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예술로 만드는 법
친구이자 회사 동료인 B. 대학생, 고등학생, 중학생의 엄마이고, 지방에서 근무하는 남편 덕분에 어쩔 수 없는 ‘독박’ 육아를 하고 있다. 마당이 있는 단독주택에 살면서 작은 정원을 가꾸고, 재작년까지는 자정 무렵 독서실에서 나오는 첫째 딸을 매일 픽업했다. 그녀가 일하는 부서는 전쟁터 같은 민원부서. 세상에 바쁜 사람들이 정말 많겠지만, 그녀가 그중 한 사람임에는 누구라도 이의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B는 내가 기억하는 한 단 한 번도 바빠서, 시간이 없어서 무언가를 못한다는 식으로 말한 적이 없다. 함께 하는 독서모임에서 언제나 책을 다 읽고 나오는 사람이 B다. 마당에 꽃과 허브를 심어 키우고, 마당에 직접 바비큐 화덕을 만들어 친구들을 초대하는 B.
‘안나 까레리나’의 첫 문장을 빌어 말하건대, ‘바빠서 무언가를 못한다는 사람은 이유가 제각각이지만, 바빠도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사람은 그 이유가 비슷하다’. 나는 농담처럼, 진담처럼 이 문장을 B에게 받치곤 한다.
바쁘지만 바쁘지 않은 이들에게는 우선순위를 배분하는 그들만의 지혜로움이 있는 것 같다. 그들은 아이들, 남편(아내), 직장 일, 그리고 자기 돌보기.. 어디 하나에 치우치지 않고 고르게 힘을 배분할 줄 안다. 그들은 불필요한 욕망과 불안에 자신을 내주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노는 것의 중요함을 안다!
이런 정신적인 것 말고도 기술적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은데, 일테면 시간에 틈을 내는 기술이랄까?
B를 보면 틈틈이 무언가를 한다. 독서만 하더라도(그녀의 독서량을 진짜 놀랄 정도로 많다) 그렇다. 그녀는 틈틈이 읽는다. 잠들기 전에, 점심 먹고 10분 동안, 아침 출근 전 20분, 이런 식의 틈틈이 독서로 매일 한 시간 이상 읽을 수 있다고 한다. 시간을 쪼개 쓰는 것이 오히려 그녀의 시간에 여유를 만드는 듯하다. 한마디로 삶을 예술로 만드는 기술을 가진 사람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사람과 친구가 된다는 것은 정말 행운이고 영광이 아닐 수 없다. 친구를 따라 하다 보면 시간에 틈을 내는 신공을 조금 배우게 된다. 바쁘다고 말하다가, ‘B도 하는데 뭘’, 하고 생각하면 무슨 주문처럼 시간이 생긴다.
스위스의 국민작가라고 불리는 페터 빅셀의 ‘나는 시간이 많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라는 책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책이고, 특히 제목이 좋아서, 제목을 떠올려 보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될 때가 있다. 나는 언제 시간 많은 어른이 될 수 있을까, 하며 푸념도 하고 그런 날을 상상도 해 본다. 그런데 오늘 이 글을 쓰다 보니까 빅셀이 말하는 시간이란 물리적 시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단지 물리적 시간의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닌 풍부한 시간을 누리는 사람이 어른이라는 뜻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시간을 풍부하게 만드는 지혜로운 기술을 가진 사람, 그런 사람이 어른이구나 하는 생각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