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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hoo Kim Nov 29. 2023

에로 게임의 역사 (4)

10년대 이후의 에로 게임




들어가며


2023년이 저물어가는 현재에도 매달 에로 게임은 나오고 있다. 그 중에 플레이하는 작품은 일 년에 한두 개 정도이다. 즐길 수 있는 다른 여가 거리가 워낙 풍성하기 때문이다. 한때 엔터만 쳐서 진행하는 에로 게임을 두고 "그게 게임이냐?"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젠 그조차 오토 모드로 돌려놓고도 텍스트를 읽기 지루해서 바로 넷플릭스나 유튜브의 영상물 콘텐츠로 창을 전환하는 시대가 된 지 오래이다.

물론 에로 게임이 마냥 옛 영광과 추억에 빠져 전혀 발전하지 않은 건 아니다. 기술적으로나 상업적으로나 시대에 뒤쳐지지 않기 위한 부단한 시도를 해 왔고, 지금도 각 메이커들은 자기들이 가장 잘하는 방식으로 만든 작품을 시장에 내놓고 있다. 이번 마지막 장에서는 지난 십여 년 간의 그들의 모습들을 되돌아보며 연재를 끝내고자 한다.


예익의 유스티아穢翼のユースティア



(1) 2010년대부터의 에로 게임 – 1



① 욕망의 총화


10년대에 들어 연식이 오래된 메이커들은 과거 작품을 리뉴얼하여 판매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재생산만 하는 건 생각해 볼 문제지만 일단 유저 측은 과거 구매한 카트리지를 찾을 수 없거나, 있어도 대응 기종이나 OS 문제로 플레이하지 못하거나, 어린 신규 유저가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고참 게이머와의 갭을 메우지 못하는 등의 애로 사항이 있었기에 기본적으로 반기는 분위기였다. 앨리스소프트처럼 초기작이 8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경우 리뉴얼은 사실상 신작이나 다름없었다.

니트로플러스, 타입문, Key, 아쥬 등 00년대부터 이름을 알린 거물 메이커들은 작품도, 사람도 비18금 미디어로 활동 영역을 걸치게 되었다. 거꾸로 에로 게임 제작은 점점 과작寡作 경향이 강해졌다. 메이커마다 이유나 사정은 다르겠지만 에로 게임은 여명기와는 달리 상당한 비용을 수반하는 프로젝트가 되어갔다. 수용자 층이 보다 넓은 非성인 계열로 옮겨가는 건 숙명과도 같았다. 80년대에 일반 계열이냐 성인 계열이냐의 분기에서 후자를 골라 에로 게임 메이커가 생겨난 상황이 돌고 돌아 일반 계열에 중심을 둔 에로 게임 메이커가 늘어나는 현상, 이것도 역사의 흐름인가 보다.

00년대의 인기작 명맥을 돌아보자면 오거스트는 05년도 『동 트기 전보다 유리색인』, 08년도 『FORTUNE ARTERIAL』 발매로 작풍을 확고히 하고, 여기서 한 꺼풀 벗어 11년도엔 하드한 방향으로 노선을 틀어 『예익의 유스티아穢翼のユースティア』를 발매한다. 지금까지 플레인 요구르트 취급을 받던 오거스트가 일신하여 보여준 새로운 면모라는 평도 있었고, 온갖 하드 취향이 다 있던 데뷔작 바이너리 포트 시절로 회귀한 것 같다는 평도 있었다.

라이어소프트는 06년도부터 사쿠라이 히카루桜井光 시나리오로 동일 세계관에서 벌어지는 스팀펑크 시리즈를 통해 독특하고도 장엄한 서사를 구축하고 있다.



프린세스XプリンセスX



한편 10년대에는 이러한 커다란 흐름과 별개로 틈새적인 속성을 디테일하게 다루는 장르 작품도 늘어나고 있었다. 개중에서도 나름 유명한 소재로는 예를 들어 NTR, 최면은 셀 수 없이 많으며 한 작품에서 곧잘 병행되기도 한다. 하반신이 뱀이라든지 말이라든지 전신이 슬라임이라든지 하는 이형의 여성 몬스터만으로 구성된 마물 소녀(モンスター娘, 약칭 몬무스) 장르도 견고한 마니아층을 보유하고 있다. 관심 있는 분은 동인 게임 『몬무스 퀘스트もんむすくえすと』, 상업 게임 『프린세스XプリンセスX』, 『성 몬무스 학원聖もんむす学園』 등의 타이틀을 추천한다.



최강 불량아 여체화! 츤데레에 남자 말투 미소녀로!?最強の不良が女体化! ツンデレ俺口調の美少女に! ?



여장소년, 낭자아이의 경우 메이커명으로 정체성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낭자아이 구락부おとこの娘倶楽部 같은 브랜드도 있다. 남자가 숫제 여자로 바뀌는 이른바 TS물로는 Norn의 『최강 불량아 여체화! 츤데레에 남자 말투 미소녀로!?最強の不良が女体化! ツンデレ俺口調の美少女に! ?』(2015) 같은 작품이 있다. 내용은… 제목을 다시 한 번 읽어보면 된다. 같은 TS 노선의 제목으로 다 해먹는 작품으로는 『자칭 불량배인 내가 여자가 되자 예상외로 개 쩌는 걸레였다(*/∇\*)ㄲㅑ~원조교제부터 육변기까지~自称硬派のオレが女になったら思いのほかすげぇビッチだった(*/∇\*)キャッ~援交から肉便器まで~』 가 있다. 육덕을 넘어 초 비만 체형 히로인의 살집에 허우적대는 『뚱보토피아デブトピア』 시리즈는 애당초 『뚱보플러스デブプラス』란 제목이었지만 속편인 『NEW뚱보플러스NEWデブプラス』라는 제목이 아무래도 너무 노골적으로 인기 NDS 타이틀 『러브플러스ラブプラス』를 연상시킨다는 문제가 제기되어 변경되었다. 그러한 송사와는 별개로 작품 자체는 새로운 페티시를 다루는 귀중한 자료다.



파자마 양 안녕パジャマさんこんにちわ



그 외에도 히로인 전원이 요양시설에 거주하는 정신질환자라는 설정의 에뮤emu의 『파자마 양 안녕パジャマさんこんにちわ』(2012)이라든지 거대 곤충과의 상사상애를 그린 사이크Cyc의 충간蟲姦물 『곤충간찰昆蟲姦察』(2012) 같은 작품은 풀프라이스 게임으로선 보기 힘든 과감한 콘셉트였다.

이처럼 에로 게임은, 그리고 성인 미디어는 ‘에로’란 단어 하나가 가리키는 욕망의 무궁무진한 종류를 현시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가령 학원 연애 AVG를 주로 플레이하는 유저와 일루전의 3D 에로 게임을 주로 플레이하는 유저는 똑같은 ‘에로 게임’이란 2어절을 두고 의견을 피력할 때 ‘이 자식 뭐라는 거야’ 하며 어긋날 수 있다. ‘에로 게임’, ‘에로’는 그저 개념어이며 그것이 다양한 욕망의 총화總和임을 기억하고, 서로가 지향하는 욕망이 다를 수 있음을 염두에 두도록 해야 할 것이다. 



숙녀교사는 꿀맛熟女教師は蜜の味



② 숙녀 게임의 대두


로리콘 붐에서 유래한 이래 에로 게임은 ‘소녀’라든지 ‘귀여움’ 같은 속성이 강하게 나타나 왔다. 그러나 색기 있고 농염한 어른 여성 캐릭터 역시 소극적으로나마 이슈가 되어 온 분야다. 1편에서도 말했지만 그 점에서 동급생 시리즈는 중요한 의의가 있다. ‘남자는 로리콘이면서도 마더콘’이란 말을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그 둘은 비중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남성 성애에 늘 동시에 수반한다.

이쪽 분야의 팬에게 10년대 이후는 여러모로 골라먹는 재미가 있는 시기로 이는 현재진행형이다. 루트 단위나 작품 단위로 숙녀가 등장하는 게임을 일일이 찾지 않아도 몇 개의 전문 브랜드가 대두하여 숙녀 게임을 찍어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08년도에 인터하트가 런칭한 숙녀물 브랜드 우이로우소프트ういろうソフト가 눈에 띈다. 또, 아내가 외간 남자와 도피하는 바람에 장모와 살게 된다든지 낳은 어머니와 키운 어머니 사이에서 딜레마에 빠지는 등 참신한 콘셉트가 일품인 카틀레야カトレヤ도 있다. 우레센熟れ専(숙녀 전문)이란 믿음직스런 이름의 브랜드는 숙녀 교감 선생이 외로움에 빠진 소년을 위로하는 사이 이끌리고 마는 『숙녀교사는 꿀맛熟女教師は蜜の味』(2008)이 수작으로 꼽힌다.



친척 아줌마~동떨어진 숙녀, 본가의 후처~親戚の小母さん∼離れの熟女、本家の後妻∼



그리고 이미 앞에서 여러 번 등장했지만 숙녀 계열의 대표 주자 하면 Guilty 계열을 빼놓을 수 없다. 원래부터 관능소설가 키라 히카루綺羅光의 시나리오를 에로 게임으로 옮긴다든지 숙녀 에로 만화 베테랑 쿠사츠 테루뇨草津てるにょ를 원화가로 기용하여 작품을 내는 등 ‘뭘 좀 아는’ 메이커로 이후 다운로드 판매 전용 부문 Guilty+를 세워 기세가 더해졌다. 06년도에 『친척 아줌마~동떨어진 숙녀, 본가의 후처~親戚の小母さん∼離れの熟女、本家の後妻∼』를 시작으로 수많은 숙녀물을 출시했는데, 추천작으로는 대학생 청년과 학생식당 아줌마가 관계를 맺었는데 알고 보니 생이별한 모자였고, 그럼에도 더욱 달콤한 배덕에 빠져드는 『학생식당 아줌마~엄마 즙의 맛~学食のおばさん∼母さんの汁の味∼』(2007)과, 위에서 소개한 도시락 가게 아줌마 & 기모노 입은 미망인의 왕성한 성욕에 압도당하는 『소꿉친구 아줌마~돌싱 숙녀와 음란 미망인~馴染みのオバちゃん 〜バツイチ熟女と淫乱未亡人〜』(2010)이 있다. 소꿉친구 아줌마의 경우 히로인 평균 연령이 41.5세다. 또 계열 브랜드의 숙녀 게임 『이발소 아줌마~언덕 위의 이발사~床屋のおばちゃん〜丘の上のバーバー〜』(2012)는 장르를 ‘해안가 사투리 숙녀와 방언 섹스 ADV’라 자칭하고 있으며 이발소 여주인(42세)과 해녀인 친척 아줌마(35세)와 썸을 타는 내용으로 플레이할 만하다.

첨언하자면 숙녀 게임은 대부분 실사 극화체의 양상을 띤다. 하지만 아틀리에 카구야 BY팀 등 만화 데포르메 원화의 숙녀 게임도 찾으면 얼마든지 있으니 취향 따라 골라 드시길. 



③ DL 판매


많은 경우 틈새 장르 작품은 유통이나 사후처리가 용이하게 저가 DL 판매나 패키지와 DL 동시발매 형태를 취한다. 후자의 경우 DL판이 당연히 더 저렴하다.

00년대에 걸쳐 인터넷의 상시 접속・고속 회선의 일반 보급에 따라 물리적인 패키지를 구입하지 않고 집에서 데이터만으로 이루어진 DL 게임을 구입・설치・플레이할 수 있게 되었고, 이에 따라 에로 게임의 체험이 보다 용이해졌다. 머지않아 실물로 에로 게임을 산 적이 없는 세대의 비율이 늘어날 것이다.

이는 또한 가게에 방문한다든지 통신 판매를 통해 패키지를 받는다든지 하는 ‘흥미를 가진다→산다’의 중간 의사 결정을 압도적으로 단축시켰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게다가 DL 판매하는 소프트는 용량은 1GB 남짓에 가격대는 2~3천 엔 선이다. 히로인 수도 루트 수도 적은 간결한 중단편 타이틀이 많아 하나를 클리어하면 곧바로 다음으로 넘어가기도 용이하다. (메이커에 따라 제작비의 한계로 그런 형태를 취하는 경우도 많긴 하다.) 또 앞서도 말했지만 작품이 축적된 메이커가 옛날 타이틀의 리뉴얼판을 DL로 내놓는 경우도 종종 있다.

또 디지털 동인계까지 시야를 넓혀 보면 (단편이란 형태에선)상업 게임 수준의 양질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고, 혹은 상업 쪽 경험이 있는 프로가 개인 제작한 작품도 많다. 동인이면서 프로 출신 인재들을 끌어들여 제작한 경우도 종종 있다. 이런 식으로 저가 상업게임과 동인 게임의 외연이 겹쳐 겉으로 드러나는 경계가 옅어지고 있다. 어느 쪽이든 마찬가지로 DL 사이트에서 똑같은 의사결정을 통해 구매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대마인 아사기対魔忍アサギ



④ 염가 단편 타이틀 노선의 리리스リリス와 Norn


저예산, 저가, 저볼륨 DL판을 중심으로 게임을 제작・판매하는 대표적인 메이커 두 곳을 소개한다.

우선 리리스リリスlilith과 계열 레이블들이 있다. 하드 능욕 노선으로 양산해오고 있는 인기 메이커로 근미래 분위기의 여닌자를 모티프로 한 전투 히로인 이종간異種姦물 『대마인 아사기対魔忍アサギ』부터 시작하는 대마인 시리즈를 간판으로 내세우고 있다. 이 시리즈 외에 우주전함 안에서 여자 군인을 최면 조교하는 『감옥전함監獄戦艦』 시리즈 등 리리스의 주요 작품들은 성인 비디오 제작・판매 레이블 픽시Pixy에서 활발하게 18금 OVA로 만들어져 왔다. 이에 따라 팬들은 리리스의 신작이 인기를 끌면 금방 애니메이션화가 될 거라고 자연스럽게 기대하게 되었다. 대마인과 감옥전함의 감독이 제복처녀制服処女, 흑애黒愛, 야근병동 시리즈의 무라카미 테루아키むらかみてるあき라는 점도 무시할 수 없는 판촉 요소이다.

리리스의 인기작들의 원화를 담당한 카가미カガミ가 그리는 히로인은 들어갈 덴 홀쭉 들어갔으면서도 나올 덴 빵빵하게 나온 발군의 비율이 매력적이며, 특유의 날카로운 눈매가 더해져 기가 세고 자존심이 강한 인상의 캐릭터가 능욕 신에서 무참히 유린당하는 모습은 보고 있으면 등골이 짜릿해진다. 그러한 비주얼의 호평에 힘입어 07년도에는 대마인, 감옥전함 양 시리즈에서 관여한 그림을 정리한 풀 컬러 화집 『nuye / ヌイェ』가 발매되었다.



사역마 님은 마계 공주 ~착각하지 마! 안에 싸는 건 그저 마력공급이야!!~使い魔様は魔界プリンセス 〜勘違いするな! 中に出すのはただの魔力補給だ!!〜



다음은 Norn을 살펴보자. 이 메이커의 작품 경향으로는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타락물 전개에서 등장하는 여신이나 꼬마 악마 등이 모종의 이유로 정액이나 임신을 필요로 하여 주인공이 그를 제공하면서 점점 서로 정분이 나는 경우와, 집안의 여성과 꽁냥거리는 경우가 있다. 그러한 큰 틀에서 히로인의 입장이나 설정을 매번 색다르게 바꾸어 바리에이션을 늘리는 것이다.

그렇게 나온 무수한 타이틀 중 극히 일부만 나열해 보자면,


『사역마 님은 마계 공주 ~착각하지 마! 안에 싸는 건 그저 마력공급이야!!~使い魔様は魔界プリンセス 〜勘違いするな! 中に出すのはただの魔力補給だ!!〜』

『순진 말랑가슴 여신 플로라・달콤 에로 신혼 아기 만들기 라이프 ~누나의 자궁에 마음껏 싸도 된답니다♪~天然やわちち女神フローラ・甘エロ新婚子作りライフ 〜お姉さんの子宮に、好きなだけ注いでもいいのですわよ♪〜』 

『검술 소녀 이즈미 레이와 무인도 ~가문의 법도다… 너와 힘껏 아이 만들기를 해주겠다~剣術少女和泉令と無人島 〜お家の掟だ…お前と子作りに励んでやる〜』

『군인 소녀의 아이 만들기 임무 ~파렴치하다! …윽, 상관 명령이라면… 당신의 정자로 자궁을 쏘아 맞혀 주세요!~軍人少女の子作り任務 〜ハレンチな! …う、上官命令なら…貴方の精子で子宮を撃ち抜いてください!〜』

『돌봐주기 좋아하는 틱틱거리는 소꿉친구를 달콤 코스프레 아이 만들기로 에로 헬렐레하게! ~정말, 변태! …하지만 정말 좋아해… 임신시켜 달라고!~世話好きツンツン幼馴染をコス甘子作りでエロデレに! 〜もう、変態! …でも大好き…孕ませてよね!〜』


이런 식으로 히로인의 이름이나 속성 + 상황이나 관계성을 나타내는 히로인 자신의 독백으로 구성된 제목은 매우 쉽게 내용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실키즈의 07년도 걸작 『공주기사 안젤리카 ~당신은 정말 최악의 쓰레기여요!~ 姫騎士アンジェリカ 〜あなたって、本当に最低の屑だわ!〜』에서 영향을 받은 티가 물씬 나는 작명법이다만 초기작 『사역마 님은 마계 공주~』의 발매는 안젤리카보다 두 달 정도밖에 늦지 않아 영향 관계를 단정할 순 없다. 어쨌든 Norn은 실키즈와 마찬가지로 이런 작명을 콘셉트로 잡은 주도적인 역할을 한 메이커임은 확실하다.

설명적, 혹은 문장형 제목은 에로 게임처럼 시장이 포화되어 같은 계통의 작품들이 대량으로 쏟아지는 미디어 분야에선 충분히 나올 수 있는 경향이다. 시장의 포화가 이유는 아니지만 로빈슨 크루소의 더럽게 긴 원제(조난을 당해 모든 선원이 사망하고 자신은 아메리카 대륙 오리노코 강 가까운 무인도 해변에서 28년 동안 홀로 살다 마침내 기적적으로 해적선에 구출된 요크 출신 뱃사람 로빈슨 크루소가 그려낸 자신의 생애와 기이하고도 놀라운 모험 이야기The Life and Strange Surprizing Adventures of Robinson Crusoe, Of York, Mariner: Who lived Eight and Twenty Years, all alone in an un-inhabited Island on the Coast of America, near the Mouth of the Great River of Oroonoque; Having been cast on Shore by Shipwreck, wherein all the Men perished but himself. With An Account how he was at last as strangely deliver'd by Pyrates.) 역시 궁극적으로 판촉 목적이었음을 생각하면 돌고 도는 역사라 할 수 있다. 일단 이목을 끌 수 있고, 그게 아니라도 문장형 제목을 선호하는 시장의 니즈에 부응한 결과이기도 하다. 달리 말하면 시장통에서 ‘야겜이 왔어요, 싱싱한 야겜이 왔어요’ 하고 소리치는 효과라고도 할 수 있다.

에로 게임보다 조금 앞서 이를 실천해 온 분야라면 단연 성인 비디오 업계다. 제목만으로 표지를 다 채울 기세인 사례가 종종 나타나는데, 한 가지만 예를 들어보자.


『아버지가 갑자기 재혼해서 우리 집에 들어온 상대편 딸이, 학교에서 제일 미인이라는 평판에 누구나가 동경하는 우리 반 담임이자 학교의 마돈나. 지금까지는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미인 선생과 한 지붕 아래 동거. 게다가 갑자기 생긴 의붓누나의 폭넓은 교우관계 덕분에 야한 경험도 할 수 있고, 누나라곤 해도 피가 이어지지 않았으니까… 父親がいきなり再婚して我が家にやって来た連れ子は、学校で1番美人と評判の誰もが憧れるボクのクラスの担任のマドンナ先生。今までは眺める事しかできなかった美人先生とひとつ屋根の下で同居。しかも急にできた義理の姉の広い交友関係のおかげでエッチな思いもできるし、姉とはいえ血のつながりがないから・・・』 - SOD(Soft On Demand) 출시, 2010년


일본어 기준 155자라니 장난이 아니다. 더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할까. 이즈음 라이트노벨에서도 문장형 제목이 속속들이 나타나 현재진행형이다만, 과연 처음으로 100자가 넘어가는 제목은 뭘까 두근거린다.



⑤ 도쿄도 청소년의 건전한 육성에 관한 조례의 개정


1960년대에 도쿄에서 만들어진 청소년의 육성・보호를 위한 조례(도쿄도 청소년의 건전한 육성에 관한 조례東京都青少年の健全な育成に関する条例)가 2010년, 통과 후 역대 최대의 개정을 이루었다. 그 중 성인 매체의 자주 규제를 요구하는 항이 있는데, 픽션 작품 내 미성년자를 연상케 하는 캐릭터에 성행위를 시키는 것까지 포함한 데에 출판사나 게임업계가 반발하여 이른바 ‘비실재 청소년’ 문제가 불거졌다.

개정 부분에는 ‘단순 소지의 규제’라는 조례의 수위를 넘어선 요소가 있다든지, 게임・애니메이션・만화는 대상에 포함하지만 소설은 시각적으로 흥분시키지 않으므로 제외한다든지, 그러한 기본적인 부분에서 의문의 목소리가 거세게 들고 일어났으며, 결과적으로 이 개정안은 6월에 부결되었다. 이후 11월에 제출된 개정안에선 비실재청소년이란 문구가 삭제되었으며 이 안이 가결되었다.



WHITE ALBUM 2



⑥ 2부 구성으로 발매된 『WHITE ALBUM 2』


화이트 앨범 2는 앞서 소개한 마루토 후미아키가 Leaf에 직접 기획안을 들고 가 제작을 감행한 타이틀이다. 90년대 말의 명작 화이트 앨범의 이름을 이어받아 등장인물을 일신시킨 작품이다. 10년도 3월에 서장introductory chapter, 11년도 2월에 종장closing chapter으로 분할하여 발매하였는데, 바람이나 삼각관계를 다룬 에로 게임으로서는 최고 수준이라 말해도 무방하다. 떳떳하지 못함과 애처로움의 숫돌로 인물들의 마음의 윤곽을 박박 벗겨내는 전개와 감정 묘사는 러브코미디의 강자 후미아키가 제일 잘 하는 특기 분야로서 이 작품에서 정점을 찍는다.



시원찮은 그녀의 육성방법冴えない彼女の育てかた



이후 후미아키는 11년도부터 후지미 판타지아 문고에서 라이트노벨 『시원찮은 그녀의 육성방법冴えない彼女の育てかた』을 연재하고 이것이 TVA화됨에 따라 일반 계열에도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세키라라se・きらら



⑦ 무료 에로 게임의 출현


판매품으로서의 에로 게임의 존재 양식의 근저에 파문을 일으킨 시도가 있다. 10년도 3월 26일, 피규어 제작을 주 분야로 하는 맥스팩토리マックスファクトリー의 브랜드 native에서 무료 배포 에로 게임 『세키라라se・きらら』가 발매되었다. 자세히 말하자면 ‘게임 본편만이라면 무료 / 피규어 동봉 한정판은 2800엔’이라는 사실상 에로 게임을 개평 취급하는 형태였다. 이는 전례 없는 일이었다. DVD 매체의 유통은 얼마 안 되고, 기본적으로는 인터넷상의 다운로드를 통해 입수되었다. 그리고 이 게임은 처음 세 달 만에 10만 다운로드를 달성했다. (그 세 달 동안 저작권상의 문제가 불거져 배포를 일시 중단, 화상을 교체해 재개하는 일이 있었기에 실질적으로 달성 속도는 더욱 빠르다)

관련 주제를 더 파고들자면, 과거의 기존 작품을 프리웨어로 돌린 차원까지 포함하면 06년도 앨리스가 무료 배포한 『자매악마しまいま。』가 있다. 이 게임은 본래 04년도에 종합 패키지 『앨리스의 관7ALICEの館7』에 수록된 작품이다.



초약진! 대일본학원전국기超躍進!大日本学園戦国記



또 기본적으로 무료인 브라우저 게임에 에로 게임 메이커가 참전한 형태로는 피스소프트PeasSoft가 주최하여 타 5개 메이커(하이쿠오 소프트ハイクオソフト, 스미SMEE, 유즈소프트ゆずソフト, 후크HOOK, 아리에스Aries)가 소재 협력으로 협찬한 기간 한정 이벤트 작품 『에로 게임 대전エロゲ対戦』 시리즈와, 동 메이커가 마찬가지로 기본 무료로 공개한 복수 플레이어 참가 SLG 『초약진! 대일본학원전국기超躍進!大日本学園戦国記』(2013)가 있다. 후자는 엄연히 에로 신이 있는 에로 게임이다. 



순결☆여신님! “씨를 뿌려 주세요, 서방님!”純潔☆女神さまっ!「種付けしてください、ダンナさまっ!」



⑧ 임신 게임孕ませゲー


11년 2월 루네ルネ는 『순결☆여신님! “씨를 뿌려 주세요, 서방님!”純潔☆女神さまっ!「種付けしてください、ダンナさまっ!」』를 발매한다. 고대 인도부터 바빌로니아, 그리스까지 다양한 전승의 여신들과 맺어져, 임신시키고 배를 빵빵하게 만드는 플레이에서 더욱 나아가 태어난 딸들까지 판타지 설정으로 빠르게 성장시켜 복수 그룹의 모녀덮밥 하렘을 형성하는 것이 이 게임의 특징이다. 임신 플레이도, 모녀 덮밥도 기존에 있었지만 둘을 합쳐서 이런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걸 보여준 셈이다.



이것 봐! 카구야 히메おーい! かぐや姫



에로 게임에서 임신에 따른 배 빵빵 묘사를 선보인 예는 아주 오래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에로 화상만 따지면 PC88 시절 슈팅 게임 『이것 봐! 카구야 히메おーい! かぐや姫』(1979)가 있다. 그런 단발 사례를 제외하고 에로 게임계의 실질적인 장본인은 1편에서 소개한 오버플로우의 『라지퐁퐁ら〜じ・PonPon』(1999)이다. 물론 에로 만화에서 임신 묘사를 에로 묘사의 일환으로 심화시키며 서로 절차탁마해 온 사실도 간과할 수 없다.

애당초 페티시에 호소하는 유형의 포르노 미디어는 어떻게든 생리적인 감각에 기반을 두므로, 완성도의 좋고 나쁨을 평가하기 이전에 ‘좋아할만한 걸 좋아하는데 어쩌겠어’ ‘아니 그래도 이건 위험하지’ ‘도저히 공존할 수 없네’ 식으로 개인차가 쉽게 나타난다. 특히 임신을 엮은 시추에이션은 역시 아기라는 제3자가 따라오므로 여성뿐 아니라 남성 사이에서도 호불호의 장벽이 높다. 라지퐁퐁 역시 히로인의 배가 부르지 않은 차분差分 그래픽을 선택할 수 있었는데 그러한 부분을 존중해 준 결과일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봤듯 삼십 년에 달하는 남성향 에로 게임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벗긴다 → 섹스한다 → 질내사정한다 → 임신시킨다 …식으로, ‘히로인과 진정으로 이어졌다’는 조건 지음의 임계치가 점점 올라가는 흐름을 탄다는 건, (취향이나 윤리적 고찰과는 별개로) 하나의 명백한 현상으로 간주해야 할 것이다.

『순결☆여신님!』은 그러한 흐름에서 더욱 한 발 나아가, 히로인에게서 태어난 아이까지 편입시키는 단계까지 다다른다. 이런 식으로 어디까지 에스컬레이트할지 상상하면, 흠, 불로불사로 자자손손 대대로 영구순환 근친 월드를 펼치는 판타지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왈큐레 로만체 소녀기사 이야기ワルキューレロマンツェ 少女騎士物語



⑨ 게임 속 전투소녀들 ~갑주 히로인들~


에로 게임뿐 아니라 상업 픽션 작품이란 각각 개성을 지닌 개별 개체이므로 결코 태그를 붙여 분류하면 다 되는 게 아니다. 하지만 그건 원론적인 이야기고, 장르란 구조를 띠고 있는 이상 종종 비슷한 타이밍에 커다란 공통항을 가진 작품들이 집중적으로 나오는 경우가 있다.

2011년의 경우 예를 들어 실키즈 특유의 음어가 난무하는 엘프 조교 SLG의 재래 『공주기사 올리비아 ~변태, 이 변태남! 조금은 부끄러운 줄 아세요!~姫騎士オリヴィア∼へ、変態、この変態男! 少しは恥を知りなさい!∼』(8월), 기사 육성 학교를 무대로 한 아카베소프트2의 『연기사恋騎士 Purely☆Kiss』(9월), 마상 창 겨루기에 도전하는 소녀를 보좌하는 주인공을 그린 리코타의 『왈큐레 로만체 소녀기사 이야기ワルキューレロマンツェ 少女騎士物語』(10월) 식으로 갑주를 두른 히로인을 전면에 내세운 작품이 세 달 연속으로 발매된 게 눈에 띈다. 게다가 연기사와 왈큐레 로만체는 당초 동일 날짜에 발매 예정이었으니 어떤 경합이 일어났을지 상상해 보는 것도 재미있다.



왈큐레의 모험ワルキューレの冒険



갑주 히로인은 여전사와는 다른 맥락에서 옛날부터 인기를 끈 조형이다. 이미지를 생각하면 아마 잔 다르크의 모습 등이 근저에 있을 것이고, 그에 근거한 격투 게임이나 RPG의 갑주 히로인, 또 북유럽 신화의 발키리 전설도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

발키리. 전사의 혼을 천상의 궁전 발할라로 인도한다는 전처녀戦乙女. 실제로 일반 계열이든 에로 게임이든 이에 해당하는 캐릭터는 종종 있는데, 그 정숙함과 농염함으로 여전히 견고한 팬층을 보유하고 있다. 폭이 넓어진 계기는 패미콤 시절 남코의 액션 RPG 『왈큐레의 모험ワルキューレの冒険』(1986) 그리고 PS 시절 에닉스의 액션 RPG 『발키리 프로파일ヴァルキリープロファイル』(1999)의 공이 컸다. 신화물은 원 저자란 게 없는 관계로 에로 게임에서 비교적 거리낌 없이 욕망의 항아리로 쓰인다. 예를 들면 04년에 루네에서 발매한 『전처녀 발키리 “당신에게 모든 걸 바칩니다”戦乙女ヴァルキリー「あなたに全てを捧げます」』는 발키리 프로파일을 즐기던 성인(및 미성년) 플레이어의 고간을 사로잡은 걸작이다. 사로잡힌 기가 드센 전처녀를 능욕 조교하여 지상과 천상을 침공하는 발판으로 삼는다는 멋진 내용이다.



