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말 성애자

무언가를 좋아한다면

by 최오도

오래전에 어떤 부자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소비와 향락적 삶을 소개하는 동영상을 유튜브에서 본 적이 있다. 아무리 써도 써도 새로 들어오는 돈이 더 많은 이 부자들은 별별 희한한 방법으로 사치와 향략을 즐기는데, 그저 신기할 뿐 별 감흥이 없다가, 우습게도 고작 양말 장면에서 나는 몹시 분개했다.

생일 선물로 태평양의 섬을 사주고, 수억 원짜리 식사를 하고, 전용 비행기를 타고 동부에서 서부로 날아가 눈썹 손질을 받는 세기말적 행위보다 최고급 양말을 마치 일회용 종이컵 마냥 한번 신고 쓰레기통에 버리는 행태에 열이 확 받는 것이다!


양말이란 물건이 그런 식으로 소비될 수 있다고는 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고, 은연중에 양말은, 그 가격을 떠나, 귀한 물건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어릴 때, 집이 가난한 편도 아니었는데, 이상하게 양말이 늘 부족했다. 목요일쯤이면 학교 신고갈 제대로 된 양말은 대부분 빨래통에 있었다. 그런 날은 발가락에 구멍 난 양말을 신을 수밖에 없었는데, 하루 종일 혹시나 실내화 벗을 일이 생길까 조마조마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하나씩 신을 수 있는 '정상적인' 양말 일곱 켤레가 그렇게 귀했던 시절이었을까? 어른이 돼서 이 얘기를 엄마에게 했더니 엄청 발끈하며 당신은 결코 얘들한테 구멍 난 양말을 신겨 내 보낸 적이 없다 하셨다.

지금 생각하면 별거 아닌 소소한 결핍일 뿐인데, 어른이 되어 나는 양말 성애자가 되었다. 아들이 어릴 때는 분홍색 줄무늬 긴 양말, 양말 목에 잠자는 고양이가 수놓아진 것, 레이스 장식이 있는 사랑스러운 것들(내가 어릴 때 못 신은)을 몽땅 사다가 신기며 나의 양말 성애증을 즐겼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그것들이 여자용 양말이라며 신지 않으려 할 때도 (미안하다 아들아) 계속 예쁜 양말들을 사곤 했다. 지금도 주말장터에서 파는 형형 색색의 예쁜 양말을 보면, 그 가격이 부당하게 저렴한 것에 분노하면서, 필요하지도 않은 것들을 색별로 몇 개씩 산다.


누군가 무엇을 특별히 더 좋아하거나, 싫어한다면, 반짝이는 눈으로 그 이유를 한 번 물어보라. 그냥 들으면 대수롭지 않은 이야기지만, 곱씹으면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그런 사연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양말 성애증 사연 같은..

친구가 남대문에서 30년 동안 양말을 만들어 온 사장님을 안다고 했다. 두근두근! (양말 성애자와 양말 공장 사장님의 만남이라니!!) 요즘 중국산 덤핑 제품 때문에 하나둘씩 양말 공장들이 사라진다고 하는데, 늦기 전에 꼭 한번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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