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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기석 Apr 16. 2017

22. 후지지 않은 후지노미야 (3일차)

신선놀음이 따로 없구나

후지산 일출을 보기 위해 아침 6시에 일어나라는 주인의 말을 듣고 잠자리에 일찍 들었다가 눈을 뜨니 5시 50분. 일어날까 말까 고민하다가 6시에 찾아온 주인이 굿모닝~하는 바람에 안 일어날 수 없어서 일어났습니다. 6시 20분에 출발한다고 해서 차 안에 있는데 날씨는 왜 이리 추운지. 시간 맞춰서 출발을 하고 호수로 갔습니다. 처음에는 후지산 주변 5대호 중 하나인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더군요. 그래도 공짜로, 아침에 두 시간 동안이나 투어를 시켜준다고 하는데 마다할 일 없지 않겠어요? 그래서 과감히 나왔습니다. 타누키호수라고 하네요. 7시 4분에 일출이 시작됐습니다.

주인장이 사진을 한 장 찍어줬는데 사진찍는 솜씨가 뭐 그닥. 그래도 역광 잘 적용해서 얼굴 잘 가린 걸 다행이라고 생각하겠습니다.

이렇게 해가 뜨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차를 타고 좋은 곳으로 가자고 하더군요. 과연 어디일까, 어차피 차도 없어서 움직이지도 못하니 가자는대로 따라갑니다.

白糸の滝 (시라이토 폭포)입니다. 알고보니 관광객들 엄청 오는, 후지산 주변의 유명한 폭포라고 하더군요. 후지산 정상에 있는 눈이 녹아 물이 되고, 그 물이 흘러서 폭포를 이루는 곳이라며, 주인장이 으쓱이더군요. 캐나다 게스트랑 둘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구경도 하고 폭포 주변을 걸어 내려왔습니다. 반대편에 차 대 놓을테니 슬슬 걸어오라고 하더군요. 주차장이 아닌 곳이지만 자기는 동네 주민이라 괜찮다고, 걱정말라는 말과 함께.

이렇게 물이 흐릅니다. 분명 한겨울인데 이렇게 물이 많다니. 후지산 만년설은 대체 눈이 얼마나 쌓인건지 도무지 알 길이 없네요. 다 녹아서 없어지진 않겠죠?

갑자기 차를 몰고 산으로 올라가더군요. 한참을 오르가 길가에 차를 세우더니, 하루에 두 번 일출을 보여주겠다고 주인장이 말했는데 뭔가 했더니 호수보다 높은 지역이라 일출 타이밍에 차이가 있었던거죠. 살다보니 하루에 두 번의 일출이라니. 생각도 못했던 건데 뭔가 모를 횡재? 날씨도 좋았고, 타이밍도 딱딱 맞아 즐거운 경험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시계를 보니 아침 8시. 편의점에서 아침 사다 먹고 어디로 갈까 고민하던 중에 드디어 데이터를 다 쓰고 장렬히 사망한 유심. 이걸 대비해 나고야에서 사온 빅카메라 유심을 낑굽니다.

사용법은 쉽습니다. 카드 낑구고, 무선 인터넷이 되는 곳에서 하라는대로 설정만 해주면 끝.

여행객을 위한 심카드입니다. 통화나 문자는 안 되는 대신 데이터는 쓸 수 있기 때문에 상당히 유용합니다. 로밍보다도 싸긴 한데 아무래도 전화기 두 대를 들고 다니지 않는 이상은 크게 유용하진 않아요. 저같은 경우 전화기가 두 대이고, 한국에서 오는 연락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오히려 심카드 사서 쓰는 게 좋았습니다. 나중에 보니 듀얼 심카드 전화기도 많더군요. 하나 사고 싶었으나...

그리고 심카드는 충전이 가능합니다. 빅카메라에 가서 심카드 충전해달라고 하면 이렇게 종이로 된 제품을 뽑아다가 주면 됩니다. 안에 코드가 있기 때문에 코드만 입력하면 끝.

