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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rgen Jul 15. 2024

클레어 키건 <이처럼 사소한 것들>

책 리뷰 + 선한 목자 수녀회 막달레나 세탁소

<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어 키건 지음, 홍한별옮김. 2024초판 53쇄. 다산책방


"10월에 나무가 누레졌다. 그때 시계를 한 시간 뒤로 돌렸고 11월의 바람이 길게 불어와 잎을 뜯어내 나무를 벌거벗겼다. 뉴로스 타운 굴뚝에서 흘러나온 연기는 가라앉아 북슬한 끈처럼 길게 흘러가다가 부두를 따라 흩어졌고, 곧 흑맥주처럼 검은 베로Barrow강이 빗물에 몸이 불었다." 11쪽.

소설의 첫 문장이다. 시간과 장소에 대한 멋진 묘사라고 생각했다. 책의 시작이기 때문에 어떤 암시는 있을테지만 '무엇일까' 짐작하지 못했다.

"'헐벗다', 벗기다', '가라앉다', '북슬북슬하다', '끈', '흑맥주', '불다' 등의 단어를 써서 임신하고 물에 뛰어들어 죽은 여자를 암시하고자 했고 가능하다면 그런 뉘앙스가 번역문에도 유지되었으면 좋겠습니다." 128쪽.

작가 클레어 키건이 번역자에게 말해준 조언이다.

번역자는 책 말미에 쓴 '옮긴이의 글'에서 첫 문장에 대한 작가의 조언을 기록했다. 아래와 같은 자신의 생각도 곁들인다.

"저는 좋은 이야기의 기준 가운데 하나는 독자가 이야기를 다 읽고 첫 장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 도입 부분이 전체 서사의 일부로 느껴지고 이 부분에서 느껴지는 감정이 그 뒤에 이어질 내용의 특징을 잘 드러낸다고 느낄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128쪽.

"다 읽고 첫 장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라는 말, 나의 독서 모습이다. 나는 소설의 마지막 장 읽기를 끝내면 반드시 첫 장으로 돌아와 조금 다시 읽는다. 읽기 시작할 때 전혀 예상치 못했던, 예상했던 것과 다른, 예상에 적중했던 도입부를 확인하는 것이다. 이 과정이 끝나야 책 읽기가 끝난다. 독자는 어쩌면 저자와 함께 책을 써나가는 또 하나의 작가, 동반 작가인지도 모른다. 저자의 곁에 바짝 붙어 따라걷거나, 다른 길에 한눈을 팔며 저만큼 떨어진 저자를 뒤쫓아가거나, 어떨 때는 저자보다 앞서 성큼성큼 걸을 때도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나는 저자 클레어 키건의 곁에 바짝 서서 그녀가 숨겨둔 '암시'를 캐내느라 긴장했다.



이 책은 1985년 크리스마스, 아일랜드 웩스퍼드 카운티 뉴로스 마을을 배경으로 한 짧은 소설이다. 책 제목은 <이처럼 사소한 것들>이지만 담긴 내용은 결코 사소하지 않고 묵직하다. 주인공 빌 펄롱이 도덕적, 사회적 갈등에 빠진 이야기를 중심으로 한다. 수녀원의 폭력에 대한 마을의 조용한 묵인, 미혼모에 대한 수녀원의 잔혹한 대우, 한 사람의 도덕적 용기를 묘사했다.


등장인물

빌 펄롱은 개신교 미망인 윌슨 부인의 가정부로 일하던 16세의 미혼 소녀에게서 태어났다. "펄롱이 출생증명서 사본을 떼러 등기소에 갔는데 아버지 이름을 적는 난에는 '미상'이라고만 적혀있었다."19쪽. 장성한 후 석탄과 목재상을 운영하며 직접 배달원으로 일한다. 아내와 다섯 딸을 두었다. 평범하고 동정심이 많은 사람이고 "장대비가 내렸잖아. 차를 세우고 태워주겠다 하고 주머니에 있던 잔돈을 좀 줬어."20쪽, 좋은 남편이자 좋은 아버지이며, 근면하고 자기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을 배려한다.

펄롱은 자신의 과거를 되돌아보며 자신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도울 수 없다면 살아갈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서로 돕지 않는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나하는 생각이 들었다."119쪽.

