하고 있다. 한국인은커녕 동양인조차 없는 그 교회에서 황금 같은 인연들을 만나게 될 줄을 상상도 하지 못했다. 2년 동안의 미국 생활과 귀국 후에 달라진 나의 삶들은 많은 부분 메노나이트 교회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빚지고 있다. 메노나이트 때문에 신앙심 깊은 기독교인이 되었다는 얘기가 전혀 아니다. 나는 여전히 무신론자이지만, 예수의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메노나이트 사람들의 이방인에 대한 사랑과 환대, 타인에 대한 조건 없는 선의가 나를 많이 되돌아보게 하고 성장시켰다.


메노나이트에서 알게 된 일리노이 주립대학에서 교수로 퇴임한 얼(Earl) 은 그 누구보다 내게 특별한 인연이다. 그는 내가 하는 일이 사회복지학과 관련이 있다면서 그곳 학장에게 나를 소개해, 방문교수 자리를 얻게 도와주었다. 그 덕분에 전망 좋은 연구실 한 칸을 배정받고 2년 동안 많은 과목을 마음껏 수강할 수 있는 행운을 누렸다. 자전거 수리를 하는 톰은 아들(소륜)에게 하늘색 페인트를 다시 칠하고 새 바퀴를 교체해 자전거를 선물했고, 나에게는 자신이 수리하는 자전거를 마음껏 탈 수 있는 자유이용권을 주었다. 인절미처럼 평평한 어바나 샴페인은 자전거 타기 정말 좋은 곳이었다. 쉐럴 가족에게도 특별한 빚을 지었다. 소륜이는 쉐럴의 막내아들인 더글라스와 주말이면 그 집에서 먹고 자고 놀았고, 여름 방학 내내 캠핑을 다녔다. 덕분에 나는 잠시나마 육아에서 벗어나 꿈같이 자유로운 주말을 누릴 수 있었다. 나와 점심을 먹으며 영어를 가르쳐줬던 물리학자 팸 , 뜨개질을 알려주던 육십 대 요가 교사 베벌리, 소륜이가 피아노에 소질이 있다면서 일주일에 한 시간씩 무료 피아노 레슨을 시켜주던 피아니스트 슈터, 한국인 남자아이를 입양하여 키우던 벤슨 가족의 특별한 환대, 정자은행을 통해 아이를 낳은 이야기를 들려준 아름다운 쉬리, 레즈비언 커플 케이, 글쓰기 워크숍에 나를 초대해, 내가 글쓰기를 다시 할 수 있도록 인도한 시인 메리, 바이러스 감염으로 며칠을 혼자 앓고 있을 때 태국식 수프를 몇 번이나 만들어 날라다 준 젠, 그리고... 다 열거할 수도 없는 귀한 내 인연들.


나는 이 행운들이 나의 잘못된 선택이었던 고물차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믿는다. 처음에는 경솔한 결정이 가져온 불운에 집중하느라, 그것 때문에 생긴 행운은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다. 세월이 지나, 그때 일을 복기하면서 알게 되었다. 그 고물차가 내게는 행운의 황금열쇠였음을. 어쩌면 어떤 불운이나 행운은 그렇게 점선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우연과 필연이 겹쳐있듯이 말이다.


손해 보지 않기 위해 철저하게 알아보고 준비하는 것도 좋지만, 가끔은 느슨하게 운에 기대는 것도 좋은 것 같다. 우연이 없으면 신비도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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