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천둥번개 치며 비가 쏟아졌다. 비 예보가 있어 종일 우산을 들고 다녔는데, 늦은 밤에 한꺼번에 비가 쏟아진다. 쾅쾅 천둥소리가 좀 무섭다. 기타 연습실에 있는 아들에게 전화해서 우산 있는지 물었다. 우산은 있고, 비가 좀 잠잠해 지길 기다렸다가 출발하려고 한단다. 비가 잦아들길 기다린다는 아들이 말에 나는 과도하게 대견함을 느낀다. 흐린 날씨를 대비해 우산을 챙기고, 소나기가 퍼부으면 멈춰서 기다릴 줄 아는 것이 대단한 삶의 기술이라도 되는 것만 같다.
비 오는 아침이면 전화하시던 돌아가신 엄마가 생각났다. “비 오는데, 우산은 있니? “ ”엄마 당연히 우산 쓰고 나왔지. 설마 비 맞고 다닐까 봐. 없으면 사도 되고. “ 엄마와 이런 대화를 나누다 보면 옆 자리 동료가 빙그레 웃으며 “엄마가 아직도 우산 챙겨요?”라고 물었던 기억도 난다. 내 나이 서른여덟 무렵이었다. 아들에게 우산 있냐고 전화하면서 그때 생각이 저절로 날 수밖에 없었다. 엄마의 우산 걱정이 그냥 우산 걱정이 아니라는 걸 그때는 몰랐다.
오늘은 명랑한 마음으로 조금 재미난 글을 써보려고 책상 앞에 앉았는데, 갑작스러운 천둥번개에 우산 걱정 하시던 엄마 생각에 쓸쓸해지고 말았다. 사실 엄마는 농담을 좋아하는, 명랑한 사람이었다. 어릴 때는 많은 사람들 앞에 나서서 노래를 부르거나, 분위기를 이끄는 엄마가 좀 창피했던 것 같은데, 어느 날 보니 내가 엄마의 그런 면을 좀 닮았음을 깨달았다. 엄마처럼 웃기는 재주는 없지만, 좌중을 웃기려는 부심이 있다. 모임에 가거나 강의를 할 때, 몇 분마다 좌중을 배꼽 잡고 웃게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한 시간에 한두 번은 편하게 웃을 수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고, 가끔은 성공해서 사람들을 웃게 만든다. 나이가 들면서 남이 닮았다고 해서가 아니라 내 얼굴, 내 몸짓, 나의 어떤 습관 때문에 스스로 엄마를 떠올리게 되는 때가 있다. 농담을 할 때의 나는 엄마와 닮았을 것이다.
5월 말에 남편과 이른 여름휴가를 다녀왔다. 인도네시아 발리 우붓에서 열흘 가까이 여행을 했는데 '신기하게' 한 번도 다투지 않았다. (물론 잠시 잠시 삐치는 시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아주 긴 훈련 끝에 우리는 상대방이 어떤 지점에서 화를 내는지 알게 된 듯하다. 이십 대에 만나 연애하고 결혼하고 숱하게 싸우고, 울며, 상처를 주고받은 끝에 이른 경지(?)이니 거의 30년이 걸린 훈련의 결과다.
남편이 어떤 약속이든 정한 시간보다 30분 이상 먼저 도착하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사람이고, 나는 더도 말고 딱 3분 전에 도착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시간 선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이런 문제는 평소라면 각자 자기 방식대로 시간을 운영하면 되니까 별 문제가 되지 않지만, 함께 여행을 할 때는 갈등의 이유가 된다.
이번 여행에서도 남편은 해외여행 처음 가는 사람처럼 출발 3시간 전에 인천 공항에 도착하길 원했다. 온라인 체크인도 사전에 마쳤고, 좌석을 업그레이드해서 대기할 일도 없는데도 그렇다. 나는 공항 2시간 도착 원칙도 과거 기준이지 요즘 시대에는 1시간 전에 도착해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결국 우리는 인천 공항에 남편 요구대로 3시간 전에 도착했는데, 30분 만에 수속을 마쳐서 한 일없이 공항을 어슬렁거렸다. 나는 그것 보라고, 내 말이 맞지 않았느냐고 계속 추궁하면서 다음부터는 절대 서두르지 않겠다고 약속하라고, 빚쟁이처럼 따졌다. 남편은 조금 기가 죽어서 내 눈을 맞추지 않으며, 그렇다고 미안하다 거나 알겠다는 명쾌한 대답을 회피했는데, 언뜻 그 모습이 우리 시아버지가 어머니에게 혼날 때 보이는 모습과 너무나 비슷해서 웃음이 났다.
재작년에 돌아가신 우리 시아버지. 박. 복. 성 씨. 가끔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내 옆에 박복성 씨가 누워있는 것 같다고 말하는 것은 농담만은 아니다. 내가 시아버지를 뵙고 처음 인사를 드렸던 때 내 나이가 스물두 살. 그때 시아버지의 연세가 오십 대여서 그런지 요즘 남편을 보면 그때 뵌 시아버지 모습과 자꾸만 겹친다. 남편은 시아버지와 외모뿐 아니라 성격도 비슷한 점이 많다. 약속이 있으면 일찍 서둘러 집을 나서는 것, 일 할 때 너무 서둘러서 옆 사람을 불안하게 만드는 것. 좋아한다, 사랑한다 같은 애정 표현을 잘하고 식성 좋고 뒤끝 없이 15초 만에 화를 푸는 성정이 시버지와 많이 닮았다.
남편은 발리 여행 중에도 조금도 서두를 일이 아닌 순간에 빨리 모드를 꺼내 들었다. 그저 쉬려고 어슬렁거리기만 했던 여행지에서 조금 늦는다고 도대체 뭐가 대수인가. 남편은 앱으로 택시를 부르자마자 로비로 나가 기다리자며 허둥댄다. 15분 후에 도착한다는 메시지가 택시 앱에 나타나는데도 그런다. 예전 같으면 버럭 화를 냈을 텐데, (짜증을 감추고) 조금 웃으며 말했다 “여보, 이제부터 박복성 씨 등장하는 겁니까?” 남편은 뭔 소리하냐는 눈빛이더니, 금세 알아채고 마음의 속도를 늦췄다.
나는 가끔 기승전결 없이 남편에게 버럭 할 때가 있는데 이런 기질은 유머 있고 명랑하지만 가끔 아빠에게 버럭 했던 엄마를 닮은, 내가 좋아하지 않았던 우리 엄마의 모습에서 비롯되었다. 물론 엄마가 하늘에서 나의 이런 해석을 듣는다면, “얘가 뭐라니, 내가 언제 그랬다냐.”하실 것이 분명하지만. 여행 중에 남편에게 부탁했다. “여보, 혹시 내가 버럭 하려고 하면, 박봉례 씨 등장입니까,라고 말해줘”
남편은 무슨 자기가 성질 나쁜 걸 장모님 핑계를 대냐는 눈치이다. 엄마가 동의는 못해도 비 오는 날 나의 우산을 평생 걱정했던 엄마니까 위트 있게 나의 해석을 이해해 주시겠지.
박복성 씨와 박봉례 씨는 사돈 사이로 평생 동안 몇몇 경조사에서 서너 번도 만나지 못한 사이이다. 두 사람을 많이 닮은 딸과 아들이 30년이라는 긴긴 훈련 끝에 결국 박복성 씨와 박봉례 씨만큼이나 다른 두 존재가 아직 우리 안에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