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오도 Mar 13. 2024

남편은 슈퍼맨

부부 싸움 총량의 법칙 1

오랫동안 각자 취향대로 쇼핑을 해왔지만, 나는 여전히 남편이 선택한 옷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예전에는 왜 그런 걸 샀어,라든가 그건 키 큰 남자에게 어울리는 스타일이야 라며, 나라도 진실을 얘기해 줘야 발전(?)이 있을 것 같아서 오히려 과장하여 단점을 지적해 주곤 했다. 남편이 삐치면 ‘밴댕이’라고 불렀다. 그러다 언제부터 전술을 바꿨다. 어차피 엎질러진 물(?)이고 남편 체형이 갑자기 바뀌는 것도 아닌데, 무엇보다 개인의 취향대로 패션을 완성할 권리가 있는 것 아니던가. 그래서 요즘은 내 편한 대로 속마음을 곧이곧대로 말하기보다는 에둘러 말하거나, 어차피 산 건데 기분이나 좋으라고, 입술에 침 한번 바르고 “멋지다. 예쁘다”는 말도 잘하게 되었다. 가정의 평화를 위한 기술과 지혜가 늘었다고 할 수 있다. 부부라도 취향은 존중해야 한다는 걸 알지만, 이는 외워서 배운 지혜인지라 가끔은 속마음이 툭 툭 튀어나올 때가 있다.   


특히 이상한 건, 내 눈에는 남편이 비슷한 옷을 계속 산다는 것이다. 얼마 전 구입 한 고르듀이 재킷은 작년에 산 것과 색이나 디자인이 거의 흡사하다. 나는 진심 궁금하여 남편에게 왜 같은 것을 또 샀는지 물었는데, 남편은 아주 친절하게 설명을 했다. “여보, 여기 봐봐, 단추가 다르고 카라도 완전히 다르잖아” 단추와 카라가 다른 것은 사실이지만, 남의 눈에는 둘 다 같은 옷으로 보인다.  양복과 넥타이도 계속 비슷한 것을 철마다 사들인다. 장롱을 열어보면 비슷한 색과 패턴의 넥타이가 수십 개다. 자기는 운동화 덕후라고 하면서 비슷하게 생긴 운동화도 꾸준히 산다. 나는 나이 들수록 온 한 벌 사는 일이 여간 어렵지 않던데. 소재와 디자인이 마음에 들면 너무 고가라 사지 못하고, 가격이 괜찮다 싶으면 소재나 디자인이 한참 부족하게 느껴진다. 그러다 보니 마음먹고 백화점에 갔다가도 빈손으로 돌아오기 일쑤이다. 남편을 온라인으로도 옷을 참 잘도 산다.


얼마 전 남편이 핫템이라며 주문했던 상품을 자랑했다. 별이나 동물 문양이 프린트된 과도하게 귀여운 남성용 팬티였다. 남편이 상품을 열어보며 만족한 웃음을 짓고 있어서 하고 싶은 말은 꾹 참고, 아주 귀엽네,라고만 말해주었다. 그랬더니 남편은 바로 “아들도 사줄까?”라며 추가로 주문을 넣을 태세를 취했다. 아빠는 아들의 취향을 여전히 모른다. 예전에 울 엄마가 당신이 입으려고 산 옷을 나보고 입어 보라고 성화를 했던 일이 기억났다. 아닌 것 같은데 하면서도 엄마가 하도 입어 보라고 하니까 억지로 걸쳐 보면, “이야 진짜 이쁘다. 잘 어울린다”며 칭찬을 하다가 “너도 사줄까” 하던 목소리. 사실 내게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중년 여인의 옷이었는데도 말이다. 남편도 울 엄마처럼 자기 옷을 아들에게 막 입어보라고 할 때가 있다. “아들 이 캐시미어 코트 아주 비싼 건데 너 줄까?” 그럴 때마다 아들은 이십 대의 나처럼  어이없는 표정으로 “됐어”라고 할 뿐이다.   


남편이 새로 산 팬티 중 하나는 우리가 어릴 적 열렬히 좋아했던 원더우먼이 착용했던 수영복 패턴과 흡사했다. 파란색 바탕에 흰색과 붉은색 별들이 촘촘히 박혀있다. 남편이 살찐 원더우먼처럼 보였다. 가정의 평화를 위하여 눈을 딱 감고 예쁘다고 해야 했는데, 도저히 거짓말이 나오지 않았다. “여보, 찐 원더우먼 같아” 남편은 내 말에 발끈하지 않고 어쩐지 칭찬으로 들으며 하하 웃고 좋아했다. 아무래도 원더우먼을 슈퍼맨으로 알아들은 것 같다. 남편은 듣기 싫은 말도 듣고 싶은 말로 순화해서 듣는 능력이 있다. 슈퍼맨이 맞는 것 같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