여행도 거의 3주차에 접어 들었고, 아침부터 일어나서 피곤하던 차에 어쩔까 고민하다가 온천에 가기로 합니다. 마침 숙소랑 멀지 않은 곳에 온천이 있었기에 걸어갈까 하다가 그 오르막을 가다가 지쳐버릴지 몰라서 큰 맘 먹고 택시를 탑니다만...시즈오카현 택시는 진짜 요금이 살인적입니다. 아무래도 동네가 작아서 그런가, 후지노미야만 그런가 했는데 시즈오카현 자체의 택시 요금이 살벌하더군요. 기본요금이 우선 700엔입니다. 나고야나 간사이는, 그리고 나중에 간 도쿄도 이렇게 높지 않았는데...2km좀 넘는 거리였는데 택시비로 1,500엔인가 나왔으니...그래도 얼른 온천가서 사치를 누리겠다 생각하고 올라갑니다. 운 좋게 게스트하우스에서 200엔 할인쿠폰도 주는 바람에 입장료는 1,300엔. 한국과 비교하면 곱절입니다. 아무리 좋은 찜질방도 만원이 넘는 경우가 거의 없는데 여긴 1,300엔. 그래도 돈이 아깝단 생각은 안 들었습니다.

온천 입구에 있는 장식품. 상당히 컸습니다. 온천 규모도 크고, 제가 갔을 땐 경로당 단체관광이라도 왔었는지 노인분들이 그렇게 많더군요. 그래도 다들 시끄럽지도 않고, 조용히 줄 서서 잘 들어갔습니다. 현금이면 선불이고, 카드면 후불이더군요. 그렇게 입장권을 받아 들어갔습니다.

입장 시 나눠주는 가방입니다. 안에 큰 수건이 한 장, 찜질방에서 입는 위아래 옷 한 벌, 작은 수건 하나. 우리랑 큰 차이는 없지만 수건을 따로 나눠주는 게 희한하긴 하더군요. 나중에 그 이유를 알게 됐습니다.

목욕 문화가 우리와 상당히 다릅니다. 대충 샤워만 하고 탕에 들어가는 게 아니라, 밖에서 비누칠하고 다 씻은 다음에 탕에 들어갔다 나오는 문화더군요. 수영하는 애들도 없고, 그냥 조용히. 그리고 온천 종류가 한 열 가지는 된 듯했습니다. 특히 사해 온천이 마음에 들었는데, 염도가 사해와 동일해서 둥둥 뜬다고 하더군요. 실제로 둥둥둥 떠다녔는데 상처 있을 땐 안 좋습니다. 엄청 따갑고 아파요. 그래서 상처가 심할 땐 안 들어가는 게 좋습니다. 진짜 쓸리는 듯한 통증에 개고생.

사진은 못 찍었지만 일본 온천이라면 늘 있는 유황온천에도 들어가고, 노천탕에 들어가서 후지산을 바라보며 몸을 누이니 세상 신선 팔자가 따로 없더라는.

꽤 고급스럽습니다. 평일 오전이라 사람들이 그다지 많진 않았어요. 사케바에서 술 마시면서 온천 이야기했더니 주말에는 비싸다고, 평일에 가는 게 좋을 거라는 팁을 얻어서 여유있게 즐겼습니다. 역시, 동네 사람들에게 정보를 빼 오는 게 최고.

한국이랑 비슷합니다. 손 마사지 기계도 있고, 발 마사지 기계도 있고, 손금도 봐주고. 그런데 제일 좋았던 것은 안마의자. 그것도 공짜. 10분에 2천원 받는 한국과는 달리 그냥 누워서 스위치만 누르니 부르르르. 일본 안마의자 진짜 좋습니다. 기능도 상당히 많고. 나중에 도쿄나 오사카 등 대도시 관광다닐 때 피곤하면 빅카메라나 요도바시 카메라에 가서 안마의자로 피로를 풀어보세요. 여독이 쭉쭉 빠지는 듯한 기분이 들 겁니다.