전처녀 발키리 “당신에게 모든 걸 바칩니다”戦乙女ヴァルキリー「あなたに全てを捧げます」



한 가지 재밌는 점은 신화의 등장인물을 근본으로 하는지라 같은 계통의 작품을 수많은 메이커에서 내놓아도 히로인의 이름은 발키리/왈큐레로 공통이라는 것. 이들이 이어져 에로 이미지의 장이 한층 강화되는 장르의 연계가 존재한다. 그런 의미에선 전국시대 무장의 TS물과 똑같은 성질을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앞서 여전사와 갑주 히로인이 다른 맥락을 갖고 있다고 말했는데, 전자가 히로인의 육체의 강함과 늠름함을 어떤 식으로든 꺾는 걸 중시하는 에로라면 후자는 드센 기 = 정신적 견고함을 어떤 식으로든 꺾는 걸 중시하는 에로로 이때 갑주는 이른바 마음의 장벽의 상징으로 플레이어의 인상에 각인된다. 그래서 여전사에 비해 여기사는 노출도가 낮아지기 쉽다, 굳이 말하면 낮아도 상관없는 편이려나.



피버 걸즈 ⅠフィーバーガールズⅠ



⑩ 에로 게임과 파칭코・파칭코 슬롯머신パチスロ ~포상 화상畫像의 아종~


야구권 소프트나 탈의마작 붐도 사그라지고 오랜 세월이 지나, 에로 게임에서 그래픽 대부분이 격한 에로 신으로 점철되었거나 혹은 거꾸로 대부분이 에로 신이 아닌 작품이 공존하는 시대에 이르자, ‘포상’이란 문구나 감각이 생겨나기 힘들게 되었다. 그러나 조금만 시선을 돌려 보면 의외인 곳에서 한때 있었던 포상 감각과 비슷한 맥락을 찾을 수 있다. 바로 파칭코 슬롯머신의 연출 그래픽이다.

파칭코 슬롯머신, 이른바 파치스로란 구슬을 넣고 추첨하여 당첨되면 일정량의 구슬이 나오는 과정의 반복인데, 손님을 질리게 하지 않고자 수십 년 간 업계는 다양한 연출을 궁리해 왔다. 지금에 이르러선 고해상도 액정 화면을 이용, 번지르르한 그래픽을 출력할 수도 있어서, 잭팟 등이 터졌을 때 평소의 고만고만한 성과에선 볼 수 없는 희소성 높은 그래픽을 팟 하고 띄워 기분을 고조시킨다. 이때 손님의 이목을 보다 집중시키고자 선정성을 강조한 화상이나 영상을 탑재한 기종도 있다.

특히 이즈음에는 모에 파칭코・모에 슬롯을 표방하는 2차원 히로인을 전면에 내세운 기종이 등장, 지금까지도 흥행하고 있다. 벗지만 않았지 거의 야애니의 한 장면을 방불케 하는 화상을 도입하는 수법이 종종 사용되었는데, 미소녀 캐릭터가 막대 모양의 무언가를 입에 머금고 있다든지 액체를 뒤집어쓰고 있다든지 가슴이나 엉덩이를 강조한 자세로 넘어질락 말락 하고 있다든지 등등…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된 파칭코 게임 『전국처녀戦国乙女』 시리즈에서 잭팟에 근접하게 터졌을 때의 연출에서 볼 수 있는 일러스트 컷인의 화풍이나 구도는 조금 오래된 에로 게임의 그것을 방불케 해서 일부 유저들에게 야겜이라 불리는 건 나름대로 시사하는 바가 있다.

이런 식으로 리비도를 자극하는 연출 화상, 그 중에서도 상질의 것이 표시된 순간의 흥분, 이는 그야말로 ‘포상’ 화상을 보는 체감의 아종과도 같다고 할 수 있다.

거슬러 올라가 2차원 모티프로 선정적인 요소를 내세운 파칭코 기종의 오래된 예를 찾아보자면 우선 SANKYO의 『피버 걸즈 ⅠフィーバーガールズⅠ』(1993)이 있다. M&M에서 발매한 『오타쿠의 별자리おたくの星座 AN ADVENTURE IN THE OTAKU GALAXY』(1991)에 등장하는 우주 레벨의 아이돌 5인방 오로라 소녀オーロラ娘를 내세운 파칭코 머신으로 ‘게임 판권 및 미소녀 캐릭터 중시 타이업 기종’이란 점에서는 아마 최고最古가 아닐까.

00년대에 들어서면 01년도의 『CR히토미의 조리교실2CRひとみの料理教室2』가 대표적이다. 기판에 알몸 앞치마의 애니메이션 그림체 소녀 캐릭터가 그려진 단순한 구조다. 그리고 다름아닌 에로 게임과 파칭코의 타이업 사례도 이때부터 나타나는데, 03년도의 『연희恋姫』 파칭코판을 시작으로 슬롯머신 야근병동, 진 연희무쌍, 천공의 심포니아, 피아캐롯 G.O. 등 현재까지 종종 에로 게임 또는 에로 게임 원작 애니메이션 판권물이 등장하고 있다. 파칭코 게임 관련으로는 투하트2, 쓰르라미 울 적에도 슬롯머신화가 이루어졌음을 짚고 넘어간다. 또 포상 하면 탈의마작인데, 09년도에는 대표 격인 『슈퍼 리얼 마작スーパーリアル麻雀』이 슬롯머신화가 되었다.



CR남국마작CR南国麻雀



오리지널 파칭코 기종에서 2차원 히로인이 마작을 치는 모습을 소재로 한 것도 있는데 『CR남국마작CR南国麻雀』(2011), 『CR마작 이야기 ~아리따운 텐파이 처녀~CR麻雀物語 ∼麗しのテンパイ乙女∼』(2011) 등은 연출 화상에서 에로를 중시해, 탈의 마작의 포상 화상 구도를 도입하고 있다.



파칭코 섹시 리액션パチンコセクシーリアクション



거꾸로 파칭코를 소재로 한 게임도 있다. 해커 인터내셔널ハッカーインターナショナル의 『CD미소녀 파칭코 ~구마 네자매~CD美少女パチンコ∼球魔四姉妹~』라든지 사미Sammy의 탈의 파칭코 게임 『파칭코 섹시 리액션パチンコセクシーリアクション』(1998) 등이 그러하다. 파칭코와 PC 게임은 생각보다 오래 전부터 서로의 영역을 넘나들고 있었다. 그 사이를 ‘포상’ 화상이 이어주었고,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파칭코 쪽에 맡겨졌다고도 볼 수 있겠다.



Tech48



⑪ 연동하는 에로 게임


비주얼 노벨 붐을 경유한다든지 고도의 연출을 선보인다든지 하며 에로 게임의 화면은 양상을 바꾸어갔다. 한편 10년대 이후에는 화면 안과 밖의 연결 역시 극적인 도전이 시도된 바 있다.

예를 들면 PC에 연결하는 웹 카메라와 연동하는 에로 게임이 있다. 성질 상 3D CG 에로 게임 분야에서 시범되었고, 사례로는 우선 TEATIME의 『Tech48』(2009)이 있다. 웹 카메라를 이용한 각도 인식 기능을 탑재했으며 유저가 몸의 위치나 시선을 바꾸면 화면이 이를 계산하여 실제를 방불케 하는 앵글로 화상을 출력한다. 즉 히로인이 우뚝 서 있는데 모니터를 밑에서 올려다보면 치마 속을 볼 수 있다는 것. 이게 바로 밀레니엄이다.



리얼 여자친구リアル彼女



일루전의 『리얼 여자친구リアル彼女』(2010)는 웹 카메라로 플레이어의 얼굴 움직임을 식별, 히로인의 말이나 행동에 플레이어가 끄덕인다든지 하면 그 동작에 대응하여 히로인이 반응하는 커뮤니케이션 기능을 탑재하고 있다. 또 3D 안경과 연동하는 옵션이 있어 최근의 VR 수준의 3D 플레이를 즐길 수 있다.



USB오나홀과 3D 커스텀 소녀USBオナホールと3Dカスタム少女



오나홀과 연동하는 에로 게임도 있다. 앞서 90년대에 몇몇 선조격 에로 게임은 프린터 단자에 연결하는 오나홀 IKU(일체 쾌감 유닛, Ittai Kaikan Unit의 약자)가 대응된 바 있다. 10년대 전후로는 오버플로우의 『CROSS DAYS』(2011)가 USB로 접속하는 자동 수음 장치 ‘SOM’과 연동하며, 테크아츠テックアーツ의 『USB오나홀과 3D 커스텀 소녀USBオナホールと3Dカスタム少女』(2011)는 오나홀에 삽입하면 화면 속 여자아이에게도 삽입이 행해지는 오나홀 컨트롤러 사양으로 기술의 진보를 느끼게 해 준다.



Angel Ring



트위터 연동 에로 게임도 있다. MOONSTONE의 『Angel Ring』(2010)은 공식 사이트에서 배포하는 추가 패치를 설치하면 게임을 플레이하는 족족 곧바로 트위터에 투고할 수도 있고, 해당 플레이 장면에 대해 다른 유저가 투고한 트윗을 게임 상에서 볼 수도 있는, 사실상 실황 플레이가 가능한 타이틀이다. (요즘이야 실황 플레이 같은 건 여러 플랫폼에서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하고 있지만, 십여 년 전에는 획기적인 발상이었다) 개별적으로 설치하여 혼자 즐기는 에로 게임의 풍미와 SNS를 통한 유대감을 양립하는, 나름 공을 들인 장치였다고 할 수 있다.



러브데스555!らぶデス555!



⑫ MMO 에로 게임


MMO. Massive Multiplayer Online. 대규모 다중접속자 온라인 환경. 여기에 RPG를 접목하면 우리가 익히 아는 바람의 나라, 리니지, 디아블로, WOW 같은 게임이 된다. 그리고 10년대부터는 MMO 에로 게임이 속속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기술 측면에서야 구현해도 이상할 게 없지만 아무리 그래도 ‘에로 게임’을 온라인으로 하냐는 생리적 거부감을 예측하면서도, 2010년 티타임은 인터넷 경유 다수 동시 참가 에로 게임 『러브데스555!らぶデス555!』를 발매한다. 이 게임은 유저들끼리 각자 커스터마이즈한 캐릭터를 데려다가 H씬을 찍을 수도 있다. 결과 어떻게 됐느냐, 만나기만 하면 서로 폭력을 행사해 이긴 쪽이 공개된 맵 상에서 상대편 캐릭터를 강간하는 무법지대가 탄생했다. 이거야말로 온라인에서의 폭력성을 입증하는 좋은 사례가 아니었을까.



네트워크 네토라루 남친을 기다리는 그녀ネトワクネトラル カレマチカノジョ



게임 차원에서 NTR을 전면에 내세운 경우도 있다. 마찬가지로 티타임에서 동년 발매한 『네트워크 네토라루 남친을 기다리는 그녀ネトワクネトラル カレマチカノジョ』는 자신의 연인 캐릭터를 작성하여 게임 내 서버에 등록하고, 다른 플레이어가 작성한 히로인을 등장시켜 꼬신다든지, 자신의 히로인이 다른 플레이어에게 불려가 꼬셔진다든지 하는 NT, NTR 시추에이션을 즐기는 스릴 넘치는 게임이다. 자캐랑 한판 뜨고 잠깐 PC에서 벗어나 밥 먹고 나서 2회전 뜰라 치면 그새 다른 놈이 꼬셔서 질펀하게 따먹히고는 돌아와서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 사람에게 갈게요” 라는 말과 함께 차이면 누군가는 빼앗겼다는 분함에 피눈물을 흘리고, 누군가는 흥분을 주체 못하고 아래쪽 눈물을 줄줄 흘릴 것이다.

히로인에게 자유 의지를 부여한다는 측면에서도 일루전 계열은 참 미래지향적인 회사가 아닐까.  



퀸즈 블레이드クィーンズブレイド THE CONQUEST



⑬ 브라우저 에로 게임


현실의 상대방과 상호작용하는 소셜 에로 게임의 측면에서 브라우저 게임 쪽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메이커에서 유래한 작품으로는 위의 ‘무료 에로 게임’ 문단에서 이야기한 PeasSoft의 작품이 있으며, 기존 상업게임에서 유래한 작품으로는 연희무쌍의 브라우저판인 『Web연희몽상恋姫†夢想』을 들 수 있다.

‘섹시하다’고 말할 단계까지 간 작품은 아날로그 대전 게임북 『퀸즈 블레이드クィーンズブレイド』에서 파생된 『퀸즈 블레이드クィーンズブレイド THE CONQUEST』가 있다. 홍보 문구 중 ‘살색 가득한 섹시 브라우저 게임’이었으니 말 다 했다. 게임 진행에 따라 작품 특유의 헐벗은 화상이 컷인으로 출력되는 게 일품이다. 『일기당천一騎当千』의 브라우저 게임도 색기를 쩌렁쩌렁하게 강조한 나머지 유저들 사이에서 ‘폭유쟁패전’이라 불리고 있다.



모에萌えAPP



⑭ 어플리케이션 에로 게임


00년대 종반 무렵부터 종래의 휴대전화나 노트북을 넘어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 등 안드로이드 OS 기반 단말의 시대가 도래했다. 이제는 안드로이드용 어플리케이션과의 연계를 이용한 일처리가 공공, 민간을 막론하고 당연한 듯 행해지고 있으며, 순전히 앱을 제작・판매하는 개인이나 업체도 도처에 널려 있다. 그리고 미소녀 게임 역시 이식 형태로 이에 편승한다.

18금 게임의 이식판을 구입할 수 있는 판매처로는 eroge-market( http://www.eroge-market.com ), M-trix마켓( http://www.m-trix.jp/market/ ), TECH GIAN MARKET( http://www.tgmarket.jp/list.html ) 등이 있다. 그 중 모모게임桃ゲー( http://mgtw.jp/pc/pctop.html )에선 『Canvas2』, 『나뭇잎 사이로 비추는 햇살의 가로수길木漏日の並木道』 등의 F&C 작품들에서 한 작품의 캐릭터 루트나 시나리오 단위로 나누어 판매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23년 11월 현재 상기 사이트 전부 접속 불능)

전연령판을 다수 배포하는 판매처로는 모에萌えAPP( http://moeapp.net/ ), 금단의 걸 게임禁断のギャルゲ─( http://game.pakemania.net/k/kingal/ )이 있다.

메이커 자체 판매로는 비주얼아츠의 비주얼아츠★더욱 SPビジュアルアーツ★MottoSP( http://spv-motto.jp/pc/ )라는 카탈로그 사이트가 있어서 안드로이드용 앱 버전 Kanon, AIR는 물론 비교적 최근에 나온 타이틀들도 배포하고 있다.



우걱우걱 유나쨩モグモグゆなちゃん



이식이 아니라 독자적으로 개발한 앱이 섹시 요소를 포함한 경우도 있다. 『미소녀 함락 핑퐁美少女崩しピンポン』 시리즈는 알카노이드형 앱 게임으로 블록 대신 미소녀들의 옷을 파괴해 나가는 게 플레이 방식이다. 『우걱우걱 유나쨩モグモグゆなちゃん』은 일루전의 2012년작 『내가 주인공俺が主人公』의 관련 앱으로 해당 작품의 히로인들에게 다량의 어묵이나 바나나를 빨리 먹게 해서 그 모습을 감상하는 플레이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렇게만 쓰면 ‘이게 뭔 소리야’ 싶을 텐데, 노골적으로 말하면 유사 펠라티오 감각을 노린 것이다.



모에 시보萌え時報Z



『모에 시보萌え時報Z』는 아이폰・아이패드용 앱으로 귀여운 보이스로 시각을 고지해주는데, 단말기 본체를 흔들면 진동 표시와 함께 색기 넘치는 신음 소리를 낸다. 『토킹 걸즈とーきんがーるずっ!』는 화면 속에 서 있는 경기용 수영복 차림의 여자아이의 몸을 터치하여 소리를 내게 하는 앱으로 이 역시 스마트폰의 기능을 살려 에로 노선을 타는 아이디어가 빛나는 작품이다.

그런데 휴대폰이나 스마트폰처럼 들고 다닐 수 있으며 손바닥 안에 쏙 들어오는 하드웨어로 에로 게임을 플레이하는 건 기존의 콘솔이나 PC, 노트북과 달리 ‘자기가 편한 자세로 에로 게임을 플레이’하는 게 가능하단 점이 크게 작용한다. 노골적으로 말하면 자위하는 자세의 폭이 늘어난단 이야기다. 그런 실용성에선 에로 만화나 소설 같은 서적형 콘텐츠를 따라잡았다고도 할 수 있겠다.



Katawa Shoujo



⑮ 인터내셔널 일본식 에로 게임 「Katawa Shoujo」


일본에서 2D 중심으로 번영해 온 에로 게임 분야, 해외의 실사 중심 포르노 게임 분야, 양자는 여명기인 1980년대부터 한동안은 서로 깊은 영향을 끼치는 관계까진 아니더라도 그럭저럭 지장을 끼치진 않는 상태였다. 그러나 일본 애니메이션이나 만화가 수출되고 거기다 인터넷이 보급되자 해외의 사람들이 일본산 2D 작품의 비주얼을 접할 기회가 현격히 늘어났다(비합법적 경로까지 포함해서). 자연스럽게 '이런 것들'을 '자기들 식'으로 창작하고자 하는 경향도 생겨나게 된다.

일본어에서 말하는 '야하다(엣찌)エッチ'에서 환원된 변태HENTAI 그리고 모에萌え, 귀엽다可愛い의 확장적 번역인 MOE, KAWAII 개념은 당초에는 이국 정서exoticism의 신선미로 수용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그 개념들은 용해되고, 지금에 와서는 일본식 2D 표현 코드를 능숙하게 구사하여 그림을 그리고, 동화動画를 만드는 해외 생산자들이 여러 나라에 있다. 개인으로서, 집단으로서, 심지어 기업으로서 말이다. 그들은 이미 2차 창작 소위 팬아트 뿐 아니라 오리지널 작품까지 만들어내고 있다.

여기서 그 모든 사례를 드는 건 내 능력 밖의 일이므로, 본 문단에선 인디 게임 분야 중에서도 일본풍Japanesque 해외 에로 게임의 유명 사례 작품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2012년 초, 해외 인터넷 상의 유지有志에 따라 기획된 한 편의 18금 동인 프리웨어 게임이 오랜 개발기간을 거쳐 영문 텍스트 기반으로 완성되어 배포된다.

형식은 선택지 분기 비주얼 노벨 연애 AVG. 제목은 일본인이라면 섬찟할 단어로 「Katawa Shoujoかたわ少女」, 한국어로는 장애소녀다.

말할 것도 없이 '장애'라는 단어는 사회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불리함으로 간주되는 육체적•정신적 조건을 지닌 사람들에 대한 멸칭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특히 일본어로 쇼가이障害가 아닌 카타와라고 하면 대부분 차별의 의미가 담긴 용법이다. 그리고 아니나다를까 제목 그대로 본작의 메인 캐릭터 전원은 각각 모종의 장애를 안고 있다.

주인공은 건강에 문제 없이 잘 살고 있다가 어느날 갑자기 몸이 나빠져 심장질환을 통지받은 청년이다. 입원 생활 후 장애인 학습 시설로 전학을 가게 되고, 그곳에서 마찬가지로 신체가 부자유스러운 히로인들을 만나게 되어 관계를 다져나간다.

교통사고로 양 다리를 잃고 현재 의족을 하고 육상에 매진하는 활기찬 소녀.

어릴 적 화재로 우반신에 화상을 입어 얼굴을 포함한 몸 절반에 걸친 흉터가 남은 내성적이고 책을 좋아하는 소녀.

선천적 맹인으로 일본인과 외국인의 혼혈인 금발 벽안의 학급위원.

선천적으로 양팔이 없어 발과 입으로 생활을 영위하며 취미로 그림을 그리는 예술가 기질의 미술부원.

농인으로 입으로 말하지 못해 친구의 수화 통역으로 회화하는 완고하고 드센 학생회 임원.

이상 다섯 명이 개별 루트를 지닌 히로인들이다.

우선 주목할 점은 게임이 제작된 경위 그 자체다. 영어권의 인터넷 화상 게시판(한국으로 따지면 디시인사이드 같은)으로 4chan이란 거물 사이트가 있다. 07년으로 거슬러올라가, 이 게시판에 일본 동인서클 절대소녀絶対少女의 동인지 「Schupen Harinische」(00년 간행)의 보너스 페이지가 번역되어 이미지로 투고된 게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

해당 페이지는 절대소녀의 서클주이자 일러스트레이터 RAITA, 혼죠 라이타本庄雷太가 '이런 게임이 있었으면' 하고 가공의 연애 걸 게임 히로인 다섯 명을 그린 것이었다. 그 설정들은 게시판에서 큰 화제가 되었고, 실제로 '그런' 작품을 만들어보자는 움직임까지 일어났다.

그러나 발상과 실행은 다른 문제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4chan 유저들의 관심은 옅어지고, 진행이 멈추어 끝나기 직전까지 갔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은 인물이 있었다. cpl,crud는 기획을 독자적으로 재구축, 그의 프로듀싱 아래 모인 멤버들과 FOUR Leaf Studio라는 팀을 결성한다. 07년 여름 Katawa Shoujo는 본격적인 개발에 착수했다.

공식 사이트에서 배포하는 플레이어 가이드를 읽어 보면 당시의 고초를 알 수 있다. 일러스트는 호주 거주자, 라이터는 미국 거주자, 프로그래머는 독일 거주자… 이런 식으로 대륙과 대양을 가로질러 십 수 명의 멤버가 전 세계에 흩어져 인터넷을 통해 협력하고 있었다. (이탈과 신규를 거쳐 최종적으로는 이십 명 정도) 그 중 비주얼 노벨 에로 게임을 만들어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림을 그릴 줄 아는 사람은 부족하지, 라이터는 중간에 교통사고가 나 하차하지, 별별 문제가 다 일어났다. 그렇게 제작은 난항을 거듭했다.

그러면서도 09년, 포립 스튜디오는 첫 체험판(15금)을 인터넷에 공개한다. 세계 각국에서 공식 다운로드만 40만 건을 기록하는데, 이는 직전인 08년 후반에 일본어권 블로그를 시작으로 뉴스, 마토메 사이트 등에 Katawa Shoujo를 게재하여 주목도를 올린 것도 한몫했다.

상기 체험판은 새로이 결성된 번역팀에서 다국어화를 시작하여 10년에는 일본어 체험판도 공개되었다. 한편 일 년 후로 예정되어 있던 완전판(18금) 공개는 일정이 연기되어 11년도 1월에야 비로소 영어판이 발매되었다. 이후에도 몇몇 버그에 대한 수정 패치를 내놓는 동시에 프랑스어, 스페인어 등의 다국어화를 개시, 15년도에는 일본어판이 출시된다. 무료 배포 방침에 스크립트 수정을 허용하는 원작자의 도량에 힘입어 얼마 안 있어 국내 아마추어 번역팀에서 한국어 패치 역시 공개하였다.

이렇게 00년도에 일본에서 그려진 동인지의 한 페이지가 보여준 비전이 해외의 2D 서브컬처 유저의 마음에 불을 지펴 게임이 만들어지고, 그것이 15년도에 일본어판으로 나오는 원환이 이루어졌다.


국제적인 제작 체제에서 탄생한 일본식 동인 에로 게임이라는 화제성 외에도 본작을 평가할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다. 애당초 발상이 무단 전제된 스캔본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그건 이 글에서 다루는 논지와는 거리가 멀다. 블로그에서 몇 번이나 언급했듯 나 역시 불법 대패장이 출신이다.

이 게임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역시 소재다.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인디 제작의 세계는 상업작품이라면 기획이 통과되기 어려운 콘셉트라도 비교적 기꺼이 다룬다는 게 강점이다. 단 그만큼 일단 사회 통념에 비추어볼 때 포현의 시비가 갈리기 마련이다.

Katawa Shoujo 역시 일본어권에 체험판이 처음 소개될 당시 우선 제목부터 문제시되었고, 강한 비판을 받았다. 제작측은 이에 대해 ‘카타와’라는 말이 현지에서 멸칭으로 쓰임을 인지하지 못했음을 사죄하였다. 다만 모티프가 된 원본 동인지 시점에서 이미 이 문구가 제목으로 거론되었었다는 점과 게임 개발진 중 모국어가 일본어인 사람이 없었다는 점을 염두에 두더라도, 원어의 뉘앙스를 알면서도 그대로 제목을 밀고나간 건 구미권 인디 개발자의 패기가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저 제목으로 일본어 대응판까지 만들었으니 말이다.

이게 제대로 실감이 나지 않는다면 예시를 들어 보겠다. 어떤 양덕이 Byungshin Sonyeo란 제목으로 게임을 만들고 ‘병신소녀’로 손수 로컬라이징까지 했다고 생각해보자. 인디의 패기 외에 무슨 이유를 댈 수 있을까.





그럼 그런 게임의 내용은 어떨까.

주의해둘 것은 어떤 작품에서 ‘장애인을 소재로 하는 것’, ‘장애인을 성인 계열 작품에 등장시키는 것’, ‘장애인의 성애를 그리는 것’과, 그걸 두고 ‘생산자는 어떤 의도로 이걸 그렸나’ 또는 ‘수용자와 사회에 어떤 반향을 불러일으키는가’ 는 별개로 살필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콘텐츠 생산자는 장애인만이 아니라 사회가 소수에게 부여하는 다양한 속성을 소재로 하는 것 자체를 여지없이 기피하기 마련인데, 그러다보면 당사자가 발로한 표현, 당사자가 허용・지지하는 표현까지 억제되는 본말전도가 일어날 위험이 있다.

같은 맥락에서 장애인이 포르노의 등장인물이 되는 것, 또는 성행위나 연애 행위가 묘사되는 것 역시 그 자체를 여지없이 사양한다면 그 또한 인간으로서 장애인의 당연한 연애와 성애를 터부시하는 게 될 수 있다. 장애인과의 섹스와 연애, 그에 당연히 수반되는 질척한 관계성을 무조건 그들에 대한 ‘선량하고 때 묻지 않은 약자’라는 환상을 전제로 재단하는 폐해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개선해야 할 게 많다.

질문해야 할 것은 장애를 소재로 하느냐의 여부보다는 (지금까지의 글에서 몇 번이고 주목했듯)작품 속 인물들의 신변잡기이다. 본작의 주인공과 몇몇 히로인은 설정 상 흔히 말하는 ‘후천적으로 장애인으로 분류되는 상황은 누구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애당초 완전히 건강한 상태 자체가 일종의 환상이며, 모든 인간의 몸과 마음은 모종의 불합리함이 어딘가 반드시 있으며, 죽지 않는 한 계속 이어지는 선의 농濃과 담淡 어느 한쪽에 지배받는 존재이다. 세상 어디든 상태가 다른 개개의 사람들이 있으며, 사회 제도의 편의상 그들을 분류할 뿐이다.

사람이 있으니 식욕도 성욕도 수면욕도 있다. 우정도 있고 연애도 있고 누구와도 친해지기 힘든 마음의 벽도 있다. 용모가 아름다운 사람도 흉측한 사람도 있다. 친절, 심술, 성실, 교활, 치사함, 비겁, 수없이 많은 성적 취향도 있다. 법을 준수하는 사람도, 범법자도 있다. 그리고 청춘을 구가하며 몸과 마음을 맞부딪치는 소년소녀도 있다.

실제 본작을 플레이해 보면 장애인을 소재로 하고 있으면서도 위와 같은 그저 ‘사람이 사는 세상’의 일상성까지 자연스럽게 그려내고 있는 시나리오를 느낄 수 있다. 장애인이란 소재를 가볍게 그리지 않는 한편 장애 자체만으로 당사자의 인생을 총괄하지도 않는다. 고전 ‘알프스 소녀 하이디’의 등장인물 클라라가 마지막까지 걷지 못하더라도 그 인생의 명암은 본인의 몫이다. 장애는 생활의 조건이지 인생의 의의를 가늠하는 잣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Katawa Shoujo는 극적인 작품이다. 단 그에 기여하는 가장 큰 요소는 생생한 청춘 군상극이라는 데 있지, 장애인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애당초 작품이 만들어진 계기를 생각해보자, 신체적으로 결여된 히로인들의 비주얼에 대한 비결여자들의 페티시즘의 시선이 지대한 역할을 하지 않았는가. 거기다가 일반 남성 대상의 미소녀 히로인 조형의 양식미까지 충족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결여된 미소녀에 대한 애호와 성애’의 논의라면 멀리 갈 것도 없이 종래의 key 작품군의 몇몇 히로인들을 두고 이어져 왔다. 물론 그를 두고 착취적 소비라고 비판할 수도 있겠다.

단 그에 대해 한 마디 하자면, 그러한 페티시즘의 시선 혹은 욕망이 신체적으로 결여된 당사자에게도 있음을 무시할 수는 없지 않은가 하는 재반론도 가능하다. 신체적 결여는 때때로 본의 아닌 질병과 상해에 따른 결과뿐 아니라, 사지를 시작으로 신체의 어느 부위에 심리적인 위화감을 느끼는 사람이 자의로 절단하는 자기결정의 소산인 경우도 있다.

Katawa Shoujo는 누구의 어떤 수요를 충족시키는 게임인가, 그 충족 방식의 시비의 행방은 어디일까? 이러한 질문에서 어떤 입장에 서 있든 일률적인 판단이 아닌 다면적・복층적 함의가 있기를 바란다. 



쿠로이누黒獣



(2) 2010년대부터의 에로 게임 – 2



① 애니메이션화로 존재감을 떨친 『쿠로이누黒獣』


에로 게임을 원작으로 하는 일반 애니메이션의 방영 개수는 해마다 들쑥날쑥하다. 반면 에로 게임을 원작으로 성인용 OVA로 만들어지는 즐딸 중시의 애니메이션들은 비교적 일정하게 공급되고 있다.

원작에 이어 성인용 애니메이션으로 신작이 출시될 때 원작 게임 유저와 성인 애니 시청자는 어느 정도 겹치면서도 한쪽으로 편중된 유저가 적지 않다. 그래서 ‘좋아하는 에로 게임이 애니화되었으니 보자’는 유저뿐 아니라 ‘괜찮은 야애니 떴다! 아, 에로 게임 원작이구나’ 하며 애니 쪽을 먼저 인식하는 사람도 많다. 유입 경로는 이처럼 제각각이다.

