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대에 대하여
나는 남자가 배가 아프다고 하는 줄 알았다. 아침 출근 지하철에서 행색이 초라한 젊은 남자가 배를 움켜쥐고 서서 계속 뭐라고 중얼거렸다. 누구 하나 관심을 보이지 않아도 남자는 계속 울먹이며 말했다. 나는 몇 번 망설이다 자리에서 일어나 남자에게 물었다.
“아프시면 여기에 앉으실래요?”
내가 말을 걸자 남자는 순간 눈을 반짝이며 내 앞으로 성큼 다가와서 큰 소리로 자신의 사연을 설명했다.
“제가 며칠 전부터 일하려고 새벽시장에 나갔거든요. 근데 일이 없어요. 일을 안 줘요. 그래서 배가 고파요. 며칠을 굶었어요.”
배가 아픈 것이 아니라 배가 고프다는 것이었다. 나는 낯선 나에게 때 묻은 얼굴로 배가 고프다고 울먹이는 남자에게 뭘 해줄 수 있는지 몰라 당황했다. 지하철 승객들의 시선이 순식간에 내게 꽂혔다. 나는 서둘러 지갑을 꺼내 만 원권 한 장을 그 남자에게 내밀었다. 남자가 직접 구걸을 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돈을 내미는 내 손이 약간 주저되었다. 그러나 남자는 금세 돈을 낚아채듯 받았고 아무런 인사도 없이 다음 칸으로 사라졌다.
주변에 있던 승객들의 눈길이 “그럴 줄 알았다. 아침부터 너 속은 거야” 이러는 것 같았다. 지하철은 막 구파발역으로 진입하는 중이었고, 차창 너머로 북한산 능선이 보였다. 나는 승객들의 총총한 눈길을 피해 늠름한 북한산 정경을 바라보았다.
누군가 굴욕을 감내하면서 거짓말을 해야 한다면, 그만큼 절박한 이유가 있다고 믿는 편이다.
남자가 새벽 인력 시장에 나간 적이 없다고 해도, 그가 허기진 사람임은 분명할 것이다. 내가 이십 대 때 만난 중년의 여성 활동가 한분은 퇴근길에 노숙자를 보면 집으로 데려가 씻게 하고 밥도 먹이고 잠도 재워주곤 했다. 나는 일생 동안 단 한 번도 그 정도의 환대를 누군가에게 베푼 적이 없다. 내가 보일 수 있는 호의란 지갑에서 꺼낼 수 있는 한 끼의 밥값 정도일 뿐. 아주 안 하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그야말로 별것도 아닌 호의라 할 수 있다. 그러면서 그 일들을 이렇게 곱씹어 보는 것이다.
내가 돈을 내밀 때, 퀭한 남자의 눈에 아주 잠깐 반짝하고 생기가 스치는 것을 보았다. 남자의 허기가 그 순간 때문에 조금이라도 채워졌기를 바란다. 가끔씩은 ‘별거 아니지만 도움이 되는’ 일도 있는 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