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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기석 Apr 13. 2017

21. 후지지 않은 후지노미야 (2일차)

만국공통어 꽐라

자 그 전날 술도 꽤 먹었으니 아침엔 당연히 해장 아니겠습니까. 돈코츠라멘에 멘마 넣어서 후루룩~ 물론 이 날 아침은 맥주 안 먹었습니다. 낮에 사케 축제에 가야하니까 그냥 쉬기로 합...

동네에 큰 신사가 있다고 해서 한 번 가보기로 합니다. 그런데 저 멀리 보이는 후지산. 뭐 1월이라 춥긴 했지만 눈도 별로 없고, 게다가 만년설이라네요. 겨울 후지산은 비수기입니다. 5부능선 주차장도 5월은 돼야 개장하고, 등산 코스는 7, 8월만 입산이 허가되기 때문에 여름 아니고서는 후지산에 오를 일이 없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상대적으로 조용하니 괜찮았습니다. 후지산 주변 5대호 (미국 아닙니다)도 있다고 하는데 거기까지 뱅뱅 돌 시간은 없고, 게다가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건 제겐 큰 고문인지라 그냥 먼 발치서 보기로만 합니다. 동네 사람들은 날만 좋으면 늘 보는 후지산이겠군요.

후지산 근처에 있는 신사 아니라까봐 본관이름도 후지산본관. 마침 일요일 아침이라 그런가 사람들도 꽤 많았습니다. 관광객보다는 신사 참배객들의 수가 압도적. 사실 관광객이 찾아오기에 썩 좋은 계절은 아닌지라.그래서 오히려 좋았습니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입시때문에 고생하는 건 똑같네요. 시골인 후지노미야에도 학원 입학 접수중이라는 광고가 걸려 있고, 후지고교 합격자 수가 걸려있는 거 보면 중학생 대상 학원인 듯합니다. 고등학생 대상 학원이기도 하고. 이러나저러나 매한가지.

동네 드럭스토어에 잠시 들렀습니다. 2.7리터짜리 블랙, 토리, 그리고 1.92리터짜리 산토리라니. 여기에 일주일만 더 있었다면 분명 저거 한 병 사서 주구장창 마셔댔을텐데라는 아쉬움. 저 큰 걸 어찌 들고 다니냐라는 생각에 과감히 포기했습니다만. 아쉽긴 아쉽더군요. 한국에도 저렇게 팔면 매일 나발을 불텐데.

게스트하우스 벽에 걸린 지도입니다. 한 눈에 들어오는게 편하더라구요. 나름 돋보이는 센스.

드디어 축제로 갑니다. 다카사고 (高砂)라는 시즈오카 사케 업체인데요. 이렇게 하루씩 축제를 한다네요. 입장료로 컵을 사갖고 들어가면 컵 들고 다니면서 공짜로 먹을만큼 먹을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엄청 많더군요. 축제에 낮술 먹는 건 뭐 여기나거기나.

잔은 세 가지였습니다. 가장 작은 사기잔이 250엔, 좀 큰 게 300엔, 그리고 플라스틱잔은 500엔. 자주 먹으러 다니기 귀찮으니 그냥 500엔짜리 가장 큰 놈으로 샀습니다. 물론 지금도 집에 있기에 백화수복 여기에 덜어 먹으면 뭔가 후지노미야에 있는 기분은 개뿔.

축제답게 먹거리 좌판이 가득합니다. 좁아터진 길에 별별 먹거리를 다 팔더군요. 시샤모 구이부터 해서 죽통주도 팔고. 죽통주 한 통에 700엔인가 했는데 마침 만난 게스트하우스 주인이 한 잔 주더군요. 우리가 생각하는 죽통주와는 사뭇 다릅니다. 색깔도 우리나라 죽통주는 붉은빛이 돈다면 여긴 무색에 따뜻하게 나오기까지. 따뜻한 술 먹으면 낮에 훅 갈 거 같아서 한 잔 얻어먹고 바로 시음코너로 고고.

8가지나 되는 사케가 무료, 무료 (아, 입장료 500엔 냈지). 매실주가 가장 인기가 많아서 제가 갔을 때는 품절이 됐었으나 다행히도 10분 후에 다시 가져왔더군요. 바로 가서 호로록~ 나중에 또 가서 호로록~

오징어철판도 팔고, 이렇게 어묵도 구워서 팔고.

