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저녁이 좋아서
김사인의 시집 ‘가만히 좋아하는’에는 ‘가만히 좋아하는’이라는 제목을 가진 시는 없고 ‘천지에 기댈 곳 없는 사람 하나’, ‘눈여겨보는 이 아무도 없는’ 것을 따스하게 노래하는 어떤 남자가 있더라.
시집을 들추다가 가만히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무엇을 좋아하면 당연히 들뜨고 빨려 들고 그래서 서두르게 되는 것인데, 그런 성급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가만히 좋아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6월, 가만가만히 보내는 이 저녁이 참 좋다. 7시 지나 해가 서산으로 기울 때, 밝음이 어둠으로, 뜨거운 공기가 신선한 밤공기로 바뀌는 시간, 존재하는 것들이 고요히 밤을 준비하는 이 시간. 그리움이 슬픔이 되는 시간.
베란다로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바람을 맞아 본다. 바람이 내 뺨을 어루만지며, 아무 걱정하지 말아요, 속삭속삭 하는 것 같다. 들뜨지 않고 가만히 좋아한다는 것은 분명 6월 저녁 같은 감정일 것 같다.
나는 여전히 가만히 좋아하는 사람은 못 되는 것 같다. 열렬히, 뜨겁게 껴안고 붙잡고 싶을 뿐, 가만히 좋아할 수 없어서 그냥 돌아 앉아 있을 뿐. 해 질 녘 바람에 뜨거운 마음이나 식혀보려고 애쓸 뿐.
얼마나 다행인가! 고분 한 마음을 생각할 수 있는 6월 밤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으니..
달리기 (허연)
두 발로 선 뇌기 무거워졌습니다.
수백만 년 전의 대가. 처음엔 삶의 한 풍파를 벗어나기 위해 달렸고, 그다음엔 저기에 사랑이 있다고 해서 달렸습니다. 신념이나 욕망 같은 것들을 어깨에 얹고 달렸습니다.
곡선주로를 빠져나온 그 어느 날 이것저것 다 빼면 달리기만 남았습니다. 성채를 지을 것 같았던 신념도 내 것이 아니었고, 기름기 잔뜩 밴 욕망도 내 것이 아니었습니다. 가보니 사랑도 없었습니다.
달리기만 남았습니다 한 사람이 불현듯 자유롭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