여기서 원작 게임의 볼륨이 길다든지 히로인 수가 많다든지 하면 몇 권으로 나누어 시리즈로 발매된다. 작품이 인기를 얻게 되면 그에 따라 장수 콘텐츠의 가능성이 생겨난다. 그리고 그 사이 끌어올려진 지명도가 원작에 피드백되는 상승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다.

『쿠로이누~고귀한 성녀는 백탁에 물든다~黒獣∼気高き聖女は白濁に染まる∼』 역시 그런 식으로 존재감을 발휘한 사례이다. 2010년 4월에 Liquid에서 나온 동명의 게임을 원작으로 하여 12년도 1월과 6월 각각 애니메이션 1,2권이 발매되었으며, 13년도에 3권, 14년도에 4권이 나오며 완결되었다. 15년도에는 블루레이판으로 리뉴얼하여 총 2권으로 출시되었고 그 외에 DVD-BOX판으로도 선보인 바 있다.

쿠로이누는 하이 엘프가 이끄는 다종족 동맹군과 다크 엘프의 여왕이 통솔하는 마물의 군세가 수백 년에 걸쳐 다투는 전란의 대륙을 무대로 한 판타지물이다. ‘쿠로이누’라 불리는 굴강한 용병단이 다크엘프 여왕이 주둔하는 마군의 본거지를 공략한 후 그대로 눌러앉아 용병 대장을 왕으로 하는 새로운 나라를 세워 이번에는 거꾸로 우방이었던 나라들을 침략해 대륙의 패권을 장악해 가는 모습을 그린 기개 넘치는 피카레스크 서사다.

용병왕의 지배에 처한 나라에 존재하는 여자는 모두 타국의 방문객들에게 성 봉사를 행할 의무가 있다. 폭력적이고 학대적인 제도를 사수하는 용병 국가가가 포로로 잡은 히로인들을 미끼로 동맹 측 상류 계급에게 접근하게 하여 서서히 무너뜨리는 일련의 흐름이 작품의 볼거리다. 여신의 환생인 성스러운 엘프, 고고한 다크 엘프 여왕, 청렴한 공주 기사, 신앙심 깊은 일본풍 무녀 등등 고귀함을 뽐내는 히로인들이 처참한 능욕 속에서 타락해가는 비장감을 유념하며 그려낸 원작 게임의 관점에서도 상응하여 평가할 수 있는 작품이다.

애니메이션판은 러닝타임 대부분을 정사 신으로 점철시켜 원작의 흐름을 핀포인트로 재구축하는 탁월한 솜씨를 발휘, 원작의 그래픽과 마찬가지로 육감이 넘치는 여체 묘사에 더해 애니메이션이기에 가능한 역동적인 땀 표현에 기합을 넣어 영상을 제작했다. 활동감을 넘어 ‘폭발적’이라 형용할 수밖에 없는 사정 장면은 한 번쯤 볼만한 가치가 있다.

제작사는 주식회사 에이원씨エイ・ワン・シー의 브랜드로 이제는 꽤 지명도가 높아진 당시 신규 레이블인 마인魔人이다. 단 원래부터 에이원씨 산하 브랜드들은 능욕 계열과 윤간 계열의 다수의 에로 게임을 애니메이션화해 왔으며, 따라서 적재적소의 인재가 맞물려 흥행에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원작 게임 쿠로이누의 경우 그 단려한 비주얼의 공로자인 원화가 히카게 에이지日陰影次도 주목해 두도록 하자. Liquid는 물론 같은 넥스톤 산하 브랜드 Baseson 초기부터 원화나 디렉팅에 관여한 인물로 유명한 작품으로는 연희무쌍 시리즈의 메인 스태프로 참여한 바 있다.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慎太郎



② 도쿄 애니메이션 어워드東京アニメアワード, 우로부치 겐의 비판


국가나 그에 준하는 권력을 지닌 공공자치단체의 움직임과 표현 예술의 관계를 고려하면, 자칫하면 옳고 그름을 구분 짓는 방향… 달리 말하자면 사문난적으로 몰리느냐 마느냐의 문제로 불거지기 쉽다. 이 경우 ‘옳다’는 ‘현 체제, 공동체에 받아들여질 수 있다’ ‘적당히 보아 넘길 수 있다’ 정도의 소극적인 의미로, 자기 평가를 -부터 시작해서 0을 상한선으로 둔다.

그러나 실제로는 높으신 양반들이 어떤 표현물을 민망할 정도로 치켜세우는 즉 +라는 평가를 내리는 상황이 곧잘 발생하며, 그를 거름망 삼아 표현의 문제를 고려하는 지점이 형성되어버리기도 한다.

02년도부터 13년도까지 매년 3월 도쿄 빅사이트에서는 도쿄 국제 애니메이션 페어(약칭 TAF)가 개최되었다. 애니메이션 업계에 해외 바이어를 비롯해 전 세계를 상대로 한 비즈니스의 기회를 촉진하는 기획으로 당시 도쿄도 지사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慎太郎(1999~2012년 재직)의 제안에서 비롯되었다.

굴절이 일어난 건 10년도의 일이었다. 앞서 언급한 도쿄도 청소년의 건전한 육성에 관한 조례의 개정안과 가결이 화근이 되었는데, 애니메이션이나 만화와 같은 시각 계열 2D 창작물 중 미성년으로 간주되는 캐릭터의 성 묘사에 강한 규제를 가한다는 게 개정안의 골자로 이는 철저히 조례를 운용하는 측의 입맛에 맞게 적용될 우려가 있다. 크리에이터, 지식인, 기업 등 해당 업계와 연관된 사람들은 이를 일제히 비판하게 된다.

그리고 당해에도 예정대로 TAF는 열리게 된다. 규제 강화로 업계를 압박하려는 도쿄도가 행사를 주최하고 그 실행위원장은 이시하라 신타로 도지사가 맡았다. 이런 무슨 꿍꿍이인지 모를 촌극에 당시 카도카와 서점, 슈에이사, 쇼가쿠칸 등 주요 출판사가 주축이 된 단체 ‘코믹 10사회コミック10社会’가 맹반발, 참가를 보이콧한다. 애니플렉스 등 영상 계열 기업도 이에 동조했다. 이윽고 출판업계는 TAF에서 분리되는 형태로 대항마 격 이벤트인 애니메이션 콘텐츠 엑스포アニメコンテンツエキスポ(약칭 ACE)를 기획, 개최시기를 똑같이 3월로 하는 험악한 자세를 취했다. 단 동일본 대지진의 여파로 2011년도는 건너뛰고 2012년을 첫 개최연도로 정했다.

이시하라 도지사는 11년 5월 17일 니코니코 동화 생방송 채널에서 송출된 타하라 소이치로田原総一朗와의 대담 토론에서 ACE 2011의 중지를 두고 ‘꼴좋다’며 도발적인 발언과 함께 조례의 정당성을 거듭 주장했다.

그리고 이런 와중에 12년도에 상징적인 사건이 일어난다. TAF는 매해 뛰어난 작품과 크리에이터를 시상하는 도쿄 애니메이션 어워드를 열었는데, 12년도에는 지난 해 대히트한 마법소녀 마도카 마기카 약칭 마마마가 TV 부문의 우수작품상, 개인 부문의 감독상과 각본상을 수상했다. 마마마의 각본가가 누군가? 그렇다, 팬텀 오브 인페르노, 귀곡가, 사야의 노래의 우로부치 겐이다. 에로 게임으로 업계에 데뷔해 꾸준히 에로 게임 시나리오를 써 온 우로부치에게 도쿄도에서 상을 준 것이다.

당시 우로부치의 트위터 발언을 읽어보자.


도쿄도에서 애니메이션 각본가로서의 나를 대대적으로 칭찬해준다고 한다. 그렇지만 불합리한 조례로 표현의 자유를 위협하는 사람들에게 “님 작품 쩌네요!” 란 말을 듣고 순순히 기뻐해도 될지 매우 고민 중이다. 내가 마음대로 사퇴할 수 있는 상도 아닌 것 같고, 고지까지 받아버렸으니. - 2012년 2월 16일, 우로부치 겐 트위터


그러나 이를 도쿄도에 메시지를 전할 기회라 긍정적으로 생각한 우로부치는 이어서 트위터에서 의견을 수집, 애니메이션 어워드의 기념 소책자에 실릴 수상 소감의 아이디어를 짰다. 그리하여 나온 결과물은 다음과 같다.


이번 수상을 매우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결벽함을 옳은 것으로 간주하는 사회에서는 흙탕물로도 보일 수 있는 성인 게임 업계입니다만 그곳에서 배양된 감성이 있었기에 본작의 각본은 성립되었습니다. 저를 호평해주신 모든 분들은 흙탕물의 양분이 있어서 비로소 연꽃은 피어난다는 사실을 이해해주셨다는 사실에 다시금 기쁨을 느낍니다.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가 반석 위에 있음을 믿는 모든 표현하는 사람들이 거리낌 없이 창작의 날개를 펼칠 수 있는 사회의 실현을 바라 마지않습니다. 


수상을 거부하지 않고 시비조로 대응하지도 않고 최대한의 풍자를 보여준 촌철살인의 소감이었다.

12년, 13년도에 병행하여 열린 TAF와 ACE는 이시하라 도지사의 퇴임(2012년 10월)도 있어서 14년도에는 도쿄도가 개입하지 않는 민간 주최 형식으로 양자가 통합된 AnimeJapan이란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다. 마찬가지로 도쿄 애니메이션 어워드는 상 자체를 하나의 영화제로 독립시킨 도쿄 애니메이션 어워드 페스티벌, 약칭 TAAF로 14년도부터 재출범했다. 



가정부 미타家政婦のミタ



③ 에로 게임의 끊임없는 패러디성


이전 글들에서 언급했지만 에로 게임이나 넓은 범위에서 성인 작품이 갖는 성분을 크게 나누었을 때 그 중 하나로 소꿉놀이나 의사놀이 같은 흉내 놀이와 통하는 영역이 있다. 흉내 놀이란, 무언가 혹은 누군가 ‘진짜’를 상정하고 그를 흉내 내는 연극적인 유희이다. 이는 시뮬레이션 또는 패러디의 즐거움과도 상통한다.

어느 시대든 일반적인 유명 작품이나 인기 작품을 노골적으로까지 연상시키는 패러디를 포함한 에로 게임이 있었는데, 12년도의 경우 특히나 인상적인 작품이 있었기에 여기서 소개하고자 한다.

11년 10~12월에 걸쳐 니혼테레비日本テレビ에서 매주 수요일 밤에 『가정부 미타家政婦のミタ』라는 드라마가 방영한 바 있다. 초인적이라 할 수준의 가사 스킬을 보유하고 무표정에 희로애락을 일절 드러내지 않는 로봇 같은 슈퍼 가정부 미타 아카리三田灯가 명령을 이행하기 위해서라면 법을 어기는 것도 꺼리지 않는 행동력으로 고용주의 가정을 휘두르면서도, 마지막에는 그 가정의 인연을 재생시키는 모습을 그린 이색적인 가족드라마다. 미타 역의 마츠시마 나나코松嶋菜々子의 발군의 연기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1화에서 19.5%로 시작한 시청률은 이야기가 진행되며 우상향 그래프를 그린 끝에 최종화에서는 40%를 찍어, 21세기에 들어선 이후의 일본 드라마 역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가정부는 보았다家政婦は見た!



‘가정부 미타’라는 제목은 물론 19년도에 별세한 배우 이치하라 에츠코市原悦子의 “실례하겠사옵니다ごめんくださいませ!” 로 유명한 드라마 『가정부는 보았다家政婦は見た!』(1983~2008년 방영, 연속드라마판은 1997년)를 염두에 둔 것이다. 몇 년 후에는 TOKIO의 마츠오카 마사히로松岡昌宏가 여장 가정부를 연기한 『가정부 미타조노家政婦のミタゾノ』(테레비 아사히テレビ朝日, 2016년)도 나왔다. 이렇게 ‘가정부는 보았다!’는 가정부 소재의 패러디의 원천으로서 커다란 영향력을 지닌다.



여고생 가정부는 미타 항문JK家政婦はミタ肛門



12년 7월, 이전 글에서 ‘타나토스의 사랑’으로 소개한 바 있는 레드 레이블レッドレーベル에서 ‘가정부는 보았다’를 패러디한 ‘가정부 미타’를 재차 패러디한 에로 게임을 내놓으니 바로 『여고생 가정부는 미타 항문JK家政婦はミタ肛門』이다. 넉살좋은 그럴듯함으로 웃음을 자아내는 패러디 정신은 그저 시류에 편승했다고 넘기기는 아쉽다. 게다가 당돌하게도 미토 코몬水戸黄門(도쿠가와 미츠쿠니徳川光国의 별칭)으로 섹드립을 치는 예상치 못한 말장난 역시 뒤통수를 얼얼하게 한다.

내용은 역시 마츠시마가 연기한 미타 씨를 모방한 설정이다. 유복한 집에서 자란 청년이 처음 자취를 하게 되며 가사 도우미를 고용하고 이에 나이 어린 소녀 미타 히카리三田ひかり가 가정부로 파견되는 내용이다. 사연 있어 보이고 불가사의한 가정부 미타 양은 업무 명령이라면 어떤 무리한 일이든 담담히 해내며 이에 고용주는 우쭐해져서 음란한 요구까지 연발하고, 그렇게 코스프레부터 옥외 수치 플레이에 게임 제목처럼 항문 계열 성행위까지 감행한다…는 전개다. 사측에서는 인게임 에로 신 9할에 항문 플레이가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절찬리에 판촉 요소로 활용했다.

이 작품은 당시 히트작도 아니었고 호평 받지도 않았지만 몇 번이고 말했듯 넉살좋은 패러디 정신이야말로 에로 게임의 성장 과정에 깊이 관여한 성분이며, 따라서 고금에 이러한 작품이 계속 있어 온 사실은 일종의 상징으로서 기념해 두어야 할 것이다.



그 꽃잎에 입맞춤을 미카엘의 처녀들その花びらにくちづけを ミカエルの乙女たち



④ 백합 게임의 꽃, 상업 계열에 피다


2012년 11월 30일 유린유린ゆりんゆりん에서 『그 꽃잎에 입맞춤을 미카엘의 처녀들その花びらにくちづけを ミカエルの乙女たち』이라는 에로 게임이 발매되었다. 작품 배경은 성 미카엘 여학원이라는 여학교로, 성실한 반장 소녀와 반의 문제아 소녀가 어떠한 계기로 교내 베스트 커플로서 다수의 표를 받게 되어 학원을 대표하는 몇몇 짝 중 하나가 된다. 언제나 싸움이 끊이지 않는 두 사람이었지만 여러 이벤트를 거치며 형태뿐 아니라 마음에서부터 이어져 진정한 연인이 되어 간다…는 내용으로 이른바 백합 게임百合ゲー이다.

본작의 근간에는 후구리야ふぐり屋라는 동인 서클의 활동이 있다. 이 서클이 성 미카엘 여학원을 공통 무대로 소녀간의 연애를 그린 일련의 작품군을 제작했으며 그 제목이 ‘그 꽃잎에 입맞춤을’이다. 06년도의 처녀작을 시작으로 매년 1~3편의 페이스로 제작을 이어 왔고 12년도에 마침내 열한 번째 작품 ‘미카엘의 처녀들’을 계기로 상업 브랜드 유린유린으로 데뷔한 것이다. 동인판에서는 열 번째 작품까지 다섯 쌍의 커플이 차례차례로 주인공을 맡았으며 ‘미카엘~’은 신규 주인공 커플을 내세우면서도 동인판의 주인공들이 모두 등장하는 올스타적인 측면이 있다.


‘그 꽃잎에 입맞춤을’ 시리즈, 넓게 보아 백합 에로 게임의 외연을 파악하자면 ‘애당초’의 범위를 크게 잡을 필요가 있다. 우선 ‘특정 여성 캐릭터끼리 자아내는 농밀하고 특별한 관계성’이라 할 정도의 배후 사정으로서 ‘백합’의 개념을 상정해 두자. 그것이 현재처럼 2차원 분야에서 장르로 고착되기까지 픽션 작품 그 중에서도 에로 게임을 포함한 성인 미디어에서 ‘여자아이×여자아이’의 양상은 어떤 것이었을까.

우선 생각나는 건 남녀 간 이성 연애를 주로 그리는 작품 내에 여성 동성애를 동반하는 플롯이나 캐릭터가 부차적으로 배치되는 경우일 것이다. 다음으로는 정사 장면에서 3P 이상의 인수로 행하는 성행위를 그리는 경우 일종의 단계로서 여성 캐릭터끼리의 얽힘이 삽입되는 상황도 상정할 수 있다. 가장 근사치라 할 수 있는 사례로는 구작 성인용 OVA 크림 레몬 시리즈중 여성 동성애를 중심으로 그린 편수를 들 수 있다. 변화구로서 여성 캐릭터에 남성기가 자라나는 설정의 후타나리 장르의 일부도 시야에 넣을 수 있다.

단 대략적으로 80년대가 끝날 무렵까지는 여성끼리의 깊은 관계를 그린다 해도 ‘안된다’ ‘위험하다’ ‘금단’ 과 같은 배덕감을 전제로 한 전개로 빠지기 쉬운 문제가 내포되어 있었다. 배덕이란 표현은 곧 남자와 여자라는 이성 관계가 규범으로서 선행됨을 의미한다. 규범을 굳이 거스른다는 뉘앙스이기에 반격의 의미로서의 탐미는 될 수 있어도 근본적인 의미에서는 결국 긍정되지 않는다는 주박의 느낌을 피할 수 없다. 커플 중 한 쪽이 남성의 행동모델을 구사하여 남자 역할을 하는 표현 역시 마찬가지로 남녀 규범을 온존하는 경향이 있다.

90년대 후반을 넘기며 00년대에 걸쳐 소녀소설 『마리아님이 보고 계셔』를 시작으로 백합 붐의 부흥 역할을 하는 작품들이 나타나며 오늘날과 직접 연결되는 맥락이 생겨나게 된다. 그 영향은 남성 취향의 그리고 남녀 성애 표현의 색채가 강한 매체에도 파급되어, 해당 매체들의 기존의 스타일과 이어져서 화학 반응을 일으켰다. 에로 게임에서는 앞선 글들에서 이미 소개했듯 여장 주인공이 여학교에 잠입해 언니가 되고 히로인들과 자매의 연을 맺는 『소녀는 언니를 사랑한다』(2005)가 백합 계열에 대한 학원물의 반향으로서 주목을 모았다.

다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남성향 차원에서 시추에이션의 수입일 뿐 ‘여자끼리’라는 대전제에서는 애당초 벗어나 있다. 주인공이 고기 딜도로서 남성 기능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든지, 언니로서의 유능함의 리소스로서 역설적으로 마초이즘이 활약하는 국면이 있을 수 있기에 원리적인 백합 에로 게임을 추구하는 시점에선 역시 아웃이다. ‘원리적인 백합’을 적나라하게 설명하자면, ‘ㅈ지가 안 나오는 게임을 하고 싶다’는 수요를 충족하자면 이런 식으로는 안 된다는 뜻이다.

그런 입장에선 일단 첫 글에서 살짝 언급한 라이어소프트의 『사피즘의 현창』(2001)이나 PS2용의 15세 이상 연령제한의 전기 장르물 『아카이이토アカイイト』(2004, 석세스サクセス)처럼 여성끼리의 관계성을 근본 의의로 하는 백합에 진심인 작품이 일찍부터 산발적으로 나왔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장르로서 안정됐다고 할 수 있는 건 00년대 중후반부터라 말할 수 있다.(참고사항일 뿐이지만 이치진샤一迅社가 출간지에 ‘백합’이란 문구를 캐치프레이즈로 내건 코믹 유리히메コミック百合姫 1호가 05년도에 나왔다.)

더불어 백합 게임의 지반을 굳히는 데 공헌한 작품이 다름 아닌 동인판 ‘그 꽃잎에 입맞춤을’ 시리즈 초기작이며 상업 계열에서는 판타지 군상극 『카타하네カタハネ』(2007, Tarte) 등이 있다. 그에 힘입어 12년도에 ‘그 꽃잎~’은 상업 계열 데뷔를 달성한 것이다. 그 외에도 라이어소프트에서 발매한 『옥상의 백합령 씨屋上の百合霊さん』 등 12년도는 백합 에로 게임의 기념비적인 한 해였다.



옥상의 백합령 씨屋上の百合霊さん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매체를 가리지 않고 백합을 지향하는 작품은 심심치 않게 만들어지고 있다. ‘내 친구 자두’의 작가도 자기 캐릭터들로 백합 망상을 그려서 버젓이 트위터에 올릴 정도니 심리적 장벽도 확실히 낮아졌다고 할 수 있겠다. 금단의 사랑을 통해 스릴을 느끼게 하고 싶다면 그런 방향성으로 몰아도 되고, 자연스러운 애정의 발산으로서 동성 간 밀접한 관계가 존재하고 작중 아무도 그를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 미소녀 백합 동물원을 그리고 싶다면 그래도 된다. 어느 쪽이든 숱한 작품들을 통해 작법의 노하우는 축적되어 있으니 말이다. 이제 와서는 연애나 성애가 포함되어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 여부도 딱히 한정되지 않을 정도로 백합 요소는 자연스럽게 미디어에 녹아들게 되었다. 심지어 현실 아이돌들도 팬덤의 기호를 충족시키고자 백합 시그널을 보일 것을 사측으로부터 권고 받고 있을 정도니 말이다. 원리주의자들에겐 여전히 뜨거운 감자인 모양이지만.



위치즈 가든ウィッチズガーデン



⑤ 움직이는 타치에의 기술 E-mote


에로 게임・걸 게임은 결과적으로 어드벤처 게임 형식이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고, 거기서 비주얼 요소는 늘 정靜과 동動이 밀고 당기는 양상을 보여 왔다. 원초적인 AVG는 문장만이 표시되어 진행되는 장르였다. 이윽고 소설의 삽화에 해당하는 그래픽이 부가되어 장면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게 되고 더 지나서는 한 장면 안에서도 그림 상의 부분마다 차분差分을 둠으로써 배경, 인물의 표현・포즈, 위치에 변화가 생겨 현장감을 강화시켰다. 에로 게임의 섹스 장면에서 보자면 가랑이가 애액으로 젖는 전후 차이라든지 사정 직후 정액의 흩뿌려진 모습 역시 정적인 소재로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궁리 끝에 나온 결과이다.

문제는 그래픽에 차분이 있을수록 변화를 세세하게 나타낼 수 있어도 비용이나 품은 유한적이기에 한없이 차분을 비축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한정된 패턴의 그림을 두고 플레이어가 그때마다 텍스트에 비추어 세세한 뉘앙스를 보충할 수밖에 없다.

특히 일상 장면(이벤트 CG가 아닌 통상 배경이 나오는)에서 캐릭터의 타치에의 완급 조절은 어려운 문제다. 에로 게임 유저는 플레이 중 상당한 시간을 이벤트 신 사이를 잇는 일상 장면과 마주하게 되기에 자극이 계속되도록 하는 장치가 필요하다. 품이 드는 걸 아까워만 하면 플레이어는 지루한 장면과 계속 마주하게 되고 이에 포기하고 Ctrl키를 꾹 눌러 스킵 일변도를 택하게 되니 그렇게 되면 게임은 온전히 소비되지 못하고 아무도 행복해지지 않는다.

일상 장면은 대체로 회화 장면이므로 얼굴이나 입가의 움직임에 주목하게 된다. 그렇기에 그 부위를 집중적으로 움직이면 된다. 따라서 눈을 깜빡이고 입을 움직이는 차분이 확보된다. 한때는 이것만으로도 “우와아아, 움직인다아아!” 하며 방방 뛰며 감동하기도 했다. 이후에는 바이퍼 시리즈처럼 아예 한 장면을 통째로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 버리는 대담한 발상도 있었다. 단 역시나 비용 문제로 분량이 큰 장편을 구성하기는 애당초 어려운 현실에 부딪혔다.

다행히도 PC의 성능이나 개발 기술의 진화로, 소재를 동적으로 표시하는 연출은 점점 비용이 저렴해졌다. 00년대에는 타치에 대신 캐릭터의 얼굴 아이콘을 꼬물꼬물 움직인 행살 신센구미나, 타치에를 종이 인형처럼 상하좌우 앞뒤로 움직이는 마브러브 시리즈처럼, 다양한 작품이 다양한 기법을 실험 및 구현할 수 있었다.


2012년이 저물 무렵, 에로 게임의 타치에의 역동성 추구에 대한 또 하나의 새로운 길이 추가되었다. 11월 30일 윈드밀Oasis에서 발매한 『위치즈 가든ウィッチズガーデン』에서 캐릭터 타치에 파츠를 복수 화상의 차분이 아닌 변형 애니메이션으로 표시하는 새로운 시스템이 도입된 것이다. 예를 들면 캐릭터가 신체의 방향을 바꿀 때 정면(플레이어 방향)을 보는 타치에와 비스듬히 선 타치에를 각각 배치하고 이산離散적으로 교체하는 게 아니라 하나의 동작 안에서 신체가 리니어하게 움직이는 것이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2D 그림이 모핑하여 3D 모델처럼 움직이는 기술이다. 찰랑거리는 머릿결, 발랄한 팔다리의 움직임, 출렁거리는 가슴, 귀엽게 깜빡이는 눈꺼풀… 매끈함과 입체감을 가진 캐릭터 동작은 감정 표현을 보다 선명하게 해 주며 화상 소재의 개수도 차분을 활용하는 방식보다 훨씬 적게 든다. 이러한 경위로 위치즈 가든은 기술적으로도 금세 주목을 모으게 된다.

이 기술의 이름이 바로 E-mote, Emotional Motion Technology의 약어로 개발사는 치바 현의 게임 소프트 제작회사 M2이다. 개발자 오카다 쥰岡田潤에 따르면, 90년대부터 여러 게임의 고품질 이식을 행해온 이 회사는 원래 사내에서 액션 게임의 다관절 캐릭터를 격렬하게 움직이는 모션 부가를 위해 사용되고 있던 에디터를 기반으로 ‘움직이는 타치에’ 기술을 개발하게 되었다. 윈드밀의 프로듀서와 M2의 대표는 원래부터 알고 지냈으며, 윈드밀 측에서 움직이는 타치에의 실현을 상담한 게 모든 일의 계기였다고 한다.

동년 12월부터 M2는 이모트 기술의 라이센스 제공을 개시하며 에로 게임 업계의 문을 두드린다. 한 해를 넘기고 13년도 봄에는 조작을 간편화한 개발 툴 E-mote Lite를 선보였다.

최소한의 정적 소재를 최대한의 동적 연출로 매력적으로 나타내고 싶다… 미소녀 AVG의 타치에는 그런 모순에 가까운 추구를 오랫동안 고집한 요소였으며, 이모트의 등장은 그에 응답하는 광명이 되었다.

현재 이러한 ‘2D 그림의 캐릭터를 3D 모델처럼 움직이는’ 모핑 계열의 모델링 툴은 타사에서도 몇 개인가 발매되었으며 유명한 제품으로는 Cubism Editor의 Live2D가 있다. 동작을 부여할 때의 조작성, 자유도, 파츠로서 필요한 소재의 양, 만들어진 모델의 게임용/동화動畫용 여부 등 소프트에 따라 성향이나 장단점이 있으며, 풀 옵션의 고가 유료판을 사느냐 기능에 제한이 있는 무료판을 이용하느냐의 선택지도 있다. 기업이나 개인 크리에이터는 각기 형편과 필요에 맞게 활용하면 될 일이다.



WinMX



⑥ 위법 다운로드의 과거와 현재


자성 미디어 시대가 열린 이래 게임 시장의 역사는 불법 복제와의 사투의 역사라고도 말할 수 있다. PC용 게임의 경우 1985년에 저작권법이 컴퓨터 프로그램을 저작물 보호 대상에 추가하기 전까지 게임샵이 대여 명목으로 가게 앞에 카피판을 진열했고 손님은 그걸 또 카피하는 행위가 횡행하여 메이커들의 두통을 유발했다. 그럼에도 아직 PC 자체가 한정된 수의 마니아들의 전유물이었던 시기라 가게나 집이라는 물리적인 장에 의존하고 있었다. 또 테이프나 플로피 디스크라는 매체 사양의 한계로 확산 속도에는 일정 한계가 존재했다.

PC가 본격적으로 보급되고 통신 기술이 발달하자 불법 복제는 슬슬 도를 넘어서기 시작한다. 인터넷이 나쁜 의미로 여러 가지가 융통되는 장이 되고 이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맥락이기도 하다.

지금은 다소 색이 바래 사어에 가까운 표현이지만 상업 음악・영화・게임 그 외 데이터를 위법 복제하여 인터넷을 경유해 지하 유통시킨 소프트군을 소프트웨어의 웨어ware에서 비롯된 와레즈Warez라 불렀다. 통신 회선이 지금보다 가늘었던 시기 대용량 파일을 우선 복수의 작은 파일로 분할하여 업로드한 후 유저가 그를 모아 결합시키는 과정에서 와레割れ, 와루割る라는 동사형으로 불리기도 했다.

00년대에 접어들어 중간에 서버를 매개하지 않고 컴퓨터끼리 직접 주고받는 통신모델 이른바 P2P(peer to peer) 기술을 사용하여 유저가 직접 파일 교환・공유를 행하게 하는 WinMX나 Winny, Share, 그리고 Bittorrent 등이 등장했다. 이들 소프트들은 합법적인 파일 유통뿐 아니라 위법 소프트 업로드・다운로드의 온상이 되었고 또 악성 바이러스 확산의 수단이 되기도 하여 개발자・배포자의 책임을 두고 논의가 벌어지기도 했다.

그런 일련의 사안과 관계된 커다란 움직임이 있었으니, 09년에 통과되어 10년에 시행된 저작권법 일부 개정에 근거한 부정 소프트 다운로드 위법화 및 형사처벌화다. 이전까지 업로드 측만이 책임을 지는 체제였다면 10년대부터는 위법임을 알면서도 다운로드한 측도 유죄 판결하는 새로운 구분이 행해졌다.