아일린은 펄롱의 아내이다. 남편과 삶에 대해 같은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남편의 친절과 공감을 비난한다. 지극히 냉정하고 "여자들은 어떤 일이 일어나기 전에 예측하고, 밤에 꿈으로 꾸고, 속마음을 읽었다. 펄롱은 결혼해서 같이 살던중 아일린이 무섭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고"32쪽, 자기 가족 중심적인 다섯 딸의 어머니이다 "우리가 가진 것 잘 지키고 사람들하고 척지지 않고 부지런히 살면 우리 딸들이 그 애들이 겪는 일들을 겪을 일은 없어."57쪽. 가족 밖의 일에는 눈감고 피하는 캐릭터이다. "사람이 살아가려면 모른 체해야 하는 일도 있는 거야. 그래야 계속 살지."56쪽. "걔들은 우리 애들이 아니라고."57쪽.

윌슨 부인은 부유한 프로테스탄트 미망인이다. 펄롱의 어머니를 하인으로 고용했고, 펄롱의 어머니가 죽은 후에도 펄롱을 계속 데리고 살면서 보살핀  친절한 사람이다. "미시즈 윌슨이 날마다 아래층으로 내려와 요람 속 아기를 들여다보곤 했다." "단 한 번도 후회하지 않으셨지." "너에 대해 함부로 말한 적도 없고, 네 엄마를 심하게 부리지도 않았어."93쪽.

윌슨 부인에게서 교육받으며 자란 결과로 펄롱은 향상된 생활 수준을 개척할 수 있었다. 윌슨 부인은 훗날 펄롱이 도덕과 현실의 갈등에서 옳은 선택을 할 수 있는 가장 큰 역할을 한 셈이다.

세라는 펄롱의 어머니로 미혼모이다. 윌슨 부인네 가정부로 그 집에서 펄롱을 낳아 키웠다. 펄롱이 12살 때 길에서 뇌출혈로 쓰러져 갑자기 죽었다. 펄롱의 아버지가 누군지 알려주지 않은 채. "어머니가 갑자기 죽고말았다. 어느 날 잼을 만들 돌능금을 담은 손수레를 밀고 집으로 가다가 돌길 위에 쓰러졌다."18쪽. 펄롱의 어머니에 대한 기억은 "강하고 주근깨가 있는 팔"과 "소 젖을 짜면서 노래하는 어머니"114쪽 이다. 펄롱이 수녀원 소녀에게 마음을 쓰는 것은 미혼모인 어머니의 처지와 같은 소녀들이기 때문이다. 갇힌 소녀를 구출해낼 용기는 어머니에 대한 기억과 윌슨 부인의 보살핌 영향이다.

세라 레드먼드는 수녀원 석탄광에 갇혀있던 소녀이다. 펄롱의 어머니와 이름이 같다. 이름 뿐 아니라 어린 나이에 출산을 한 미혼모인 것도 펄롱의 어머니와 같다.

네드는 윌슨 부인네 농사 일꾼이다. 윌슨 부인 집에서 펄롱과 펄롱 어머니 세라와 함께 지냈다. 확실한 문장은 없지만 작가는 네드가 펄롱의 아버지일 수도 있다는 암시를 준다. "보니까 친척인 거 알겠네요." "네?" "닮았어요." 여자가 말했다. "네드가 삼촌이에요?"97쪽.

수녀원장은 이중인격자이다. 아이를 석탄광에 가둔 것을 자신은 모르는 척 펄롱 앞에서 위선을 부린다. "어제 왜 석탄 광에 들어갔는지 말해주겠니?" "숨바꼭질이겠지." "이 애한테 뭐 좀 만들어 줄래? 부엌에 데려가서 양껏 먹게 해. 그리고 오늘은 푹 쉬게 하고."79쪽


독자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헌신적인 가장 펄롱, 미혼모의 아들로 태어나 자수성가한 주인공 빌 펄롱의 심리적 변화와 행동을 통해 세상을 읽을 수 있다.

아버지로 암시되는 일꾼 네드는 그에게 따뜻함을 알려주었다.

