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처럼

말랑하고 부드러워지기

by 최오도

어느 날 무슨 질병에 걸려서 오감 중 한 가지만 선택해야 한다면, 나는 어떤 감각을 선택하게 될까? 문뜩 그런 생각을 했다. 오감이 사라지면 감정도 사라질까? 감정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면, 그 감정은 어디로부터 촉발되는 것일까? 촉감이 사라져, 고양이를 안을 때와 같은 부드러움, 말랑함을 느낄 수 없다는 것, 그것은 무엇일까?


아침에 일어나 침실 문을 열면, 우리 냥이가 나를 반긴다. 촐싹이며 달려드는 법이 없이, 요가하듯 천천히 자세를 고치고, 런웨이를 걷는 모델처럼 한발 한발, 우아하게 다가온다. 녀석이 앉아 있던 자리가 다른 곳보다 따끈하다. 체온으로 바닥을 데울 만큼 그 자리에서 오래 기다린 모양이다.


나는 녀석처럼 우아하지 못하여 호들갑스럽게 그 부드러운 덩어리를 덥석 끌어 얼굴을 비비며 아침인사를 한다.


"불이야 잘 잤어?" 녀석은 "냐옹" 하고 대답하며, 온몸에 힘을 쭉 뺀다. 더 말랑해진 몸을 나에게 완전히 맡긴다. 차갑고 촉촉한 코끝을 내 코끝에 대며 냄새를 맡고, 혀로 얼굴을 핥는다. 녀석의 혀는 앞쪽은 마시멜로처럼 부드럽지만 뒷부분은 까끌까끌하다. 꼬리를 좌우로 천천히 흔들고, 회녹색의 커다란 눈으로 나를 응시하면서, 심장에서 갸릉갸릉소리를 내는 것으로 자신의 기분을 보여준다.


매 순간 오감을 다 펼쳐서 살아가는 이 고양이라는 존재 덕분에 감각함의 즐거움을 배운다. 촉각이 존재의 관계에 미치는 특별함을 생각하게 된다. 사랑하는 이의 냄새를 맡고, 따스함, 부드럽고 말랑함, 선선하며 촉촉한 느낌들을 주고받는 행위는 얼마나 특별한가. 촉각이나 후각을 나눌 수 있다면, 설령 시각이나 청각을 잃는다고 해도 서로의 사랑을 느끼고 표현할 수 있기에 충분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혼자 사는 친구는 어느 날 술 한잔 하고 아주 오랫동안 타인과 신체적 접촉을 한 적이 없음을 고백했다.


"아무도 나를 만지지 않아"


이 말이 단지 섹스와 같은 성생활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더 쓸쓸하게 느껴졌다. 그녀가 말하는 것은 가족이나 아이와 주고받는 가벼운 입맞춤, 포옹, 머리카락을 쓰다듬거나 어깨를 다독이는 것 같은 촉감을 나누는 행위 전부를 포함한 이야기 일 것이다. 그녀의 고백은 일상의 사소한 촉감의 교감이 사람에게 얼마나 큰 위안과 사랑을 느끼게 하는지 말하고 있었다. (그녀는 얼마 뒤에 강아지를 입양해서 키우기 시작했다)


아빠가 혼자되신 후부터 예전에는 쑥스러워하지 못했던, 포옹을 해드린다. 처음에 내가 포옹할 때 어색해서 어깨를 뒤로 빼던 아빠도 이제 다정하게 포옹을 받아준다. 다 큰 아들은 엄마의 포옹을 더 이상 좋아하지는 않아서 어깨를 겨우 1초쯤 내주고 도망간다. 가장 자유롭게 끌어안아줄 수 있는 남편에게는 오히려 인색하게 군다. 드물게 예쁜 짓을 할 때만 안아준다. 오래된 친구나 선배들을 만나면 포옹으로 인사한다. 처음에는 "왜 이래? 미국 갔다 와서 아메리칸 스타일로 바뀌 거야?" 라며 쑥스러움을 표시하지만, 이제는 익숙하게 좋아한다.


살아있다는 것은 결국 오감을 느끼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그것을 표현하는 것이리라. 글과 말, 음식과 아름다운 자연을 느끼는 만큼 온기와 부드러움을 더 많이 주고받으며 살고 싶다


나는 우리 냥이 덕분에 조금씩 더 말랑해지고, 부드러워진다. 녀석의 나를 키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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