그러나 모두가 알다시피 실제로는 위법 업로드, 다운로드 어느 쪽이든 보편화가 계속되고 있다. 제휴 광고 수입을 위한 미끼로써 위법 콘텐츠의 거래를 행하는 장을 유저에게 제공하는 사이트의 만연은 이를 거든 요인 중 하나다. 종래의 마니아 개개인의 자기 충족을 위한 복제나 지하 시장에서 위법 소프트를 팔아대는 식의 직접적인 부정을 상회하여 간접적으로 판을 벌려 자릿세를 챙기는 세계가 형성된 것이다. 위법 업로드 사이트의 서버 등이 외국에 있을 경우 법적으로 삭제 요청을 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대책에도 난항을 겪고 있다.

에로 게임의 경우 소프트가 통째로 유통되는 것 외에도 CG만 유출되어 한 장도 남김없이 위법 사이트에 게재되는 형태의 피해 역시 문제가 되고 있다. 이렇게 CG를 보는 건 통상의 브라우저 열람의 연장에 해당하기에 라이트 유저의 입장에선 위법성을 체감하기 힘들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라 할 수 있다.



해피메어ハピメア



이러한 상황 아래 도를 넘은 가벼움으로 나쁘게 눈에 띄어 권리자에게 포착되는 경우도 있다. 13년 3월에서 4월에 걸쳐 위법 다운로드와 관계된 소동 하나가 트위터에서 화제가 되었다. 어느 실황 동화(니코니코 생방송) 유저가 동년 2월에 막 발매된 신작 에로 게임 『해피메어ハピメア』(퍼플 소프트웨어 발매)를 두고 “해피메어 다운 받음. 조만간 방송할까나~!”(2013년 3월 4일)라고 트윗을 올려 버렸고, 이후 회사 대표 겸 프로듀서 이시카와 카나데石川泰에게 딱 걸려 추궁당하고 만다. 심지어 해당 유저는 그럼에도 사과하지 않고 거꾸로 트집을 잡는 태도를 보여, 사측은 보다 강경하게 대응하게 된다.

동년 11월 퍼플소프트웨어 공식 사이트가 ‘폐사弊社 소프트웨어의 위법 다운로드 사건의 전말’이란 제목의 글을 공개했다. 해피메어 위법 다운로드 이용자가 후쿠시마 경찰 본부 사이버 범죄 대책반의 각고의 노력으로 현 경찰의 조사를 받게 되어, 소프륜의 사무국에서 보호자를 동반한 채 사죄함으로써 마무리되었다는 골자였다.

이것으로 일단락된 줄 알았더니 이듬해 14년에는 다른 인물이 해피메어 팬디스크를 Share에 1차 방류했다가 체포되는 일이 발생하여, 위법 업로드 및 다운로드에 대한 에로 게임 메이커들의 쉼 없는 촉각을 거듭 환기하게 되었다.

참고로 해피메어 소동과 같은 시기인 13년 3월 그린그린 등의 프로듀서로 유명한 bamboo가 블로그에서 위법 업로드 피해에 대해 한탄하는 기사를 올렸는데, 당시 상황을 적나라하게 알 수 있는 내용이므로 첨부한다. 참고로 이 시점에서 bamboo는 자신이 설립한 브랜드 OVERDRIVE의 작품 발매 빈도를 조정하여 게임 제작 체제를 개편한 데 더해 인디 메이커로의 이행을 검토하고 있었다.


발매 당일에 엿 같은 위법 업로드 사이트에 곧바로 올라와 있어서 지금도 보이는 족족 삭제 요청을 띄우고 있습니다만 조금도 따라잡을 수 없습니다. 100을 없애면 120만큼 늘어나 있으니 이거 원. 발매 당일에서 공식 사이트에 접속자 수가 엄청나서 이게 무슨 일인가 싶더니 절반 이상이 이런 부류의 사이트에서 찾아온 것이었습니다. 우리 회사에서 그 정도면 소위 잘 팔리는 메이커들은 훨씬 더 지독한 상황이겠죠. 출하량의 3배 이상을 무단 배포 당했으니 단순 계산으로 1억 엔 이상의 매상을 손실한 셈이고 그쯤 되면 이미 이해를 할 영역을 넘어선 겁니다. 옛날엔 복돌이 짓을 해도 몰래 살금살금 했는데 이젠 그냥 보편적인 양 하고 있다는 게 솔직한 감상입니다.


카네코 이사무金子勇



⑦ Winny 개발자 급사急死


13년 7월 6일 밤 한 명의 프로그래머가 급성 심근경색으로 별세했다. 이름은 카네코 이사무金子勇로 동경대 대학원 정보이공학계연구과 조교수를 역임한 적 있으며, 니챤넬 다운로드 소프트 게시판 스레드 ‘WinMX 다음은 무엇일까’에서 독자 소프트 개발을 선언했을 때 입력 번호가 47이었던지라 47씨氏로 통칭되었던 인물이다. 그렇다, 바로 앞 문단의 파일 교환 소프트 Winny의 개발자다.

바이러스 감염 피해가 속출한 것도 있고 에로 게임의 유출을 포함한 저작권 침해 데이터의 유통에 관한 Winny의 쓰임새로 말미암아 소프트 자체가 비판받는 한편, P2P 기술의 의의 측면에서 옹호하는 목소리도 높아, 그가 인터넷에 야기한 결과에 대해서는 공과 과가 공존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04년 교토 부경府警은 카네코를 저작권 침해 교사 혐의로 체포 및 기소했다. 양측의 공방이 최고 재판까지 계속된 끝에 최종적으로는 무죄 판결이 났지만 7년이나 지난 11년도의 일이었다.

그 시기를 전후하여 카네코는 06년도부터 기술고문으로 관여하던 Winny를 근간으로 한 콘텐츠 배포 서비스를 취급하는 벤처 기업 주식회사 드림보트株式会社ドリームボート(훗날의 Skeed)의 대표이사를 거쳐 동경대학 부속 정보기반센터에서 연구부문 특별강사를 맡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급사한 것이다.



진격의 거인進撃の巨人



⑧ 『진격의 거인進撃の巨人』 작가와 아쥬 작품의 관계


삼중의 거대한 벽으로 둘러싸인 성채 도시국가에 틀어박힌 인류와 외계에서 건너온 식인 거인 무리가 펼치는 생존 투쟁을 그린 판타지 액션 만화 『진격의 거인進撃の巨人』. 09년 코단샤 별책 소년 매거진 창간호에서 연재를 개시하여 21년 5월호에서 단행본 34권 분량 총 139화로 완결될 때까지 잔혹하리만치 강렬한 전개와 캐릭터 조형으로 큰 인기를 끌었으며 해당 잡지의 간판 타이틀이 된 작품이다.

13년 4월부터 9월에 걸쳐 TVA 1기가 방영되었고 이 역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는데 주제가를 담당한 유닛 Linked Horizon이 동년 말 NHK 홍백가합전에 출장할 정도로 가열 찬 화제성을 띠었다.

작가 이사야마 하지메諫山創의 독특하기 이를 데 없는 상상력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여러 가지 분석이 있었지만 이사야마 자신이 공언하기로는 아쥬의 에로 게임에 자극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여러 인터뷰에서 나온 바 있다.

직접 언급한 타이틀은 ‘네가 바라는 영원’과 ‘마브러브 오르타’로, 수용자를 번민시켜 트라우마까지 일으키게 하는 제작자의 심중에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특히 후자의 경우 밀어닥치는 이형의 대군에 침략당한 인류의 비장한 싸움을 그린 SF 시츄에이션의 측면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실제로 그러한 인연에 힘입어 이사야마가 마브러브 오르타의 코미컬라이즈 7권에  일러스트와 코멘트를 남겼는데, “엄청난 영향을 받았습니다!”라 힘주어 말하는 응원 문구가 게재되었다.

여담으로 이사야마가 히키코모리 시절 열심히 들었다는 네가 바라는 영원 공식 라디오(약칭 키미라지, 2003~2007년)의 진행자 중 한 명이 애니메이션 주연 성우 타니야마 키쇼谷山紀章로, 진격의 거인 애니메이션에서 주요 캐릭터인 쟝을 연기했다. 



니지요메にじよめ



⑨ 온라인 게임 시대에서 엿보는 ‘포상’ 게임의 르네상스


소셜 게임, 브라우저 게임, 앱 게임 등을 포괄한 온라인 게임의 정세를 잠시 살펴보자. 00년대 후반 모바일 게임 전성기 이후 10년대 초중반을 거쳐 PC용을 축으로 한 온라인 게임 시장 역시 약진을 이루었다. 성인 작품 역시 그러한 성쇠 속에서 나름의 성장을 보였다. 특히 브라우저에서 직접 플레이할 수 있는 게임은 기본적으로 무료에 인스톨이 불필요함을 매력으로 내세워, 패키지를 구입해 PC에 인스톨하기까지의 단계의 번잡함으로 에로 게임에 차마 손을 못 대던 계층이 선뜻 다가갈 수 있게 했음을 엿볼 수 있다.

에로 게임 및 걸 게임 개념과 이어지는 온라인 게임의 장으로서 예를 들면 13년 4월 9일에 정식 오픈한 『니지요메にじよめ』를 눈여겨볼 수 있다. 2차원 신부二次元の嫁에서 따온 제목 그대로 2D 미소녀 소셜 게임 전용으로 특화된 플랫폼이다. 운영 주체는 주식회사 에이시스株式会社エイシス로, 디지털 동인 작품이나 게임 소프트 등의 다운로드 판매를 다루는 업계의 큰손 DLsite.com을 운영하는 기업이다. 니지요메는 DLsite.com의 서비스 카테고리에 위치해 있다.

또한 이 시기에는 DMM.com이 운영하는 플랫폼 ‘DMM GAMES’ 역시 화제가 집중되었는데, 다름 아닌 『함대 콜렉션艦隊これくしょん-칸코레艦これ-』 이 13년 4월 23일부터 DMM 브라우저 게임으로 정식 서비스를 개시하고 이후 무수한 OSMU와 그에 걸맞은 거대한 팬덤을 보유한 IP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함대 콜렉션艦隊これくしょん



칸코레는 당시 카도카와 게임즈에 재적하던 크리에이터 타나카 켄스케田中謙介가 동인 서클 C2기관機関에서 준비 중이던 게임을 기반으로 개발한 해전사史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비장한 운명을 지니고 세상에 난 전함들의 혼이 깃들어 원본을 본뜬 포격 무장을 몸에 두른 히로인 ‘칸무스艦娘’들을 지휘 편성하며 수수께끼의 침공세력 ‘심해서함深海棲艦’과의 해전을 통해 레벨 업, 여러 해역을 해방시켜 나가는 게 게임 플레이의 주안점이다.

제목에 있는 콜렉션これくしょん은 자료 패러미터를 소비하여 행하는 건조建造나 전투 후 포상으로 얻을 수 있는 칸무스를 모아 도감을 완성하는 의미를 지닌다. 레어도가 높은 칸무스의 건조에 드는 수고가 적절하게 구현되어 있고, 노리던 전함을 손에 넣었을 때 커다란 고양감을 얻을 수 있게 게임이 짜여 있다.

동시에 손상이 심각한 칸무스를 무리하게 임무를 속행시키면 침몰해 버리고 수중의 유닛 목록에서 완전히 소멸하는 자비 없는 사양도 본작의 특징이다. 자연스럽게 지휘관(게임 상에선 제독提督)인 유저는 개개의 전투에서 승리하는 것 이상으로 칸무스가 침몰하지 않게 소중히 운영하는 것이 중요하게 된다. 즉 게임 디자인 단계부터 히로인들에 대한 애착이 점점 커지게 유도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한 캐릭터 콘텐츠로서의 우수함에 힘입어 칸코레는 종래의 밀리터리 마니아층 외에도 널리 지지를 받게 된다. 칸코레 운영진의 트위터 계정이 공칭한 유저 등록자 수는 1주년 시점에 180만 명, 2주년에는 300만 명에 달했다. 실제로 플레이를 지속하고 있는 액티브 유저는 1~2할 정도라 쳐도 충분히 대규모라 할 수 있다. 그 전까지 전사戰史 마니아들밖에 몰랐을 전함이나 작전 등의 세부를 이 정도 수의 사람이 일상적인 회화 속에서 입에 올리게 한 영향력은 쉽게 가늠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참고로 칸코레는 칸무스가 전투에서 소파小破, 중파中破, 대파大破라 명명하는 단계적인 데미지를 입음에 따라 캐릭터의 의상이 파괴되어 맨살이 드러나는 그래픽 차분 연출이 있다. 넓은 의미에선 탈의 게임인 셈이다. 그 자체가 게임 시스템에 좌우되지 않는 유저의 목적이라 단정할 순 없겠다만, ‘포상’ 차원의 도색 게임으로서의 부가가치 즉 ‘놀이 + 에로’ 형태의 에로 게임의 한 줄기 그것도 꽤나 고색 정취가 느껴지는 형태의 재래라 보는 건 불가피할 것이다.



천년전쟁 아이기스千年戦争アイギス



DMM.com이 성인 콘텐츠를 취급하는 사이트인 DMM.R18에는, DMM GAMES에서 18금 온라인 게임을 제공하는 DMM GAMES R18이란 분류가 있다. 여기서도 작품 하나를 이야기하고 가도록 한다.

『천년전쟁 아이기스千年戦争アイギス』는 칸코레와 마찬가지로 2013년에 서비스를 개시해 올해로 10주년을 맞았다. 정확히는 올해(2023년) 11월 26일이다. 타워 디펜스 장르로 성채, 평원, 삼림, 늪지 등 다양한 맵에서 드랍 혹은 가챠로 입수한 검사, 궁수, 마법사 등 직종에 따라 성능을 달리하는 유닛을 배치하여, 밀어닥치는 적 유닛 무리가 아군 진영의 거점에 도달하지 못하게 방어, 파괴하는 게 주된 플레이 내용이다.

에로 게임 요소로는 여성 유닛에게 선물 전용 아이템을 주면 호감도 패러미터가 상승하며, 수치가 일정 수준에 다다르면 정사 장면이 해금되게 되어 있다. 그런데 본작은 나름대로 디펜스 게임으로서 파고들기 요소가 강하다 보니 유저 입장에선 굳이 에로 목적으로 플레이하지 않는, 앞서와 마찬가지로 ‘놀이 + 에로’ 형태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이후 성인 요소를 억제하고 여캐 의상의 노출을 줄인 전연령판이 나왔고 말이다.(이에 성인판은 『천년전쟁 아이기스R千年戦争アイギスR』로 개명했다.)



AV스트라이커즈AVストライカーズ



DMM 에로 게임의 라인업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2D물 외에도 AV 배우를 유닛으로 등장시켜 조건을 만족시키면 영상을 볼 수 있는 실사 게임이 다수 배포되었고, 심지어 플레이 랭킹 상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명줄이 긴 타이틀들을 들자면 카드 배틀 형식의 『걸즈 헬파이어ガールズ・ヘルファイア』, 마찬가지로 카드 배틀 형식에 학원물 사양인 『선생님, 학교에서 하자!先生、学校でしようよ!』, 유닛을 탄으로 쓰며 방향을 지시하여 활시위를 당겨 맞추는 몬스터 스트라이크 식 슈팅 액션 게임 『AV스트라이커즈AVストライカーズ』(앱 전용) 등이 있다. 이 대목에서 실사 AV 분야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운영진 측의 입김을 엿볼 수 있다.



전국무장희戦国武将姫 MURAMASA



니지요메와 같이 2차원 미소녀 게임에 철저한 플랫폼이 있는 한편 DMM GAMES처럼 실사 포르노 게임 역시 활발하게 다루는 토양이 있는 혼돈의 양상, 데미지 탈의나 일정 조건을 클리어했을 때 H 이벤트가 해금되는 등 ‘놀이 + 에로’의 성질, 그를 지탱하는 수고와 보수로 구성된 회로. 온라인 게임은 현재 게임 시장의 돌출된 끄트머리에서 에로 게임의 형태를 확장하면서도 동시에 에로 게임 여명기의 ‘포상’ 감각의 원점 회귀가 발생하고 있다.

좀 더 말해보자면, 예를 들면 Mobage에서 제공하는 소셜 카드 게임 「전국무장희戦国武将姫 MURAMASA」처럼 카드에 섹시한 캐릭터 그림을 넣는 데엔 에로 사진이 인쇄된 트럼프 카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원초적인 발상이 연관되어 있다. 다만 거기에 일정 수준의 질과 양을 지닌 시나리오나 다양한 연출을 부가함으로써 단순히 선조의 흉내를 내는 게 아닌 21세기에 걸맞는 다소 도색적인 유희거리가 되는 것이다.

고전 문화를 부흥하면서도 텍스트에 새로운 혁신과 인본 정신을 불어넣는 것, 가히 르네상스라고 할 만하지 않은가.



LOVELY×CATION



⑩ 연애 SLG 정신의 복권復權, 『러블리케ラブリケ』 시리즈


연애 어드벤처 게임과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은 미묘한 차이가 있는데, 우선 패러미터 변화 등에 따른 우발성의 여부 그리고 연애 유사체험 양상에서 우선 어느 정도 구별이 된다. 에로 게임에서 현재 주류가 된 의미로서의 연애 AVG가 스토리를 쫓는 취향을 강화시킨 것과 대조적으로 기세가 약해진 연애 SLG는 즐길 수 있는 옵션 요소의 충실한 구비가 중요해졌다.

2013년 4월 26일에 발매된 hibiki works의 『LOVELY×CATION2』라는 에로 게임은 그 옵션 요소에서 오는 연애 시뮬레이션의 성질에 중점을 준 사례라 할 수 있다. 11년도에 나온 원작의 속편으로, 두 편 모두 1일 2회 커맨드 턴제 형식이며 플레이어 캐릭터의 스테이터스 수치를 올리는 파트와 히로인들과 접하며 선택지로 이벤트를 진행하는 파트를 오고 가는, SLG와 AVG가 절충된 게임이다.


- 히로인 타치에의 다양한 복장 차분

- 성우별로 수록된 대량의 인명 데이터를 사용, 히로인이 플레이어가 정한 이름을 음성으로 구현해 주는 ‘러블리 콜ラブリーコール’

- 각 장소에서 입수할 수 있는 도구로 주인공의 패러미터나 이벤트 시츄에이션에 영향을 끼치는 아이템 옵션

- 후일담 시나리오를 일 년에 걸쳐 틈틈이 추가 배포(※무료)


2에서는 여기에 또 다음 사항들이 추가되었다.


- 통학로나 데이트 중 히로인과 나란히 걷는 상황을 애니메이션으로 표시하여 현장감을 높인 ‘워킹 토크ウォーキングトーク’

- 이벤트 도중 표시되는 QR코드를 유저가 휴대폰으로 읽어 들이면 해당 CG가 보존되어, 여자친구를 사진 촬영한 느낌을 주는 ‘러블리 샷ラブリーショット’


이런 식으로 히로인과 사귀는 유사 체험 감각을 어떻게 높일까 고민한 서비스 정신이 넘치는 작품이 되었다. 여기엔 도키메모, 트루 러브 스토리, 러브플러스 등 일반 연애 SLG 분야에서의 오랜 세월에 걸친 성과를 흡수한 흔적이 엿보인다.

나중에 러블리케 1,2는 합쳐져서 전연령 콘솔 게임(PSVita 『LOVELY×CATION 1&2』, 2015)으로 출시되기도 한다.



미코미코 너스巫女みこナース



⑪ 『미코미코 너스巫女みこナース』 주제가 가수 밝혀지다


13년도가 절반이 넘어갈 무렵, 발매 10주년을 맞은 한 편의 에로 게임이 다시금 주목받는 일이 일어난다. 03년 5월 PSYCHO에서 발매한 『미코미코 너스巫女みこナース』는 어느 병원에서 여자 간호사의 새로운 제복의 도입을 논의할 무렵 수녀복이냐 무녀복이냐로 다툼이 일어나, 히로인들이 시험적으로 무녀 간호사 혹은 수녀 간호사가 된다는 경파한 시츄에이션과 그에 못지않은 강렬한 주제가로 유명해진 연애 AVG다. OP곡 ‘미코미코 너스 사랑의 테마巫女みこナース・愛のテーマ’는 빠른 템포에 카랑카랑하고 시원한 보컬이 종반에 “아직 안 끝났어まだまだいくよ”라 외치고는 더욱 가열차게 잰말놀이를 연호하는 구성으로, 가사의 의미는 제쳐 두고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그루브를 자아내어 듣는 사람에게 중독성을 유발하는 괴이한 곡으로 훗날 ‘전파송’으로 형용되는 선조 격 중 하나이다.



사사지마 카호루笹島かほる



곡 자체의 임팩트가 워낙 강해 가수의 존재는 의외로 오랫동안 수수께끼였다. 크레딧 상에는 ‘chu☆’라고만 쓰여 있을 뿐이었다. 그 의문이 풀린 건 13년 6월 9일이었다. 성우 사사지마 카호루笹島かほる가 오사카에서 열린 미소녀 게임 음악 이벤트 ‘EEE vol.14 팬 감사제 2013’에 출연, 미코미코 너스 사랑의 테마를 부른 후 해당 게임 10주년을 축하하는 트윗에 자신이 당시 chu☆ 명의로 주제가를 담당했음을 언급한 것이다. 참고로 비슷한 시기에 사사지마는 HAPPY★LESSON의 고카죠 사츠키五箇条さつき, 에로 게임 원작 TVA 라임색 전기담らいむいろ戦奇譚의 카토 아사加藤麻(모티프는 카토 키요마사加藤清正) 등을 연기했다.

지금이야 대놓고 아이돌 노선을 타지 않는 이상 오버 성우가 가명으로 에로 게임에 출연하는 것에 대해 팬덤도 관대한 입장이지만, 당시에는 공공연히 드러내는 게 다소 터부시되던 시기였다. 물론 지옥귀를 가진 소수의 팬들은 정보 공개가 제한되어 있던 그 당시에도 다 알아맞혔고, 그럼에도 공공연하게는 떠들어대지 않는 것을 당연한 매너로 여겼다. 오버의 일자리는 늘 한정되어 있고, 제작 측은 비주얼도 좋고 열성 팬덤도 있어 향후 음반 활동이나 이벤트 참여처럼 ‘TVA 블루레이 판매보다 확실하게 돈이 되는’ 분야에서 매출이 보증된 성우 아이돌을 선호하기 마련이니, 자연스레 거기서 밀려난 성우들은 에로 게임 레코딩으로 빠지기 마련이다. 시장의 흐름인 만큼 좋다 나쁘다를 말할 문제는 아니고, 팬의 입장에서는 어느 쪽이든 좋은 연기를 해 주면 만족한다.



너와 그녀와 그녀의 사랑君と彼女と彼女の恋。



⑫ 첨단화하는 메타 에로 게임 『너와 그녀와 그녀의 사랑君と彼女と彼女の恋。』


‘이것은 영화다’라는 허구성을 극중에 도입한 영화. 소설이 문단의 집합체라는 사실 자체를 기믹으로 짜 넣은 소설. 칸이나 말풍선 등 만화의 기호를 등장인물이 인식하는 만화 등등.

무언가를 지시하여 표현하는 픽션 매체가 성숙해지면 수용자에게 해당 매체 자체를 인식시키는 메타(자기언급)화의 토양이 생겨난다. 에로 게임에선 예를 들면 첫 편에서 소개한 취작 등이 메타 에로 게임의 기념비작 중 하나이며, 이른바 루프물에 해당하는 작품에서도 설정이나 연출에 따라 게임 내에서 게임을 자기언급하는 감각을 유저에게 주기도 한다.

13년 6월 28일, 니트로플러스는  『너와 그녀와 그녀의 사랑君と彼女と彼女の恋。』, 약칭 토토노를 발매한다. 토토노는 메타성을 극단적이라 할 만큼 철저하게 추구한 에로 게임이다. 학원의 아이돌 같은 존재와 신비한 언동이 돋보이는 별종 소녀, 두 사람 사이에서 흔들리는 소년의 마음…이 작품의 기본 바탕으로, 이른바 일반적인 연애 AVG이긴 하다. 여기서 말하는 ‘일반적인 연애 AVG’란 즉 선택지를 통해 복수 히로인 중 한 명을 고르는 루트를 탐색하여, 일단 한 명을 공략하고 나서 전원 공략이나 CG 도감 100% 컴플리트를 위해 마땅한 세이브 지점을 로드하여 반복하는 내용이다. 이에 따라 플레이에 효율의 문제가 작용한다.

토토노는 “그러한 플레이 스타일에 익숙해진 유저가 타성이나 어쩔 수 없는 의무감으로 하지 않을까?” 하는 날카로운 시선을 작중 캐릭터를 통해 있는 힘껏 던지고 있다. 그것뿐이라면 그래도 ‘흔히 있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캐릭터가 세이브 데이터에 간섭하는 등 게임 시스템마저 스토리 전개와 깊이 직결되어 있으며, 효율을 위해 편의적으로 주회 플레이를 시도하면 한 번뿐인 인생을 사는 인간으로서의 히로인의 존재를 가벼이 여기는 가능성에 대해 의식하게 하는 작법이 자비 없이 몰아친다.

또 메인 히로인 한 명이 가진 스마트폰이 작중 키 아이템으로 작용하는데, 본작의 제품을 넣는 상자를 스마트폰 패키지 사이즈로 하려고 굳이 저장 매체를 이동식 USB로 하는 등 메타 지향성을 물리적 측면에서도 철저히 한 의욕 넘치는 작품이었다.(초회한정판 사양, 이후 통상판은 DVD-ROM으로 발매됨)

본작은 유저를 향한 문제 제기는 물론 애당초 ‘일반적인 연애 AVG’를 디자인하여 플레이어가 ‘그렇게 하게 한’ 제작자 측의 자문自問도 있었으리라는 점에서도 흥미로운 작품이다.



어리광 M♪ 엄마의 가족계획甘えむっ♪ おかあさんのかぞくけいかく



크리에이터 쪽 이야기를 해보자. 2010년대의 메타 에로 게임 작가를 꼽는다면 제작자 겸 시나리오 라이터 이가와 리츠井川立를 논하지 않을 수 없다. 원화가로 삿포로 모모코さっぽろももこ를 기용한 대표작 『어리광 M♪ 엄마의 가족계획甘えむっ♪ おかあさんのかぞくけいかく』(2010, STRIKERS DL) 외에도 브랜드 일렉트립エレクトリップ에서 많은 활약을 한 인물로, 현재까지 HAIN, 크로우クロウ, 네코노 카라스猫乃烏, 야시 카라스八咫烏 등 다양한 명의를 사용하여 해당 브랜드의 작품을 주도하고 있다. 이쪽은 시스템보다도 이야기 매체로서의 에로 게임을 두고 주인공이나 히로인의 관계를 역할론적으로 추구하는 취향이 강하다. 즉 에로 게임에서 하나의 입장(속성)을 갖는 캐릭터는 무엇을 함으로써 그 입장을 충족시킬 수 있는지 플레이어를 끌어들여 재고를 촉구하는 의미의 메타(자기언급)다. 일렉트립 작품은 소재로서 능욕이나 네토라레가 두드러지는데, 모친, 아내, 여자, 아들, 남자 등 인물의 역할을 침범하는・침범당하는 것으로써 역할론을 조명하는 면모가 강하다.



사다코VS카야코貞子VS伽椰子



⑬ 만우절 농담의 현실화 『수동 촉수受け触手』 


전 문단에서 작품 단위의 메타 에로 게임을 다루었으니 이번에는 기획 단계의 메타에서 생겨난 것으로 눈을 돌려보자. 가벼운 개그 소재로 혹은 ‘이런 게 있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담아 끼적이는 그럴듯한 페이크 기획, 특히 유희로서 거짓말이 허용되는 만우절에는 전통적으로 대부분의 제작사들이 공식 홈페이지에 가공의 작품・상품의 선전을 하곤 한다.

그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05년도 츠부라야 프로덕션円谷プロダクション이 울트라맨 시리즈를 차용한 개그성 사이트를 한정 공개한 게 화제가 되어 불씨를 지폈으며, 이후 수많은 분야의 수많은 기업들이 매년 만우절에 인터넷에 페이크 기획을 전개해 왔다. 그 중 몇몇은 어쩌다 장단이 맞아 실현되기도 했다. 영화 사다코貞子 3D의 공식 트위터 계정이 농담으로 주온呪怨과 링リング의 공연共演 화상을 공개했더니 정말로 제작까지 된 『사다코VS카야코貞子VS伽椰子』(2016)라든지 말이다.

에로 게임 업계도 이러한 빅 웨이브를 피하지 못한 채 매년 4월 1일에 공식 홈페이지에 페이크 기획을 선보이게 된다. 그 중 실제 작품이 된 사례 중 눈에 띄는 건 니트로플러스가 07년 만우절에 타이틀을 내건 『속・살육의 쟝고 –지옥의 현상범-続・殺戮のジャンゴ -地獄の賞金首-』(제품판 2007.07)이다. 만우절 기획에서는 장대한 스페이스 오페라처럼 현상금 사냥꾼이나 군인과 얽히고설키는 SF 서부극(그것도 마카로니 웨스턴 사양)이었다. 생뚱맞게 속續이라 해봤자 전작 같은 건 없고, 위의 제목을 외서를 정발할 때 현지화 이름처럼 취급해서 『TRE DONNE CRUDELI』라는 원제까지 설정하는 등 제품판에도 페이크 취향은 여실히 드러난다. 단 이 경우 만우절 기획에서 게임 발매까지 불과 3개월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점에서 내부적으로 만들고 있던 걸 만우절을 빌어 눈길을 끄는 일종의 특보 형태라 하는 게 맞을 것이다.



수동 촉수受け触手



서론이 길어졌으니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 13년 8월 뇌내그녀에서 발매된 『수동 촉수受け触手』 라는 게임 역시 만우절 농담에서 비롯되었다. 전년도 4월 페이크 OHP가 공개되었는데, ‘촉수가 전혀 의미 없는 여성 상위 AVG’란 독자적인 장르명 아래 호감 있는 성격을 지닌 촉수 몬스터를 주인공으로 하여 연애 게임을 진행한다는, 종래의 촉수=능욕 이미지를 역전시킨 임팩트를 노려 발상만으로 이마를 탁 치게 했었다. 그리고 일 년 후 정말로 게임으로 나와 버렸다. 