"펼롱은 네드가 오래 전 크리스마스에 선물해 주었던 보온 물주머니를 생각했다. 그 선물을 받고 실망하긴 했으나 그것 덕분에 밤마다 그 뒤로도 오랫동안 따스함을 느꼈다." 37쪽.

크리스마스에 선물로 기대했던 직소 퍼즐도, 아버지도 오시지 않아 헛간에 가서 혼자 울었던 펄롱이 뒤늦게 보온 물주머니의 따뜻함을 알게되었다.

"내 아버지는 어디에 있을까? 가끔 펄롱은 자기도 모르게 나이 많은 남자를 쳐다보면서 닮은 구석이 있는지 찾거나 사람들이 하는 말에서 힌트를 얻으려고 했다." 31쪽

펄롱이 평생을 품고 살았던 생각, '내 아버지는 누구일까'는 윌슨 부인네 농사일꾼, 보온 물주머니를 선물로 주었던 '네드'에서 마침표를 찍는다. 물론 직설적 문장은 아니다. 암시로 알려줄 뿐이다. 네드는 펄롱의 혈통이 더 나은 출신이라고 생각하게 만들려는 의도로 자신이 아버지임을 내색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네드가 심히 힘들어했던 것, 어머니와 네드가 늘 같이 미사에 가고 같이 식사하고 밤늦은 시간까지 불가에서 이야기를 나구곤 했던 것을 생각하며 그게 무슨 의미일지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110-111쪽.

"펄롱의 구두를 닦아주고 구두끈을 매주고 첫 면도기를 사주고 면도하는 법을 가르쳐주었던 사람이다. 왜 가장 가까이 있는 게 가장 보기 어려운 걸까? 111쪽.

일꾼 네드가 펄롱의 친부이든 아니든 펄롱은 이미 아버지를 만났다. 아버지란 "따뜻한 보온 물주머니"같다는 것을 알았다.


기대했던 선물 직소 퍼즐 대신에 <크리스마스 캐럴> 책을 주었던 윌슨 부인은 큰 사전을 이용해 어휘를 익히도록 도왔고, 이듬 해 펄롱은 맞춤법 대회에서 1등을 했고, 부상으로 필통을 받았다. 윌슨 부인은 자기 자식의 일인양 기뻐했다.

" "자랑스럽게 생각하렴." 미시즈 윌슨이 말했다. 그날 종일, 그 뒤로도 얼마간 펄롱은 키가 한 뼘은 자란 기분으로 자기가 다른 아이들과 다를 바 없이 소중한 존재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돌아다녔다. 37쪽.

"펄롱은 미시즈 윌슨을, 그 분이 날마다 보여준 친절을, 어떻게 펄롱을 가르치고 격려했는지를, 말이나 행동으로 하거나 하지 않은 사소한 것들을, 무얼 알았을 지를 생각했다. 그것들이 한테 합해져서 하나의 삶을 이루었다." 120쪽.

어린 펄롱이 그토록 원했던 크리스마스 선물 직소퍼즐은 받지 못했지만, 펄롱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퍼즐 한 조각을 윌슨 부인에게서 선물받은 것이다.

책에서 윌슨부인을 특히 개신교도로 칭한 것은 이야기의 무대가 아일랜드이기 때문일 것이다. 카톨릭과 개신교의 차이를 실제로 중요하게 여기는 아일랜드에서 종교적 정체성은 중요하다. 카톨릭 수녀원의 폭력과 개신교도 윌슨부인의 친절에 대해 잠시 생각해본다.


16세 미혼모인 어머니에 대한 안타까움은 펄롱이 수녀원 석탄 창고에 갇힌 미혼모 소녀 세라를 구출하는 계기가 된다. 작가는 펄롱 어머니의 이름과 소녀의 이름을 같은 '세라'로 하여 펄롱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기억이 그를 움직이게 했다는 것을 암시한다.

펄롱의 석탄거래중에 가장 큰 곳은 지역 수녀원이다. 석탄 창고 안에 갇힌 소녀를 만남으로 펄롱의 도덕적 양심은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같은 처지였던, 그러나 윌슨 부인의 덕으로 수녀원에 보내지지 않았던 어머니를 생각하며 펄롱의 갈등은 시작된다.

