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밤공기가 기분을 좋게 한다. 글쓰기 책상에 앉는 것조차(!) 기분이 좋다. 유튜브 플레이리스에서 “오래도록 기억될 우리의 여름날‘이란 제목으로 선곡된 음악을 오디오와 연결시켰다. 노래 제목은 모르지만 어디선가 몇 번은 들은 것 같은 감성 가득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초 여름밤의 시원한 바람이 열어둔 창으로 불어온다. 이런 기분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새벽에 일어나해야 할 일을 다 해치웠는데, 아직도 일요일 아침 9시밖에 안되었을 때의 느긋함? 긴 망설임을 끝내고 만족한 선택을 했을 때의 홀가분함? 가벼워진 마음에서 걱정 풍선이 빠져나간다. 우리들이 걱정은 하늘 높이 날아오르고, 달빛을 받으며 폭죽처럼 터진다. 야호다. 밤공기만 달라졌을 뿐인데 내 마음이 이렇게 느긋하고 홀가분하다니.
여름 얘기를 시작했으니 밥상 얘기를 안 할 수 없다. 먹는 것이 진심은 아니지만 여름 밥상 앞에서는 진심이 된다. 동네 친구가 하는 텃밭에서 유기농법으로 키우는 상추, 로메인, 쑥갓, 치커리, 고수와 심지도 않았는데 매년 다시 자라나는 취나물과 미나리, 질소 비료 없이 기른 쌈 채소는 다른 밭 채소들의 반 정도 크기밖에 안 자라지만, 아삭하고 고소하기가 비교할 수 없다. 삼겹살 집 테이블에 오르는 상추가 텃밭 채소를 맛본 후부터 풀 맛 나는 물처럼 느껴질 지경이다. 겨울난 양파가 어느새 내 주먹보다 커져서 한 개를 뽑아다 먹었다. 달고 아삭한 맛이 좋아 된장에 찍어 계속 먹다가 매운맛이 눈물이 쑥 나왔다.
유기농법으로 기른 채소는 농약은 없지만 벌레가 붙어 있을 수 있어 잘 씻어야 한다. 큰 양푼에 물을 받아 30분 정도 담가 두었다가 하나씩 흐르는 물에 앞뒷면을 꼼꼼히 씻어 물기 뺀 다음 냉장고에 넣어두면 적어도 2주 이상 싱싱한 상태가 유지된다. 시장에서 산 채소처럼 냉장고에서 쉽게 무르지 않는데, 섬유질이 단단하기 때문인 것 같다. 잘 씻은 쌈채소를 큰 플라스틱 통에 담아 냉장고에 넣어 두면 아직 먹지 않았는데도 건강해지는 기분이 든다.
채소를 손으로 대강 잘라서 우묵한 접시에 담고 그 위에 발사믹 식초와 올리브 오일을 듬뿍 올리면 여름 샐러드가 된다. 그동안 먹던 발사믹 식초보다 조금 고가의 것을 구입해 보았는데, 값의 차이가 맛의 차이로 나타났다. 올리브 오일은 마셨을 때 목에서 매운맛이 나는 것이 좋은 오일이라고 하는데, 윤혜자 작가의 지인이 수입해서 파는 베제카 올리브 오일에서 그런 매운맛이 느껴졌다. 맛 좋은 발사믹과 올리브를 곁들여 먹는 유기농 쌈채소 샐러드, 여름 샐러드는 며칠을 계속 먹어도 절대 질리지 않는다. 어제도 그제도 만들어 몇 접시를 먹었는지 모른다. 이러다가 나의 위와 장이 채소밭처럼 초록이 되는 건 아니겠지.
샐러드는 간식이라면 본식은 비빔밥이다. 흰쌀밥에 채 썬 쌈 채소를 가능한 많이, 그러려면 가능한 큰 그릇에 담아야 한다. 달걀 프라이 2개를 올리고 참기름을 아끼지 않고 듬뿍 뿌린다. 취향에 맞게 고추장이나 간장을 넣어 비벼 먹는 야채 비빔밥. 된장을 풀고 호박, 양파, 감자를 넣어 설렁하게 끓여낸 ‘고기 집 된장찌개’를 곁들이거나, (위장이든 시간이든, 에너지이든) 여유가 좀 있다면 감자 몇 알을 강판에 갈아 들기름을 두르고 감자전을 부쳐 함께 먹는다.
여름에는 끓여 먹는 음식보다는 신선한 채소에 계란이나 고기 산적을 조금 곁들여 영양을 보충하는 것이 여름 기운과 맞는 것 같다. 채소 비빔밥은 많이 먹어도 금세 소화가 되니 마음 놓고 과식(?) 해도 된다. 단백질이 부족할까 걱정이 된다면 콩 국물을 후식으로 한 컵 더 먹는 것도 좋다. 채소만큼 질 좋은 단백질을 잘 챙겨 먹는 것도 중요하다고 한다. 채소를 통한, 채소에 의한 밥상을 앞에 놓고 스스로를 육식주의자라고 칭하는 아들은 긴 한숨을 쉬겠지만 나는 나의 여름 밥상이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