돼지갈비까지. 안주로 먹기엔 든든하더군요. 아무래도 좁아터지고 자리가 없다보니 겨우겨우 의자 하나 구해서, 다른 사람에게 양해를 구해서 좀 있다 올테니 가방 좀 지켜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흔쾌히도 그래준 일본 부부에게 아리가토오~

바글바글합니다. 그런데 재밌더라구요. 공연도 하고, 좌판도 벌이고 하는 거 보면 영락없는 시골장터. 게다가 술도 많으니 에헤라디야~ 일본 와서 정말 재밌게 놀았던 곳 중 하나입니다.

회원모집. 2만엔 코스부터 10만엔 코스까지. 1월부터 4월 또는 12월까지 720ml 사케 세 병이나 여섯 병 정도를 준다니. 5만엔 코스 이런 거 한 번 가입하고 싶었...

창고 매장입니다. 다카사고에서 만든 술을 이렇게 창고에 늘어놓고 싸게 팔더군요 (싼지 안 싼지는 오른쪽에 있는 준마이 다이긴죠를 보고 알았습니다) 1.8L가 사고 싶었지만 병이 너무 커서 720ml짜리 한 병 겟! 5천엔 좀 넘는 가격이었지만 준마이인데, 그것도 다이긴죠인데 안 살 수 없어서 샀습니다. 그리고 이 술은 다음 날 엄청 요긴하게 써먹었습니다.

떡하니 보이는 준마이 다이긴죠. 몇 병 사고 싶었으나 캐리어가 꽉 차서 한 병만 (땅을 치고 후회했더랬습니다). 효고현에서 난 최고급 쌀을 35%까지 갈아 만든 상품이라네요. 사케 주조 시 쌀눈이 들어가면 맛이 변하기 때문에 쌀을 최대한 깎아냅니다. 그래서 순미, 즉 준마이란 말은 순수한 쌀을 의미하구요. 그만큼 쌀을 많이 깎기 때문에 더 많은 쌀을 써야하고, 그래서 비쌉니다. 네, 많이 비쌉니다. 그래도 쿠보타 만쥬나 신센쥬 정도는 아니더군요 (사실 신센쥬는 구경도 못했습니다).

망치로 똥~ 깨서 받아먹는 셋트인데 부피가 너무 커서 포기. 이거 살 돈이었으면 준마이 다이긴죠 1.8리터 샀...

뭐 술 마시다보면 일상다반사인, 취객. 낮부터 그렇게 먹어대니 저렇게 자빠지지. 많았습니다. 남녀노소 구분 없이 취객들이 꽤 많았던. 어쩌겠어요.

푸드트럭같은 곳오 있더군요. 잼도 팔고, 야키도 있고. 

여럿이 왔으면 분명 닭도 시키고, 이런저런 안주도 시켰을텐데 혼자 온지라, 놓을 곳도 없고 해서 거한 안주는 못 먹고 그냥 단품 정도로만 먹었습니다.

술을 마셨으니 속풀이를 해야겠죠? 어묵 한 그릇 뚝딱~ 매콤하니 맛나더군요.

실컷 먹고 내려오던 길에 눈에 보이는 후지산. 내일은 이 근처에 한 번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편의점에서 몇 가지 사갖고 들어와서 술도 살짝 올라오겠다 낮잠을 잤습니다. 저녁에 코타츠에 앉아 일을 하고 있는데 캐나다 게스트가 하나 오더군요. 둘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에 주인이 와서, 아침 6시에 일어나면 자기가 두 시간 동안 후지산 근처 투어를 시켜주겠다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내일 저녁은 나베 파티를 한다고, 그러니 두당 500엔씩 내면 되는데 어쩔 거냐길래 당연히 오케이!

같은 방에서 자는 캐나다 친구도 그러겠다고 하니 주인이 6시에 와서 깨우마 그러더군요. 게다가 투어는 무료고, 아침 일찍 일어나는게 힘들지만 어쩌겠습니까. 왔으니 봐야죠. 그래서 과하게 안 먹고 일찍 잤습니다.

새벽에 보는 후지산은 어떤 느낌일까요?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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