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크래프트 세 종족의 소통 및 의사결정 방식에 대해

20대 시절의 단상 (1)

by Younghoo Kim

( ※ 2010년대 중후반에 페이스북에 하루 두세 개씩 글을 쓰던 시기가 있다. 대부분 지금보다 철 없던 시절 후환을 생각하지 않고 패기롭게 쓴 단상들이지만, 다른 의미에서는 현재의 나보다 더욱 솔직하고 정제되지 않은 날것의 자아를 엿볼 수 있다. 오탈자나 부적절한 어휘 정도만 수정하여 틈틈이 올리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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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리자드社에서 개발한 스타크래프트 시리즈는 한국에서는 이름이라도 한번 들어본 적 없는 사람은 없다고 장담할 정도로, 단순한 스테디셀러를 넘어 엄연한 주류 문화의 귀퉁이에 자리잡았다. 각자 다른 환경에서 발전하여 다른 뜻을 가지고 우주에 모습을 드러낸 세 종족 테란, 저그, 프로토스를 둘러싼 치열한 전쟁사를 그린 작품인데, 97년부터 2015년까지 다섯 편의 정규 타이틀과 그 갑절은 되는 수의 공식 소설과 설정집 등으로 꼼꼼한 서사를 바탕으로 한 만큼, 각 종족들의 사회학적, 생물학적인 특징들도 세밀하게 설정되어 있어 설정 덕후들에게 끝이 없는 이야깃거리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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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이 다르고 전달 체계도 다른 만큼 소통과 의사결정 방식에서 꽤나 확연한 차이를 보이는 세 종족인데, 우선 지구인의 후예 테란을 살펴보자. 앞서 말했듯 이 게임의 소재는 '종족 간 전쟁' 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주요 인물들은 군인들인만큼 현재 인류의 정치 체제 중 가장 근대적이고 합리적이라는 민주주의적 소통의 등장은 일단 기대를 접는 게 좋다. 그리고 이들의 뿌리는 먼 옛날 자원난 문제에 봉착한 지구가 흉악범 및 정치범들을 우주선에 태워 내쫓아, 허허벌판 행성에서 개척하는 것이었던만큼 몇백 년이 흘렀다고 해도 생존을 위한 여러 형태의 힘이 가치로 숭상받아, 과학 문명의 수준과는 별개로 다분히 전근대적인 체제로 흘러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나마 인간적이고 따스하고 리더십이 있다는 평을 받는 주인공 레이너도 다분히 마초 기질이 남아 있고, 특수 요원이나 공학자 등을 제외한 나머지 주요 장교들은 말할 것도 없다. 애초에 이 게임의 메인 시나리오 중 하나가 혁명군 수장에서 전제 군주로 변모한 아크튜러스 멩스크와의 각축전이다.