소녀는 밤새도록 석탄 창고에 갇혔었다. 깨진 유리로 덮인 높은 벽안에 가둔 것이다. 소녀는 흙으로 뒤덮여 있고, 차갑고, 겁에 질려 있었다. 그는 그녀를 수녀원장에게로  데려갔고 수녀들은 소녀를 데리고 가서 조용히 시켰다. 수녀원에서 자신들이 인류에 봉사한다고 주장하면서도 오히려 그와 반대되는 종교 기관의 비인간적 행위를 암시한다. 수녀들에 대한 부정적인 암시는 이미 책의 시작부분에도 있었다.

"수녀들은 돌아다니며 학생들을 감독하는 한편 잘사는 부모들에게 인사를 했다. 26쪽.

"잘사는 부모들", 이 단어를 읽는 순간 독서록에 적어둔 단어이다. 잘사는 부모들에게 인사를 했다는 것은 수녀원의 표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단어였다. 수십 년 동안 뉴로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안일함 때문이든 교회 권력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든 수녀들의 범죄를 눈감아 주었다. 자신들의 불의에 대한 묵인이 불의의 진행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생각지도 않은 채.

하루 종일 배달을 하는 동안 펄롱은 혼란스러운 어린 시절의 기억과 아버지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에 사로잡혀 있으며, 이로 인해 그는 다른 사람들, 특히 아내 아일린이 직면하고 싶지 않은 것에 대해 자문한다. 펄롱은 수녀원과 대결할 지 아니면 그의 사업 거래를 위해 모른 척 할지 갈등한다. 수녀들의 비인도적인 행동에 대해 맞서면 공급 계약을 잃게 될 것이고, 그대로 덮어두고 눈감으면 수녀원의 아이들은 침묵 속에서 고통을 겪게 될 것이다. 펄롱의 갈등은 어떤 길을 선택할까.

"문득 서로 돕지 않는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나날을, 수십 년을, 평생을 단 한 번도 세상에 맞설 용기를 내보지 않고는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고 부르고 거울 앞에서 자기 모습을 마주할 수 있나?" 119쪽

주인공 펄롱의 생각이 독자의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책의 끝무렵 독자는 드디어 행복해진 펄롱을 만나게 된다. 사랑하는 가족들에게서조차 얻지 못했던 가장 큰 행복감에 젖은 펄롱이다. 세라를 수녀원에서 데리고 나오는 장면이다.

"아이를 데리고 걸으면서 펄롱은 얼마나 몸이 가볍고 당당한 느낌이던지. 가슴속에 새롭고 새삼스럽고 뭔지 모를 기쁨이 솟았다. ~~~ 대가를 치르게 될 테지만, 그래도 변변찮은 삶에서 펄롱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와 견줄 만한 행복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갓난 딸들을 처음 품에 안고 우렁차고 고집스러운 울음을 들었을 때조차도"  120쪽.


이 수녀원은 미혼 여성들이 겪고 있는 끔찍한 상황을 상세히 기술한 아일랜드 정부의 신랄한 보고서의 초점이 된다.  수녀원의 아이들이 아동노동과 정신적 신체적 학대를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힌다. 책을 통하여 수녀원의 실태를 본다.

"내 아기 어떤지 물어봐 주시겠어요?"

"뭐라고?"

"배고플 텐데. 누가 젖을 주죠?"

"아기가 있어?"

"14주 됐어요. 아기를 데려가버렸는ㄷ[ 만약 여기 있다면 다시 젖을 먹이게 해줄지도 몰라요. 어디 있는지 모르겠어요." 71쪽.


펄롱이 소녀의 손을 잡고 수녀원을 나오는 용감한 선택, 행복한 결론에 이르기까지 펄롱을 괴롭힌 것은 무엇이었을까?

"펄롱을 괴롭힌 것은 아이가 석탄 광에 갇혀 있었다는 것도, 수녀원장의 태도도 아니었다. ~~~그 아이가 받은 취급을 보고만 있었고, 그애의 아기에 대해 묻지도 않았고, ~~~수녀원장이 준 돈을 받았고 텅빈 식탁에 앉은 아이를 작은 카디건 아래에서 젖이 새서 블라우스에 얼룩이 지는 채로 내버려두고 나와 위선자처럼 미사를 보러 갔다는 사실이었다. 99쪽.