주인공 미치오三千雄는 포경 수술에서 잘린 음경의 표피를 소재로 만들어진 전신이 촉수인 마법생물이다. 흉측한 겉모습과는 반대로 인격적으로는 상냥한 젊은이로 음수淫獸의 정체성을 거부하고 평범한 학생으로서 인간 사회에 적응하고 있다. 거기에 연애 쪽 사고회로에 나사가 빠져 틈만 나면 능욕 플레이로 자신의 처녀를 뺏을 것을 강요하는 엽기적인 히로인이나 촉수인 오빠를 사랑해서 지배하고자 마술을 구사하는 여동생이 들이닥쳐 오는 평온하지 못한 일상에 시달린다…는 내용이다. 주인공은 수동受け이지만 그를 둘러싼 세계는 철저히 공격攻め 태세다.

촉수로 화간을 한다는 콘셉트는 개척해 볼만한 장르란 생각이 들게 하는 작품으로 볼륨은 작지만 한 번쯤 짚고 넘어갈 만하다. 참고로 등장인물 중 시오미塩見 군이란 주인공 촉수의 급우가 있는데, 하늘을 나는 초지성 스파게티 덩어리로 세계 창조에 관여한 바 있다. 한때 유행하던 표현을 빌자면 아스트랄하기 짝이 없다.

여담으로 본작 발매와 비슷한 시기인 13년 10월 앞서 말한 ‘속 살육의 쟝고’가 빠칭코 슬롯 머신으로 이식되었다. 타이틀은 『속・회동의 쟝고 –지옥의 현상범-続・回胴のジャンゴ -地獄の賞金首-』. (회동回胴은 회동식유기기回胴式遊技機, 즉 빠칭코 슬롯 머신의 약어이다) 만우절 농담에서 비롯된 작품 치고는 제대로 끗발을 날린 셈이다.



란스01 빛을 찾아서ランス01 光をもとめて



⑭ 앨리스소프트이기에 가능한 캐치카피


에로 게임 업계에서 끊임없이 이어지는 혈통을 지닌 메이커들 중 최고참 반열은 80년대 전반부터 태동을 시작한지라, 10년대 전반에 들어설 무렵엔 최대 30주년을 맞이하는 메이커들도 있었으며, 23년 현재 시점에선 말 그대로 불혹을 맞았다.

그 중 역시 최고참은 앨리스소프트다. 브랜드 데뷔는 89년도지만 모체가 된 회사 챔피언소프트가 나라 현에 설립된 게 83년도니 올해 40주년을 맞은 셈이다. 시점을 십 년 전으로 돌려서, 앨리스소프트는 자사의 원점인 란스 시리즈 첫 작품(1989)의 리메이크판 『란스01 빛을 찾아서ランス01 光をもとめて』(2013.09)을 발매한다. 캐치카피는 ‘아버지가 즐겼을지도 모르는 에로 게임父親が遊んだかもしれないエロゲ─’…

비범하리만치 대단하다. 저 시점에서 아무리 리프나 키가 날고 기어봤자 업력에선 조카뻘이나 다름없으니 그야말로 앨리스소프트이기에 가능한 문구다. 여담으로 18년도 『란스Ⅹ -결전- ランスX -決戦-』을 끝으로 란스 시리즈는 장장 이십구 년의 대장정의 막을 내린다. 아버지 세대의 에로 게이머들의 이상형 중 하나였던, 시작과 끝을 관장하는 히로인 실 플라인의 마지막 대사로 경의를 표한다.

「안녕히 주무세요, 란스 님.(おやすみなさい、ランス様)」



가면라이더 가이무仮面ライダー鎧武/ガイム



(3) 2010년대부터의 에로 게임 – 3



① 우로부치 겐, 가면라이더仮面ライダー 각본가가 되다


아사히방송 계열에서 매주 일요일 아침 방영하는 어린이 프로그램군, 일명 니치아사ニチアサ. 그 중 토에이東映의 전대 시리즈와 가면라이더 시리즈가 이어서 나오는 시간대를 슈퍼 히어로 타임スーパーヒーロータイム(SHT)라 칭하는데, 13년도의 SHT는 10월에 방영 개시한 『가면라이더 가이무仮面ライダー鎧武/ガイム』로 사전 스태프 발표 때부터 애니메이션 및 에로 게임 유저 측의 주목을 받았다. 그도 그럴 것이 각본가로 기용된 게 우로부치 겐이었으니 말이다.

시기로는 앞 문단에서 설명한 마마마로 각본상을 받은 이듬해로, 더불어 마마마의 완전 신작 극장판 공개를 목전에 둔 타이밍이었다. 바로 얼마 전 『PSYCHO-PASS』 1기(2012.10~2013.03)와 『취성의 가르강티아翠星のガルガンティア』(2013.04~06)에 참여하며 우로부치는 이미 심야 애니메이션 계열에서 인기를 다지고 있던 참이었다. 거기에다 실사 특촬 그것도 메이저의 끝을 달리는 시리즈 타이틀에 진출한 것이다. 일본 연예계에서 애니메이션 성우와 실사 배우는 급을 달리 본다. 그 정도로 미디어로서 입지의 차이가 난다.

또한 ‘각본・우로부치 겐’이 크레딧 맨 처음에 뜨는데, 이는 엄밀히 말하면 니트로플러스 출신 인원으로 구성된 문예 팀이 우로부치를 보조하는 집단 체제 형태로, 참마대성 데몬베인의 하가네야 진, 미국 만화 쪽에도 조예가 깊은 『진해마경塵骸魔京』 라이터 카이호 노리미츠海法紀光(진해마경 당시 펜네임 야토 시로夜刀史朗), 가르강튀아 당시 각본에 참여한 나나시노 토리코七篠トリコ, 『로켓의 여름ロケットの夏』 디렉터 스나베 쿠안砂陪久雁(현재 활동명 foca) 등 정예 멤버들이다. 거기에다 극중 괴물 집단 인베스インベス의 디자인에 데몬베인과 마브러브에서 메카 디자인을 맡은 니시Niθ와 츄오 히가시구치가 투입되어 비주얼 면을 포함해 작품 전체에 니트로플러스 테이스트가 잘잘 흐르는 가면라이더가 만들어졌다.

애당초 08년도 블라스레이터 시절부터 우로부치가 헤이세이 라이더의 다크 히어로 취향인 건 오랜 팬들은 알고 있었기에, 가이무 참가는 ‘돌고 돌아 원전에 다다랐다’는 의미에서도 경탄할 일이었다.



② 데스크톱 PC의 사양斜陽화와 에로 게임의 관계


일본 총무성総務省이 정리한 ‘헤이세이 26년 통신 이용 동향 조사 결과’의 개요를 보면, 2014년이 저물 시점에서 개인이 보유한 정보통신 기기 중 PC의 비율은 52.7%, 스마트폰은 44.7%로 꽤 근접한 수치이다. 전년도 대비 PC의 보유율이 3.9% 감소한 한편 스마트폰은 5.6% 상승했다. 태블릿 단말은 이 시점에서 15%를 달성한 이래 꾸준히 오르고 있다.

연령별로는 13~39세까지의 젊은 세대의 스마트폰 보유율은 이 시점에서 자택의 PC를 이미 넘어섰고, 적어도 인터넷 이용의 창구로 PC가 스마트폰에 추월당했음을 엿볼 수 있다. 하물며 PC는 데스크톱과 노트북으로 나뉘고, ‘데스크톱을 보유하지 않은 스마트폰・태블릿 유저’는 이젠 흔히 볼 수 있게 되었다. 전자기기산업협회(JEITA)의 조사에서 2010년대의 PC(데스크톱, 노트북, 태블릿을 통들어) 출하 대수의 추이와 맞물려서 보면 PC 시장이 절찬리에 스마트폰에 먹히고 있는 상황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이런 흐름에 따라 데이터 보유의 양상도 변화가 나타났다. 용량이 한정된 노트북・스마트폰・태블릿이 보급되니 그만큼 외장 HDD, SD카드, USB메모리, 심지어 형태가 없는 클라우드 저장소에 데이터를 백업하는 경향이 점차 강해졌다. 필연적으로 광학 매체(DVD, 블루레이 등)의 우선순위는 낮아지게 되었다.

이미 오래 전부터 노트북은 물론 데스크톱마저도 기종에 따라 광학 매체의 드라이브가 초기 탑재되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외장 연결을 해서 써 봤자 타 보존 매체에 비해 훨씬 무겁기도 하고 말이다.


이에 적잖은 영향을 받은 게 이른바 ‘원반圓盤형’ 패키지 에로 게임이다. 박스에 넣어 파는 에로 게임이 쇠퇴한 요인은 몇 개라도 들 수 있지만 결정적으로 물리 매체를 사 봤자 드라이브가 없으니 플레이를 하려면 무언가 더 품을 팔아야 해서 부담스러운 유저의 심리를 예상할 수 있다. 패키지판과 병행하여 다운로드 판매를 제공하는 에로 게임이 보편화된 배경에는 그러한 시대의 변화가 있었음을 엿볼 수 있다.

또 앞선 문단들에서 휴대폰이나 스마트폰으로 에로 게임을 플레이하는 면면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조금 더 보충을 해 보자.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의 경우 화면을 손가락으로 만지는 행위와 게임 플레이가 직결되는 특성이 있다. 가령 캐릭터의 몸을 콕콕 찔러 반응을 보는 계열의 게임이 있을 경우 손가락으로 하는 게 마우스 클릭보다 훨씬 현장감이 높아진다.



대모험! 렛츠 고☆터치 아일랜드大冒険!ゆけゆけ☆おさわりアイランド



14년도에는 마침 DMM에 있던 야시시한 장면에서 터치 요소가 탑재된 『터치 아일랜드おさわりアイランド』라는 18금 게임을 스마트폰 앱 게임 『대모험! 렛츠 고☆터치 아일랜드大冒険!ゆけゆけ☆おさわりアイランド』와 PC 브라우저 게임 『초 대모험! 렛츠 고☆터치 아일랜드超大冒険!ゆけゆけ☆おさわりアイランド』으로 나누어 전개했다.(양측 다 16년도에 서비스 종료) 아무리 똑같은 게임이라도 만지는 실감의 증강 여부는 에로 게임 플레이에 커다란 차이를 가져오기 마련이다.



마법소녀 아이 3魔法少女アイ参



③ 『총기사銃騎士cutie☆bullet』 소동


에로 게임에서 ‘완성’과 ‘발매’는 대부분의 경우 일치한다. 그러나 슬프게도 ‘반드시’ 일치하진 않는다. 모종의 사정으로 미완성인 채 발매를 강행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08년도의 『마법소녀 아이 3魔法少女アイ参』가 어마어마한 미완성 상태로 세상에 나와 클레임에 깔려죽을 지경이 된 메이커가 추가 패치를 냈지만 여전히 볼륨도 부족하고 자세한 설명도 없던 적이 있었다. 패키지 뒷면에 기재되어 있던 작중 대사 ‘보다시피 이 모양이야ごらんの有様だよ’에 다른 뜻이 있었는지의 여부는 이제 와선 알 방도가 없다.

앞선 글에서 Garden 완전판이 숱한 발매 연기 끝에 추가 패치가 동결된 이야기를 했었는지 모르겠다. 그게 13년도의 일이었는데, 이듬해에도 한 에로 게임 타이틀이 내용 부실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총기사銃騎士cutie☆bullet



2014년 3월 28일 아카베소프트2あかべぇそふとつぅ 산하 회사에 속한 에폴덤소프트エフォルダムソフト가 『총기사銃騎士cutie☆bullet』을 발매했다. 어느 왕국의 수도를 무대로 치안 유지를 위해 총을 들고 악과 싸우는 기사인 ‘총기사’ 히로인들과 그녀를 상사나 부하로 둔 젊은이 사이에서 펼쳐지는 꽁냥꽁냥 러브러브를 그린 내용의 연애 AVG이다. 인기 일러스트레이터 유우키 하구레憂姫はぐれ 원화 제 2탄이라는 점에서 충실한 비주얼을 모두가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발매 후 8,800엔(당시 92,360.4원)짜리 풀프라이스 게임에 수록된 CG 매수가 서른다섯 장밖에 안 되는 사실에 “이건 부조리하다”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서브 캐릭터 한 명을 공략할 수 있는 추가 패치 배포를 예정하는 공지가 발매 당일 발표되었고, 동년 4월 4일 해당 패치가 배포되었지만, 그걸로 작품 전반의 부족한 감각을 달랠 수는 없었다. 일련의 흐름에 따라 4월 16일 주식회사 에폴덤이 운영하는 두 브랜드(에폴덤소프트, 애폴덤소프트crown)의 해산이 발표되고, 익일에는 모회사 아카베소프트2의 대표가 니코니코 생방송에서 긴급회견을 하는 사태까지 치닫는다. 에로 게임 메이커의 공지 경로로서 정보지나 공식 사이트 같은 정적인 미디어가 아닌 영상 배포 사이트를 선택한 게 흥미롭다.

소동 당초에는 총기사 전체를 보완하는 추가 패치 제작이 검토되었지만 결국 무산되었다. 최종적으로는 별도의 스태프들이 만든 신작 『성기사聖騎士Melty☆Lovers』(2015.09)를 총기사 상품을 메이커에 반송한 구입자들에게 대리보상으로써 무료 배포하는 조치가 행해졌다.



성기사聖騎士Melty☆Lovers



일반론적인 이야기를 해 보자. 에로 게임의 여명기에는 제작 텀이 상당히 짧고 개발비는 저렴한 데 비해 가격은 물가를 생각하면 고가였다. 시대를 거치며 상업 에로 게임은 기획 단계에서 완성까지 매우 허들이 높아졌다. 그림과 문장이 소재의 전부였던 초창기에 비해 시대를 거듭할수록 대사 보이스, BGM, 보컬곡, 효과음 같은 사운드는 물론 화면 효과, 애니메이션, 필요하면 인터페이스용 아이템까지 구성하여 집대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림만 해도 타치에, 배경, 이벤트 CG 등 세세하게 나뉜다. 본편과 별도로 판촉용 포스터나 데모 무비도 만들어야 하고, 구입 특전 등을 짜내는 수고도 불가결하다. 프로그래밍의 경우 내용을 충실히 살리고자 할수록 정상 구동을 위해 디버그를 포함해 신경을 잔뜩 써야 한다.

작업량에 따라 스태프의 품과 공정의 수는 비례해서 늘어난다. 비용이 들고, 시간이 들고, 무엇보다 제작의 지휘 계통이 복잡해지고 장대해진다. 전체를 매끄럽게 조정하기란 지난한 일이다.

시장 규모의 축소에 쉽사리 역행할 수 없는 이상 무리해서 장편 에로 게임을 만드는 행위에 수반되는 리스크는 삼십 년 전에 비해 꽤 높고 그만큼 일이 틀어질 확률도 높아졌다. 개개인의 능력 여부보다 제작 환경 위주로만 본 단편적인 분석이지만 쉽게 부인할 순 없을 것이다. 물론 거꾸로 개개인의 능력이 수준 이하라 벌어지는 인재人災로서의 가능성도 염두에 두어야겠지만 말이다.



sola



④ 히사야 나오키久弥直樹와 2014년


에로 게임계에 돌풍을 일으킨 인물이 이후 전연령 미디어로 월경하는 일은 예전부터 곧잘 있었다만, 특히 애니메이션 각본가나 소설가로서의 활약으로 새삼 주목을 받는 시나리오 라이터는 지금까지의 글에서 몇 번 개별 문단으로 다루었다. 여기서는 한때 Tactics에서 ‘ONE~빛나는 계절로~’, ‘MOON.’의 각본을, VisualArt’s / Key에서 ‘Kanon’의 기획 원안을 담당하여 오늘날의 Key를 만드는 기반을 마련한 히사야 나오키久弥直樹를 소개하도록 한다.

00년대 전반 비주얼아츠를 퇴사한 히사야는 팬 입장에서는 한동안 개인 동인활동 이외에는 소식이 들리지 않던 시기가 이어졌다. 서클 ‘Black-BOX’에서 동인 게임 활동으로 참가한 이후 05년도에 당 서클을 전신으로 한 브랜드 SIESTA의 데뷔작 『MOOD CHILDe』에서 라이터 진영에 이름을 올려 상업 작품으로 복귀한다.

이어서 06년 여름 코미케에서 하나의 콘셉트를 정리한 동인지를 내고 이것이 이듬해 TVA 『sola』의 형태로 결실을 맺는다. 히사야는 여기서 원안과 각본 담당으로 크레딧에 오른다. 참고로 애니메이션의 캐릭터 디자인은 다카포의 나나오 나루七尾奈留다.



사쿠라카구라サクラカグラ



또 시간이 흘러 12년도에 히사야는 일반 게임 분야에서 높은 인기를 구가하던 일러스트레이터 키시다 메루岸田メル와 짝을 이루어 『사쿠라카구라サクラカグラ』라는 프로젝트를 발족시킨다. 14년 5월 16일, 전 카도카와 편집장 오오타 카즈시가 세운 서브컬쳐 전문 출판사 세이카이샤星海社에서 소설 사쿠라카구라가 간행되며 히사야는 상업 장편 소설가라는 업적까지 달성하게 된다.



천체의 메소드天体のメソッド



사쿠라카구라에는 애니메이션 제작 및 기획 전문인 주식회사 인피니트株式会社インフィニット가 관여했으며, 이런 인연으로 동년 10월에는 인피니트의 프로듀스를 업고 히사야가 원안 및 각본을 맡은 TVA 『천체의 메소드天体のメソッド』가 방영되었다. sola, 사쿠라카구라, 천체의 메소드 등 일반 상업 분야에서의 히사야의 활약을 미루어 볼 때, 세 작품 모두에 관여한 인피니트 대표 나가타니 타카유키永谷敬之의 수완이 만만치 않음을 알 수 있다.



애자매愛姉妹Ⅳ



⑤ 실키즈 플러스シルキーズプラス 설립


한 세대를 풍미하면서도 10년대에 들어 어느새 만추의 그늘을 드리운 엘프는 종언을 예비하는 몇 가지 사건들이 있었다. 14년 6월 엘프 및 자매 브랜드 실키즈의 주요 개발 스태프들이 독립하여 새로운 메이커 실키즈 플러스シルキーズプラス를 설립한 것도 그 중 하나다.

회사란 개개의 인간이 부분으로서 집단 전체에 귀속하는 체계이지만 거꾸로 전체가 가진 가능성이 개개 인간의 유무에 영향을 받는 유기체이기도 하다. 한때 에로 게임이 여명기를 지나 본격적으로 기세를 발하는 시대의 스타였던 엘프가 가진 가능성이 크게 변동한 대목은 역시 93년 아히루 토시히로阿比留壽浩, 97년 켄노 유키히로(칸노 히로유키)의 퇴사와 그들이 각각 자신의 회사를 세웠을 때일 것이다. 특히 켄노가 명작 YU-NO에 이어서 후속작을 엘프에서 내지 않은 건 반향이 컸을 것이다. 그리고 엘프의 창업자 중 한 명이며 수많은 전설의 타이틀의 게임 디자인과 시나리오에 관여한 히루타 마사토 대표가 퇴사, 03년 카와라자키 가 일족 2를 마지막으로 업계에서 은퇴한 게 결정타가 되었다. 그로 인해 ‘엘프 작품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팬이 염두에 두는 요소와 실감이 걷잡을 수 없이 희석되었다.

개별적으로는 사쿠라 대전 각본가 아카호리 사토루あかほりさとる를 시나리오 담당으로 맞아 공통점이 많은 스팀 펑크 가공전기 라임색 전기담을 제작, 절찬리에 일반 계열 OSMU까지 확장한다든지, 단 오니로쿠団鬼六의 SM 관능소설을 게임화한 『꽃과 뱀花と蛇』(2006)을 출시한다든지 하는 에로 게임과 타 분야의 안팎을 연결하는 흥미로운 기획들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는 실키즈 작품을 엘프 명의로 줄줄이 리메이크하는 등 보수적인 노선을 타고 있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일곱 빛깔 린카네이션なないろリンカネーション



그런 와중 상대적으로 양호한 움직임을 보인 건 실키즈 쪽이었다. 1990년대 후반에 사실상 활동 중지 상태가 된 적이 있지만, 21세기 들어 활동을 재개했다. 『애자매愛姉妹』, 『여계가족女系家族』을 지속적으로 속편을 내는 한편 00년대 후반부터는 앞서 소개한 ‘공주기사 안젤리카’나 ‘학원최면노예’ 같은 돌출적인 음어 게임으로 도전 정신을 보여주었다.

본가에 드리운 그늘과 자매 브랜드의 활성화. 그러한 흐름의 끝에는 스태프들의 독립과 실키즈 플러스 설립이 있었다. 하기사 엘프도 저스트에서 독립한 키라라의 산하에서 활동하는 페어리 테일에서 독립했으니 남 말 할 일은 아니다. 그리고 엘프에서는 밍크, 아벨, 그리고 실키즈 플러스가 생겨났다. 시장 경쟁에서 기업의 흥망성쇠는 그리 이상할 게 아니다. 

14년 9월 일련의 상황에 따라 주목을 받은 실키즈 플러스는 만전을 기한 데뷔작 『일곱 빛깔 린카네이션なないろリンカネーション』(약칭 나나린)을 발매한다. 귀신鬼을 사역하고 이승을 떠도는 영혼을 저승으로 보내는 영능력자 일족의 사명을 이어받은 청년과 그를 둘러싼 요괴 및 인간 히로인들이 가족 드라마 같은 정취를 풍기며 전개하는 웃음과 눈물이 공존하는 내용이다.

실키즈에서 내공을 쌓던 스태프들이 기획・시나리오에 카즈키 후미かずきふみ, 캐릭터 디자인・원화에 스메라기 코하쿠すめらぎ琥珀를 맞아들여 견실한 팀을 구성해 탄탄한 작품을 만들어내 유저에게 선사한 결과, 나나린은 당해 모에 게임 어워드에서 준準대상을 수상하였다.



마법소녀 리리컬 나노하魔法少女リリカルなのは



⑥ 『마법소녀 리리컬 나노하魔法少女リリカルなのは』 20주년을 앞둔 이모저모


성인 게임의 관련 작품에 기원을 두고는 이윽고 독자적인 미디어 전개를 계속한 결과 일반 분야에서 허들 계열(캐릭터 간 전투를 메인으로 하는 작품군) 마법소녀 장르의 초대박 작품으로 자리매김한 『마법소녀 리리컬 나노하魔法少女リリカルなのは』 시리즈. 04년에 방영한 TVA 첫 번째 시리즈부터 05년 A’s, 07년 StrikerS로 이어지고, 또 평행세계의 내용을 다룬 두 편의 극장판도 10, 11년도에 개봉되었다. 거기에 드라마 CD, 코믹스화, 본가의 속편에 해당하는 소설판 『마법전기 리리컬 나노하魔法戦記リリカルなのはForce』가 전개되는 등 명줄을 오래 지속한 타이틀이다.

14년도에는 TVA 10주년을 맞았는데 이즈음 4기인 ViVid의 제작이 발표되었다. 첫 작에서 초등학교 3학년이던 나노하도 시청자를 따라 어른이 되었다. 후배나 부사수를 이끄는 선배이자, 심지어 아이를 입양한 어엿한 어머니인, 나노하 ‘씨’가 되었다.

ViViD 선상의 속편인 『ViViD Strike!』(2016년 겨울 방영)까지 가면 타카마치 나노하는 아예 타이틀에서조차 주인공의 격을 내려놓기에, 본가의 전개를 원하던 입장에선 쓸쓸한 경험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여기서 공식이 대형 떡밥을 투하하니, 바로 세 번째 극장판이자 완전 신작 『마법소녀 리리컬 나노하魔法少女リリカルなのはReflection』이었다. (2017년 7월 개봉) 13년도 제작 발표 이후 오랫동안 감감무소식이었는데 오히려 적절한 타이밍에 팬들의 기운을 북돋아준 셈이다.



DOG DAYS



곁가지 이야기를 하자면 나노하 시리즈의 근간은 첫 번째 글에서 소개했듯 에로 게임 『트라이앵글 하트とらいあんぐるハート』다. 토라하의 아버지 츠즈키 마사키都築真紀가 원작과 구성을 담당한 TVA 『DOG DAYS』의 이야기를 잠시 해보자.

도그 데이즈는 국가 간 전쟁을 스포츠나 격투 시합에 따른 경기의 흥행으로 대체하여 목가적인 평화를 실현한 이세계 프로냘드フロニャルド를 무대로, 조력을 위해 지구에서 초대된 소년소녀들이 ‘용사勇者’ 칭호를 받고는 동물 귀가 달린 공주님들과 화기애애하게 모험을 하는 내용의 주브나일 계열 작품이다. 심야 시간 애니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매우 명랑 쾌활한 내용으로 사랑받아 11, 12, 15년도에 각각 1쿨씩 방영되었다.



달빛의 라즈베리月明かりのラズベリィ



⑦ 2.5D 에로 게임의 극한 『윤무곡輪舞曲Duo』


팅클벨ティンクルベル이란 동인 서클이 있다. 스태프는 단 두 명, 그러나 상업 게임에서도 드물게 보이는(OP 영상에서나 볼 수준의) 꼬물꼬물 움직이는 동화를 본편 전체에 사용한 풀 애니메이션 에로 게임으로 이름을 알린 게임 제작 서클이다. 『푸뉴프리ぷにゅぷりSP◆암야의 무녀 촉수 함락闇夜ノ巫女触手ニ堕ツ』(2005)이나 『달빛의 라즈베리月明かりのラズベリィ∼츤데레つんデれ!!∼푸뉴프리ぷにゅぷりEXE』(2008) 등 언제나 부제에 ‘푸뉴프리’가 들어가는지라 ‘푸뉴프리 시리즈의 팅클벨’ 식으로 소개되는 경우가 많다.

3D CG의 입체감과 2D 손그림의 터치감의 장점만 뽑아낸 기술이나 장르에 대해선 앞선 문단에서 언급한 바 있는데, 푸뉴프리 시리즈는 그 ‘2.5차원’ 노선의 극한이라 할 존재이다.



윤무곡輪舞曲Duo-새벽의 포르테시모夜明けのフォルテシモ-



14년 10월 말 팅클벨은 육 년 만에 신작 『윤무곡輪舞曲Duo-새벽의 포르테시모夜明けのフォルテシモ-ぷにゅぷりff』를 발매한다. AVG 형식으로, 어느 학원의 소녀들이 저주로 후타나리가 되고 해방되려면 다른 소녀를 범해야 하는 끔찍한 상황에 처함에 따라 연쇄 능욕 행위가 만연하는 모습을 그린 암흑의 관능 청춘극이다. 백설공주 모티프를 차용하여 메르헨 격조를 띤 시나리오나 음악이 동화에 감칠맛을 더해준다.

총 플레이타임은 여섯 시간 정도로 단편에 가까운 분량이다만 풀 애니메이션인 만큼 용량은 10GB라는 초중량급이다. Super 2.5 EXD라 이름붙인 독자적으로 개발한 제작 시스템을 이용해 표현한 애니메이션은 시간으로 환산하면 120분, 컷 수는 총 100개, 게다가 절정 신은 스물여덟 번이나 있어 경이로운 비주얼적인 밀도를 자랑한다.


기존을 뛰어넘는 기술 혁신을 수행, 보다 아름답고 매끄러운 표현이 가능해졌습니다. 진화한 본 버전에서는 지금까지의 몇 배로 복잡화한 작화 데이터를 보다 정확하게, 매끄럽게, 격렬하게 가동시키겠습니다. 생명감 넘치는 얼굴 표현, 움직임, 보다 복잡화한 완벽한 립싱크(입 모양을 대사에 맞추는 것), 관절 가동 범위의 확장, 접합 묘사, 환경 효과 등을 대폭 강화했습니다.


본편을 플레이해 보면 공식의 상품 소개 텍스트가 마냥 허풍이 아닐 정도로 충실하게 구현되어 있다. 게다가 가격은 다운로드 판매 사이트의 동인 게임 가격대인 2600엔이라는 저가이다.

이 작품의 겉으로 보이는 미려함만 보면 ‘동인 수준을 넘어섰다’고 평가하고픈 유혹에 휨싸인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애니메이션에 치중하여 다소 리니어한 내용, 저가판 볼륨의 작품 하나에 육 년을 투자했다는 점 등은 작품 발매의 회전율을 유지하여 업체를 연명하는 상업 계열에서는 치명적인 요소이다. 오히려 ‘지극히 동인답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Sakura Spirit



⑧ 스팀 걸 게임의 대략적인 상황


PC 게임 대상 다운로드 판매 플랫폼 Steam. 10년대 이후 해외의 게임 유저가 일본산 미소녀 게임 또는 일본풍 해외산 미소녀 게임과 접점을 갖는 장으로서 이를 주목해 두자. 스팀은 성인물 규제가 심해 기본적으로 에로 게임에서 컨슈머 이식된 판본을 영역하여 배포하는 식의 ‘에로 게임 원전 걸 게임’ 쪽을 찾기가 더 쉽다. 구체 사례로는 앞서 소개한 ‘수레바퀴의 나라, 해바라기의 소녀’, ‘G선상의 마왕’ 등이 있다. 그리고 애당초 전연령판으로 나온 CLANNAD는 15년도 영문판 업로드 당시 연말 매상 10위권 내에 들은 바 있다.

이러한 스팀에서의 해외 로컬라이징 미소녀 게임, 특히 비주얼 노벨에 관해서는 일본 미디어 콘텐츠 판권 관리나 현지화를 전문으로 하는 미국 캘리포니아의 유통・출판 기업 Sekai Project가 큰 역할을 하고 있다. 클라나드의 번역에 관여한 것도 이 업체로 그 외에도 그리자이아 3부작이나, 소설 ‘늑대와 향신료狼と香辛料’의 작가 하세쿠라 이스나支倉凍砂가 주식 경제를 SF 사양으로 다룬 『WORLD END ECONOMiCA』(Spicy Tails社 개발)처럼 전문용어에 따른 고난이도 번역을 요하는 타이틀도 다루어 구미의 비주얼 노벨 시장이라는 틈새시장을 정력적으로 확보하고 있다.

게다가 Sekai Project는 일본 게임을 번역할 뿐 아니라 구미의 일본풍 걸 게임 역시 판매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뜨거운 주목을 받은 작품이 14년 7월에 발매된 『Sakura Spirit』다. 선정적인 개량 기모노를 입은 동물귀 히로인이나 도검을 든 히로인들의 조형이 한눈에 봐도 일본산 걸 게임이라 해도 손색이 없는 화력畵力으로 발군의 눈요기를 선보여 스팀 내외 리뷰에서 고평가를 받았다. 이는 이후 Sakura 시리즈로 이어져 스팀 배포 해외 걸 게임의 대표사례가 되었다.