1편의 확장팩 브루드 워Brood War에 등장하는 지구 집정 연합군UED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브루드 워의 마지막 장면은 권위적인 똥별 장군 제라드 듀갈이 간신배 자미르 듀란의 말에 속아 몇십년지기 친구 알렉세이 스투코프를 죽게 한 끝에 캐리건의 저그 군단에게 지고 UED 전군이 지구에 돌아가지 못한 채 우주의 먼지가 되는 거다. 여담으로 UED가 등장했을 때 캐리건의 대사가 인상적이다. '지구의 역사를 공부했다면 저들이 왜 왔는지 정도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겠지.' 인류의 문명은 인간이 교화, 개척,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자행한 숱한 자연 파괴와 학살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철학조차 중국 고대 철학의 등장 배경은 춘추전국시대라는 희대의 난세였고 서양 고대 철학의 등장 배경은 노예 등 하급 계층의 희생 덕분에 윤택한 생활을 하게 된 귀족과 중산층의 여가 생활이었다. 그러한 인간의 본질을 꿰뚫는 명대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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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락한 젤나가 아몬이 변이시킨 종족 저그는 아몬이 창조한 절대생명체 오버마인드의 통솔로 움직인다. 이름부터 Overmind, 개개의 저그 개체의 정신 위에 군림하는 자이다. 따라서 모든 저그의 의사결정은 오버마인드의 직접적인 정신 파장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리고 오버마인드의 보좌관 역할인 셀레브레이트들은 각기 오버마인드에게 종속된 채 자신의 군단을 거느린다. 나름 대규모 군단을 거느리는 실력자들이라 티격대고 신경전을 벌이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서로 연계하여 전장에서 활약한다. 이들 사념체Cerebrate는 오버마인드에게서 났기 때문에 다소 손상을 입거나 심지어 파괴되어도 그가 다시 부활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테란에서 포획하여 개조한 캐리건의 등장, 그리고 다크 템플러의 힘이 사념체를 영영 침묵시킬 수 있다는 게 밝혀지는 시점을 계기로 오버마인드의 절대 군림이 무너질 것을 암시하였다. 오버마인드는 창조주 아몬에게 두 가지 절대명령이 걸려 있었는데, 1. 자신의 뜻에 절대 복종할 것 2. 저그를 우주에 번성시킬 것, 이 그 내용이었다. 그러나 아몬의 목적은 저그마저도 자신이 만든 혼종의 칼날에 절멸시키는 것이었고, 오버마인드는 1과 2를 동시에 충족하기 위해 캐리건을 선택했다. 오버마인드 사후 캐리건은 UED, 테란 자치령, 프로토스 잔당들과 싸워 그들 모두를 이기고 우주의 여왕으로 군림한다. 그리고 연인 레이너에게 구출되어 인간으로 돌아왔다가 다시 저그의 고향 제루스로 가서 원시 저그를 손에 넣고 아몬에게서 완전히 벗어난 저그의 1인자로 군림한다. 그러나 캐리건은 오버마인드의 실패를 교훈 삼아 부하들 위에 군림하되 그들의 독자적인 세력과 기반을 인정하며 종장에서 젤나가로 승천하면서는 자신의 전권을 부하들에게 일임한다. 96년도의 1편부터 13년도의 군단의 심장까지 피비린내나는 권력 쟁탈을 벌인 데 비하면 굉장히 평화적인 이양이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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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라고 쓰고 꼰대라고 읽는) 종족 프로토스는 창조주 젤나가가 처음으로 간섭한 종족이었다. 이들은 이미 처음부터 어느 정도 발달된 문명을 갖고 있었으며 그를 통해 질서를 확립하고 세력을 넓히고 있었다. 젤나가는 그들에게 종족을 발전시킬 여러 지혜와 지식을 전달하였고 프로토스는 그를 통해 우주에서 가장 발달한 문명을 얻게 되었지만, 모든 신화에서 그렇듯 교만해진 그들은 곧 자신의 창조주를 등지고 자신들의 성과에 취하게 된다. 결국 젤나가는 그들을 떠나버리지만 프로토스는 여전히 젤나가의 가르침을 기반으로 사회를 유지했고, 그를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칼라Khala라는 군체 연결망을 만들게 된다. 모든 프로토스는 신경삭을 통해 얼마나 멀리 떨어져있든 서로의 생각과 감정을 쉽게 알 수 있었고 심지어는 공감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는 곧 철저히 신경삭에만 의존한 채 옛 규율을 다림줄로 하여 이에서 벗어나는 일련의 행위를 용납하지 못하는 경직된 소통 구조를 만들었다. 그 결과 칼라를 거부하여 처단당할 위기에 놓인 프로토스가 샤쿠러스 행성으로 도주하여 정착하는 일이 발생하고, 세월이 흘러 젊은 의원 태사다르가 모성 아이어에 쳐들어온 저그를 막기 위해 동분서주 뛰어다니자 고대의 규율을 어겼다는 이유로 그를 숙청하려 하고(이 과정에서 프로토스 전체 인구의 7할이 전사한다), 최종편 공허의 유산에서는 아몬이 칼라를 오염시켜 자기들끼리 치고박고 싸우는 장면까지 연출한다. 한편 칼라를 버리고 샤쿠러스로 이주한 네라짐 프로토스의 가장 큰 특징은 '토론' 문화다. 신경삭으로 서로의 생각을 쉽게 알 수 있는 칼라이 프로토스들은 토론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렇기에 얼핏 보면 네라짐 프로토스가 비효율적으로 보일 수 있으나 결국 2편까지의 대전에서 프로토스를 승리로 이끈 건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네라짐 단장 제라툴의 용기였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여러 나라의 여러 현장에서는 그들만의 독특한 방식의 소통과 의사 결정이 이루어지고 있을 것이다. 물론 어느 쪽이 좋고 나쁘다고 어찌 절대적 기준으로 말할 수 있겠는가. 그때그때 그에 맞는 의사 결정 방식이 있다. 그러나 적어도 이 나라 전반에 지금 필요한 것은 '토론하는 문화' '개인의 자유를 인정하는 문화' '일련의 저항을 존중하는 문화' 라고 나는 생각한다. 지켜야 할 옛 가치도, 추구해야 할 새 가치도 원탁 위에 놓고 머리아프게 입씨름할 때 진정 빛을 발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원탁에 참여할 자격은 부도 권력도 나이도 학식도 아닌 단 하나, '세상을 바꿀 열망' 이어야 할 것이다.



2017.10.26

김 영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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