펄롱의 이러한 괴로움이 독자에게 주는 메세지는 무엇인가? 이것은 독자 누구에게나 주는 메세지로 지나치기 보다는 '나', 이 책을 읽은 나에게 주는 벼락같은 호통이다. 그동안 보고 눈감았고, 알면서도 모른 척했던 비겁한 나에게, 내 가족의 행복에만 중점을 두었던 나에게 쩌렁쩌렁 울리는 쇠북소리같다.

책은 왜 읽는가?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는 교보생명그룹 창립자 신용호 님의 말은 그냥 멋진 문구일 뿐인가? 돈들이고, 시간없애고, 눈을 혹사시키며 읽는 책이 나에게 아무런 것도 주지못한다면 이 얼마나 헛된 독서란 말인가? 책이 나를 새사람으로 만들어주지 못한다면...? 많은 생각을 남겨주는 책이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이 나의 독서를 정말 사소하게만든다. 지식에 대한 갈망으로 책장을 뒤적였던 나의 독서 아니었던가?

<이처럼 사소한 것들>을 읽는 시간은 자신 가족 일상의 안정 밖에 모르는 펄롱의 아내 아일린, 그 아일린과 같은 나를 발견하는 시간이었다. 변화에 몸을 던진 펄롱의 용기에 감동하면서도 한 발 뒷걸음치는 나를 발견하는 시간이었다. 펄롱을 키운 윌슨 부인의 인도적인 삶을 찬양하면서 '이건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지'를 떠올리는 비겁한 시간이었다.

"차가 수녀원에 가까워지면서 창문으로 비치는 트럭 헤드라이트 불빛 때문에 펄롱은 마치 자기 자신을 만나러 가는 듯한 기분이었다." 66쪽.

펄롱이 "자기 자신을 만나러 가는 듯한  기분"이 든 것처럼, 이 책을 읽는 많은 독자들이 아마도 자기 자신과 만나는 시간이 될지도...


우리 부부가 젊었을 때, 남편은 미국 출장길에 비행기 안에서 입양가는 아기를 보았다. 악을 쓰고 우는 아기 셋을 한꺼번에 데리고 가는 장면, 결국 수면제로 잠재워진 아기들이 눈에 밟혀 잊지 못하는 남편이었다. 그 후 우리는 홀트 아동복지 기관에 우리 아이 셋을 생각하여 세 명의 어린이를 후원했다. 장성하는 우리 아이들 양육비에 쪼들리고 경제적인 궁핍이 닥치면서 여러 해 동안 이어오던 후원금을 끊었다. 해마다 연말에 받던 후원 아이들의 카드도 못받았는데 서운함도 못느끼고 세월은 흘렀다.

펄롱이 미혼모 어머니의 처지를 잊고 살았다면 수도원에 갇힌 세라를 구출할 수 있었을까? 난 참 많은 것을 잊고 살았다......


이 책을 읽으며 떠오른 것은 공지영 작가의 <도가니>였다. "형제 복지원" 사건이었다. 정말 훌륭한 단어 "복지원"이란 간판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우리는 간과한다. 결국은 세상에 드러날 폭력인데, 모두가 뉴로스 마을 주민처럼 묵과한다. 한 명의 펄롱이 필요한 걸 모두 알면서.




1985년, 책 속 주인공 빌 펄롱이 미혼모 소녀 세라의 손을 잡고 수녀원을 나오는 감동적인 결론은 아일랜드의 1985년 저항 행위, 1996년  수녀원 세탁소 폐쇄, 2013년 아일랜드 정부의 뒤늦은 피해자 사과 사이의 간격이 안타깝게도 정의가 실현되기까지 수십 년이 걸린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일랜드의 막달레나 세탁소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하고자 한다. 브리태니커사전과 몇몇 저널을 참고하여 작성했다.


막달레나 세탁소(Magdalene Laundries)

표면적으로는 '타락한 젊은 여성'을 개혁하기 위해 1820년대부터 1996년까지 로마 카톨릭 기관이 운영한 끔찍한 수용소이다.