Everlasting Summer



14년도에는 또 하나의 작품이 주목을 끄는데, 11월에 발매된 러시아산 프리웨어 게임으로 비주얼 노벨 형식 연애 AVG 『Everlasting Summer』가 그것이다. 대학 동창회에 참석하고자 버스를 탄 청년이 선잠에서 깨어나자 어째선지 구 소련 소년단 피오넬의 야영지에 와 있고, 거기서 만난 히로인들과 관계를 쌓아가는 내용의 다소 신비한 이야기다. 등장 캐릭터 중 미쿠라는 이름의 녹발 트윈테일 여자아이가 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하ㅊ(이하생략)

Everlasting Summer는 당초에 성인 요소를 포함한 플레이 여부를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있어 스팀 첫 에로 게임이라는 놀라움의 시선을 받았으나 알고 보니 운영 측의 체크 누락으로 그대로 게재된 것이었다. 이후 성인 모드를 삭제한 전연령 걸 게임으로 수정되었다.



Kindred Spirits on the Roof



그 후 스팀에서 정식으로 무수정 성인 게임 판매의 스타트를 끊은 건 결국 일본산 타이틀이었다. 라이어소프트 원전으로 16년에 Mangagamer라는 유통사에서 발매한 영문번역판 『屋上の百合霊さん옥상의 백합령 씨』가 그것으로, 영어 제목은 『Kindred Spirits on the Roof』다. 스팀 에로 게임의 첫 번째 횃불은 백합물이 붙인 것이다.



푸른 저편의 포리듬蒼の彼方のフォーリズム



⑨ 2014년도의 주목할 에로 게임 


14년도에 출시한 에로 게임 중 가장 인지도가 높은 작품이라면 sprite社의 『푸른 저편의 포리듬蒼の彼方のフォーリズム』 통칭 아오카나가 있다. 나가사키 현長崎県의 고토 열도五島列島를 모델로 한 외딴 섬을 무대로, 반중력 비행 슈트를 입고 하늘을 날며 경기 에리어 내 득점 포인트 터치를 겨루는 스포츠 ‘플라잉 서커스’를 소재로 하는 학원 스포츠 드라마다. 가공의 스포츠를 구축하여 그 안에서 규칙, 기예, 전술 등을 창작하는 꼼꼼함과 튀지 않는 정석적인 연애 AVG를 철저하게 답습한 본작은 팬층의 탄탄한 지지를 얻었다. 결과 당해 모에 게임 어워드에서 연간 대상과 유저 지지상(금상)을 수상하게 된다.



사랑과 선거와 초콜렛恋と選挙とチョコレート



아오카나를 만든 sprite의 처녀작은 『사랑과 선거와 초콜렛恋と選挙とチョコレート』 약칭 코이초코다. 타이틀 히로인 성우를 나카무라 에리코와 이마이 아사미가 맡아 화제가 된 작품으로 TVA로도 방영했다. 아오카나 역시 얼마 지나지 않아 TVA화가 기획되고 16년도에 방영과 동시에 컨슈머판 이식도 병행되어 히트한 에로 게임의 정석적인 OSMU 루트를 밟았다.



저 맑게 갠 하늘보다도 높이あの晴れわたる空より高く



이 외에도 로켓 제작에 열정을 불태우는 소년소녀들의 부활동을 그린 『저 맑게 갠 하늘보다도 높이あの晴れわたる空より高く』(약칭 하레타카, 츄어블소프트チュアブルソフト)가 아오카나와 더불어 청춘극의 힘을 보여주었다.



선봉 제네레이션サキガケ⇒ジェネレーション!



또 풀 다이브 VR 판타지 게임 세계의 모험과 현실 세계의 마법을 둘러싼 사건들을 연계해 나가는 『선봉 제네레이션サキガケ⇒ジェネレーション!』은 클로셰트クロシェット의 장기인 코미디 장착과 더불어 원화가 오시키 히토시御敷仁의 육덕진 신체의 히로인 덕에 친근감 있는 정석적인 에로 게임이란 평가를 받았다.



아마카노アマカノ



정석적이랄까 올곧다는 의미에선 아자라시소프트あざらしそふと의 『아마카노アマカノ』도 언급해 두도록 하자. 세 히로인 중 한 명을 선택, 이후 한결같이 알콩달콩하게 교제해 나가는 내용으로 이른바 ‘꽁냥 연애물’ 분야의 정석을 관통하는 작품이다. 후일담 확장 패치 등 히로인과의 나날을 보내는 유저의 감정 이입을 심화시키고자 궁리하는 진격의 아자라시소프트는 본작이 데뷔작인 것도 있어 큰 기대를 모았다.



나가자! 부르냥맨 엑스터시それゆけ!ぶるにゃん マンエクスタシー!!!



에로 게임과 일반 계열을 월경하는 재미있는 사례로, 먼저 원판을 컨슈머 이식하고는 그를 베이스로 18금 역이식하는 경위를 거친 『나가자! 부르냥맨 엑스터시それゆけ!ぶるにゃん マンエクスタシー!!!』 (Digital Cute)라는 작품이 있다. 블루머나 학교 수영복을 입힌 고양이 귀 캐릭터를 조작하는 횡스크롤 슈팅 게임으로, 역이식된 에로 게임 버전은 원판에 없던 컨슈머판 전용 캐릭터가 등장하는 증보작처럼 되었다.



쿠로 선배와 검은 저택의 어둠을 헤매지 않아黒先輩と黒屋敷の闇に迷わない



페티시 방면에선 상업 게임으로는 『어째서 그렇게 흑발이 좋은 거야どうして、そんなに黒い髪がすきなの?』(파이어워크스ファイアワークス)와 비상업 무료 게임 『쿠로 선배와 검은 저택의 어둠을 헤매지 않아黒先輩と黒屋敷の闇に迷わない』(아에바의 숲喘葉の森)은 흑발 생머리 미소녀 페티시를 노린 콘셉트로 주목받았다. ‘쿠로 선배~’의 경우 흑발 생머리에 검은 세일러복에 검은 스타킹이라는 올 블랙 스타일링의 무표정 쿨 뷰티 여선배를 파트너로 하여 수수께끼의 저택 맵을 탐색하는 게임이다. 탐색 중간중간 선배에게 에로한 장난을 거는 이벤트로 점철되어 있는 게 볼거리다. 이후 상업 계열에서 소설 및 코믹스로 나와 흑발 생머리의 매력을 일본 열도에 주지시키는 존재가 되었다.

또 쿠로 선배의 캐릭터 디자인은 만화 『누라리횬의 손자ぬらりひょんの孫』의 간판이라 할 수 있는 냉철한 요괴 하고로모키츠네羽衣狐(여고생 버전)을 강하게 연상시키지만 성격적으로는 연심의 대상인 소년에게 스토커 예비군 수준으로 활기차게 달라붙는 강아지 계열 히로인의 느낌이 나는 게 독특한 점이다.



Dies irae



⑩ 『Dies irae』 애니메이션화 프로젝트 


00년대 후반 light사에서 발매한 『Dies irae』라는 게임이 있다. 일본의 어느 정부 지침으로 지정된 도시를 배경으로 초인들로 이루어진 나치 잔당 그리고 사람을 죽일수록 전투력이 강화되는 마법 기구 ‘성유물聖遺物’과 엮인 어둠의 세계에 이끌린 청년의 싸움을 그린 전기 액션 AVG이자 비주얼 노벨이다. 초판은 07년 12월 발매되었고 정식 타이틀은 『진노의 날 차라투스트라는 말했다Dies irae Also sprach Zarathstra』로 동명의 악곡과 니체 저작에서 차용하였다.

발매 직후 히로인 공략 루트의 부족이나 공식 사이트의 샘플 CG를 우려먹는 등의 문제로 거하게 말아먹을 뻔했다가 09년도에 시나리오 개선・증가판과 신 루트 추가판을 새로이 발매하였고, 모든 내용을 하나로 묶은 완전판 『Dies irae ~이야기는 끝났다Acta est Fabula~』의 완성을 통해 원래 있어야 할 형태로 자리 잡았다.

발매 전후로 전일담이나 후일담 보이스드라마를 수록한 관련 CD도 다수 발매되어 본편과 맞물려 깊어지는 작품 세계가 날이 갈수록 견고한 인기를 모아, 초판 발매 후 삼 년 만인 10년도에는 시리즈 누계 5만 장 판매 기념 캠페인이 열리기까지 했다.

10년도에도 시리즈가 진행되어 설정 상 밀접하게 관련된 『카자이카무이카구라神咒神威神楽』(2011.09)나 디에스 이레 PSP판 사랑하는 광인들Amantes Amentes(2012.06)이 발매되었다. 2014년은 light의 브랜드 설립 15주년으로 그를 기념한 Dies irae에 관한 대형 기획이 4월에 발매되었다. 바로 OSMU의 꽃, 애니메이션화였다. 특이한 건 자금 관련 문제를 당시 주목받고 있던 크라우드 펀딩을 활용했다는 점이다. 즉 ‘팬 여러분, 내게 조금씩만 돈을 나눠 줘!’ 식의 원기옥스런 조달법이었다. 프로젝트가 내건 목표 기간과 금액은 2개월 내 3천만 엔. 달성이 되면 애니메이션화가 결정되는 것이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동년 5월 9일 플랫폼 사이트 UNEEDZONE.jp에서 개최된 디에스 이레 애니메이션화 프로젝트의 크라우드 펀딩은 2개월은 고사하고 23시간만에 3천만 엔에 도달했다. 기간이 만료된 시점에서 5,187명의 지원자로부터 총 96,510,858엔이 모였다. 당시로서는 일본 국내 최단시간・최대인원・최고금액을 기록한 사례였다. 그렇게 디에스 이레는 경사스럽게도 2017년 4분기에 TVA로 방영되었다.

사족이지만 크라우드 펀딩은 단순히 자금을 조달하는 수단만은 아니다. 인지도와 지지도가 어느 정도 있는 개인이나 단체가 기획서를 들고 제작사, 유통사의 문을 두드릴 때 이러한 경과를 보여 주며 ‘이 정도 판매고와 영향력은 확보해 드립니다’라고 입증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그래서 군중crowd은 출자자라기보단 지원자고 지지자다. 이나후네 케이지는 마이티 No.9으로 단순히 돈을 먹튀한 게 아니라 록맨과 자신의 팬들의 지지를 수채통에 버린 셈이다.

10년대는 에로 게임 시장의 불황에 대한 화제가 곧잘 나온 한편 에로 게임의 형태의 변화를 의식시키는 흥미로운 도전도 많았다. 그 중에는 에로 게임에 대한 팬의 응원의 형태를 근본부터 묻는 일도 포함되어 있다. 디에스 이레 애니메이션화의 크라우드 펀딩도 그러한 사례로 기억될 것이다.



몽환포영夢幻泡影



⑪ 『귀축왕 란스』 브라우저 동작판


이어서 또 다른 의미에서 에로 게임의 형태에 관한 화제를 끄집어내 보자. 앨리스소프트가 자사의 오래된 타이틀 다수를 무료 배포 대상으로 선언한 이래 비상업용 복제・확산을 유저들에게 용인했음은 지난 글에서도 밝혔다. 그러한 흐름 속에서 유의미한 움직임이 일어났다.

2015년 6월 9일. 앨리스소프트 무료 배포 타이틀 중 하나이자 란스 시리즈를 넘어 앨리스소프트의 기념비적인 명작이라 할 수 있는 전략 SLG 『귀축왕 란스』를 구글 크롬 브라우저상에서 동작시킬 수 있는 실행 환경을 구축하여 제공하는 사이트가 설치되었다.

앨리스소프트 무료 배포 작품을 즐기려면 당시와 똑같은 플랫폼(PC98, 88, MSX 등)을 구비하거나 해당 에뮬레이터를 구동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실제 플레이에는 나름대로 진입장벽이 높았다. 귀축왕 란스의 경우 배포된 CD 이미지 파일을 실제 CD로 굽거나 가상 드라이브로 구동해야 했다.

회사 내부에서는 이를 안타까워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당사자는 앨리스소프트가 개발 환경을 공개한 게임 엔진 System3.5로부터 만들어진 xsystem3.5을 구글산 개발 도구 Portable Native Client로 이식해, 윈도우 뿐 아니라 MacOS에서도, Linux에서도 Chrome상에서 브라우저 게임으로 즐길 수 있는 귀축왕 란스 실행환경을 만들어냈다.

구체적인 실행 단계는 다음과 같다. 우선 ‘귀축왕 on Chrome’ 환경의 제공 사이트( http://kichikuou.github.io/ )를 크롬 브라우저에 열어 둔다. 이어서 앨리스소프트 아카이브즈( http://retropc.net/alice/ ) 또는 다른 소프트 배포 사이트에서 귀축왕 란스 CD 이미지 파일을 입수, 압축 파일을 푼다. 폴더 내 .img와 .cue 파일을 앞서 열어둔 사이트에 드래그&드롭하여 인스톨을 개시한다. 이걸로 준비는 끝났다. 구형 기기나 에뮬레이터에 비해 훨씬 깔끔하고 간단하다.

게다가 xsystem3.5 기반 소프트면 다른 작품도 마찬가지로 돌릴 수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Win95판 『투신도시Ⅱ』, 『몽환포영夢幻泡影』을 시작으로 왕년의 여러 명작 및 수작들이 같은 사이트에서 크롬 브라우저에 적응하는 걸 유저들이 확인하였다. (동년 9월 갱신 이후)

플레이 환경이 단절되면 실재를 후세에 남기기 힘든 에로 게임의 숙명에 대한 인상 깊은 도전이었다. 



Angel Beats!



⑫ 마에다 쥰의 애니메이션 각본 활동


크리에이터 마에다 쥰을 이야기할 때 어느 시대의 어느 작업에 착안하느냐에 따라 그를 게임 기획자라고도, 시나리오 라이터라고도, 작곡가라고도, 만화 원작자라고도 말할 수 있다. 10년대의 마에다의 경우 그에 더해 TVA 원작자 겸 각본가란 타이틀도 붙일 수 있다.

07년도 리틀 버스터즈 기획・시나리오 담당을 전후로 마에다는 이후의 게임 제작을 뒷 세대에 맡긴다는 의의를 겸해 잠시 펜을 놓을 것을 선언했다. (월간 콤프틱月刊コンプティーク 07년 2월호) 그러나 이후 애니메이션 제작사 P.A.WORKS에서 각본가로서 마에다를 등용하고 싶다는 제안이 있었고 이를 수용하게 된다. 작품 제목은 『Angel Beats!』. 애니플렉스와 전격 G’s매거진 그리고 Key의 공동 프로젝트로서 성황리에 미디어 전개가 이루어졌고 마에다는 원작・각본・음악 프로듀싱으로 자신의 모든 기능을 발휘했다. TVA는 10년도 4~6월에 총 13화로 방영되었다.

엔젤 비츠의 무대는 사후 세계이다. 혼이 천국에 다다르기 직전의 연옥과도 같은 공간에 구축된 학원을 무대로, 성불을 거부하고 눌러앉아 있는 소년소녀들의 생활, 전투, 생전에 끌어안은 미련의 승화 등을 그린 관념적 판타지 청춘 드라마이다. 캐릭터 디자인 담당은 리틀 버스터즈의 원화가인 Na-Ga로 이로써 대부분의 작품군이 애니메이션화된 소위 ‘열쇠 애니’의 하나의 고리로서 참조할 만하다.



Charlotte



이후 P.A.WORKS는 재차 마에다에게 TVA 하나를 전면적으로 일임한다. 14년도 발표 후 15년도에 방영한 『샤를로트Charlotte』가 그것이다. 방영 전, 아직 세부 내용이 대외비일 때 공개된 키 비주얼은 두 종류가 있었다. 하나는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소년소녀의 컷에 「소중한 무언가를 잃게 되더라도 소년은 운명에 맞선다. / 마에다 쥰은 묻는다, 눈부신 청춘의 행방을.」라는 캐치카피가 적혀 있었다. 또 하나는 조명이 떨어진 어느 시설 지하에 우뚝 선 두 소년의 컷에 「소중한 누군가를 잊어버리는 한이 있어도 괴물은 운명에 맞서나간다. / 마에다 쥰은 묻는다, 가혹한 운명의 결말을.」라는 캐치카피였다. 초능력자를 소재로 한 작품이라는 정보에 대조적인 두 비주얼이 어떤 전개로 이어지는지 흥미를 끄는 선전이 되었다.

15년 7월 오랜 기다림 끝에 방영이 시작되었다. 타인에게 수 초간 옮겨 붙을 수 있는 특수 능력을 컨닝에 이용하여 우등생을 연기하던 소년이 능력을 악용하는 능력자를 징벌하는 소녀에게 걸려, 징벌 활동에 협력하는 사이 성장을 이루어 마침내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능력자의 운명을 좌우하는 시련에 도전한다는 파란만장한 이야기로, 개그와 시리어스의 간극을 오가며 상황을 심화시키는 마에다 식 서사가 강하게 드러난 작품이 되었다.

이후 샤를로트 프로젝트가 일단락되고 2016년 2월, 마에다는 트위터를 통해 입원해 있다는 근황을 알린다. 그리고 7월 특발성 확장형 심근증Idiopathic cardiomyopathy 진단을 받았으며 추후 심장 이식이 불가피함을 알려 팬들을 동요케 했다. 그럼에도 작품 활동에 대한 의지를 굽히지 않음을 밝혔다.



⑬ 아동 포르노 단순 소지 처벌 규정 시행 


통칭 아동 포르노법児ポ法, 아동 포르노 금지법児童ポルノ禁止法. 정식 명칭은 ‘아동 매춘, 아동 포르노에 관한 행위 등의 규제・처벌 및 아동의 보호 등에 관한 법률児童売春、児童ポルノに係わる行為等の規制及び処罰並びに児童の保護等に関する法律’이다. 아동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이 법률은 99년 제정 후 04년, 14년에 각각 개정되었다. 14년 여름 개정안에는 성적인 목적으로 아동 포르노 표현물을 소지한 자에 대한 처벌이 규정되었고, 이에 근심한 여론으로부터 논의 및 반대 운동의 불씨가 지펴졌다.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 범죄가 성립하는 아동 포르노란 게 구체적으로 어떤 건지 애매하다”

“확인할 방도가 없는 심중의 목적으로 범죄 성립의 여부가 좌우된다(조사 당국의 눈대중에 따라 죄가 결정되는 그야말로 원님 재판으로 흘러갈 것이다”


이런 식으로 주로 확대 해석의 여지가 넘친다는 게 반대자들의 주된 입장이었다. 피사체 역시 겉으로 보이는 인상으로 ‘아동’ 여부를 판단할 수밖에 없는 사례가 분명 발생할 것이며 특히 엔터테인먼트 방면 표현물 산업이 입을 영향이 막대할 것임은 쉽게 상상할 수 있었다.

게다가 초기 개정안에서는 애니메이션이나 만화 등 2차원 픽션물도 규제 범위에 넣을지의 여부를 검토하려 했던 항목이 있었으며 그 때문에 더더욱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


큰 줄기는 바뀌지 않은 채 사태는 진행되었다. 개정 일 년 후인 15년 7월 15일 아동 포르노 단순소지죄(7조 1항)가 시행 단계에 들어섰다. 즉 ‘아동 포르노를 소지하고 있으면 범죄지만 일 년 동안은 안 잡을 테니 처분해 둬라’는 계도 기간이 끝나고 체포가 행해지는 국면에 접어든 것이다.

실제로 시행 후 2개월도 지나지 않아 단순소지 적발 첫 사례가 생겨나고 말았다. 15년 8월 2일 오키나와 현 나하那覇 시에서 초・중학생 수영 대회 현장에 있던 남성이 거수자로 신고되었을 때 경찰이 스마트폰을 확인하자 인터넷에서 다운로드한 외국인 여아 화상 데이터를 발견했고 익월 1일 서류 송치되었다. 얄궂게도 경찰이 화상을 발견했을 때 현행범 체포가 되지 않게 신중히 접근했다는 대목에서 당국 스스로 ‘성적 목적’을 판단하기 어렵다는 문제점을 시사한 꼴이 되었다.


아동 포르노법은 어디까지나 현실에 생명을 갖고 살아가는 실제 아동을 보호하기 위한 법률이다. 검토 항목에 들어간 적이 있다고 해도, 2차원 캐릭터는 대상으로 하고 있지 않다.(어디까지나 일본의 경우이다. 한국은 캐릭터한테 교복만 입혀도 긴장해야 하는 걸 독자 분들은 알 것이다.)

소위 유해 도서를 둘러싼 처벌이나 앞서 이야기한 도쿄 조례안에서 드러난 ‘비실재 청소년’ 개념과의 혼동으로 규제 찬성・반대 어느 쪽이든 무심코 2차원 로리물까지 규제 대상으로서의 아동 포르노로 간주하는 착오를 범하기 쉬우므로 명확하게 구분을 해야 할 것이다.

단 ‘2차원 로리 표현이 존재함으로써 실재 아동에 대한 성적 시선을 가질 수 있는 개인이나 사회 풍조가 긍정・조장된다’는 환경 효과론이 있는 터라 2차원 작품의 제작자든 수용자든 강 건너 불구경하듯 있을 수만은 없다. (경우에 따라 아동 자신이 피해자와 가해자를 겸하는 상황도 상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아동 권리를 지킬 법률의 목표 자체는 커다란 의의와 필요성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선구자들의 노력 덕에 아동 청소년은 학교와 가정에서 인격을 지닌 존재로 대우받게 되었고, 이는 냉정히 말하면 교사와 부모의 재량이 훨씬 줄어들었음을 의미한다. 한정된 공간과 시간과 자원 속에서 구성원들끼리 다투는 권리란 건 그런 것이다. 진정 아동 청소년의 권리를 확보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성인이 콘텐츠를 만들고 소비하려는 욕구와 상충하는 구간이 생긴다면 열린 마음으로 원탁에 앉을 수 있다. 그것이 몇몇 정치가들과 이권 세력의 표심 장악을 위한 프로파간다로 변질되지 않는다면 말이다.



Fate/Grand Order



⑭ 페그오 쾌진격 


15년 7월 30일, TYPE-MOON의 페이트 스테이 나이트의 흐름을 이은 스마트폰용 소셜 게임 어플리케이션 『Fate/Grand Order』(약칭 페그오, 안드로이드 기반)가 정식으로 서비스를 개시했다. 14년 7월 발표(사전등록 동년 12월)로부터 일 년 만이었다.

스토리의 발단은 2015년, 지구의 미래를 관측하여 백 년 뒤까지 인류의 존속을 보장해 온 기관 칼데아カルデア가 돌연 2017년 이후의 역사를 관측할 수 없게 된다. 이 해에 운명은 인류가 멸망하는 쪽으로 바뀐 듯 했다. 원인을 찾아보니 2004년 일본의 어느 지방도시에 관측 불가능한 영역이 출현했었다. 여기가 원흉이라고 생각한 칼데아는 적합한 인간을 시간 여행을 통해 과거로 보내 특이점으로서의 사상事狀을 해명・파괴하기 위한 의식에 착수한다. 일련의 프로젝트의 이름은 인리수호지령人理守護指令-그랜드 오더Grand Order-. 인류를 멸망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인간사와 싸우는 자들이 마지막에 다다를 광경은 무엇일까…

이러한 장대한 초시공 SF 판타지 설정을 기반으로 게임 내용은 유료 리소스를 소비하는 가챠 등으로 입수한 캐릭터 카드로 부대를 편성, 커맨드 조작을 통한 배틀로 전투를 행하는 RPG 형식이다.

시나리오는 나스 키노코가 감수를 맡은 가운데 외부에서 앞선 글에서 소개한 히가시데 유이치로와 사쿠라이 히카루가 참가하였다. 이후 라이어소프트 출신 호시조라 메테오(현 타입문 소속)와 소설가 미나세 하즈키水瀬葉月(『프리즈마☆이리야』 각본)도 크레딧에 올랐다. 에로 게임의 일세를 풍미한 인물들이 전연령 소셜 게임이라는 새로운 장에서 문예를 경연하는 호사스런 무대가 된 것이다.

이 집필진이 써 내려가는 방대한 볼륨의 시나리오로 Fate 세계관이 대폭 확장되어 역사에 이름을 남긴 위인, 걸물, 영웅들이 성별 설정을 포함해 특수한 조형으로 재현되어 활약하는 내용은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세이버 첫 등장 시 “아더왕을 여캐로 만들어서 연애를 한다고?” 할 때보다는 온건한 반응이었다) 타입문의 기존 작품을 해보지 않은 신규 팬 층도 대폭 확보하는 데 성공하여 1주년 시점에 6천만 다운로드를 돌파, 16년 7월 종반 앱 내 세일즈 랭킹에선 포켓몬GO를 앞지르는 등 페그오는 일약 소셜 게임계의 총아가 되었다.


게임 전개 자체도 탁월했는데, 장章 구성으로 수시로 시나리오를 배포하여 ‘앞으로 나아간다’는 실감을 유저에게 부여했는데, 결정적으로 2016년 크리스마스에 1부 메인 스토리 최종장을 배포하여 ‘2015년에 막을 올리고는 멸망에 직면한 2016년 말을 뛰어넘어 2017년을 맞이한다’는 작중 타임라인의 체감을 그대로 현실 스케줄에 반영했다. 서비스 개시 시점부터 플레이한 유저로서는 감개무량하기 이를 데 없었을 것이다. 심지어 그를 대규모 레이드 전투를 치른 다수 유저가 같은 날 공유했으니 말이다. 그야말로 극한의 소셜Social 스토리텔링 기획이었던 셈이다.

또한 이는 온라인 게임 분야에서는 귀중한 ‘스토리의 완결’의 풍미를 최대한 이끌어냈다는 의의에서도 걸출하다고 할 수 있다.



로드 엘멜로이 2세의 사건부ロード・エルメロイⅡ世の事件簿



페이트 작품군은 지금에 이르러선 정사・패러랠 역사가 뒤얽혀 노도와 같은 미디어 전개가 펼쳐지고 있다. 몇몇 외전 게임 외에 컨슈머 쪽 EXTRA 시리즈, 소설 『Fate/strange Fake』나 『로드 엘멜로이 2세의 사건부ロード・エルメロイⅡ世の事件簿』(추후 TVA화), 만화 및 애니메이션 『프리즈마 이리야プリズマ☆イリヤ』 시리즈 등등… 하나의 타이틀을 기반으로 한 세계에서 생겨난 작품・상품의 다양함은 가히 페이트 시장이라 부를 만한 양상이 되었고, 페그오는 그 연장선상에 놓인 집대성이다.

이쯤 되면 팬질의 대상은 반드시 에로 게임 메이커 타입문이라 한정할 순 없다. 바꿔 말하면 04년도작 팬이 “페이트 그거 원래 야겜인 건 아세염?” 하며 후발 팬에 대해 마운트를 취하기가 굉장히 애매한 상황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원래’를 따지자면 『월희』, 『공의 경계空の境界』, 『마법사의 밤魔法使いの夜』, 더 거슬러 올라가면 동인 시절 『강철의 대지鋼の大地』 구상, 그보다도 전부터 나스가 짜온 종합적인 픽션 세계관이 여러 미디어로 전개되기 전부터 있었다. 그러한 기원이 어느 시기엔 소설로, 또 에로 게임으로, 또 만화로, 또 애니메이션으로, 15년도에는 소셜 게임으로 표상되어 온 것이다. 따라서 에로 게임 페이트 역시 출발점이라기보단 그러한 표상의 한 과정이라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소녀 라무네少女ラムネ



⑮ 숙성! 로리겜 레퀴엠(?) 


15년 7월 『소녀 라무네少女ラムネ』라는 에로 게임이 발매되었다. 샐러리맨을 그만두고 시골에 틀어박힌 남자가 ‘작은 여자 아이를 바라보며 여생을 보내고 싶다’는 운치 있는 꿈을 안고 막과자 가게를 열어 단골이 된 소녀들과 여름을 나는 AVG이다. 로리콘 귀농이라니 전생에 무슨 업보를 진 걸까, 물론 이걸 사서 한 로리콘들도 다를 바 없지만 말이다.

에로 게임사를 통틀어 로리 게임은 시기 시기마다 어김없이 존재감을 발휘해 왔다. 1980년대엔 로리콘 붐을 등에 업은 만화 분야에 영향을 받은 로리콘소프트ロリコンソフト가 발흥했다. 89년 미야자키 츠토무 사건을 계기로 사회적 지탄이 강해졌으나 90년대에는 총체적으로 다양해지는 히로인 조형 중 로리 캐릭터도 하나의 바리에이션으로 온존되었다. 21세기에는 로리 만화 전문지 『코믹LOコミックLO』가 창간되었고 로리 피규어 ‘주간 나의 오빠週間わたしのおにいちゃん’가 화제가 되는 등 새로운 조류로서 상승했으며 앞선 글에서 소개한 ‘처음 하는~’ 시리즈나 SCORE 작품군 같은 신본격 로리 게임의 토대가 구축되었다. 여기까지의 경위는 앞선 글들에서 이미 설명했다. 성인 미디어의 숙명인 비판 – 잠복 및 자숙 – 재활성화의 스파이럴을 보건대 로리 방면은 지극히 상징적인 분야라 말할 수 있다.

실재하는 아동의 인권 침해를 상정한 ‘아동 포르노’ 개념이 법적으로 정착한 여파로 애니메이션이나 만화의 향후를 검토하는 계기가 되었고, 성인 게임을 포함한 로리 계열 장르는 논의의 단골 소재가 되었다. 이에 따라 업계의 검수 기준이 변동했을 경우 설정이나 표현 면에서 소위 ‘안전빵’을 걸 필요성이 생겨난다. 히로인은 전원 18세 이상임을 강조한다든지 등신 비율을 일정 이상으로 그린다든지 하는.

이번 문단에서는 그런 거친 정세가 이어진 00년대 후반부터 10년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로리 장르를 열심히 추구한 브랜드의 대표 사례를 두세 개 정도 소개할까 한다.



조카소녀姪少女



우선은 타누키소프트たぬきそふと다. RUNE을 지탱하던 원화가 노노하라 미키와 아카마루赤丸 두 사람이 08년 퇴사 후 새로 설립한 브랜드이다. RUNE에서 『Fifth~フィフス~』부터 시작하여 노노하라는 로리 계열 히로인의 뛰어난 조형으로 인기가 높았던 일러스트레이터였고, 타누키소프트에서도 그런 색깔이 농후하게 이어졌다.