자판기 천국 일본답게 온갖 자판기가 다 있습니다. 아이스크림 자판기였는데 한 번 먹어볼랬다가 돈 가지러가기 귀찮아서 안 갔. 

이렇게 신선놀음 한 번 딱 해주니 슬슬 배가 고파오더군요. 밥이나 먹으러 가야겠습니다. 올라올 때 택시비 많이 썼으니 내려갈 땐 슬슬 걸어가기로 합니다.

이 날도 날씨가 좋았습니다. 살살 걸어내려 가니 땀이 살살 나더랬습니다. 누군가 후지노미야 야키소바가 맛다고 했던 말을 듣고 먹어보기로 결심합니다. 그러다가 동네 작은 식당으로 들어갔죠.

테이블 두 개에 작은 바 하나가 있는 식당. 12명 정도 들어가면 꽉 차는 그런 동네 식당이었습니다. 점심시간이라 사람 많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아서 다행이더군요.

철판입니다. 뭔가 오래 쓴 포스? 저 위에 면을 올리고 자글자글 볶아 야키소바를 만든답니다. 배가 엄청 고파오던 차라 뭐라도 먹어야겠단 생각에 우선 생맥주를 시켰는데 병 밖에 없다더군요. 온천 다녀왔으니, 그리고 성인이니 바나나우유 대신에 맥주 한 잔으로 하기로 합니다.

맥주를 시켰더니 땅콩을 주시네요. 짭짤하니 맛도 괜찮고, 맥주에 딱 맞는 게 이렇게만 줘도 맥주 몇 병은 먹고 남을 듯합니다.

할아버지 혼자서 일하는 식당이었습니다. 서빙도 혼자 받으시고, 음식도 혼자 하시는 그런 동네 작은 식당. 가벼운 기본 반찬도 주고. 아, 막 기대됩니다. 얼른 주세요, 현기증 난단 말이에요.

드디어 나왔습니다. 그렇게 과하지도 않고, 단 맛도 적당히 있는, 한국에서 먹던 야키소바랑은 좀 다르더군요. 양이 많진 않아서 뭔가 한 그릇 더 하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배 터져 죽을 거 같아서 적당히 아쉽게 먹도록 합니다. 맥주 한 병 더 시켜서 깔끔하게 클리어.

스낵 미츠보라고 써 있네요. 영업시간이 있는 건 몰랐는데, 저녁 7시면 문 닫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동네가 동네인만큼 늦게까지 하는 집은 거의 없더군요. 대신 아침 7시에 문을 여는 거 보니, 역시 어르신들은 아침잠이 없긴 없나 봅니다.

돌아와서 낮잠 잠깐 자고, 일도 어느 정도 끝냈더니 주인장이 오더군요. 드디어 나베 파티를 한다고, 기대하라고.

이렇게 나베가 나왔습니다. 나베에 방울토마토? 뭔가 어울리는 듯, 어울리지 않는 듯한 비주얼이었지만 뭐 어떻습니까. 맛 있으면 장땡인것을. 생각보다 진짜 맛났습니다. 날 추울 때 술 안주로 하면 딱.

드디어 꺼냈습니다. 5,100엔짜리 준마이 다이긴조. 월계관만 먹다가 다카사고는 처음이었는데. 식용 금박이 담겨 있습니다. 주인장, 캐나다 게스트, 대만 스탭, 스탭 친구, 저 이렇게 다섯 명이 금박 넣어서 한 잔 탁 털고. 결국 이 술 다 마시고, 남아 있던 매실주도 다 먹고. 후지노미야의 마지막 날은 따뜻한 나베와 사케로 깔끔하게 마무리했네요. 후지산도 다녀왔으니, 게스트도 없으니 주인장은 아침에 느즈막하게 일어나도 될 거라고 하면서 10시 좀 넘어 사라지고. 있던 술 싹 비우고 깔끔하게 잠들었습니다. 온천의 여파가 저녁까지 남아서인가 잠도 잘 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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