기관의 이름은 성서에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 중 한 명으로 등장하는 막달라 마리아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6세기에 그녀는 교황 그레고리오 1세에 의해 매춘부로 오인되었고, 이후 기독교 신앙으로 개혁된 ‘타락한 여인’의 예로 사용되었다. 30세 미만의 여성이 참여했지만 처음으로 허용된 그룹은 9세에서 14세 사이의 소녀였다. 그들은 도덕적 교육을 받았고 바느질과 같은 기술을 배웠다.

20세기에 아일랜드의 막달레나 세탁소는 열악한 환경으로 특히 악명이 높았다. 1922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후, 새로운 아일랜드 자유 국가는 로마 카톨릭 교회와 강력한 유대 관계를 맺었다. 부분적으로는 도전적인 탈식민지일 뿐만 아니라 승리에 찬 도덕적이고 가톨릭적인 국가를 만들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1937년에 교회는 국가 헌법에서 “특별한 지위”를 부여받았는데, 여기에는 여성의 이상적인 역할과 위치를 확인하는 조항도 포함되어 있었다. (클레어 키건은 “이처럼 사소한 것들” 소설의 시작 전에 이 조항을 기록한다.)

아일랜드 막달레나 세탁소에서는 고아가 되었거나 가족에게 버림받았거나 가족이 재정적으로 그들을 돌볼 수 없는 소녀들을 받아들였다. 임신한 미혼 여성도 출산 후 '고해'로 세탁소에 보내졌고, 혼전 또는 혼외 성관계를 한 여성도 있었다. 세탁소는 신체적 또는 성적 학대를 당했거나, 발달 장애가 있거나, 사소한 범죄는 물론 영아 살해와 같은 심각한 범죄를 저지른 소녀와 여성을 수용했다. 1922년부터 1996년 사이에 10,000명 이상의 여성과 소녀들이 세탁소에 들어갔다. 때로는 형사 사법 시스템을 통해 갔으며, 일부는 가족이나 신부가 파견했다. 일부는 의료 전문가가 보냈고, 다른 일부는 사회 복지 기관이나 정신 병원 및 지적 장애인 기관에서 보냈다.

선한 목자 수녀원은 사랑, 신앙, 자선을 옹호한다고 주장하지만, 억압받는 여성들을 착취하고 학대하기 위해 아일랜드 정부와 공모하여 마을 세탁 사업을 자본주의적으로 운영했다. 이것은 기독교 이상에 대한 끔찍한 배신이다. 자선 단체라는 지위에도 불구하고 호텔, 병원, 학교 및 정부 기관의 세탁을 담당하는 영리 사업으로 세탁소를 운영했다.

세탁소 여성들은 감독하는 종교 단체와 함께 수녀원 부지에서 살았지만 수녀들과는 별도의 숙소에서 살았다. 그들은 종교 예배에 참석해야 했지만 예배가 진행되는 동안 예배당의 별도 구역에 격리되었다. 묵묵히 노동을 수행했으며 위반에 대한 처벌은 가혹했다. 세탁소의 여성들은 신체적, 언어적 학대를 당하고, 음식과 물을 거부당하고, 새로운 이름을 부여받고, 가족과의 접촉을 거부당했다. 탈출을 시도한 사람들은 경찰이나 종교 수녀들에 의해 세탁소로 돌려보내졌다.


1980년대에 이르러 종교 단체에서는 세탁소를 폐쇄하거나 매각하기 시작했다. 1993년에는 세탁소를 운영하던 더블린의 한 수녀원 부지에서 여성 155명의 집단 무덤이 발굴되면서 스캔들이 터졌다. 이어진 분노는 세탁소의 상황과 역사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세탁소에서 살아남은 여성들을 위한 회복적 정의를 위한 싸움을 했다. 더블린의 션 맥더멋 가Seán McDermott Street에 위치한 아일랜드의 마지막 막달레나 세탁소는 1996년 10월에 문을 닫았다.


최후의 여정 동상(Final Journey Statue)

이 동상은 미혼모, 매춘부, 고아 또는 단순히 '타락한 여성'으로 간주되는 등 다양한 이유로 가톨릭 교회가 운영하는 기관인 막달레나 세탁소 또는 정신병원으로 보내진 막달레나 여성들을 기념하는 것이다.