브랜드 데뷔작은 『조카소녀姪少女』(2008)로, 하숙하러 온 조카 둘에게 장난을 치는 내용이다. 뒤이어 『미소녀微少女』(2009), 『소교녀少交女』(2010), 『메바에めばえ』(2011) 등 제목만 나열해도 우렁차게 일관성을 주장하는 작품들을 출시해 왔다. 그런 타누키소프트가 15년도에 낸 작품이 앞서 언급한 소녀 라무네이다.

17년 6월에는 『오빠 정말 좋아お兄ちゃん大好き!』가 발매되었다. 천성이 시스콘인 오빠가 친여동생과 의붓여동생 두 사람의 사랑을 성적인 의미에서 막을 수 없게 되는 내용이다. 그러니까 전생에 무슨 업보를 진 거냐고.



비밀 중의 비밀ないしょのないしょ!



또 하나 소개할 메이커는 아이리스Iris다. 비주얼 아츠 산하 브랜드로 데뷔작은 2011년 7월 출시한 『어둠색 스노우드롭스闇色のスノードロップス』다. 동인 서클 Cotton Club의 『쿠레우타くれうた』(2007)를 상업용으로 증보한 리파인판으로, 천진스러운 캐릭터 디자인에서 예상하기 힘든 인간의 악의나 비극을 그린 능욕 신까지 있는 하드한 측면이 강한 작품이다.

그런데 이들은 2012년 한 타이틀로 노선을 일신하는데 그 제목은 『비밀 중의 비밀ないしょのないしょ!』 그림책 작가인 주인공이 어느 날 돌연 밀어닥친 로리 쌍둥이 히로인과 공동생활을 시작하더니 사이좋게 변태 플레이를 탐닉해 간다는 빼도 박도 못할 천하 페도의 내용으로, ‘어둠색~’부터 원화를 담당한 후쿠미미ふくみみ의 비주얼을 로리 방면에서 풀 전개한 달달하고 밝은 고농도 로리 게임이다.

욕탕이나 비닐 풀장 등 단골 시추에이션 묘사나 야외 방뇨・볼일 등의 묘사, 로리와 로리가 그려진 패키지나 로고 디자인은 그야말로 ‘처음 하는’ 시리즈의 재래를 방불케 하여 페도 야게머들의 두 개의 심장을 뜨겁게 했으며 이후 이 노선이 아이리스의 기반이 되었다.

14년 6월에는 팬시 숍을 무대로 점원 소녀, 옆집 러시아 소녀, 가출 중인 페티시 비디오 아이돌 이상 세 명을 상대하는 『죠아 죠아 졍말 죠아しゅきしゅきだいしゅき!!』를, 16년 10월에는 외딴 섬의 학생이 거의 없는 학교에서 스쿨버스 운전수와 여자 기숙사 관리인 일을 하는 주인공이 주변 여자아이들의 매력에 빠지는 『쪼그맣지 않다구! ~스쿨버스에서 학생 맞이 뽑뽀~ちっちゃくないもんっ!~スクールバスでおむかえちゅっちゅ♥~』를 출시하며 작품을 이어나가고 있다. 아, 당연히 히로인들은 쪼그맣다.

참고로 아이리스는 각 작품을 안드로이드에도 출시했다. 판매 플랫폼은 아니게마アニゲマ로, 안드로이드용 게임, 앱, 서적 등을 취급하는 종합 마켓 사이트로 일반 계열부터 18금 계열까지 다수의 미소녀 게임을 배포하고 있다.



상사상애 로리타相思相愛ロリータ



마지막으로 소개할 곳은 동인 서클 『밤의 양夜のひつじ』이다. 원래는 11년도에 전연령 백합 게임을 출시하여 호평을 받았으나 이후 TS물, 유부녀NTR물, 여장물 등 다양한 장르를 경유한 끝에 14년 겨울 코미케에 출품한 로리 에로 게임 『상사상애 로리타相思相愛ロリータ』로 정체성을 굳히게 되었다. 매일 반복되는 노동에 지친 사회인이 어느 날 마주친 쪼그마한 여자아이에게 응석을 부린다든지 응석을 받아준다든지 하며 힘을 얻는 치유적인 내용으로, 호평에 힘입어 해당 히로인의 음성 작품 『안면 곁잠 로리타安眠添い寝ロリータ』(2015.04), 다른 히로인을 곁들인 게임 『어릴 적 결혼 약속 로리타ゆびきり婚約ロリータ』(2015.12), ‘상사상애~’의 속편 『상사상애 로리타의 생활相思相愛ロリータの生活』(2016.08)로 이어졌다.

밤의 양은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다루지만 서클의 근본 콘셉트는 공식 사이트에서도 주창하는 ‘모에하여 감정 이입하여 쌀 수 있는萌えて思い入れてヌける’ 방향성으로 집약되어 있다. 유저의 자위와 동반하는 즐딸겜에 주축을 두면서도 두서없이 박았다 빼고 끝내는 게 아니라 스토리 면에서 즐딸을 지탱하여 꽁냥 연애에 상응하는 구색을 갖추는 스타일이다. 그 스타일이 로리 힐링과 상성이 제대로 맞았던 게 아닐까. 로리한테 치유 받는 걸 싫어할 사람은 없으니까, 아토리는 내 엄마가 되어 줄 여자니까! (…)



노예와의 생활奴隷との生活 -Teaching Feeling-



(4) 2010년대부터의 에로 게임 – 4



① 『노예와의 생활奴隷との生活 -Teaching Feeling-』


에로 게임의 기본 성질로서 야구권 계열의 ‘놀이 + 에로’ 타입과 의사놀이 계열의 ‘에로한 놀이’ 타입이 있다는 건 여러 번 이야기했다. 10년대에 18금 온라인 게임 분야에서 결과적으로 ‘놀이 + 에로’ 계열의 복고가 있었다는 이야기도 했다. 그렇다면 ‘에로한 놀이’ 쪽은 어떨까? 이쪽 역시 강도가 매우 높은 작품들이 10년대 후반부터 하나둘 출시되어 왔지만 이번 문단에서 다루는 건 동인 분야의 동향이다.

다운로드 판매 사이트 DLsite.com에서 2015년 10월 27일, DMM.R18에서 동월 29일에 한 동인 어덜트 게임이 판매등록되었다. 여러 사이트를 통한 입소문이 연쇄적으로 일어나고 급격한 히트를 거둔 해당 작품은 3주도 지나지 않아 4만 건의 DL 매상을 기록했다. 일 년 간 해당 작품은 양 사이트의 월간・연간 랭킹 최상위를 유지했고, 17년 1월 시점에서 DLsite와 DMM 합산으로 다운로드수 12만 건을 훨씬 웃돌았다. 건당 정가 1900엔이고 패키지 판매와 달리 중간유통비가 훨씬 싼 걸 감안하면 매상이 얼추 예상될 것이다.

작품명은 『노예와의 생활奴隷との生活 -Teaching Feeling-』. 서양식 시가지를 무대로 하며 주인공은 진료소를 운영하는 마을 의사다. 학대를 받아 얼굴이나 신체에 깊은 흉터가 남고 감정 표현도 희박해진 전직 노예 소녀 실비シルヴィ를 거둔 주인공이 그녀를 극진하게 돌보며 서로의 마음이 동하고 여러 의미에서 친밀해지는 내용이다.

커맨드 지정으로 진행하는 SLG 형식으로 종래의 조교물에 해당하는 포맷이다. 단 커맨드는 ‘회화’, ‘머리를 쓰다듬는다’, ‘외출’ 등 스킨십과 포상을 중시한 풍미가 강하다는 게 특징이다. 좌우간 주안점은 소녀를 귀여워하며 심신의 회복을 꾀하고 라포를 형성하는 것이므로 조교물이라기보단 육성 치유물이라고 하는 게 설득력이 있다. 지극히 부권적인 콘셉트를 보면 조교는 조교라 할 수도 있겠다. 아버지가 자식을 육성하는 덴 어느 정도 조교의 성격을 동반하니 말이다.

지고한 위치의 캐릭터를 추락시킨다든지 혹독한 환경의 캐릭터를 보다 까마득한 구렁텅이로 몰아넣는다든지 또는 극적으로 인생의 롤러코스터를 태우는 작품은 지금까지 차고 넘치게 나온 덕에 형식미라 말해도 될 정도로 될 전형을 구가한다. 그러나 바닥에서 시작하여 계속 끌어올려주는 방향성을 철저히 추구한 작품은 그에 비해 확연히 적다. 그런 면에서 틈새시장을 돌파하는 데 성공한 것으로 추측된다.

저가격대의 동인 게임은 개발 스케줄과 비용 형편상 적은 인수의 히로인에게 극단적인 콘셉트를 부여한 일점 돌파형이 되기 십상인데, 티칭 필링은 오히려 그게 독보적인 강점이 된 셈이다. 게임으로선 여자아이를 자극하여 반응을 끌어내고 커뮤니케이션을 조금씩 풍부하게 해 나가는 취향은 그야말로 에로 게임 여명기부터의 ‘에로한 놀이’의 계보를 이었다고 할 수 있다. 『아유미 이야기あゆみちゃん物語』나, 시스템은 다르지만 인공 두뇌 회화 게임 『EMMY』 같은 고전 에로 게임의 성질을 새로운 피로 부활시켰다고 간주할 수도 있겠다.

또 본작을 만든 건 FreakilyCharming이란 개인 서클로 주관자 Ray-Kbys가 원화, 각본, 프로그래밍까지 단신으로 작업했다는 점에서 다재다능한 크리에이터의 출현을 세상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이보다 전에 외눈(애꾸눈이 아니라 말 그대로 얼굴 정 가운데 눈알이 하나 있는) 히로인을 소재로 한 『한 눈에 반하다ひと目惚れ』라는 게임을 만든 적 있다. 픽시브에서 가공의 외눈 걸 게임을 상정한 히로인의 그림을 공개하여 이형 페티셔들에게 호평을 받은 데서 착안하여 14년 3월 정말로 게임을 만들어버린 용자다. 15년 5월에는 스팀에서 영문판도 출시했다.

프로필을 보면 재미在美 일본인이라 밝히고 있으니 해외를 겨냥한 활동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에선 뉴스에까지 난 그놈의 실비 키우기 무단 배포 사건 때문에 힘들겠지만 말이다. 



아이돌마스터 신데렐라 걸즈アイドルマスターシンデレラガールズ



② 아이돌 애니메이션과 타카하시 타츠야


10년대의 애니메이션 업계에서 두드러진 현상 중 하나는 아이돌 소재 작품이 다수 제작되었다는 것이다. 여아 취향 트레이딩 카드 게임 원작의 쌍두마차인 『아이카츠アイカツ』(국내 번안명 아이엠스타)와 『프리티 리듬プリティーリズム』 시리즈, 잡지 연재에서 시작해 서브컬처 최대 규모의 팬덤을 구축한 러브라이브, 아케이드판부터 시작되어 여러 컨슈머판으로 나온 육성 게임 원작 아이돌마스터, 일반 대상 공모를 통해 뽑힌 신인 캐스팅을 메인으로 기용하여 기획성이 강한 『Wake Up Girls!』(약칭 WUG) 등등… 아침 내지 저녁 시간대 애니메이션으로도 심야 애니메이션으로도 방영되었고, 내용 면에서도 직업 아이돌부터 학생의 부활동 드라마까지 다양한 바리에이션을 변주하였다.

대개 픽션으로서의 아이돌물은 현실 아이돌의 양상을 기본 이미지로 공유하는 성질이 있다. 10년대로 이어지기 이전 상황을 보자면, 90년대 말~00년대의 『헬로 프로젝트ハロー!プロジェクト』(약칭 하로프로) 계열(모닝구무스메 등)이 많은 인수의 그룹 아이돌로서 인기를 구가하고 00년대 후반부터 새로이 대두한 AKB48로 시작하는 아키모토 요스케 프로듀싱발 그룹 및 유닛의 집단 구조가 수 년 간 창작물의 아이돌 상에도 영향을 미친 걸 볼 수 있다. 비주얼 면에서도 픽션의 아이돌 캐릭터가 입는 의상의 디자인에서 현실 아이돌의 변이를 엿볼 수 있다.

애니메이션 쪽은 아이돌마스터 TVA(속칭 애니마스)가 방영된 2011년을 거쳐 12년도에 아이카츠 1부와 프리티 리듬 2기가 격돌했으며, 오토메 게임 원작 『노래하는 왕자님うたのプリンスさまっ♪』(약칭 우타프리)도 인기리에 2기를 개시했다. 거기에 AKB48을 직접 모티프로 삼은 SF대작 『AKB0048』도 있어서 한 분기에 아이돌물 시리즈 타이틀이나 신작이 서너 개씩 나오는 결과가 되었다.

15년도도 마찬가지였다. 아이카츠 3부가 나오고 프리티 리듬 후속 타이틀 『프리파라プリパラ』는 방영 2년차에 돌입했다. 게다가 두 작품과 더불어 러브라이브와 WUG는 극장판이 공개되어 안방 극장을 넘어서 영화관에서까지 아이돌 애니메이션이 나오게 된다. 그런 와중 아이돌마스터 관련작인 소셜 게임 『아이돌마스터 신데렐라 걸즈アイドルマスターシンデレラガールズ』(약칭 데레마스)가 동년 겨울 TVA화되고, 시리즈 구성을 맡은 사람이 바로 타카하시 타츠야였다.


리프 비주얼 노벨 시리즈 속칭 LVNS 3부작(시즈쿠, 키즈아토, 투하트)의 시나리오 혹은 기획을 담당하여 리프를 톱 브랜드 반열에 올린 당사자인 타카하시 타츠야는 00년대에 퇴사 후 파트너 격 존재인 원화가 미나즈키 토오루 등과 함께 비주얼아츠 산하에서 유한회사 PLAYM을 설립한다. 04년도와 06년도에 에로 게임을 총 두 장 만든 시점에서 일단 게임 방면 활동은 지금까지 휴지休止에 가까운 상태이다.

타카하시의 이름이 다시 주목받은 건 08년 10월의 일이었다. TVA 칸나기 9화 각본가로 크레딧에 오른 것이다. 애니메이션 공식 사이트에서 시리즈 구성의 쿠라타 히데유키倉田英之가 인터뷰에서 이야기한 경위는 다음과 같다.


Q. 이번에는 전 화수의 각본을 혼자서 담당하지 않고 혼다 토오루 씨나 타카하시 타츠야 씨 등을 등용한 이유를 듣고 싶습니다.
A. 다른 장르의 문장가들에게 의뢰함으로써 일본의 애니메이션 각본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한번 타전해 보았습니다. 성과는 여러분께서 판단해 주셨으면 합니다.> ( 참조 : http://www.nagisama-fc.com/anime/interview/index.html )


결과적으로 이를 계기로 애니메이션 각본가 : 타카하시 타츠야의 활동이 전성기를 맞았다. 각본 데뷔 삼 년째인 11년에는 애니마스에서 여러 화수를 담당했다. 이듬해에는 아이돌 유닛이 중요한 요소인 『여름색 기적夏色キセキ』이나 1군 작품 아이카츠에도 참여하여 아이돌 애니메이션에서 입지를 굳힌 후, 14년 아이마스 극장판에서 니시고리 아츠시錦織敦史 감독과 공동 각본을 맡고, 마침내 15년도 신데렐라 걸즈 애니메이션에서 작품 전체를 망라하는 시리즈 구성을 맡게 된다.

또 타카하시가 각본가가 된 초기에는 니트로플러스의 팬텀에서, 아이마스 관련과 같은 시기인 14~15년도 사이에는 그리자이아 시리즈나 『잃어버린 미래를 찾아서失われた未来を求めて』(약칭 와레메테) 애니메이션에서 몇 화씩 참여하는 등 에로 게임 시나리오 라이터가 전연령 미디어로 월경한 지점에서 타 작품과 연결되는 걸 보면 어느 의미에선 구시대의 라이터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 시대상을 보게 된다.

우리는 에로 게임 세계의 첩경을 넘어선 ‘저편’에서 굳이 강하게 에로 게임을 돌이키게 되는 시대에 서 있다. 야겜 시나리오를 쓰던 사람이 아이돌들이 꺄꺄거리는 각본을 쓴다는 것은 누군가에겐 받아들이기 힘든 사실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로부치 겐도 말했듯 연꽃은 더러운 흙탕물에서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피어나며,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이야기엔 위아래가 없다. 나는 그렇게 믿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크레이들 송 ~어제에 연주하는 내일의 노래~くれいどるそんぐ∼昨日に奏でる明日の唄∼



③ 시나리오 라이터 아고바리아あごバリア 서거


2016년 3월 22일 한 크리에이터가 급사하고 월말에 부고가 발표되었다. 시나리오 라이터 아고바리아. BasiL, 윈드밀, Navel, 프리랜서를 거쳐 Rosebleu로 소속 브랜드를 옮겨 활약을 계속했다. 소레치루 서브 시나리오 참가 외에도 기획부터 손수 한 작품으로 셔플, 『크레이들 송 ~어제에 연주하는 내일의 노래~くれいどるそんぐ∼昨日に奏でる明日の唄∼』(2004), 『Tiny Dungeon』 시리즈(처녀작 2010)까지 21세기 이후 어느 해든 히트작 내지 양작을 써냈다. 그러다보니 Navel을 설립한 니시마타 아오이와 스즈히라 히로와도 인연이 깊었다.

16년 1월 라이트노벨 분야에 진출, 데뷔작 『용사와 마왕이 전격 동맹! 계기는 상호 연애 응원!?勇者と魔王が電撃同盟!キッカケは、お互いの恋を応援するため!?』(KADOKAWA 출판)이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의 급사였다. 계간 레이블 MF문고J 편집부는 13년에 서거한 야마구치 노보루에 이어 또 다시 미소녀 게임 출신 작가의 부고를 공식 사이트에 게재하게 되었다.



④ 엘프 공식 사이트 폐쇄


2016년 봄. 엘프 및 실키즈에서 주요 스태프가 빠지고 이 년의 시간이 경과할 때까지 어느 정도 예상하던 일이었다. 팬들이 각오한 건 15년 10월의 일이었다. 브랜드 말미에 비교적 잘 뽑힌 작품으로 코믹한 유부녀 NT계 작품 『마로의 환자는 육체노동파麻呂の患者はガテン系』 시리즈가 있었는데 이 해에 나온 3부 완결편의 엔딩 롤에서 유한회사 키라라 산하 시절의 브랜드 데뷔작 『두근두근 셔터 찬스ドキドキシャッターチャンス!!』부터 본작까지의 엘프의 전 작품의 제목과 발매날짜가 주르륵 나열되고는 ‘Thank you for the last 27 years.’라는 문구로 유저에게 감사를 표하는 연출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2016년 3월 1일 엘프는 마침내 공식 사이트의 폐쇄와 메일 서비스의 종료를 발표했다. 문의 관련 페이지만 남긴 채 1개월의 유예 기간 이후 4월 1일, 고지 내용대로 사이트는 폐쇄되었다. 에로 게임 황금기의 중추를 맡던 거두의 담백한 결말이었다… 고 생각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흥미로운 움직임이 나타나게 된다. 그 이야기는 뒤에서 하도록 하자.  



네코파라ネコぱら



⑤ 『네코파라ネコぱら』 시리즈


제작 주체의 법적 위치에 따라 원리적으로 구별된다고 하지만 내용이나 판매 규모에 대해서는 일부 동인 게임은 상업 스케일에 근접하거나 아예 돌입해 버린 경우가 최근 몇 년간 속속들이 나타났다. 추론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로, 다운로드 판매 사이트의 이용이 활발해져서 상업작이든 동인작이든 유저가 구입하는 단계에 거의 차이가 없어지고 결과적으로 구입 빈도가 비슷해졌다는 게 있다. 이 부분은 전문가의 의견도 기회가 되면 들어보고 싶다.

2016년에도 동인계에서 눈여겨 볼 판매고를 기록한 작품이 나왔다. 바로 서클 NEKO WORKs의 AVG 『네코파라ネコぱら』 시리즈다. 5월 4일 공식 트위터 계정은 “네코파라 시리즈의 매상이 누계 50만 장을 돌파했습니다!”라 밝혔다. 네코워크스 자체는 일러스트 계열 동인 서클이기도 한데, 얼굴 마담 취급인 고양이 귀 캐릭터 쇼콜라ショコラ와 바닐라バニラ를 히로인으로 하여 동인 게임을 제작한 게 바로 네코파라다.

독립하여 케이크 가게를 시작한 청년에게 집에서 기르던 인간형 고양이 쇼콜라와 바닐라가 밀고 들어와 억지로 동거한다는 설정으로, 두 마리가 주인님을 위해 열심히 일한다든지 실패한다든지 하는 온화한 일상의 하트풀 고양이 코미디를 그리고 있다.

시리즈 제1탄은 14년도 겨울 코미케에서 위탁 배포된 『ネコぱら vol.1 솔레이유 개점했습니다ソレイユ開店しました!』, 이어서 15년도 여름 코미케에서 고양이 소녀 여섯 자매 중 아즈키アズキ와 코코넛ココナツ의 에피소드를 다룬 『ネコぱら vol.2 자매 고양이의 수크레姉妹ネコのシュクレ』(※프랑스어로 설탕sucre)가 발매, 23년 현재 스팀에서 vol.4까지 출시되었다. 해외에서도 수많은 양덕들이 히로인들을 자신의 waifu라고 주장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물론 스팀은 규정상 선정적인 묘사는 다 잘라내고 전연령판으로 판매 중이지만 온라인 마켓 BOOTH에서 18금 패치를 공식적으로 판매하고 있다. 어디까지나 외부 업체라는 원 쿠션을 거쳐 유저가 조작하여 처리하는 만큼 스팀 측도 딱히 제한하지는 않고 있다.

덧붙여 본작은 앞서 설명한 ‘움직이는 타치에’ E-mote를 도입했다. 숨을 몰아쉴 때 어깨의 들썩임, 감정에 따라 수시로 변하는 신체 교열이 활발한 고양이의 이미지와 어우러져 이산離散적인 화상 표시로는 살릴 수 없는 종류의 사랑스러움이 배가된다.



⑥ 오버워치의 포르노적 소비


일반 게임과 에로 게임의 구분은 기본적으로 작품 쪽의 외형적인 면에 기반을 둔 구별이다. 캐릭터나 시추에이션에 대해 에로틱한 기분이 불끈불끈 일어나는 사람 쪽의 욕망은 목전의 게임의 연령고지와는 관계없이 일어난다. 16년 5월 24일 정식 서비스를 개시한 블리자드의 액션 슈팅 게임 오버워치도 인기를 끈만큼이나 그러한 욕망의 대상이 되었다.

사전 공개된 영상이나 스틸샷에서 캐릭터의 엉덩이를 강조하는 특정 포즈가 발칙하다는 클레임이 들어와 수정되는 등 공식이 에로 관련 이슈에 시달리기도 하여, 오픈 베타 테스트 개시 시점에서 포르노적 소비에 대해 꽤나 강경하게 경고하는 공지가 있었다. 구체적으로는 성인 동화 사이트 등 인터넷 상 에로 방면에서 오버워치 관련 키워드가 검색어로 급부상하여 자중하라고 못을 박은 것이다.

작금에 3D CG 캐릭터 모델 개발 툴이 보급됨에 따라 마치 원작을 방불케 하는 고품질의 에로 CG 무비가 2차 창작되기 쉬운 상황이 생겨났다. PC 게임의 영상이나 시나리오 등을 유희 차원에서 개변하기 위한 데이터 이른바 MOD에도 캐릭터를 알몸으로 만드는 부류가 있지만 그런 경우는 수많은 MOD 중 극히 일부만 활용하여 원작과는 무관하게 가공하고 확산시켜 때때로 업자의 상품으로 악용된다는 게 문제다. CG 모델을 재현하는 게 아니라 게임에서 모델을 추출하여 유용하는 더 안 좋은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제작 스태프 내부에서 데이터가 유출되기도 한다) 이런 일이 오버워치에서도 일어난지라 블리자드는 경고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강고한 감시 체제를 세울 것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일본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마침 동년 10월에 일어났다. 격투 게임 『데드 오어 얼라이브』 시리즈에 등장하는 캐릭터의 게임 내 3D CG 데이터를 추출하여 편집・가공, 2차 창작 동인 에로 CG집 형식으로 판매한 자가 있었다. 결과 모종의 움직임으로 여느 다운로드 판매 사이트의 동인 스토어에서도 DoA를 소재로 한 어덜트 동인 콘텐츠가 일제히 배포 정지되었다. 덩달아 말려든 서클이나 유저들은 머리를 감싸 쥘 수밖에 없었다.

일본은 2차 창작이 성행하고 있으나 어디까지나 원작자의 묵인 아래의 정세이며, 언제든 대수롭지 않아 보이는 계기로 급격히 그레이 존에서 배제될 수 있다. DoA는 공식이 선정성이 강한 콘텐츠도 왕성하게 출시하고 있으나 그것하고 무단 전제와 같은 불법적인 악용은 또 이야기가 다르다.

참고로 말하자면 DoA 관련으로 한때 전라 MOD를 판매해 온 업자에 대해 저작권자인 테크모가 2001년에 소송을 걸어 2004년 승소한 바 있다. 선을 넘는 데 대한 준엄한 대처를 잘 보여준 셈이다.



서머 레슨サマーレッスン



⑦ VR 에로 게임의 전망


영화 『버추얼 워즈バーチャル・ウォーズ』(1992), 게임기 버추얼 보이バーチャルボーイ(1995), 게임 『버추어 파이터バーチャルファイタ─』(1993), 『전뇌전기 버추어론電脳戦機バーチャロン』(1995), NHK의 아동용 방송 『천재 텔레비전 군天才てれびくん』의 코너 격인 SF 애니메이션 시리즈 통칭 ‘버추얼 3부작’(1993, 1994, 1997)… 90년대를 통틀어 가상현실 소위 VR(Virtual Reality)이란 문구가 유행하고, 이후 증강현실 – AR(Augment Reality) - 이란 신개념까지 경유하며 픽션의 소재로서 익숙해진 시대를 23년도의 우리는 더 이상 새삼스러워하지 않는다.

10년대에 들어서 VR이 재차 주목받고 현실적인 기술로서 돌연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실제 상품화된 VR 가제트로 Oculus Rift를 시작으로 해서 Steam이 제공하는 PC용 VR 규격에 대응하는 HTC Vive, 갤럭시 스마트 폰과 연동하는 모바일 VR 장치 Gear VR, 그리고 오랜 기다림 끝에 등장한 PS4용 PlayStation VR 등이 있다.

이들 중 오큘러스 리프트를 제외하면 16년도에 집중해 있어 이 해를 VR 원년이라 표현하는 매체도 많았다. 그러나 실제로는 파탄 없이 고 퀄리티 VR 공간을 구축하고자 하는 제작 측의 수고, 유저가 VR 환경을 도입하기 위해 드는 초기 비용, 장치 장착 시 주변 시야가 차단되는 위험 등등의 문제로 가정용 지향 상품으로서 어디까지 보급될 수 있을지는 여전히 지켜볼 단계에 머물러 있다. 신들린 듯이 플레이하다가 가족에게 보이는 수치라든지 가구나 벽에 부딪혀 다친다든지 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시설이나 이벤트에서 어트랙션 차원으로 이용되는 건 현재 진행형으로 이루어지고 있긴 하다.


이제 본론으로 넘어가 보자. 현장감이 무기인 VR은 성질 상 언제나 성인 취향을 자극한다. 16년 6월 12일 도쿄 아키하바라에서 국내 첫 VR 성인 콘텐츠 특집 이벤트 ‘어덜트 VR 페스타アダルトVRフェスタ’가 개최되었는데 대성황을 이룬 나머지 방문자가 예상 이상 쇄도한 걸 본 운영 측이 이십 분 정도 일반 입장을 막았을 정도였다. 호평에 힘입어 동년 8월 말 2회째인 ‘어덜트 VR 엑스포アダルトVRエキスポ’가 열렸다. 이들 이벤트에선 단순히 시각 기관을 장착하는 것뿐 아니라 손끝 감촉을 얻을 수 있는 장치의 시작품도 전시되어 오감에 호소하는 VR 에로의 가능성이 여러 의미에서 방문자를 흥분시켰다. 소젖 짜기를 당하는 쪽의 의사疑似 체험 같은 것도 있었다고.

또 HBOX.jp 같은 어덜트 콘텐츠 배포 사이트가 VR 어덜트 비디오의 배포를 시작하여 실사 방면에서 VR 계열 기획을 한 발짝씩 진행하고 있다.

2차원 게임 분야에선 PSVR용으로 동년 10월부터 시동・배포한 타이틀로 여자아이와 한 지붕 아래서 지근거리의 커뮤니케이션을 꾀하는 『서머 레슨サマーレッスン』이 각광을 받았다. 하나자와 켄고의 만화로 VR 미소녀 게임을 소재로 한 『르상티망ルサンチマン』(2004~2005)이란 작품이 있었는데 슬슬 그런 현실을 피부로 맞게 된 건지도 모른다.

참고로 발매 후 얼마 안 되어 한 유저가 ‘팬티 보는・훔쳐보는 방법 실황해설’이란 제목으로 히로인 치마 속을 훔쳐보려 시도하는 플레이 영상을 유튜브에 업로드하자 2주 남짓 만에 백만 재생수를 돌파했다. VR 체험과 팬티에 대한 높은 관심을 알 수 있었다.



VR여자친구カノジョ



그런 흐름에 따라 에로 게임계도 발 빠르게 반응했다. 신시대의 상업 VR 에로 게임에 대한 본격적인 착수의 선봉장으로 들고일어난 브랜드는 역시나 3D CG 에로 게임의 거장 일루전이었다. 자사 작품에 3D 입체 시각(화면에서 튀어나오는 에로 게임) 옵션을 집어넣어 온 메이커다웠다.

서머 레슨 배포 개시와 거의 동시에 일루전이 발표한 VR 에로 게임의 제목은 『VR여자친구カノジョ』다. 오큘러스 리프트 및 HTC Vive에 대응하며 17년 2월 DL판매 전용으로 발매되었다. 서머 레슨에 눈 돌아간 사람들 여럿이 덩달아 사지 않았을까.