1991년에 철거된 자비의 수도원 막달레나 세탁소 자리였던 골웨이 시티의 포스터 스트리트(Forster Street) 모퉁이에 서 있는 석회암 조각품이다. 머리에 베일을 벗은 여성의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는데, 이는 세탁소에서 견뎌야 했던 억압과 낙인으로부터의 해방을 상징한다. 이 세탁소의 여성들은 고된 노동, 학대, 고립에 시달렸고 종종 가족이나 외부 세계와의 접촉이 거부되었다. 그들의 이름과 신분을 박탈당했고, 수녀들이 부여한 새로운 이름을 채택하도록 강요받았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에서도 이름이 바뀐 내용이 있다. 펄롱이 석탄광에서 발견한 소녀와의 대화이다.

"엔다? 그건 남자 이름 아니니?"

아이는 대답하지 못했다.

"원래 이름은 뭐야?" 펄롱이 말투를 누그려 물었다.

"세라. 세라 레드먼드요."

"세라, 우리 어머니 이름하고 같구나. 어디에서 왔니? 82쪽.


막달레나 세탁소의 생존자들과 그 친척들은 추모와 완전한 보상을 요구하면서 강간, 학대, 인명 손실의 공포를 상기했다. 정부가 여성에 대한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고 비난하는 유엔 보고서가 발표된 지 2주 만에 마지막으로 폐쇄된 가톨릭 구빈원이 있던 더블린의 션 맥더멋 거리에서 열린 집회 사진.

전직 수상 엔다 케니가 세탁소에 수감된 이들과 그 가족들에게 사과한 지 4년이 지났다.

어머니 메리가 성폭행을 당해 세탁소로 보내진 후 캐슬폴라드 마더 앤 베이비 홈에서 태어난 안젤라 다우니는 기관에서 수고한 모든 여성의 이름을 돌에 새겨달라고 요청했다.


"막달렌(Magdalen) 세탁 시설에서 일했던 여성들과 그 공동체의 일부 구성원들에게 태어난 아이들에게 - 그들의 삶을 여기에서 되새기십시오." 아일랜드 더블린의 세인트 스티븐 그린 파크.


아일랜드는 90년대에 엄청난 사회적 변화를 겪었고 대중은 가톨릭 교회의 권위와 역사적 행동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아일랜드 정부는 1999년에 아동 학대 조사 위원회를 창설했으며, 2009년에 이 위원회는 가톨릭 교회에서 발생한 수천 건의 성적 학대 사례를 자세히 설명하는 충격적인 보고서를 발표했다.

2011년에 옹호 단체인 막달레나 정의(Justice for Magdalenes)는 유엔 고문 방지 위원회에 보고서를 제출하여 아일랜드 정부에 압력을 가하여 세탁소에서 자행된 인권 침해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해당 기관의 생존자들에 대한 구제책을 마련하도록 했다. 그해 말에 아일랜드 정부는 조사를 시작했다. 2013년 2월 정부는 보고서를 발표했는데, 이 보고서는 부분적인 책임만 갖고 세탁소에서의 학대 정도를 경시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그달 말 수상 엔다 케니Enda Kenny(2011-2017 역임)는 세탁소 생존자들에게 공식적인 국가 사과를 발표했다. 세탁소로 인해 삶에 영향을 받은 여성, 소녀 및 그 가족들에게 사과했다. .

아일랜드 정부는 결국 800명이 넘는 여성들에게 보상금을 지급했다. 2022년에는 더블린의 션 맥도멋 스트리트의 세탁소를 제도적 학대 생존자들을 위한 국가적 추모 및 연구 장소로 전환하는 계획이 승인되었다.




2003년에 나온 드라마 영화 <막달레나 시스터즈 The Magdalene Sisters>는 60년대 정신병원에 보내진 세 명의 십대 소녀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영화는 베니스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하며 비평가들의 호평을 받았다.

2013년, 저널리스트 마틴 식스스미스(Martin Sixsmith)의 책 <The Lost Child of Philomena Lee>(한국어 번역본 없음)를 원작으로 한 영화인 <필로메나Philomena>가 만들어졌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2024년 2월 15일 베를린 영화제의 경쟁부분 개막작으로 상영되었으나 수상은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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