절대로 러브코미디 하면 안 되는 학원 생활 24시絶対にラブコメしてはいけない学園生活24時



⑧ 타케이 마사키竹井正樹, 소설 일러스트를 담당 


16년 7월 1일 코단샤 소설 레이블에서 『절대로 러브코미디 하면 안 되는 학원 생활 24시絶対にラブコメしてはいけない学園生活24時』(나가오카 마키코長岡マキ子, 코단샤라노베문고)라는 라노베가 발매되었다.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 가상 현실에 갇힌 주인공이 마찬가지로 게임에 붙잡혀 공략 대상 캐릭터가 되어 버린 동급생 소녀들을 꼬셔서 함락하여 현실로 돌려보내는 사명을 띠는 내용의 캐릭터 소설로, 작중 묘사되는 게임은 풀 다이브 VR이지만 시스템은 마치 도키메모나 동급생 등 90년대 고전 작품의 정취가 느껴진다.

그런데 일러스트 담당이 타케이 마사키竹井正樹, 동급생 원화로 일세를 풍미한 그 사람 맞다. 로도스도 전기 원화 등을 맡은 애니메이터 출신인 타케이는 성인 게임 업계로 이적하여 엘프에서 활약한 후 00년도 즈음 자신이 세운 유한회사 제우스ゼウス의 브랜드 유피테르ユピテル에서 『유랑 요리사さすらいの料理人』 등을 제작했지만 머지않아 회사를 해산하고, 00년대 전반에 걸쳐 엘프(실키즈) 작품에 다시 참가, 00년대 후반에는 애니메이터로도 복귀했다. 다른 명의로 주관하는 동인 서클 ‘어른의 동화大人の童話’가 있다.

엘프 작품의 노벨라이즈 이외의 소설 및 표지 작업은 후지미 판타지아 문고에서 사에키 시노부冴木忍의 『메르비&카심メルヴィ&カシム』을 맡은 이래 거의 십오 년 만이다. 애니메이터 복귀 후의 원화 담당작으로는 마크로스F, ef, 절망선생 TVA 등이 있다.



Thunderbolt Fantasy 동이검유기東離剣遊紀



⑨ 인형 활극 『Thunderbolt Fantasy 동이검유기東離剣遊紀』 방영


에로 게임에서 일반 미디어로 월경한 케이스의 대부분은 2차원 매체에서 2차원 매체로 넘어가기 마련이다. 그래서 14년도의 대마인 아사기 실사 AV화나 『음수학원淫獣学園』 실사판 같은 드문 케이스는 강렬하게 기억에 남는다.

그런 와중 니트로플러스가 또 재미있는 일을 벌인다. 앞서 우로부치 겐 휘하 니트로플러스 라이터 사단이 가면라이더 가이무에 참여한 이야기를 했는데, 16년도의 도전은 그보다 한 발 더 나아간 것이었다. 제목은 『Thunderbolt Fantasy 동이검유기東離剣遊紀』로, 대만의 인형극 『벽력포대극霹靂布袋劇(필립 타이시)』 양식에 자극받은 우로부치가 도처에 제안한 게 계기가 되어 만들어진 TV 인형극 시리즈이다. 7월에서 10월까지 방영되었으며 원안 및 각본을 우로부치가 도맡은 건 물론이고 캐릭터 디자인은 니트로플러스 관련자가 담당했다. 거기다가 본토인 타이완의 포대극 제작회사에 감수, 인형 작성 및 조작을 맡겨 결과적으로 일본・대만 합작 체제가 되었다.

내용은 마계와 인간계의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고 오랜 세월이 흐른 후의 가공의 중화를 무대로 하는 무협 판타지이다. 마족을 쫓아낸 고대 무기 중 최강이라 일컫는 검이 흉악한 무투 집단에게 강탈당할 위기에 처하고, 검을 지키는 일족의 공주는 도주한다. 그 과정에서 의협심 강한 유랑 검객이나 수상쩍은 미모의 책사와 운명적으로 만나게 되고 일행은 빼앗겼던 검의 파츠를 회수하여 세계의 위기를 구하고자 초인 및 마인과 얽히고설키는 격투의 여행길로 향한다…

매회 숨 가쁜 액션과 빼곡한 수의 동작들은 얼굴 표정이 바뀌지 않는 인형에 생동감을 불어넣어 파란의 정동을 풍부하게 나타낸다.

한편 니트로플러스는 16년 1월에는 2년 반만의 신작 『동경凍京NECRO』를 발매했다. 소셜 게임으로는 DMM GAMES와 공동 제작한 브라우저 게임 『도검난무刀剣乱舞』가 같은 해 1주년을 맞아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었다.  



너의 이름은君の名は。



⑩ 2016년의 신카이 마코토 감독 그리고 에로 게임


2016년에 나온 가장 뜨거웠던 서양 영화를 두 개만 꼽자면 나는 단연 주토피아와 스타워즈:깨어난 포스를 꼽는다. 동물이 문명을 이루어 사는 가상의 세계관을 배경으로 초식 동물과 육식 동물을 비롯한 모든 동물의 공존과 화합을 꾀하는 도시, 주토피아에서 주인공인 신입 토끼 경관 주디 홉스가 거대한 음모에 맞서고, 그 과정에서 여우 닉을 비롯한 다양한 동물들을 만나며 불거지는 여러 선입견 – 자신조차 예외 없이 갖고 있던 – 과 마주하고 그를 극복하며 성장하는 내용은 종래의 디즈니가 은연중에 내포한 사회 비판과 변혁을 추구하는 서사를 우화 형식으로 보다 직설적이면서도 훌륭하게 풀어내었다고 생각한다.

스타워즈:깨어난 포스는 스카이워커 사가의 시작인 오리지널 3부작의 주요 인물들이 재등장하며 부활한 시스와 싸우고자 새로운 주인공들을 내세운 시퀄 시리즈 첫 작품이다. 오리지널 시리즈의 팬들을 겨냥한 의도가 다분히 느껴지는 데자부 요소들과 익숙한 타락 서사는 진정한 의미에서 ‘어른을 위한 동화’를 완성하는 데 일조했다고 평가한다. 


그런데 여기서 뜻밖의 작품이 하나 더 있다. 토호東宝 애니메이션 배급으로 16년 8월 26일 개봉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너의 이름은君の名は。』이 그것이다. 시골에 사는 소녀와 도쿄의 소년의 몸이 바뀌면서 일어나는 로맨스와 대사건을 그린 이 극장판 애니메이션에 대해선 이미 수많은 현직 및 방구석 평론가들께서 총론・각론을 펼치셨으니 새삼 내용을 이야기할 건 없다. 가히 폭발적인 인기를 끈 이 작품의 흥행 성적은 당해 12월 상순에 200억 엔을 돌파하여 원령공주(193억 엔)와 하울의 움직이는 성(196억 엔)을 제치고 일본 영화사상 2위를 달성했으며 이듬해에도 여전히 흥흥행 가도를 달렸다. 심지어 이건 국내 성적이며, 한국을 비롯한 해외 성적까지 따지면 가히 괴물 같은 흥행이라고 할 수 있다.

한때 에로 게임의 OP 영상을 만들던 신카이 마코토의 이름은 이제는 ‘초속 5센티미터’ ‘너의 이름은’ ‘날씨와 아이’ 등으로 대표되는 명작 애니메이션 감독으로 전세계에 통하고 있다. 물론 이는 신카이 자신이 무언가 작가성을 크게 변절하여 대중에게 아부한 건 아니라 프로듀서 카와무라 겐키川村元気의 수완이나 토호의 선전 담당의 일처리 등 여러 패러미터가 복잡하게 작용하여 히트했다고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에로 게임과 신카이의 연결점에 대해선 조금 해체할 이야깃거리가 있다. 앞선 글에서 소개했듯 신카이는 일본 팔콤에서 비주얼 스태프로 일하며 CG 애니메이션 콘테스트에서 수상했으며, 이후 장편 애니메이션 『별의 목소리』(2002)를 발표한다.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雲のむこう、約束の場所』(2004), 초속 5센티미터(2007)로 이어지는 커리어 가운데 01년도부터 08년도에 걸쳐 신카이는 minori사의 에로 게임 OP 영상을 제작했다. 정리하자면 일반 게임과 자주제작 애니메이션 양쪽에서 두각을 나타내던 와중 에로 게임 OP‘도’ 맡아서 한 것이다.

일단은 별의 목소리 이후 신카이는 미노리의 모체였던 주식회사 코믹스웨이브株式会社コミックス・ウェーブ에 출자했으며, 회사가 분할 해산되고서도 후신인 주식회사 코믹스웨이브필름이 신카이 작품 제작에 참여했으며 신카이 자신도 거기 소속되어 있다는 연결점이 있으니 관계가 없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에로 게임 업계‘에서’ 뛰쳐나갔다는 뉘앙스로 “우리 완소 신해성 니뮤가 닿을 수 없는 곳으로…”라고 한탄하는 건 아예 전후 사실을 뭉개고서 하는 소리에 불과하다.


16년도의 극장가는 명탐정 코난, 요괴워치, 원피스 등 메이저 타이틀의 극장판 덕에 흥행 성적 10위권 내의 절반 이상이 애니메이션으로 포진되는 결과를 낳았다. 여담으로 ‘너의 이름은’ 이후 얼마 안 되어 9월에 공개된 『목소리의 형태声の形』가 또 주목을 받는다. 청각장애 소녀와 유년기에 소녀를 괴롭힌 소년이 재회하여 마음의 갈등을 겪는 동명의 만화의 애니메이션 영화화로, 교토 애니메이션이 제작하여 또 한동안 화제가 된 바 있다.



同級生동급생~Another World~



⑪ DMM(エルフ엘프)


‘너의 이름은’이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2016년 여름, 에로 게임 쪽에서는 엘프의 최후와 관련된 ‘언젠가 일어날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8월 6일 DMM.R18에서 『同級生동급생~Another World~』가 사전 등록을 개시했다. 그 동급생 시리즈에 기반을 둔 브라우저 게임이 나온 것이다.

8월 29일에는 DMM GAMES의 상품 페이지에 표시된 엘프 작품의 판매 브랜드명이 DMM(엘프エルフ)로 갱신되었다. 즉 엘프가 자사 작품의 권리를 DMM에 양도한 게 명의로 드러났다. 적나라하게 말하면 인신매매와도 같이 엘프라는 브랜드는 사실상 소멸했다.

거기다가 DMM.com은 9월 중순에 개최된 도쿄 게임쇼 2016에서 PC・스마트폰용 액션 RPG 『ドラゴンナイト드래곤나이트5』을 발표 및 사전 등록을 개시했다. 엘프 출세작 중 하나인 드래곤나이트의 넘버링 타이틀을 DMM이 버젓이 좌판에 내건 것이다.

에로 게임계의 장로 중 장로에서, 금지옥엽 같은 작품들이 온라인 게임 플랫폼 거물에게 인계되는 신세가 되는 일련의 광경은 에로 게임의 형태가 확대・변화하는 시대를 너무나도 구체적으로 상징하고 있다.

동급생~Another World~는 동년 9월 안드로이드판, 11월에 PC판 서비스를 개시했다. 동급생 1・2, 하급생 1・2의 히로인이 총 등장하는 세계를 무대로 플레이어 캐릭터는 전 시리즈의 주인공들의 설정을 한 사람에게 집약한 존재와 같다. 즉 동급생 2의 나루사와 유이와 동거하며 하급생의 유우키 미즈호에게 플러팅을 하는 상황이 충분히 발생한다. 캐릭터 디자인 대부분은 원작을 따르고 있으면서도 그래픽은 완전 신규 작업물이라 패러랠 월드의 느낌이 강하다.

게임으로선 간략화한 포커를 전투 시스템에 채용한 RPG에 가까운 풍미가 있다. 뽑기로 입수한 히로인들을 패로 하여 8・9・10・J・Q・K・A 및 조커가 표기된 카드를 뽑는다든지 남긴다든지 하며 모은 패로 공격 데미지를 증가시켜 적 몬스터를 쓰러뜨려 간다. ‘동급생에 웬 적 몬스터?’ 라고 의문을 가질 텐데, 바로 사람의 운명을 폭주시키는 인과의 굴절이 괴물의 형태를 하고 있다. 본작의 스토리는 그를 쓰러뜨려 주인공이 자신이 원하는 미래(꽃밭 속에서 미소녀들과 우하우하 하는 인생)를 되찾아간다는 내용으로 동급생 시리즈 원전과의 평행 관계를 상당히 의식적으로 짜 넣어 만들었다는 걸 알 수 있다. 괜히 부제가 Another World겠는가.

에로 게임으로선 전투 맵과 별도로 SLG・AVG 요소가 있어 맵 진행도나 선물 아이템을 통한 호감도 축적에 따라 시나리오가 해금되고 정사 신에 도달한다는 구성이다.


또한 엘프의 유산이라고도 할 수 있는 작품의 경우 이전부터 주목받아 온 대작이 하나 있었다. 16년도에 발매 20주년을 맞은 명작 『この世の果てで恋を唄う少女세상의 끝에서 사랑을 노래하는 소녀YU-NO』가 그것이다. 먼저 드왕고와 카도카와 자회사 MAGES.에 엘프가 판권을 이양한 YU-NO는 시쿠라 치요마루 이사 겸 프로듀서가 맡아 14년도부터 완전 리메이크판의 제작이 발표되었으며 17년 3월 PS4 및 PS Vita용으로 발매되었다. 초회특전으로 PC98판의 다운로드용 카드가 동봉되어 새삼 원판 쪽을 접하고 싶은 고전 팬들에게도 호응한 프로젝트가 되었다.

게다가 애니메이션화까지 발표되어 그 복잡 장대한 설정이나 윤리의 극한을 달리는 종반 전개가 어떻게 요리될지 팬들의 주목을 받았고, 삼 년 후인 19년 4월부터 9월에 걸쳐 총 26화 분량으로 TVA 방영되었다.



마이테츠まいてつ



⑫ 쿠마테츠くまてつ 문제


쿠마가와 철도주식회사熊川鉄道株式会社, 통칭 쿠마테츠熊鉄. 쿠마모토 남부 로컬 철도를 운영하는 제3섹터 회사다. 일본에서 유일하게 역명에 ‘행복’이란 단어를 넣은 오카도메행복おかどめ幸福역을 포함하고 있다. 몇 년 전 발표에 따르면 이용자 감소로 추산 7천만 엔 이상의 적자를 안고 있고 거기에 16년 4월 14일 발생한 쿠마모토 지진의 영향으로 4백만 엔 가량의 손해를 입어 힘든 상황이다.

2016년 후반 쿠마테츠의 사장이 미소녀 게임 브랜드 Lose에 지원을 타진했다. Lose는 12년 2월 출시한 전기 판타지 『모노베노ものべの』가 로리 게임 팬들 사이에서 화제가 된 데다 16년 3월에는 철도를 소재로 한 『마이테츠まいてつ』를 발매한 메이커다. 쿠마가와 철도의 팬이자 Lose의 시나리오 라이터인 신코 효進行豹는 지진을 입은 쿠마가와 철도를 응원하고자 마이테츠 유저의 지지를 모아 열차를 대절해 달리게 했을 정도의 철도 애호가다. 쿠마테츠 측에서의 타진은 여기서 비롯되었다.


과연 에로 게임 회사가 경영난에 허덕이는 철도에 어떠한 지원을 할 수 있었을까? Lose는 당초 지진의 피해액인 400만 엔을 기부하려 했다. 그러나 쿠마테츠 측은 단발성 기부보다 수익이나 흥행으로 계속하여 이어지길 바랐고 5종류의 열차를 활용한 일일 승차권 5매 세트를 쿠마테츠・Lose 콜라보로 제작하는 안을 내놓았다. 여기서 양사는 철도와 관련된 설정을 지닌 2차원 히로인의 일러스트를 축으로 한 모에 캐릭터 승차권을 만들어 쿠마가와 철도 응원표 이른바 쿠마테츠くまてつ 기획을 진행하게 되었다. 그렇게 테마송 CD 제작, AR(증강현실) 기능 부여 등 주변 연계를 포함해 착착 준비되었다.


그러나 만반의 준비가 갖춰진 16년 9월 후순, 기획은 급하게 제동이 걸렸다. 쿠마테츠 캐릭터의 조형이 에로 게임 마이테츠 캐릭터를 기반으로 했다는 사실을 문제삼은 제삼자가 쿠마모토 시의원에게 통보, 시의회의 안건에 올라 백지화가 결정된 것이다, 기획 자체의 시비나 공권력의 탄압에 대한 시비 등 여러 방향에서 논의가 일어났다. 화제 범위를 넓게 잡아 이세伊勢・시마志摩의 해녀 캐릭터 아오시마 메구碧志摩メグ의 공인 철회나 미노카모美濃加茂시의 이벤트용 포스터와 관련된 TVA 『농림のうりん』의 캐릭터에 대한 항의 등 공공장소의 표현물의 성적 밸런스의 문제에 접촉하는 움직임도 적지 않은 시기였다.

우선 본 안건에 대해 Lose가 공식 사이트에 게재했던 사정 설명을 보고 세세한 쟁점을 확인해 두자. Lose 측의 주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았다.


- 일이년 후쯤 전연령 애니메이션화나 컨슈머 제작을 행하고 나면 콜라보를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 그러나 쿠마테츠 측에서 당해 10월에 열리는 철도 페스티벌에 맞추고 싶다는 요망이 있었다.

- 에로 게임 브랜드인 Lose나 일러스트레이터의 이름 그리고 18금 작품과 관련되었다는 정보는 표기하지 않기로 했다.

- 그러나 수익 면에서 어떻게든 이득을 보고자 마이테츠 유저를 쿠마테츠로 유도하는 루트를 깔고 싶었다.

- 그래서 관련성을 간파할 수 있는 디자인 상 공유 설정을 부여했다.


쿠마테츠와 마이테츠가 공유하는 설정이란 마이테츠 세계관에서 철도를 관리하는 인간형 단말 레일로이드レイルロイド를 가리킨다. 게임 내에 등장하는 것과 별개로 양산된 개체라는 뉘앙스로 쿠마테츠 캐릭터의 외견을 흡사하게 만든 것이다.


실제로 어떻게 하면 좋았을지는 뭐라 대답하기 어렵다. 도쿠시마의 대제전 아와오도리阿波踊가 페이트 등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제작회사 ufotable과 연계하여 타입문 캐릭터를 그린 콜라보 포스터를 내걸은 게 별 문제없이 넘어간 걸 보면 역시 전연령을 경유하는 게 유효했던 건지 지금 생각해봤자 죽은 자식 불알 만지는 일이고 말이다.

그에 관해서는 Lose의 해명을 최대한으로 고려한다면 쿠마테츠 측이 에로 게임의 전체 맥락보단 노하우와 비주얼과 유저 동원의 이점에만 눈이 멀어 졸속하게 굴린 셈이니 첫 번째 줄이 이해되기도 한다. 그쪽도 할말은 있겠지만 말이다.

혹은 완전 신규 IP로 캐릭터를 디자인했다고 해도 Lose가 직접 관여하는 한 클레임의 위험이 제로가 되진 않았을 것이다. 거기서부터는 결국 가능성과 확률 그리고 당사자의 윤리적 센스의 문제가 되었을 것이다.

지금까지 성인 콘텐츠 방면의 작품이나 인재의 월경에 대해 여러 문단에서 말했지만 거기엔 늘 크든 작든 쿠마테츠 문제에서 본 가능성의 줄타기가 있음을 염두에 두도록 하자. 줄을 무사히 탄 케이스와 그러지 못한 케이스의 차이는 정말 종이 한 장의 차이다. Lose가 만약 전자였으면 22년도에 해산할 일도 없지 않았을까.



아빠 말 좀 들어라パパのいうことを聞きなさい!



⑬ 故마츠 토모히로松智洋의 내력이 공표되다


슈에이샤集英社의 대쉬엑스 문고ダッシュエックス文庫 편집부가 라노베 작가 마츠모토 히로의 부고를 발표한 건 16년 5월 초순의 일이다. 향년 43세. 마츠의 소설에 삽화를 그려온 나카지마 유카なかじまゆか가 고별식 참석 후 블로그에 밝힌 바에 따르면 말기 간장암이었다고 한다. 『길 잃은 고양이 오버런迷い猫オーバーラン!』, 『아빠 말 좀 들어라パパのいうことを聞きなさい!』 등으로 그의 이름이 친숙한 독자들은 갑작스런 부고에 크게 상심했다.



일곱 빛깔 클립なないろ*クリップ-최후의 스테이지最後のステージ-



5개월 후 2016년 10월 13일. 에로 게임 쪽에서 한 가지 사실이 확인되었다. D.O.의 작품에서 시나리오 라이터의 공동 펜네임인 키타가와 사무이北側寒囲의 초대 장본인이 故마츠 토모히로였음을 대표 에지마 미나미江島みなみ가 블로그에 밝힌 것이다. 에지마는 블로그에서 『일곱 빛깔 클립なないろ*クリップ-최후의 스테이지最後のステージ-』(약칭 나나쿠리)라는 아이돌물 에로 게임의 기획을 마츠와 짠 경위를 말했다. 죽음이 임박할 즈음엔 구술필기까지 하며 참여한 마츠의 유지에 답하고자 완성을 목표했던 일, 마츠의 유작이라는 구실로 판촉을 하고 싶지 않아 침묵을 지켰던 일, 그러나 유출 정보나 분별없는 억측이 무수히 나온 탓에 결국 사실을 밝힌 일 등등…

나나쿠리의 크레딧상에는 기획・원작에 마츠, 각본에 키타가와로 나뉘어져 있지만 실제로는 동일인물이었다는 것이다. 본작은 동년 10월 28일 발매되었고 초회한정판 특전으로 D.O. 역대 작품 삼십 편 중 원하는 소프트 일곱 편을 골라 다운로드할 수 있는 ‘기적의 팩キセキのパック’이 동봉되었다. 그 계보 어딘가에는 초대 키타가와 사무이, 마츠 토모히로의 펜 끝이 살아 숨쉬고 있다.



유부녀 집어먹기妻みぐい3



⑭ 2016년의 히트작 및 주목할 작품


2016년에 나온 작품을 살펴보자면 앨리스소프트의 『유부녀 집어먹기妻みぐい3』, softhouse-seal의 『절대 준수☆뉴 아이 만들기 월드ぜったい遵守☆にゅ∼こづくりわーるど』, 서커스의 다카포3 팬디스크 『D.C.Ⅲ With You』와 같은 인기가 탄탄한 기존작의 넘버링이나 번외편이 우선 눈에 띈다. 이어서 오거스트는 망국의 황녀와 기억을 잃은 무인의 주종관계를 그린 『천의 인도, 도화염의 황희千の刃濤、桃花染の皇姫』를, 아틀리에 카구야의 팀 Gassa-Q는 기가 약한 주인공이 연하의 히로인들에게 주도권을 빼앗기는 『소악마 발육 중小悪魔発育チュ∼!』을, 유즈소프트는 신검을 부러뜨려 버린 청년이 신사의 무녀 공주와의 결혼을 강요받는 『천련만화千恋*万花』(약칭 센모모)를 내는 등, 기존 유수 브랜드들이 신작을 발표했다.



천련만화千恋*万花



있는 그대로 말하자면 ‘강했던 회사가 여전히 강한’ 상황이었다고 할 수 있고, 대체적으로 위에서 말한 메이커들은 오거스트를 제외하면 23년 현재까지도 업계의 선봉장 자리를 지키고 있다. 오거스트로 말할 것 같으면 17년도부터 DMM과 콜라보해서 제작 및 서비스 중인 모바일 게임 『아이리스 미스티리아~소녀가 자아내는 꿈의 비적~あいりすミスティリア!〜少女のつむぐ夢の秘跡〜』을 제외하면 19년도의 센모모 팬디스크 이후 여적 신작 소식을 코빼기도 안 비추고 있다. 잘 먹고 잘 살길 빈다.



새벽빛 괴기담あけいろ怪奇譚



그 외에 시기적으로 주목할 곳은 베테랑의 실력과 신예의 기세가 합세한 실키즈 플러스다. 즐딸 노선을 강화한 관련 브랜드 실키즈 사쿠라シルキーズSAKURA를 세워 제작 회전수를 올리는 동시에 본가는 나나린을 도맡은 팀 와사비가 전작과 설정을 공유하는 『새벽빛 괴기담あけいろ怪奇譚』을 발매한다. 이 작품은 학원 호러 사양의 우수작으로서 브랜드의 이미지를 보다 선명하게 하였다. 이 해에 스태프들의 출신회사인 엘프가 막을 내린 걸 생각하면 복잡한 기분이다.



허니 셀렉트ハニーセレクト



AVG 외의 형식에서 존재감을 발휘한 타이틀로는 일루전이 낸 3D CG 캐릭터 커스터마이즈물 신작 『허니 셀렉트ハニーセレクト』가 눈에 띈다. 지난 해의 섹시 비치 시리즈 신작에도 있던 스튜디오를 업데이트로 추가하여, 임의의 스테이지 배경에서 캐릭터 메이킹한 히로인에게 자유롭게 포즈를 지시하여 디오라마 촬영을 연상시키는 등 유희의 폭을 넓혔다.

이러한 스튜디오와 비슷한 옵션은 어덜트・일반을 막론하고 당시 나온 게임 몇몇에서 찾아볼 수 있다. 특히 트위터 등의 SNS와 상성이 좋았는데, 화면을 캡처해 게시하며 서로 뽐내는 용도로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모션을 캡처하여 화면에 출력된 가상 캐릭터를 움직이는 버추얼 유튜버까지 등장한 23년 현재에 이르러서는 이조차 옛날 이야기가 되었지만 말이다.

또 액션 파트에서 정평이 난 SLG인 기가의 발드 시리즈의 신작 『BALDR HEART』, 던전 탐색 RPG 『던전 오브 레갈리아스 배덕의 수도 이슈갈리아ダンジョン オブ レガリアス 背徳の都 イシュガリア』처럼 ‘AVG뿐이 아닌 에로 게임’ 역시 꾸준히 나온 해였다. 



⑮ 엘프 팬의 추도식전


Project Repadars라는 동인 서클이 있다. 오리지널 동인 게임이나 소설을 제작하는 것 외에 웹사이트( http://repadars.org/top.html )에선 서브컬처 분야 전반에 걸쳐 특정 인물・특정 브랜드을 주제로 한 역사 소개 칼럼을 게재하는 등 아카이브로서 의의가 큰 활동을 하고 있는 서클이다.

2016년 12월 30일, 도쿄도 츄오구 JR토요선 핫쵸보리 역 근처 건물의 대절 회의실. 여기서 그 Repadars가 오프모임을 주최하여 약 스무 명의 에로 게임 유저가 모였다. 이른바 ‘엘프 추도식전 in 핫쵸보리 팬미팅エルフ追悼式典 in 八丁堀ファンミーティング’이었다. 왕년에 엘프를 사랑한 유저 일동이 당해에 사실상 브랜드 소멸을 맞은 엘프를 기념하고 가볍게 마시며 추억을 나누고 관련 굿즈를 걸고 추첨하는 등 여흥을 즐기는 내용이었다.

넷상의 참가자 모집 페이지에 “사은품으로 노란 수건을 드립니다”라는 문장이 있어 엘프 팬의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굳이 설명하자면 유작의 이사쿠가 목에 걸고 있는 그거.)

이 추도식전은 어디까지나 비공식으로 오프 모임으로선 상당 인원이면서도 딱히 대규모 제전도 아닌 조촐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곳엔 매우 소중한 의미가 있었다. 에로 게임의 역사는 단순히 브랜드나 작품명이 명멸하는 즉물적인 기록이 아니다. 에로 게임을 만드는 사람, 사고 파는 사람, 플레이하는 사람, 평가하는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이 걸어온 기억의 길목이기도 하다. 기억에 남은 건 과거라도 사람이 과거를 돌아보는 순간은 늘 현재진행형이다.

지금까지 이 글을 읽은 독자 분들과 마찬가지로 에로 게임은 앞으로도 잠드는 일 없이 시대와 상황에 맞춰 존재하고 연장될 것이다. 그리고 과거를 돌아보는 그때그때의 현재에 위안을 주는 추억이 되어 줄 것이다. 



마치며


이전 글 『관능 소설의 인문사회학적 접근』( https://brunch.co.kr/@erasmut/41 )에서도 이미 밝혔지만 나의 서브컬처 소비사 뿐 아니라 유년기 사고 형성에서 에로 게임은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혹자는 이런 이야기를 듣고 ‘체면치레 못 하는 키덜트 오타쿠 근성’이라든지 ‘어디 유흥업소가 쩔었다는 소리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에 대해 스스로 변호하거나 반박할 생각은 없다. 나는 미성년자의 신분으로 금지된 매체를 소비했으며 심지어 번역본 및 한글패치 참여를 통해 저작권에 위배되는 리버스 엔지니어링 및 유통까지 저질렀던 사람이다. 그 사실을 잊은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럼에도 또한 나는 오타쿠의 강한 자아 정체성과 표현 욕구를 굳이 외면하지 않고 살아왔다. 풀어 말하면 나는 내 관심 분야를 정리하길 좋아하면서도 스스로 다른 사람에게 정의되길 싫어하는 전형적인 ‘그쪽 사람’이라는 의미이다. 이러한 딜레마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열심히 글을 쓰는 것뿐이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향수를 불러일으킨다면 그것만으로 다행이라 생각하면서 말이다.


오오츠카 에이지를 비롯한 몇몇 1세대 오타쿠 크리에이터들의 말처럼 이 시대의 오타쿠들은 앞 세대가 이미 만들어놓은 커다란 이야기들 속에서 천편일률적인 작은 이야기들을 반복적으로 소비하고 있을 뿐일지도 모른다. 비단 오타쿠 뿐만 아니라 오늘날 기성 문화를 향유하는 사람들이 새로운 이야기를 자아내고자 한다면 미시적이고 말초적인 말장난을 넘어서 수많은 직・간접적 경험과 통찰과 사색을 통해 자신의 세계의 외연을 확장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새로운 이야기’ 같은 거창한 데 신경을 쓰기보다는 ‘분명히 있었고 머지않아 잊힐 이야기’들을 계속 써내려가고 싶다. 그것은 우리가 분명히 갖고 있었고 또 알고 있었지만 어느새 잊어버린 소중한 보물들이다. 그것은 단순히 ‘서브컬처’, ‘하이컬처’나 ‘인문학’, ‘철학’ 같은 학적 구분에 얽매이지 않고 역동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를 뒤에서 묵묵히 응원하며 때로는 조명하는 게 현재 내가 가장 잘하는 일이며, 그나마 할 수 있는 일이다. 











참고 문헌


野良犬の塒 ( https://www.kyo-kan.net/column/eroge )

エロゲまとめの速報 ( http://blog.livedoor.jp/isaacalwin1219-wcklswql/ )

エロゲー文化研究概論 (宮本直毅 著)

Wikipedia ( https://ja.wikipedia.or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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